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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야기/음악감상실

12월 음악회 리뷰 - 펜데레츠키, 북한 음악, 태싯그룹 등


저엉말 오랫만입니다!
멍때리는 사이에 곡 발표도 하고, 크리스마스도 지나고 새해가 밝아오기 직전이네요...

저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제자가 북한의 교향곡들 악보를 구해다 줬습니다. 같이 분석하자고 하네요 +_+

22:20즘에 프랑스 국가가 들리는 듯 하기도...!



가끔은, 아니 종종 저는 일과 놀이의 구분이 잘 가지 않곤 합니다.

당장 써야 할 곡을 안쓰고 나중에 써도 되는 곡을 쓸때, 중요한 서류를 준비하는 대신 다음레슨때 봐줄 화성학 문제를 풀어볼때, 수업준비를 해야 하는 타이밍에 제 곡이 연주되는 음악회를 홍보하려고 페북에 들어갔다가 인터넷 망망대해에서 익사위기에 처할때.....

하지만 네트워킹을 빙자한 이런저런 이유로 음악회에 갈때야말로 놀이와 일의 구분이 무의미 할 정도로 애매모호하고, 제 컨디션과 마음상태 및 음악회의 수준에 따라 하루하루를 감동으로 마무리 할 수도 있으니... 이럴땐 참으로 복받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지난 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음악회에 다녀왔습니다.
오선지는 팽개쳐두고 밤마다 나갔다 오려니 할일은 쌓여만 가고 피곤이 당췌 풀리지 않아서 고역이었지만, 하루하루가 기억에서 지우고 싶지 않을 의미있는 날들이어서, 오늘은 특별이 이 한 주의 기록을 담고싶습니다~


월요일: 고등학교 실기선생님이자 제겐 최초의 작곡선생님이신 이순교 선생님의 곡을 처음으로 듣게 되었습니다. 한국가곡의 명맥을 계승하는 작품들이 발표된 음악회였는데, 악기로만 이루어진 실내악 현대음악이랑은 또 다른 분위기가 풍겼습니다.  선생님 곡 중에 이날 유일하게 발표된 무조음악이 있었는데, 객석이 조금 술렁이더군요...^^ 

이순교 선생님은 제가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는 좋은 선생님입니다. 입시준비를 해야 하는 제한된 환경에서도 제가 원하는 음악을 과하지 않은 선에서 최대한 마음껏 발휘하도록 도와주셨고, 제 음악성의 기초를 다져주셨으니까요!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지도교수님이 마침 안식년이어서, 선생님께 작곡실기 레슨을 1년간 받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행위예술에 가까운 뻘아이디어들을 참 쉴새없이 많이도 들고 갔었는데 절대 화내시지 않고 제가 가져간 아이디어가 왜 현실성이 없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습니다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1학년 1학기 작곡실기 점수는 최하를 면하지 못했었는데, 제 예술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선생님들께 서운하고 약올라서 2학기때는 보수파 노선(?)을 택하여 중간곡으로 브람스 풍의 4악장짜리 소나타를 쓰고 기말때는 피아노 트리오를 위한 8개의 변주곡(베토벤 스타일의 테마에다가 각 변주곡마다 20세기의 다양한 스타일을 하나씩 따라해봄ㅋㅋ)을 제출했더니 이때는 좋은 점수가 나왔습니다ㅎㅎ  

지금 생각하면 1학년 1학기에 제가 한 짓을 생각하면 저도 그닥 할 말이 없습니다. 기말곡의 피아노 파트는 (어디서 주워들은건 있어서) 왼손만을 위한 한 단짜리 악보를 적었고(게을러 보였을 듯), 상투적인 종지가 싫다며 마지막 마디 마지막 박자의 마지막 음을 64분음표로 적고 곡을 마무리했으니까요(쓰다만줄 아셨을듯 ㅋㅋ) 이건 그냥...제대로 된 음악이 아니었던게죠 ㅎㅎ 

이후로 다행히도 저는 학교에 완전히 적응하여 문제없이 실기곡을 제출 할 수 있었습니다 ^^;;;



입이 방정이군요. 오늘은 음악회 리뷰 하는 날이었는데 ㅠ




화요일: 서울국제음악제 둘째날 - 앙상블 오푸스 실내악 공연(브람스 4중주, 펜데레츠키 6중주 + 제가 쓴 피아노 사중주곡!)


2013/11/26 - 앙상블 오푸스가 제가 쓴 피아노 사중주 곡 연주합니다


이 곡은 진주에서 먼저 초연 되었던 것이 오푸스에서도 연주가 되었는데, 두번째로 연주가 되어서 그런지, 저는 초연때와는 달리 이상하게도 리허설 때부터 뭔가 '이게 아닌데...'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위축되고 자신감이 줄어들었죠..ㅠ  아무리 자신없어도 리허설때와 발표날에는 자신감이 넘치는 척 연기라도 해야 하는데, 올해 끊이지 않는 행사들에 지치고 타성이 젖은건지, 아무도 모르는 쥐구멍에서 혼자 호의호식(?)하고자 하는 제 본성을 덮기가 몹시 힘들었습니다.  


