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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야기/작곡에 대한 단상

인공지능 예술창작에 대해 - 근대성의 긴장, AI 예술의 새로운 질문



어제 포스팅에서 AI예술의 고귀함에 대해 고민했다면, 오늘은 한 발짝 더 들어가 근대성의 긴장, 그리고 인간과 기계의 경계에 대해 생각해본다.  


근대성의 긴장 -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그리고 지금은?
  
“마법을 깰 것인가, 혹은 인간의 경이로움을 고수할 것인가?”  
계몽주의는 이성을, 낭만주의는 인간의 신비와 감정을 강조했고, 시대적 흐름속에서 이 두 상반된 가치는 갈등과 불안의 요소로 작용했다.  AI 예술이 등장한 지금, 우리는 또다시 이 질문 앞에 선다.  

AI가 예술을 한다?  

이건 마치, “네가 인간의 깊은 감정을 알아?”하고 인간이 기계를 폄훼하는 동시에, “아직도 인간만의 경이로움을 억지로 붙들고 있을래?” 하고 기계가 코웃음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AI 효과: 결승점은 자꾸 뒤로

AI가 점점 더 많은 영역을 넘나들면서, “이게 진짜 ‘지능’인가?”라는 질문이 반복된다.  

AI가 체스를 이기면, “아, 그건 계산이지!”  
AI가 그림을 그리면, “아, 그건 모방이지!”  
AI가 음악을 만들면, “아, 감정이 없잖아!”  
결승점은 자꾸 뒤로 밀려난다.  

코플랜드도 “AI가 과연 지능이냐고 던지는 질문에 정답은 없다”고 할 정도.  

예술도 마찬가지다.  AI가 예술을 한다고 하면, 인간의 기준을 들이대며 자꾸 폄하하려는 경향이 있다.


인간의 행위 주체성: 하이브리드의 시대

어쩌면 인간 vs. 기계라는 경쟁 서사 자체가 우리가 극복해야 할 컴플렉스는 아닐까?  기술은 우리가 인식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물이다.  기술 덕분에 인간도 변화하고 있으며, 한번 변한 인간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Andy Clark의 말처럼, 인간과 기술의 경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최근의 예로 스마트폰이 인산의 삶에 미친 영향력을 생각해보자.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에 운전을 하던 기억을 떠올려보자.  더 나아가서, 고대문명의 인류와 21세기의 인류를 비교해보자. 같은 종이라는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인간의 인지는 신체와 두뇌, 그리고 환경이 결합된 결과물로서 시대별로 다양하게 존재해왔다.


경쟁을 넘어, 시너지로

“AI가 예술 주체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보다, “AI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더 중요해졌다.  이미 건축, 패션 등에서는 창의성과 테크놀로지가 결합된 창작품, 즉 ‘메타작가’의 개념이 존재한다.  인간은 내러티브의 설계자, 설계 패러다임 안에서 확장하는 존재다.  이제는 인간과 컴퓨터가 손을 잡고, 둘 중 하나만으로는 할 수 없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할 때다.


Post-humanism, 그리고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

포스트휴머니즘의 시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인간 중심의 사고를 초월하는 것이 중요하다.  AI 예술은 인간 고유의 영역을 침범하는 위협이 아니라, 새로운 예술적 표현과 생각 공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시도여야 한다.




테크놀로지로 인해 음악이 시대적으로 변해온 것은 인류의 삶과 함께 꾸준히 이어져 온 현상이다.  이제는 “마법을 깰 것인가, 인간의 경이로움을 고수할 것인가?”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인간과 기계가 함께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마음껏 탐색해도 좋을 것 같다.  그래도 된다.  

인간은 별거 아니다.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