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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야기/음악과 함께 하는 일상

음악회 표값에 관한 논쟁



얼마전에 인상깊은 기사를 보고 페이스북에 링크를 걸었던 것이 쓰나미같은 논쟁에 휘말려서 블로그에도 소개합니다.

기사 직접 보기(링크)



윗 기사를 제 나름대로 아래와 같이 코멘트를 달고 페북에 실었습니다: 



그러고나서 달린 댓글들(일부 페친의 요청에 따라 익명처리):

ㅅ: 시장 논리에 따라, 자연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공연이 도태된 것일뿐... 큰 문제는 없다는게 제 사견입니다. 어차피 원래부터 상업적 목적을 가지고 만든 공연이기보다, 개인의 실적, 프로필 등을 위해 개인이 투자해서 올리는 공연의 성격이 강하고, 이러한 구조를 생산자, 소비자 모두가 합의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 현상을 시장 논리에 대입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M: ㅅ님의 말씀이 백번 옳다 생각합니다. 예술은 예술로 이야기하는 것이 맞겠지만 상업적인 부분으로 넘어 온다면 지극히 시장경제의 원리로 이야기 되야 합니다. 시장성이 없으면 도태되고 어떻게든 시장성을 갖추려 노력해야 하는 곳이 시장입니다.


S: 기자의 글에서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현상과 그 원인 분석에서 좀 더 근원적으로 접근하는 시각이 있었더라면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아직도 문화선진국에 한참 뒤떨어지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로 예술인의 행위를 노동으로 보지 않는 개인의 인식 문제와 그렇게 볼 수 있도록 가르치지 않는 우리 교육제도 및 사회 분위기라고 생각합니다. 

공연 주최자가 개인의 실적을 위해 투자한 공연이라 하더라도 (직업)예술인의 노동 결과는 오로지 공연이라는 형태만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거창하게 상업적인 목적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노동 결과물에 대한 최소한의 대가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점점 공연의 질은 떨어질 것이고 공연에 가족, 친지, 지인과 제자들이 동원되는 일이 멈춰지지 않을 것입니다. 

독일에서 공부하면서 정말 놀랐던 건 어느 공연 하나도 공짜로 보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종종 시에서 직접 연주자를 후원하는 경우 제외) 

대학교에서 열리는 학생 발표회도 그리 부담되지 않는 가격 안에서 (만 원대) 푯값을 다 지급하고 보고 하다못해 어느 동네 출신 동호회 성격의 합창단 공연이나 어린이들 공연에도 (당연히 비전공자) 다 일정 금액의 표를 사고 봅니다. 

독일인은 예술 (노동) 행위를 인정하고 그 (노동)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아마추어 연주자나 어린 학생들의 예술 행위를 격려, 후원하는 맘으로 표를 사는 것이겠지요. 

우리나라는 아직도 예술행위를 기꺼이 후원할(즐길) 만큼 국민의 소득 수준이나 문화 의식이 높지 않다고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외국의 이름있는 연주자들 내한 공연에서 팔리는 어마어마한 금액의 표나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독일과 비교했을 때 아마추어와 프로연주자의 푯값 간격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크다는 말) 북새통을 이루는 공연장 모습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J: S 님 훌륭한 댓글 감사해요..ㅠ  ㅈ님 말씀에 어느정도 공감은 하지만, 상업적인 부분으로 넘어온다면 그건 대중예술이고, 순수예술가는 상업성이나 시장성에 신경을 분산시키지 않은채 자신의 예술세계를 깊이 파고드는 집중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방식의 가치창출이 (금전적으로나 사회적 지위로나)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그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비참한 신세로 내몰리는 이 곳은 선진국이 아닌 사회라는 사실의 반증이 아닐까.. S님이 말한 사람들이 유명인의 공연에 쏠리는 현상은 문화생활 초보자들이 자신의 안목을 믿지 못하는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도 있을테니 시간의 흐름과 교육의 개선이 뒷받침되면 자연스레 해결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희망해 볼 수 있고... 물론, 연주자/공연주최자가 분발해야 하는것도 맞음.. 자신이 돈내고 치루는 공연이니까 내맘대로 막해도 된다는 안일함과 지인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소통의 부재는 안그래도 지저분한 공연풍토를 더더더 오염시키는 일일테니.. 결론: 다들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하자?





