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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야기/작곡에 대한 단상

나의 작품세계 ― 틀에서 벗어나려는 다양한 시도들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 - 제 18호에 실린 원고입니다.

 

 

어린 시절 

  늘 만화책 크기의 작은 악보를 들고 다녔다. 요즘 다들 스마트폰을 보는 바로 그 자세로 미니어처 악보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공부는 안 하고 악보만 봤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땐 소파에 누워 귀여운 악보를 펼쳐 읽으면서 음반을 들었고, 그때의 쾌감은 다른 것과 비교하기 힘들었다. 인터넷도 없던 중학생 시절, 흔하게 접할 수 없는 실내악이나 교향곡 악보를 보기 위해서는 대한음악사로 나들이를 가야 했다. 악기 간의 조합으로 인해 새로운 음색이 창출되며, 각자 악기가 반주와 솔로, 합주를 오가며 역할을 교환하는 것이 마치 내가 그동안 몹시 두려워하고 서툴렀던 인간관계의 이상적인 틀을 맛보는 것 같았다. 예술학교에서 피아노 전공을 하며 친구들과 교내 실내악 콩쿠르에 나간 것을 계기로 피아노 트리오 악보를 모으다가 점차 큰 편성의 실내악부터 오케스트라 악보까지, 미니어처로 열심히 사 모았다. 당시 용돈으로는 조금 버거운 유럽 출판사의 악보는 너무 아까워서 반복해서 보고 또 봤다. 

  시간이 흐른 후 작곡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그때 내가 했던 딴짓이 작곡 공부에 굉장히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가들의 작품을 눈으로 익히면서 머릿속에 저장한 악기 간의 조합들은 이후 곡을 쓸 때 필요한 감각에 보탬이 되었다. 고등학교부터 학사석사박사까지 모두 작곡을 전공한 후, 여러 연주자와 단체의 위촉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오는 현대음악 작곡가 된 것도, 어린 시절부터 서유럽 전통에서 파생된 서양음악의 구조적 원리에 관심을 가지고, 그러한 호기심이 화성학 공부와 작곡 전공으로 연결되어서 가능한 것이었다.

  절대음악의 구조주의와 순수성을 추구하던 작곡의 관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독창성에 대한 갈망과 자신만의 음악 어법을 창조해내야 한다는 강박으로 옮겨 갔다. 작곡법의 역사적인 흐름을 체득하던 대학생 시절, 수 세기에 걸친 다양한 작곡법들을 습작을 통해 익히면서, 백 년도 되지 않을 일생의 시간 안에 과연 이 많은 작곡 방식들을 다 익히고 그다음에 나만의 어법을 결정할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이 들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 고민은 당시엔 꽤 절박한 것이어서, 주변 선생님들에게 작곡에서 독창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직접 묻기도 하였고, 열심히 안 하면 평생 못 찾을지도 모른다는 어느 선생님 말씀을 듣고는 실연이라도 당한 듯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정체성에 대한 강박

  그동안 습작으로 배운 테크닉들로 곡에다 가면을 씌우는 행위를 일체 배제하고 쓸데없는 음들을 모두 지워내고 또 지워내서 뼈만 남은 앙상한 작품, 오중주와 인성을 위한 <조용한 생각의 소리(The Sound of Quiet Thoughts)>(2001)을 학부 졸업연주 무대에 올렸을 때는 마치 모든 옷을 다 벗고 명동 거리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때의 진실 된 마음을 담은 작곡의 경험은 내 마음속에 살아남아서 지금까지 작곡이 어려울 때 실마리를 푸는 열쇠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학 졸업 무렵 정체성에 대한 해답을 국악에서 찾고자 하기도 하였다. 서양음악 전공자로서 어쩔 수 없이 빠지게 되는 함정이었던 국가 정체성에 대한 콤플렉스를 일단 해결하면 개인의 정체성 문제도 어느 정도 길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국악공연들을 닥치는 대로 찾아가서 들었다. 예술의 전당보다 국립국악원에 자주 다녔고, 아쟁소금거문고 등의 악기를 배웠다. 

  시간을 들여 듣고 배웠지만,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보존 가치를 지닌 옛 음악들을 들으며 귀는 즐거웠으나 이것을 어떻게 작곡에 활용할지 실마리가 도무지 풀리지 않았다. 그나마 생각해 낸 것들은 이미 윤이상이 수십 년 전에 모두 쓴 거였다. 대중성을 지향하는 창작국악의 계보는 더더군다나 따라가고 싶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해결하지 못한 채 배우던 아쟁의 활을 내려놓고 유학길을 떠났다.

  이후 유학 생활을 하면서 20세기 현대 어법을 더 공부한 후에도 정체성 고민을 해결할 실마리는 보이지 않았고, 겉으로 보기에 부지런했던 유학 생활은 끔찍하고 긴 슬럼프나 다름없었다. 단순한 아이디어를 스케치하는 습작 수준의 작품만 근근이 이어갔으며, 이런 작품들로 석사과정 졸업이 가능하다는 현실이 더 당황스러웠다.

