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작곡을 독학하겠다며 이런저런 충고를 부탁하는 분이 계십니다. 오늘은 이런 분들을 위해 몇가지 생각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작곡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모르는 선율을 아무렇게나 흥얼거리면 그게 바로 작곡이지요! 곡을 짓는 일은 그러므로 누구든지 유아기때 한번즘은 해 봤을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음악을 지어내는 일은 이렇듯이 누구나 가능하지만, 좋은 음악을 잘 정리해서 그걸 오선지에 기록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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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클래식 음악 작곡을 생각하고 계시다면, 악보를 보면서 음악을 많이 듣기를 권장합니다. 클래식을 독학으로 배우는건 쉽진 않겠지만, 피아노 연습과 기초이론정도는 충분히 혼자 하실 수 있을겁니다. 온라인으로 음악이론과 작곡법을 가르치는 사이트도 많은 것 같은데, 제가 별 정보가 없어서 추천하긴 힘드네요. 악보를 못 읽는데 작곡을 하겠다면 일단 음악이론 책을 하나 사서 음자리표는 뭔지, 쉼표는 어떻게 생겼는지부터 익히셔야 합니다.
"저는 악보를 잘 못읽어요.. 이런거 꼭 배워야 돼요? 그냥 노래로 하면/기타로 치면 안돼요?"
소설가나 시인이 되고 싶으시다면 글자를 읽고 쓰실 줄은 아셔야죠? ^^;;;
악보를 쓰지 않고 작곡을 하는 경우가 이세상에 전혀 없지는 않지만, 그런 경우라면 즉흥연주이거나, 본인이 연주나 노래를 하는 것을 녹음해서 다른 사람이 기록에 남기는 경우, 시각장애인 작곡가가 자신이 작곡해서 연주하는 것을 도우미가 기록하는 경우 외에는 없을 것입니다. 국악의 경우 전통적으로 정간보를 사용하던 궁중음악 외에는 악보에 의존하지 않고 구전으로 연주법이 전수되어 오면서 연주자마다 자신의 색깔을 집어넣어 곡을 조금씩 바꾸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 작곡가 이름이 들어가지 않고 이름 뒤에 "류"자를 붙입니다. (예: 한갑득류 거문고 산조, 김영철류 칠현금 산조 등) 하지만, 20세기에 와서는 국악작곡가도 5선보를 쓰기 때문에 악보를 읽고 쓰는 능력과 음악이론은 장르를 불문하고 필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1
음악이 머리속에서 저절로 들릴 정도로 악보를 술술 읽을 줄 아는 재주는 천재만이 갖춘것이 아니라 작곡가나 지휘자라면 기본 중에 기본으로 갖춰야 할 능력입니다. 영화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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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을 많이 읽는다고 합니다. 블로거분들의 경우도 좋은 포스팅을 하기 위해 다른 블로그에 가서 좋은 글들을 많이 익히고, 소설가나 시인은 자신의 글만 쓰는것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독서량을 소화합니다. 뭐든지 잘 하려면 직접 하기 전에 남들이 해 놓은 것을 참고로 하거나 타산지석으로 삼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고 싶으면 당연히 클래식 음악을 들어야겠죠? 이때, 막연하게 감성적으로만 듣지 않기 위해서는 악보를 보면서 듣는게 중요합니다.
결국 클래식이건 가요건 뉴에이지건 자기가 쓰고싶은 음악에 가장 비슷한 기존의 음악을 많이 듣고 가능하면 악보로 그 소스(source) 또한 들여다보고 분석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화성학 등의 음악이론을 알아야 하고, 다양한 악기의 작동원리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작곡을 독학으로 공부해서 어느 경지까지 이를 수 있을까요? 이것은 그 누구도 미리 알 수 없고, 전적으로 그 사람의 음악적인 환경과 천부적인 재능 및 노력하는 열정에 따라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분 중에 입시를 독학으로 하고 음대에 입학하신 분들도 종종 계십니다. 그 중 한 분은 베토벤 소나타가 자신의 스승님이나 다름 없었다고 하는군요. 입시에 요구되는 클래식 음악의 스타일은 베토벤의 초/중기 작품과 가장 흡사하다고 저도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입시와 관계없이 다양한 시대와 스타일의 음악을 접하면 좋겠지만요. (풍경화를 그리는 화가만 이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이, 모짜르트만 좋아해서는 작곡을 할 수준의 넓은 시야를 가진 제대로 된 음악가라고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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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독학이어도 동료뮤지션들, 음악가들과의 소통은 필요합니다. 정보교환 등의 목적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가끔씩은 자신보다 한단계 윗 사람과 친해져서 멘토로 삼고 자신의 음악을 들려드리고 여러가지 충고를 부탁 하시길 바랍니다. 혼자서는 잘 하고 있는건지, 제대로 된 방향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천재라고 믿기 이전에 부디 여러 사람들의 충고를 들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그렇다고, 작곡을 해도 될 수준인지 아닌지를 너무 걱정하며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측정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입시를 치루거나 일종의 경쟁을 통한 출세를 하시려는 분이 아닌 이상, 중요한 것은 음악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고 나머지는 부차적인 일 아니겠습니까?
그럼, 새해 목표가 작곡공부/음악공부인 모든 분들에게 복된 길이 열리기를 기원합니다^^
추천글:
2013/07/08 - 서울대생들이 추천하는 작곡 입문을 위한 책들
- 사실 즉흥연주는 악보를 못 읽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작곡보다도 더 고난이도의 테크닉과 순발력을 요하는 일입니다. 유럽의 대성당에 소속된 오르가니스트는 전통적으로 코랄선율로 즉흥연주를 수준급으로 할 수 있고, 우리나라에서 "프리뮤직"이라고 부르는 즉흥연주 분야는 즉석에서 현대음악 작곡이나 다름 없는 높은 수준의 능력을 요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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