M: 엊그제 수업을 하다 선생님이 그러셨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두 가지 직업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고, 돈을 벌려 했으면 예술 말고 돈 벌기 위한 좋은 것들이 많지 않냐고, 자신의 작업에 대한 당위성을 시장성이나 금전적으로 환치시키는 순간 이미 그것은 시장경제의 일부 속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당연하게 경쟁력과 수요자의 구매욕구나 환경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하고, 그것이 아닌 순수 예술로서 자신의 작업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거나 소통을 원하는 것이라면 굳이 그것에 돈을 받지 않아도 별 상관이 없겠지. 언제나 고민되는 문제거리. 예술로서의 자의식 확충과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그 중간 지점의 어딘가를 찾는다는 건.





J: (일단 저질 공연은 논외로 하고) 자의식을 확충한 예술가의 작품을 들여다보기 위해 표값/입장료등의 대가를 치를 생각이 기본적으로 아예 없다는것은 문제라고 생각함. 누구에게나 열려있도록 무제한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부나 메세나 정신을 가진 기업 등의 큰손의 지원이 필요하고.. 예술가 개인에게 '넌 순수했으니까 그냥 돈은 바라지 말어'라고 하면 영세한 규모의 자잘한 활동은 가능하겠지만, 진정 크게 놀 수 있는 힘이 생길까?








M: 그런데 그 크게 놀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 왜 기업이나 대중이 지갑을 열어야 하냐는거지? 그리고 열어야 한다면 그 당위성을 설명해주고 그들을 이해시키는 것 또한 예술가의 의무가 아닐까?








J: 돈없이도 크게 놀 수 있다는 이야기? 아니면 돈을 위해서 다른 이의 지갑이 필요없다는 이야기임? 당위성을 설명해주고 이해시키는 정도의 소통능력은 물론 예술가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능력이겠지만, 이때 예술가가 정치인이나 사업가가 되지 않고도 설명이 가능할 정도로 기업이나 정책입안자, 대중등의 안목이 높아야 순수함을 유지한 채로 말이 통하는게 가능하겠지..?






M: 아니. 돈이 없으면 크게 놀 수 없다면, 그래서 돈이 필요한 거라면 자기 지갑을 열던가, 그것이 안되서 남의 지갑을 열어야 한다면 적어도 그들이 지갑을 열기 위한 당위성 정도는 최소한 예술가들이 설정해줘야 한다고 봐. 그것을 국가와 대중들의 안목 수준 차이 정도로 취급해버리는 것은 직무유기 아닐까.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시장 논리에 따라 자연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공연이 도태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고, 혹 완성도가 괜찮은데 도태된다면 그것은 작가가 자기 작품의 수요자와 제대로 된 소통을 안한 것인거지 결코 수요자의 안목을 탓할게 아니라는거야. 만일 수요자의 안목을 탓할거면 애초에 그런 수요자들이 있는 시장에서 자신의 작품을 상업적인- 모든 금전 거래는 상업적일 수 밖에 없다 생각해- 모델로서 내세운 작가의 판단착오가 더 먼저가 아닐까. 그게 아니고 애초에 너희는 이런 걸 이해할 수 없지만 우리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 이런걸 이해해야해 그러니 닥치고 돈내고 와서보고 이해안되도 이해하려 노력해봐 밖에 안되잖어.







J: 돈없는 천재가 프랑스랑 한국에서 똑같이 성공한다면 네 말에 동의하겠음 ^^






M: 아. 어떤 의미인지 알겠다. 그들의 예술가는 일종의 집단적 전통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들의 작품에 대한 수요가 어느 정도 유지되도록 오랜 세월에 걸쳐서 작업해온게 아닐까 생각했었어. 일종의 상인길드처럼. 자연스럽게.