  그런 나를 어느 정도 구해준 사람은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이었던 영국 작곡가 마이클 피니시(Michael Finnissy)였다. 여러모로 옳은 길에 대한 강박으로 인해 공포감을 느끼던 나의 마음을 여러 가지 주제의 대화를 통해 점차 편하게 해주었다. 작곡가는 청중을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으며, 청중이라는 단어 자체도 뜻이 모호하기 때문에 아예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개념이고, 자기 자신에게 진실 된 작품을 쓰기만 한다면 음악적으로는 무엇을 해도 상관없다는 가르침을 작곡가로서 본인이 몸소 실천하며 보여줬다.

  레슨 시간에도 악보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작곡 테크닉을 향상하는 것보다는 대화를 통해 예술가로서의 자세와 애로사항들, 미학적인 고민과 해결책 들을 이야기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이 시절의 경험들은, 내 작품 안의 크고 작은 음악적인 선택들조차 내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고 겁에 질려 얼어있던 나에게 해방감을 주었고, 본격적으로 탐구 정신을 가지고 투박하게나마 음악으로 여러 가지 미학적인 실험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영국 유학 시기의 작업은 미술작품을 통한 음악적 구성, 인용을 통한 창작과 표절의 경계 탐구, 침묵과 음악의 경계 등 여러 가지 개인적인 호기심에 의한 실험들이다.

 

음악을 부정하는 음악 

  절대음악을 추종하는 마음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시간 이후에는 예술 장르 그 자체에 대한 미학적인 고찰로 고민이 이어졌으며, 음악과 소음, 또는 음악과 타 매체와의 경계 등에 대한 연구를 음악작품 내에서 표현하는 방법을 탐구하기에 이르렀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나의 무의식에 1960년대 아방가르드 정신을 몸소 탑재한 시간들이었다. 작품성이 현저히 떨어지지만, 한 번쯤은 직접 적어보고 지나쳐야 성에 찰 것만 같은 각종 음악적 실험들을 담은 졸작들이 박사 포트폴리오에 잔뜩 담겼고, 이것들을 가지고 무사히 학위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다.

  하나의 곡 안에 그 작품이 담으려는 패러다임을 부정하는 불가능에 가까운 시도를 반복했다. 이 시기 작곡된 대표곡으로는 현악사중주 2(2008)과 현악사중주 3 <이것은 현악사중주가 아니다>(2009)가 있다. 현악사중주 2번은 한 음으로만 이루어진 작품으로, 음색 변화조차 배제한 채 오로지 패러다임의 부정이라는 행위에만 몰두한 것이어서, 악보를 그리는 행위만 가치가 있고 연주는 의미가 없는 곡이다. 현악사중주 3번의 경우 약간은 희망적인 요소가 있었다. 일단 현악사중주가 음악 장르로서 전통적으로 지녀온 기본 가치들을 살짝 제시한 후 그것들을 하나하나 부정하는 제스처들을 나열한 곡이다.

  그런데 한 작품 내에서 그 작품이 담고 있는 패러다임을 부정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부정의 행위가 지닌 자체적 특성 때문에 이러한 태도의 창작은 길이 쉽게 막힐 수 있다는 애로사항이 있었다. 일단, 작곡에 임하는 태도 자체가 지나치게 염세적이다 보니 곡을 쓰는 동안 정신건강도 위태로웠으며, 사실상 작곡을 하지 않거나, ‘무음으로 이루어진 곡(그렇다고 쉼표를 리드미컬하게 사용하거나 존 케이지의 <4 33>처럼 플럭서스 요소를 지닌 것도 원치 않았다)을 작곡하지 않는 이상 무엇을 적어도 궁극의 목적인 부정에 반한다는 함정이 있었다. 

  결국, 내가 원하는 궁극의 목표는 작곡을 하지 않는 행위를 통해서만 달성 가능하다는 결론을 도출해낼 수밖에 없었다. 이때의 비 작곡은 작곡가이기를 그만두는 것과는 다른 결의 선택이며, 직업작곡가만이 적극적으로 수행 가능한 행위였다. 자가당착의 결론에 도달하고 나서 다시 한번 지독한 슬럼프에 빠져 박사과정의 상당한 기간을 빈 오선지와 함께 보냈다.

  음악의 모든 매개변수(parameter)에 대한 한계점을 음악적 탐구대상으로 삼다 보니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개념예술로서 음악의 역할에 관한 연구에 관심을 두게 되었으며, 결국에는 개념예술의 하위개념으로서 음악공연을 다양하게 시도하는 것만이 지금 갈 수 있는 길로 남은 듯했다.

