지난주에는 영화 <나비와 바다>의 시사회에 참석했습니다.
시사회 장소였던 롯데시네마 피카디리극장은 종3가역 2-1번 출구에 완전히 맞닿아 있어서 찾아가기에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코엑스나 어지간한 CGV보다 더욱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영화관이니만큼 앞으로도 애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비와 바다>는 8년간 연애를 해온 장애인 커플이 결혼을 결심한 후 실제 식을 올리기까지의 과정을 신랑인 우영의 나레티브로 제시된 다큐영화입니다. 특별히 따로 제 3자의 나레이션이 없고, 배경음악도 거의 없으며, 극적인 진행이나 최루성 멜로는 전혀 없이 그저 현실에서 일어나는 이들의 생활을 묵묵히 따라갈 뿐입니다. 하지만 결코 잔잔하기만 한 영화는 아닙니다.
'장애인들도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는구나'고 느꼈던 것이 일차원적인 감상이라면, 그 다음단계에서는 '결국 이들에게도 결혼이라는 허들은 쉽지가 않은 것이구나'하고 느끼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정신은 멀쩡하지만 제약이 많은 신체에 갖혀서 남들보다 일상적인 일을 하는데 몇배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의 심정이 조금씩 전해져 옵니다. 결국 몸이 불편한 정도의 차이가 존재할 뿐, 본질적으로 우린 모두 같은 인간인데, 이들을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보고 같이 교류한 경험이 너무나 적은 사람들에겐 그 단순한 사실조차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입니다.
관객들이 이들이 연애하는 장면에서 연출되는 (일반인에겐 너무나 평범한) 애정행각에 웃음보를 터트리는 이유에 대해서 조금 생각 해 봤습니다. 그 웃음의 의미는 '이렇게 모자라 보이고 어수룩한 사람들도 할건 다 하는구나' 하는, 귀여워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웃음이 아니었을까? 나만해도 같이 웃거나 미소를 짓게 되는 원인이 거기에 있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잠시 한켠에 제껴두고 이 영화를 계속 보면 이들이 처한 환경은 마냥 장밋빛은 아닙니다.
포스터 및 이미지 출처: naviwabada.tistory.com
이 영화의 내러티브는 제제(애칭)과 결혼하고 싶어 하는 우영의 1인칭 시점이 주를 이룹니다. 제제는 말이 거의 없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결혼을 망설이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는 모든이들이 설득의 대상으로 삼는 목표물이자 쟁취의 대상의 위치에 있습니다. 여러가지로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우영은 제제를 배려하는 것 처럼 보이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결혼이라는 지점에 도달하기 위한 목표로 하나씩 설득의 절차를 밟아나가고 있습니다. 우영이 이토록 제제와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혼을 하게 되면 시집살이를 해야하는 제제는 처음부터 부담스러워 했고 "자신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에대한 우영의 대답은:
"오빠가 잘 할게"
"오빠만 믿어"
어머니의 물리적인 도움이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에 가까운 우영은 모르는 것일까요? 제제가 우영의 집으로 시집을 올 경우 어머니는 두 아이들(?)를 돌봐야 한다는 것을? 그나마 몸을 더 잘 가눌 수 있는 제제에게도 익숙한 집을 떠나 시집살이를 한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일텐데, 과연 제제의 마음은 어느정도 헤아리고 있는 것일까? 혹시 제제가 말을 하지 않아서 아예 모르는 것은 아닐까? 우영의 내러티브를 들으면, 그런 우려스러운 점들은 설득해서 넘겨야 할 대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듯, 별로 안중에 없는 것 같고, 중요한 것은 어머니가 영영 떠나실 때 자신이 혼자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해소시켜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을 달래야 하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다 비슷한 마음으로 결혼이라는 목표를 삼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노년에 병들고 힘이 없을때 옆에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결혼이라는 장벽을 뛰어넘었다는 박수갈채가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점에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영화였습니다. 어찌됐건 오래 사랑해온 이들이 앞으로도 행복하게 함께 살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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