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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야기/음악과 함께 하는 일상

레지던시에서 돌아온 이후...

흑흑.....



돌아온지 3주가 지났으나 이미 몇년 전 일처럼 아득한 이곳, 제라시 아티스트 레지던시(Djerassi Artists Residency Program)에서 먹던 음식들 ㅠㅠ

개인 작업을 할 공간과 숙식을 제공하고, 아무것도 돌려받지 않는 이 공간은 예술가에겐 더욱 바랄 게 없는 곳이죠.  하지만, 이곳에서조차 항상 작업에만 전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깥 풍경이 아름다워서 산책하고 싶은 이유도 있었지만, 내면의 장애물(mental barrier)이 더 큰 것이겠죠.  진단을 하자면 잡생각과다증과 성공기피증으로 요약되지 않을까싶네요. 

환경탓을 도저히 할래야 할 수가 없는 이곳에 와서야 깨닫게 되는군요.



떠나기 전 날에는 마지막으로 숲속 길로 산책을 갔습니다.  거대한 레드우드 나무들 옆으로 역시 거대한(사진상으로는 작은) 작품이 있습니다. 제목은 "가라앉는 배".  한국인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올 듯 하네요.



배 옆의 호박잎으로 추정되는 아이들에게 세월호 뱃지를 달아줬습니다.  

네. 이런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레지던시 막바지에는 디렉터님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샐러드와 파스타, 생선, 브로콜리로 된 소박하면서도 푸짐한 상차림이었습니다.  세팅은 되어있으나, 샐러드를 제외한 서빙은 각자 부페식으로...

쪼매난 빨간 의자들을 모아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옆 해골의자도...;;;






떠나는 날 새벽에 일찌감치 짐을 싸고 시간이 떠서 해가 뜰 무렵 안개속에서 산책을 했습니다.  거미줄들이 곳곳에 귀엽게 장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비행기를..... ㅠㅠ =============================333



귀국 다음날에는 문래예술공장에서 유망예술지원사업 대상자 중 음악분야 팀의 중간발표가 있었습니다.  중간!!!발표였는데, 시작도 안한 저로서는 구상 단계의 현재 상황을 보고하는 것으로 마무리 했습니다.  멘토분들의 실망하시는 기색이....역력해 보인 것은 제 자격지심일 수도 있겠습니다;;;  언제즘 돼야 (혼나는) 학생이 아닌, 프로의 모습이 갖춰질까요?  본 공연은 12월 셋째주에 열릴 예정입니다.



추석연휴 때에 잠깐 청주 상당산성에 놀러 갔습니다.  그닥 유명하지 않은 곳인지, 더 번화한 중심 지역(?)을 못 찾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탁 트인 아름다운 풍경에 비해 다소 한산한 모습이었습니다.  산성을 따라 한바퀴 도는 코스를 이용하는 등산객과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한데 뒤섞인 대문 안쪽에는 돗자리를 깔고 한가롭게 소풍을 즐기는 젊은 가족들이 드문드문 보였습니다.


그 다음주에는 시청 근처에서 약속이 있어서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광화문에 들렀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지켜보시는 귀여운(?) 세월호 풍선을 보며 착잡한 동시에 희망이 담긴 이곳 분위기를 지켜봤습니다.  돗자리를 깔고 촛불을 들고 뮤지션들의 릴레이 공연을 관람하는 곳이었는데, 평일이어서 왁자지껄 하지는 않았지만, 끊기지 않는 지속적인 에너지가 담긴 이 공간은 고통이 미래를 향한 염원으로 승화된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요 며칠 사이에 작곡 발표회만 세개를 다녀 왔습니다. 지난 주말엔 정진욱, 지성민, 그리고 이번주에 김범기 선생님.  모두 뚜렷한 색을 선보인 분들에다 배울점들이 많은 작곡가들이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을 덧붙이자면, 정진욱 작곡가의 곡은 에너지가 넘치는 것이 인상적이었으나, 관객 중에 어린이가 많다보니 전체적인 분위기가 산만한 것이 매우 아쉬웠습니다. 지성민 작곡가의 작품들은 극도로 음량이 절제된 특수주법들의 향연을 펼쳐나갔는데, 라헨만의 거칠(?)고 자신만만(?)한 소리와 비교했을 때, 그보다는 훨씬 섬세하고 색채가 분명했습니다.  김범기 선생님은 동기이신 한경진 선생님과의 노련한 진행 덕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즐겁게 공연을 볼 수 있었는데, 동요 등, 한국인에게 친숙한 선율을 활용한 어린이를 위한 피아노 소품들이 참 인상깊었고, 마지막 곡의 미니멀하면서도 리드미컬한패턴들이 두꺼워지면서 절정으로 치닫는 음악도 굉장히 흥겨웠습니다.  

이렇게 작곡발표회들을 보다 보니 저도 한번 작품발표회를 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습니다만, 지금 제 상황으로선 좀 비현실적인 욕망이겠죠.  일단 곡들이... ......곡들이........ㅠ



한강에 놀러 나갔다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빛둥둥섬에서 저녁을 먹고 산책을 했습니다.  옆에 있는 분의 정체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