J: 수요자들이 없는 시장에선 금전거래는 바랄수 없다면 다른 직업으로 먹고살아야 하고 결국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에 전념하기 힘들어지겠네.. 그렇게 되면 문화적인 수요가 다양하지 않은 (예를 들어 우리나라같은) 사회에서는 더더욱 다양성이 존중받지 못하고 대안적인 목소리를 내는 순수예술 특유의 기능이 사라질 수밖에 없고.. 다좋은데 난 이건 좀 걱정 ㅠ 바로 윗글은 프랑스 이야기임?








M: 프랑스라기 보다는 대부분의 유럽 문화권이 아닐까 싶은데, 여기서도 보면 음악으로 먹고 살기 힘들다. 한국에서는 음악만해서도 먹고 살 수 있느냐? 이런 질문을 해대는 걸 보면 실상은 똑같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쪽의 시장성이 한국보다 나아 보이는 이유는-좀 더 광범위한 영역에 대해서- 사람들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매인스트림이 아닌 예술에 대해서도 지원을 해야한다거나 그것을 즐길려는 마음 자세가 되어 있으니까겠지. 그리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입장에서 이러한 발판은 분명 부러운 것이겠지만, 과연 그러한 발판이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에 대한 생각과 그를 통해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수요를 창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뒤따르지 않을까 싶다는거지.






J: 그러게... 우리나라도 시나브로 생기는 것 같긴 한데.. 경제는 참 빨리도 성장하는데 이런 발판은 참 더디게 마련된단 말이지 ㅋㅋ 수요를 창출하는 방법이라.. 기본적으로 다양성이 존중되는 문화가 필요한 동시에 예술가들 개개인의 노력도 필요하겠지.. 그나저나 넌 한국엔 언제와?






M: 예전에 세션뛰는 형이랑 이야기하면서 한국에 재즈신은 뭐 거의 다 죽어서 돈이 절대 안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그래서 한마디 했지. '빅뱅이 재즈앨범내면 재즈신에 돈이 돌걸?' 그래. 결국 급을 따지기 이전에 대중이 원하는 것은 시각적 자극과 아이콘인 듯 해. 어찌보면 영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야. 더럽고 치사하게도 연주자가 잘생기고 예쁘면, 그들의 노력에는 미안하지만, 콘서트 티켓이 좀 더 잘 팔리는 것은 기정 사실이니. 그런데 지금과 같이 시각적 자극들이 음악신을 지배하게 된 원인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고, 위에서 말했듯이 이런 식으로 음악 씬이 대중적으로 흘러가도록 잘 디자인되어져 왔다는 이야기야.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을 볼께 아니라, 앞으로를 위해서 누군가는 균형있는 발전을 위한 시스템을 디자인하고 그것을 우리 사회에 안착시켜야 하지 않을까 싶어.






M: 올 해 들어가서 씬 좀 보고 내년에 귀국할려고,








J: 씬 좀 보고 나면 영영 귀국 안할지도 ㅎㅎㅎㅎ;;; 농담이고, 한국에 재즈신이 죽은 것이 절대 전적으로 재즈 뮤지션들의 탓이 아니며,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시각적 자극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참 내겐 슬프게 느껴지네.. 바로 이런 부분에서 정부가 재즈신의 명맥이라도 유지 되게끔 보호차원의 지원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 수출품에 투자하듯이 케이팝에 돈쏟을거 1/100이라도 어케 안될까?; 암튼, 한국올따 꼭 연락하삼!





M: ㅋㅋㅋㅋㅋ 그거야 말로 포퓰리즘성 정책이다. 결국은 대중에게 외면받을 신에 국민의 세금을 쏟아붓는 건 밑빠진 독에 물붓기 아닐까. 아는 만큼 들리고 들리는 만큼 즐긴다고, 대중이 어떻게 접근하게 만들고 즐기게 할지를 생각해야겠지. 그런데 또 만일 대중화 되어버리면 일부 애호가들은 싫어하겠다. 클래식이나 재즈의 향유가 일종의 계급적 차별화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더라. 우리나라에선..전혀 뮤지션들에게는 도움도 안되면서.








