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직접 쓴 곡과 AI가 만든 곡, 어느 쪽이 더 고귀한가?
이 질문, 작곡가라면 이제는 한 번쯤은 던져봤을 법하다. 특히 요즘처럼 AI가 음악, 미술, 심지어 시까지 척척 만들어내는 시대라면 더더욱 그렇다.
결과물만 본다면, 차이가 있을까?
바흐 스타일로 AI가 만든 곡을 사람들이 진짜 바흐 작품으로 착각한 사례처럼, 결과물만 놓고 본다면 구별이 어려울 때도 많다.
청중 입장에서는 그 곡이 감동을 주고, 새로움을 느끼게 해준다면, 작곡가가 인간이든 AI든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귀함’의 기준은 무엇인가?
여기서 중요한 건 ‘고귀함’이라는 말의 기준이다.
- 만약 예술의 가치를 ‘결과물’에서 찾는다면, AI든 인간이든, 감동과 새로움, 가치가 있다면 둘 다 고귀할 수 있다.
- 반대로, 예술의 가치를 ‘과정’에서 찾는다면, 즉, 창작자가 고민하고, 성장하며, 내면의 세계를 탐구한 흔적을 중시한다면, 인간이 쓴 곡이 더 고귀하다고 느낄 수 있다.
인간의 고민과 실험
작곡가가 곡을 쓸 때 겪는 수많은 고민, 시행착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는 깨달음…
이런 것들이 곡에 녹아들어 있을 때, 그 음악은 단순한 소리 이상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는, ‘별 생각 없이 쓴 곡’조차도, 그 순간의 삶과 감정, 망설임과 선택이 담겨 있다면, AI가 만든 곡과는 다른 결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AI의 창작, 그리고 인간의 창작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패턴을 학습하고,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내지만, 그 과정에서 ‘고민’이나 ‘의미’에 대한 내적 경험은 없다.
물론, AI가 만든 곡도 충분히 아름답고, 감동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곡이 만들어진 ‘이유’와 ‘맥락’은 다르다.
진품과 모조품 논쟁의 닮은꼴
진품과 모조품 논쟁처럼, 결과물만 보면 구별이 어려울 수 있지만, 그 작품이 가진 ‘이야기’와 ‘맥락’이 결국 가치를 좌우한다.
내가 쓴 곡과 AI가 만든 곡, 어느 쪽이 더 고귀한지는
결국 ‘무엇을 예술의 본질로 보느냐’에 달려 있다.
- 결과물의 감동과 새로움에 집중한다면, 두 곡 모두 고귀할 수 있다.
- 창작 과정의 고뇌와 인간적 흔적을 중시한다면, 인간이 쓴 곡이 더 고귀하게 느껴질 수 있다.

나는 작곡가로서, 내가 곡을 쓰는 과정에서 겪는 고민과 성장, 그리고 그 흔적이 음악에 남아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창작이 여전히 특별하다고 믿고싶지만, 어쩌면 이것은 내가 인간이기 때문에 종족으로서의 인간이 특별한 채로 남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럴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찌됐건 AI가 던지는 도전 덕분에 우리는 예술의 본질을 더 깊이 고민하게 된다.
어쩌면 이 질문 자체가 예술을 더 고귀하게 만드는
우리 모두의 ‘고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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