 

설치 음악극

  작곡발표의 외형적인 형식인 음악공연(관객이 정해진 시간에 앉아서 조용히 연주자를 바라보는 현장) 19세기 유럽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임을 생각했을 때, 곡 행위를 음표에 한정 짓지 않고 공연 형태 자체의 재창조까지 확장하여 설치 음악극을 창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시도인 동시에 무척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첫 작품으로 2008년 독일 다름슈타트에서 동료 작곡가 이은선과 함께 발표한 설치 음악극 <공연(Konzertstück)>은 관객이 여러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공간을 정해진 동선에 따라 안내를 받으며 투어하면서 각 방 연주자들의 음악을 감상하도록 설계되어있는 작품이다. 몇 년 후 단독 작업으로 4인의 연주자와 비디오를 위한 <포커스 온 뮤직(focus on music)>(2011)을 만들었고, 2012~13년에는 전국의 한옥을 다섯 차례 순회 공연한 <노카(NOKHA)> 프로젝트를 했으며, 2014년에는 서울문화재단 유망예술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설치 음악극 <평행 우주(Parallel Universe)>로 개인 작곡발표회를 열었다. 사실상 작품의 여러 매개변수를 청중에게 맡기며 우연성 음악과 플럭서스의 요소들을 버무린 프로젝트의 연속이었다.

  설치 음악극은 무척 흥미롭고 가슴 설레게 하는 작업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자만심에 젖어 여러 미학적인 오류들을 범할 수 있는 위험한 작업이었다. 음악에 국한되지 않은 종합적인 연출능력은 음을 다루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면 얼핏 잘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소리가 아닌 매체에 대한 감각과 재능은 따로 탑재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음악적 재능이 공연 전반에 걸친 공간적시각적 연출능력까지 보장하는 건 아님을 여러 작품을 제작해보고 나서야 경험할 수 있었다. 소리에 한해서는 섬세하고 민감했지만, 나머지 예술 장르에 대한 감각은 전무했음을 뒤늦게 깨달았을 때는 그동안의 작품을 모두 기록에서 지우고 음악계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음악을 지나치게 개념예술로 시도하면 퍼포먼스 형태의 전위예술로 귀결되기가 너무 쉽고, 개념예술에서는 감각적으로 매체를 세련되게 다루는 기술적인 능력의 부재가 문제 되지 않음이 함정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또한, 이런 작품 활동이 2차 세계대전 직후 모든 전통을 부정하고자 했던 1950~60년대 미학관에서 행해졌던 아방가르드 작품 연주에서 크게 바뀌지 않았음을 목격하게 된 후로는 고민 끝에 설치 음악 작업을 잠시 멈추고 본래의 순수음악 형태로 돌아오기로 하였다. 

  다매체를 종합적으로 다룬 경험을 토대로 음악 자체에서 원하는 것을 최대한 표현하면서 절대음악 관점에서 작품성 높은 곡을 쓰는 작업을 당분간 이어왔다.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샤콘느>(2016), 바이올린 독주곡 <입자와 입자 사이>(2018)  사실상 상충하는 가치를 추구하느라 불가능에 가까운 시도를 약 2년 정도 지속해오다가 최근에는 점차 다른 곳으로 관심사가 옮겨갔다. 

 

틀을 깨는 체험을 선사하는 예술

  예술의 역사에서 이미 검증되고 알려진 틀 안에서만 작업하는 것은 내게 흥미롭지 않다. 현대 순수예술은 청중에게 틀이 깨지는 경험을 선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기에 그동안의 작업은 실험적인 시도들이 다수 있었지만, 이제는 본래의 순수음악으로 돌아와 음악 자체 내에서 원하는 것을 최대한 표현해내는 작업을 당분간 최우선으로 삼을 계획이다.

  어린 시절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하였으나, 이것이 머리로 고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깨닫고, 예술 안에서 철학적 관심사들을 추구한 지 여러 해가 지났다. 최근 몇 년은 나 자신 내면의 심리상태를 강도 높게 성찰하여 이를 작품에 투영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그러다 보니 기존의 작곡 어법상 의아하거나 세련되지 않게 여겨질 수 있는 음악적 진행이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이것을 포장하지 않고 날 것 그대로 용기 있게 드러냈을 때 파급효과가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01년 인성과 오중주를 위한 <조용한 생각의 소리>, 2009년 현악사중주 3 <이것은 현악사중주가 아니다>를 쓴 후 2013년 무렵부터 내면의 심리상태를 작품의 주제로 투영하는 작업을 간간이 해오다가 최근 이 주제를 본격적으로 조명하기 시작했다. <무의식의 속삭임>, <비참한 존재들의 목가> 등에서 인간성의 여러 층위를 음악적으로 풀어쓰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인간의 심리를 일인칭 관점으로 탐구하면서 표현하다 보면 진실성 있는 작품이 나오게 된다. 화려한 작곡 테크닉이 들어있지 않아도 공감과 소통을 이끌어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인간 간의 심리적인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어린 시절 나만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결함이 세월이 지난 후 만인이 공유하는 특성임을 깨닫게 되면서 생겨나는 자신감은 곡을 쓸 때 큰 용기를 준다.

  작품에 자아를 투영하여 그것으로 소통함으로써 청중에게 보람된 예술적 체험을 선사하는 것이 내 삶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평생에 걸쳐 이루고자 하는 나의 오랜 꿈이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