J: 대중이 어떻게 접근하게 만들고 즐기게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 포퓰리즘 정책이라는것엔 동의하기 힘드네.. 네 말이 맞다면 진작에 정치인들이 가만 안있었을텐데ㅋ;; 예술 신에 대한 투자의 기준이 대중이 외면할지 안할지의 여부라면 문제가 있을것 같은데? 물론 미국흑인들이 시작한 음악을 왜 우리나라에서 보호해야 하냐 한다면 할말은 없지만.. 무튼 밤이 깊었으므로 오늘은 여기까지...^^ 덕분에 많은걸 생각해봤어 ㄱㅅㄱㅅ^^






S: 갑자기 시장경제와 직접적으로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인문학이나 철학이 떠오릅니다.

이쪽 계통에도 지식을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해 쉽고 친밀한 언어로 강연을 나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연구소에 박혀서 보통 사람들은 그 존재조차 모를 어느 학술논문집에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모를) 성과물을 꾸준히 기재하는 사람이 있겠죠.

후자의 경우, 시장 논리로 따지면 경쟁력 제로인 순수학문 연구입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도 어렵고 어쩌면 이런 연구의 필요성조차도 느끼기 어려운 분야일지도 모르겠으나, 분명히 직간접적으로 사회에 이바지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어떤 협회나 아니면 국가 차원에서 수입원을 어느 정도 (많고 적음은 논외) 보장해줍니다.

그런데 예술 영역에 한해서는 '개인의 욕구 실현' 차원으로 한정 지어버리고 (대중을 위해 예술을 하는 사람도 기본적으로는 개인 욕구 충족이 우선임. 예술뿐만이 아니라 모든 일이 다 그렇겠음) 따라서 예술 행위를 노동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특히 순수예술은 그 목적 자체가 '모든' 대중을 만족시키는 게 아니라 (이건 대중예술인이 이미 하고 있음) 학술지에 논문을 올리는 학자처럼 (진리^^)'탐구' 그 자체가 목적인데, 시장성을 확보하지 못한다고 수입에 대한 문제를 오롯이 예술가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돌린다면 이것이야말로 우리 예술의 발전을 막는 주된 원인이겠죠.

(예술인이 투잡을 뛰다 보면 작품에 몰두하기가 어려워지고 작품을 선보이고 싶을 때마다 공연 기획까지 걱정해야 한다면 자연스럽게 공연의 완성도가 떨어지기 십상임)

대중의 인식은 금방 바뀌지 않으니까, 그래서 더더욱 국가 차원에서 예술인의 작품 활동을 노동으로 인정해주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보장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쟁력이 없다고 한국 대학에서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등 학과를 막 폐지한다면 (이미 상당수가 폐지됐죠) 우리나라의 장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는 게 자명하네요.