리허설 장면


어찌됐건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보러 와 주셨고, 의외로 "용감하다"는 평을 많이 들었습니다. 작곡가 펜데레츠키도 객석에 있었는데 끝나고 나서 interesting했다며 칭찬 해 줬습니다! ^^v 

더 잘하라는 격려의 말씀으로 듣고 얼른 발전된 모습을 보이기 위해 겨울잠, 아니 겨울에 조용히 내공을 쌓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ㅠㅠ

이날 연주된 펜데레츠키의 6중주곡은 굉장히 흥미롭고 악기간의 조화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살짝 Totentanz풍의 리드미컬하고 무서운(?) 틀에 특유의 반음계와 4도 도약을 섞은 선율이 조화를 이뤄 웅장함보다는 기괴한 느낌을 주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다음날인 수요일에는 5일간 열리는 서울국제음악제의 셋째날이자 바로크합주단의 연주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이번 음악제의 테마는 곧 펜데레츠키였는데, 한국에서 그의 계보를 잇는 작곡가 류재준의 첼로 협주곡이 연주 되었습니다. 음악적으로 후기 펜데레츠키의 계보를 잇는다는 것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스타일의 작품이었습니다. 이어서 연주된 펜데레츠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의 화려함과 중후함이 매우 돋보이게 되었습니다.  이날 협연한 첼리스트 Arto Noras와 백주영은 정말 흠잡을 수 없게 능숙한 연주를 보여줘서, 오히려 듣는 이의 긴장이 풀려 버리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목요일에는 고 장정익 교수님의 추모음악회가 있었습니다. 프로그램 편성에 국악관현악단과 합창단까지 있는, 연주자 수로만 봤을 땐 꽤 성대한 공연이었는데, 진행보조 및 회계를 맡은 저로서는 정신이 한개도 없고 넋이 나갈 것만 같았습니다.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불현듯 추모음악회 따위(?)나 준비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퍼지며 '지금 이게 뭔가'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드는 바람에 마음이 좀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마침 눈이 많이 내려서 선생님이 떠나시던, 눈이 아주 많이 내리던 날이 떠오르기도 하고... 

다행인 것은 큰 사건사고 없이 무사히 진행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ㅠ 모두들 큰 불만 없이 좋은 추억으로 기억에 남기를 바라고, 하늘에 계신 선생님도 흡족해 하셨길 바라게 됩니다.



금요일에는 펜데레츠키 교향곡 7번, '7 Gates of Jerusalem'이 KBS교향악단의 연주와 작곡가 본인의 지휘로 한국에서 초연 되었습니다.  제가 예약한 자리는 1.5층에 있는 박스석이었는데, 마침 KBS에서 온 카메라가 제 바로 뒤에 위치 해 있었습니다.  오홋..그렇다면 여기가 바로 명당자리?  ^^;; 

옛날에는 너무 옆에서 듣는 느낌이 싫어서 박스석을 기피했었는데, 이날 오랫만에 앉아서 들어보니 의외로 아늑하고 조용한게(한 줄에 두명, 총 6자리만 있는 구역이었으니까요) 음악에 집중이 더 잘 되고, 뭔가 귀족(?)이 된 듯한 기분도 들고 좋았습니다. 앞으로 애용...하자니 표값의 압박이....ㅠ

이 곡은 합창단과 솔로 성악가들, 나레이터, 그리고 합창석 양 옆으로 관악기들이 추가로 포진되어있던(윗 사진 오른쪽 상단의 빈 자리들에 보면대가 보이시나요?),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인해전술식 초대형 편성이었습니다. 베토벤 합창을 들을때 처음에는 감동적이지만, 여러번 듣다 보면 뭔가 베토벤이 굉장한 상남자라는 생각이 들곤 했는데, 이와 비슷한 느낌을 후기 낭만 교향곡들(특히 말러)에서도 느껴왔기 때문이지요. 펜데레츠키를 빗대어 신낭만주의 작곡가라고 부르더니 이런 편성의 곡을 썼구나~ 하면서 큰 기대를 안하고 듣다가 완전 넉다운 될 정도로 큰 감동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올해 들어 처음으로 대형 편성의 관현악곡이 마구마구 쓰고 싶어졌습니다.  흠... 2014년 목표중의 하나로...?





토요일에는 새로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찾아가 태싯그룹의 미디어아트 퍼포먼스를 구경했습니다.

윗 사진들은 사실 공연날이 아닌 그 이전에 놀러갔을 때 찍은 사진들입니다.

사실 인터넷에서만 본 태싯그룹은 굉장히 멋지고 신선해 보여서 큰 기대를 안고 이날 공연을 가긴 했습니다. 무대가 있어야 할 공간에 대형 스크린과 노트북들이 있고 연주자(?)들이 노트북에서 오락 비슷한 걸 하고 있으면 그것이 음악에 반영되는 점이 참 흥미로웠는데, 한가지 욕심을 부리자면, 프로그래밍에 따른 효과음 너머의 더 깊고 복잡한 세계에 관객들이 함께 발을 들여놓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음악회들이 계속되었던 한 주에 대한 리뷰였습니다! 이제 연말연시고 하니, 그만 좀 돌아다니고 겨울잠을 청해 보려 하는데, 생각처럼 쉽게 될 지 약간 걱정입니다...;; 일단 이불 뒤집어쓰고 교향곡 피바다 분석부터 ㄱㄱㅅ~~~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