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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야기/음악감상실

아버지의 장례식날 조수미가 부른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씨가 2006년 파리에서 솔로 리사이틀을 마친 직후 무대 위에서 남긴 멘트입니다:

"이제 아버지를 위해 작은 기도를 올리고 싶습니다.

오늘, 아버지는 이 세상을 영원히 떠나셨습니다.

오늘아침, 한국에서는 아버지의 장례식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저는 오늘 여러분과 저 자신을 위해 이 자리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저는 성악가로서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옳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제가 지금 여러분과 함께 한 자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을 하늘에서 보고 매우 기뻐하실 거라고 확신합니다.

오늘 저와 함께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 음악회를 아버지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제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를 노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문장은 "Je ne sais pas.. c'est.. c'est juste que...(후략)"로 듣고 "저는 (잘 모르지만) 성악가로서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옳다고 확신합니다"라고 적었다가 나중에 다시 듣고 윗 본문으로 수정하였습니다. 

"Je ne sais pas si c'est juste que..."로 듣는 것이 문맥상 더 정확한 것 같습니다. 


(노래는 1:54부터 시작됩니다)


첫 오페라 데뷔무대를 유럽에서 가졌을 때, 조수미씨는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있는 셈 치고" 공연을 올렸고, 그래서 외롭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출처: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함께 한다는 믿음을 수십년간 가지고 살아 온 성악가 조수미에게 아버지의 장례식날 물리적으로 가까이 가는 것 대신에 파리의 공연장에서 마음으로 함께 하기로 한 선택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처: bachcantatas.com


예술이라는 직업이 여느 직업과 다르긴 합니다만, 전업예술가에겐 그것이 직장이나 다름없는데, 자신의 직장을 위해 가족의 장례식에 불참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선택인지, 제 입장이었다면 어땠을지 참 의문이 가는 부분입니다.  이런 부분은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에 많이 달린 것이겠지요.  조수미씨의 선택이 옳으냐 옳지 않냐를 논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본인의 의사와 관계 없이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 상황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단지 제가 지금 시점에서 생각하게 되는 점은, 예술이라는 직업의 특수성을 그 사람의 삶의 얼만큼까지 차지하는 것을 허용(?)해야 할까 하는 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제가 몇년간 심혈을 기울여서 고생끝에 발표하게 된 대작이 초연되는 날과 가까운 가족의 장례식이 겹친다면, 만사를 제치고 한국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하고싶은 마음이 더 클 것입니다.  제게는 그게 인간다운 삶의 마지노선이고, 작곡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남들과 다르고 특별하고 모든것에 예외가 적용되는 그런 시선을 받고싶은 마음이 없는, 우연찮게 음악에 재능이 있지만, 삶은 평범하고자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정작 그런 상황이 닥치게 된다면 지금 생각과는 달리 굉장히 복잡한 일들이 얽혀서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선택을 해야만 할 경우도 생길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뭔가 힘들고 괴로운 일들이 제 인생에 쌓여야 그로 인한 말못할 고뇌들이 응어리가 되어 음악으로 조금이나마 묻어나오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마조히즘적인 욕구 또한 제 안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마음의 굳은살이 되도록이면 생기지 않도록 잘 관리를 해가며 여린 감성을 유지하려고 신경 쓰는 부분도 있고, 누군가가 나를 힘들게 할 때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드는 약간 4차원적인 마음가짐 또한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적으로 연약하기만 한 모습으로 머무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 멘탈을 붕괴시켜 가면서까지 예술활동을 평생 지속시키기에는 제 자신이 저를 너무 아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잔잔한 호수와 같은 마음가짐을 벗어나기가 영 두렵습니다..

작곡가라는 저의 정체성이 제 삶의 원동력입니다.  하지만 음악이 제 삶의 전부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제 정신이 너무나 겉잡을 수 없게 감성적으로 예민하게 극과 극으로 오가게 되어 조울증과 같은 상태가 되어 현실감각을 잃어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이 엄습하기 때문이지요.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조수미가 부른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는 제게 더 복잡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조수미의 목소리에 담긴 삶과 죽음의 밀도를 느껴버린 이상, 이 노래를 자주 들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성악가 조수미 관련 자료

(제 글에는 조수미씨의 선택을 평가하려는 의도가 전혀 담겨있지 않음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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