M: 시장경제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인문학의 시작은 애초에 신이란 무엇인가에서 시작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로 들어가게 된 학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철학또한 인문학의 한 분야이겠지만, 기본적으로 이 학문은 경제활동과 관련이 없어 보이면서 가장 기본이 되는 부분임을 대부분 다 알고 있다 생각합니다. (철학적 사조가 바뀔 때마다 그에 따른 사회 전반의 가치관, 과학 경제 등은 그 영향 아래에 놓일 수 밖에 없으니까요.) 거기에 더 중요한 것은 이 학문의 기본 요소가 인간의 언어와 기호 위에 세워져 있고 유기적인 관계성을 가지며 상호보완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발전은 언어와 기호에 영향을 미치며 그 영향은 사회전반을 바꿉니다. 그러나 음악적 기호와 언어는 그와 달리 사회의 존재 자체에 유기적인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말하기에는 직접적이지 않습니다. 인간의 언어는 소통을 위해 필수불가결 하지만 음악적 언어는 향유를 위해서 선택적이기 때문입니다. 태생은 모두 필요에 의해서였으나 인간 언어는 존재에 대한 절대적 당위성을 지니고 있고 현재 음악에서 언어의 존재란 음악가들 간의 소통과 그를 향유하는 계층을 위한 특수 언어일 뿐입니다. 그것을 모른다 하여도 음을 즐기는데 큰 불편함은 없으니까요. 결국 그 언어가 얼만큼 이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지에 따라 그에 대한 권력계층-여기에서 권력이란 다수의 수요가 존재하고 그에 따른 욕구가 생성이 되었을 때 그 힘 또한 권력이라는 의미에서 사용합니다.-의 필요도 생겨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순수 예술로서의 실험음악과 여러가지 시도들은 분명 음악 전반을 위한 밑거름이 되는 것이기에 그 활동이 격려되어야 하고 살아 있어야 합니다. 과거 음악이 국가의 치세에 연결되어 있을 때에는 오히려 실험이란 존재하기 어려웠겠지만 대신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국가를 벗어나 음악이 대중들에게로 간 후에는 민중의 음악은 민중의 음악대로 귀족들의 음악은 귀족들의 음악대로 음악가들은 자생적 생활 토대를 마련해야 했고, 그 경제활동에 투자자의 존재는 모두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즉 그 순간부터 음악은 시장경제 속에 자리잡아 그 삶의 기틀을 닦았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발전의 기본 바탕이 되어주는 인문학에 국가가 투자하는 것과 음악에 국가가 투자하는 것은 그 출발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정부에서 케이팝에 지원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가의 브랜드 마케팅 전략과 더불어 경제적 효과를 노리는 상업적 전략이 아니던가요. 치세의 기본이 되어서 국가가 투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투자란 기본적으로 공짜가 아니지요. 그만큼 수익성이 있기 때문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정부가 인문학들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이유는 만일 인문학과 순수학문 분야의 지원을 하지 않아서 그 기본이 약해질 경우 그에 따른 파급력이 존재 하기 때문이고 후폭풍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일 겁니다. 기억에 과거 80년대를 지나 90년대를 들어섰을 때, 인문학과 순수과학 분야들이 실용학문 분야에 비해 지원도 없고 하려는 이들도 줄어서 걱정이라는 신문기사를 본적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꽤 몇년 갔었더랬죠. 만일 이러한 순수학문들에 국가의 지원이 현재 있다면 그것은 모두 그러한 요구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음악 또한 인문학과 같다고 말하며 같은 대우를 받기에는 아무래도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J: 인문학과 음악의 그런 차이점에 대해서는 네 덕에 첨 생각해보네.. 땡큐~ 

난 국가가 예술에 대한 '투자'를 할때 좀더 '보호'의 측면에서 바라봐줬으면 좋겠어. 문화콘텐츠 수출을 통한 막대한 이익도 좋지만, 지금 현재의 트렌드에 따르지 않아서 시장성이 없는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기본권, 생존권 보장의 차원에서 최소한 의식주는 해결하게 해주면 좋지 않을까? 너무 유토피아적인 발상이란거 나도 알아. 실상은 삶의 권리와 직결되는 의료보험도 민영화 되는 판국이니까..orz

다시 S님의 첫댓글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를 하자면, 아무리 개인이 돈들여서 (상품성 없는)공연 판을 벌리고 사람들을 초대했다 해도, 심지어 그것이 저질공연이었다고 해도, 주최자는 입장료를 받(는다고 욕먹지 않)을 권한이 있고, 관객은 자신의 문화적 경험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는것이 기본 예의라고 생각해. 친구가 만든 수공예품을 장터에서 팔고있는데 이거 엉터리니까 그냥 내노라고 할 수 있을까? 왜 유독 음악을 생산하는 일은 (품질 고저를 막론하고) 노동으로 치지 않을까... 기본적으로 예술은 필요없는 잉여의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있어.. 내가보기엔 이세상의 수많은 물건들이 더 잉여스러운데 말이지...




