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처음으로 거문고를 활용한 음악을 작곡하기 위해 거문고 연주자 선생님을 친구를 통해 소개받았습니다. 시립국악단에서 수석단원으로 활동중이신 윤은자 선생님은, 서양음악 작곡을 공부하느라 아무것도 모르는 제게 거문고라는 악기의 구조와 특징, 그만의 독특한점 까지 차근차근 설명 해 주셨고, 그에 힘입어 너무나 부족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거문고의 분위기가 담긴 음악을 조금 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무식함이 너무나 부끄러웠고, 국악의 정서와 거문고 연주의 원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악기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소개로 중고악기를 구하고, 어제 처음으로 레슨을 받았습니다!
제 키에 맞먹는 길쭉한 악기를 한 손으로 들고 좌석버스와 마을버스를 갈아타며 선생님이 계신 스튜디오를 찾아가는 길은 참 육체적으로는 고단했지만, 오랫만에 어린아이처럼 새로운 걸 배운다는 설레임에 콧노래가 절로 흥얼거려 지더군요 ㅎㅎ
사실, 이렇게 한가하게 악기 배울때가 아니라는 생각도 얼핏 스치기는 하였으나, 이세상에는 중요한 일과 급한 일이 있고 이 둘은 항상 겹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 본 결과, 더이상 이 중요한 일을 급한 일들 때문에 미룰 수 없다고 판단! 선생님께 연락을 하여 찾아갔고, 입시생과 대학생들 사이에 껴서 통성명을 한 후, 선생님의 귀중한 레슨시간을 빼앗아가며 기초중에 생기초부터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거문고는 줄이 6개이고, 그 중 3개는 괘 위에 놓여있습니다.
그리고 술대라는 연필정도 크기의 막대기를 오른손에 쥐고 연주를 합니다. 이 때, 오른손은 세게 주먹을 쥔 자세를 유지해야 다치지 않습니다. 왼손에는 가장 약하지만 지지대로 자주 쓰이는 넷째 손가락에 골무를 끼우고, 괘 위에서 주로 유현과 대현을 컨트롤 합니다. 저는 술대를 잡는 법을 한참 익힌 후에야 왼손의 기본 자세를 배웠습니다. 이것만 해도 머리가 터질 것 같더군요..
앞으로 꾸준히 악기 연주법과 거문고 음악을 익히며 궁극적으로는 거문고를 위한 곡을 하나 제대로 쓰는 장기적인 프로젝트에 돌입 하였습니다!
사실 모든 악기를 이런 식으로 직접 연주 할 줄 알아야만 그 악기를 위한 곡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악기에서 가능한 음, 표현하기 수월한 악구 등을 알고 있으면 그에 걸맞는 곡은 얼마든지 쓸 수 있죠. 하지만, 유독 구조와 연주법이 까다롭고 제약이 많아서 직접 해 보지 않고는 감을 잡기 힘든 악기들이 몇몇 있습니다. 그런 악기들은 직접 해 봐야 감이 오고, 제대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피아노를 어릴때부터 쳐왔고, 바이올린을 6개월간 배워서 현악기를 위한 작곡은 그래도 엄두가 나는 편이지만, 관악기 (특히 금관악기)는 잘 감을 못 잡는 편이지요 ㅠ
바이올리니스트 유시연 선생님은 지난 3년간 매주 단 한번도 빠지지 않고 해금레슨을 받으셨다고 하셨습니다. 한국의 음악인으로서 국악을 당연히 직접 익히며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제가 거문고를 배우려 한다고 했을 때 많은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저 또한 지금으로부터 9년전에는 기타곡을 쓰기 위해서 고군분투 하다가 결국 클래식기타를 직접 배우기도 했습니다. 4개월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습하고 레슨을 받았는데, 다행히 당시 곡을 부탁한 기타리스트 분이 무상으로 손수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여러 도움과 인내의 시간 덕분에 3악장으로 된 기타소나타를 작곡할 수 있었고, 당시 다니던 학교에서 기타 전공 교수인 엘리엇 피스크(Eliot Fisk)선생님에게 제 작품을 들고 가서 손수 지도를 받는 기회까지 있었습니다 (사실은 기회가 있었다기보다, 그냥 제가 마구 들이밀어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ㅎㅎ). 이 분은 2003년에 타계한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현대작곡가 루치아노 베리오(L. Berio)가 자신의 곡 Sequenza XI를 쓰기 위해 자문을 구했던 기타리스트였고, 그 작품은 결국 이 분에게 헌정이 되었습니다. 피스크 선생님은 그 때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해설을 곁들인 베리오의 세쿠엔자를 제 앞에서 전부다 연주 해 주셨는데, 자세한 내용보다는 1미터 앞에서 저만을 위해 대작을 연주해 주신 대가님의 자상함에 감동을 받은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엘리엇 피스크(E. Fisk) 선생님이 연주한 루치아노 베리오(L. Berio)의 세쿠엔자 11번(Sequenza XI)
피스크 선생님의 자상한 도움과 충고말씀 덕에 기타연주에 아주 적합하게 작곡을 마칠 수 있었고 석사 졸업연주 작품중 하나로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기타를 처음 배우기 시작하고서 소나타를 전부 작곡 하기까지는 대략 1년여의 시간이 걸린 것 같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참 오랜 시간을 고작 악기 한개 조금 이해하는데 허비한 것 같았는데, 90년(?)이라는 인생 전체의 시간을 봤을 때는 참 눈 깜짝할 시간이라는 것을 나중에는 느끼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제게는 너무 중요한, 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해야 하지만 아직 그렇지 못한 국악이라는 분야를 점차 나의 음악의 일부로 융화시키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몇달이 아니라 몇년이라는 긴 시간을 묵묵히 투자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이런 마음을 응원해 주시고 도와주시는 주변의 많은 분들에게 벌써부터 감사하는 마음이 듭니다.
작년 5월 공연에 연주해 주신 윤은자 선생님과 함께
티끌모아 태산이고, 이제부터가 시작인데, 고작 하루 배운거 가지고 공연히 시끄럽게 떠들기만 한 것 같아서 막상 글을 쓰고나니 좀 부끄럽습니다. 앞으로는 조용히 묵묵히 거문고 연습을 꾸준히 해야겠습니다.
관련 글:
2012/09/21 - 판소리를 거문고로 들을 수 있는 음악회
2012/01/27 - 한국음악의 정체성. 나에게 한국음악이란?
update - 거문고와 기타를 위한 제 11차원을 2013년 9월에 완성하였습니다.
연주: 김정열(기타), 윤은자(거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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