M: 물론 돈을 내고 표를 산 이후의 책임은 모두 소비자에게 있지 그 공연이 저질이든 아니든, 다만 요새 세상의 카더라 통신은 무서운 것이라, 그에 대한 후기가 여기저기서 난무할거야. 그리고 귀가 얇은 대중에 의해 별로인 공연은 도태되겠지. 나도 노동의 댓가에 대해서는 분명 공감해. 하지만 일했기 때문에 돈내놔는 깡패라는거야. 그래서 음악가들에게 기획사와 매니저가 필요한거 같아. 음악가들은 음악하고 그것을 잘 디자인해서 사람들에게 내놓고 스케쥴을 짜는 것은 다른 이들이 하는 것. 케이팝 시장은 사실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에 의해 주도되어왔고, 아이콘들은 대부분 헤더들에 의해 이미징 된 거니까, 마찬가지로 이젠 클래식이나 퍼포머 실험음악계에서도 기획사로서의 성격을 넘어서 매니지먼트 성격의 회사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건 마치 건축가와 시공사의 관계랄까, 프랑스의 건축가들이 한국보다 좋은 부분은 자신의 상상에 따라서 얼마든지 디자인하고 시공사는 어떻게든 그 부분을 현실화 시킨다는거야. 마찬가지로 여기와서 놀란 부분은 미술학교에서 학생들은 아이디어와 개념을 배우지 그림을 어떻게 그리고 조각을 어떻게 하고를 배우지 않더라. 그것은 아티쌍의 몫인거지. 이미 수많은 분업들이 이루어지고 있더라고, 예전부터 주장했던건데, 우리도 집단이 필요해. 음악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작곡가와 연주가로서 창작과 실연의 분업이 이루어져 있었지만. 뭐랄까. 기획자의 존재가 절실하다. 좀 더 적극적이고 예술적이며 그것을 상업적으로 잘 포장할 줄 아는 기획자.

S: 순수예술의 필요성과 그 활동이 적극 장려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 동의하면서도 창작활동의 기반이 되는 자금 문제에 관해서는 오롯이 예술가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어야 한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계속 반복해서 말하는 부분인데, 순수예술인이 시장성을 고민하는 순간, 순수예술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예술인이 창작활동에 있어서 시장성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면 실험적이고 과감한 시도보다는 다수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리고 순수예술을 택했으니 그 숭고한 정신으로 이 모든 경제적 어려움을 다 감당하길 바라는 건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가는 순수예술가에게 무척 가혹한 요구이자 지속적인 창작활동의 사기 저하의 원인이 됩니다. 

아무튼, 순수예술을 J가 언급한 대로 국가의 보호(지원, 투자) 없이 시장에 던져놓으면 당연히 도태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과적으로 사회 전반적으로 다양성이 모자란 획일화된 예술 형태만을 낳는 즉, 폭넓은 예술의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예술인이 작품에 몰두할 수 있도록 중간에서 기획을 담당하는 기구가 나온다고 한들, 시장성을 무시한 채 순수예술을 무상지원할 민간업체는 찾기 어려울 겁니다. 

순수예술을 추구한다고 해도 그 기획사를 운영하는 힘은 결국은 자본인데, 아직 공연 표를 돈 주고 사는 게 이상하고 예술인의 노동 대가에 대한 요구를 깡패로 보는 우리 현실에서는, 결국은 예술가는 기획사로부터 시장 경쟁력 있는 작품을 생산하도록 강요(영향)받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바로 이 때문에 순수예술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말입니다. 

국가 차원의 투자에서 당장 시장성만을 고려하는 건 문화 예술 분야의 발전 가능성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지 못하는 거로 생각합니다. (장기적인 안목에 의한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 예로써 인문학을 언급한 거였고요.)

당장은 돈만 까먹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정부 차원에서 지원이 이뤄지면, 예술가로서는 금전적인 고통이 덜한 상태에서 양질의 작품 생산에 몰두할 수 있고, 공연기획자 처지에서도 상업적 이윤 추구에 대한 압력이 상대적으로 덜 할 것이고, 이 모든 혜택은 관객에게까지도 전달되겠지요. 

순수예술이 어느 정도 대중 속으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때까지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이게 유토피아적인 발상이 아닌 게 독일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요.


이렇게 논쟁이 산으로 가고 바다로 갔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요? 의견 있으시면 댓글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