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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야기/칼럼

[문화 + 서울]은둔형 자동피아노 작곡가 – 콘론 낸캐러우(Conlon Nancarrow)



서울문화재단에서 만드는 잡지인 <문화 + 서울>에 격월로 기고하게 되었습니다!


웹상에서 보려면 서울문화재단 홈페이지에 있는 아카이브(여기)를 방문 해 주세요.  


첫 글이라 호들갑 스럽게 사진 찍어 올립니다 ㅎㅎ




아래 글은 편집되기 이전 단계의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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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을 위해서는 자신의 분야에서 탁월한 것만으로는 절대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은 시중에 파는 수많은 자기계발서 들이 알려주고 있다. 대인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은 기본 전제로 깔고 있고, 구체적인 인맥관리 요령,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부터 해서 시간 관리를 잘 하는 방법과 정리정돈 팁까지...

그렇다면 이런 것들을 다 무시하고 자신의 내공을 쌓는 데에만 몰두하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가 없는 것인가(일단 성공의 의미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회에서 인정받고 자신의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것이라는 정의 하에 둔다고 하면)?

적성과 성격에 따라 어울리는 직업이 같은 사람들 여러 명을 한데 모아보면 그 중에서도 대조적인 다양한 성격 차이가 존재한다. 작곡가라는 직업은 음악에 재능을 가지고 작가정신이 있으면서 늘 새로운 것을 찾는 다는 것에 공통점이 있을 수 있으나, 그 중에서도 영업 능력과 대인관계에 탁월하여 자신의 작품에 몰두하는 시간 못지않게 사람 사이의 관계에 시간을 투자하고 자신의 작품을 직접 세상에 드러내는 성과를 거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은둔형 외톨이와 같이 바깥 세상일에 관심 없고 사람을 피하며 오로지 자신의 작업에만 몰두하는 작곡가들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작품이 뛰어날 경우 사후에야 세상에 알려지거나 우연한 계기로 다른 사람에 의해 발굴되기도 한다.



20세기의 미국 작곡가 콘론 낸캐러우(Conlon Nancarrow, 1912-1997)의 경우 위에 말한 두가지 유형 중 후자에 해당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흔한 혈액형 유형별 성격으로 분류했을 경우 소위 말하는 "트리플 A"이 아닐까 생각 될 정도로 뒤끝이 길고 소심한 성격으로 추측된다. 젊은 시절 재즈 트럼펫을 연주하였으나, 어느 날 자신의 악기가 도난당한 이후로 크게 마음을 다쳐서 다시는 트럼펫 연주를 하지 않았으며, 1940년에 작곡한 7중주 실내악 작품이 뉴욕에서 초연 되었을 때에는 연주가 너무나 마음에 안든 나머지 악보를 다 찢어버리고 다시는 자신의 작품을 연주에 올리지 않으려 했을 정도로 상심이 컸다. 이후에 작곡된 작품들은 어차피 연주를 염두에 두지 않고 썼기 때문에 인간의 능력으로는 정확한 연주가 어려울 정도로 극단적으로 복잡한 리듬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출처: Wikipedia


이후에 두루마리 종이에 구멍을 뚫어서 음악을 연주하는 자동피아노(1897년 에드워드 S. 보티에 의해 발명)를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수학적인 계산을 통한 복잡한 리듬을 연주하게끔 하는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 냈는데, 이는 일반적인 5선 악보에 기보하지 않고 직접 종이에 자를 대고 구멍을 뚫는 방식으로 작곡을 하였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서양음악의 전통에서 자유로운 리듬 기법이 가능하게 되었는데, 같은 음형을 복잡한 비율로 확대하거나 축소하여 돌림노래(캐논)을 만드는 작업을 즐겨 하였다.  일반적으로 음의 길이를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비율은 1:2나 1:4정도로 단순한 숫자에 그치는 반면, 낸캐러우의 Study들은 15:16:17 등, 일반인의 귀로 인지하기 힘든 비율이거나 심지어 그의 Study 33번은 2:비율로 된 음 길이의 돌림노래이다.

뿐만 아니라, 낸캐러우는 중세 유럽 음악에서 유래 된 아이소리듬(isorhythm) 기법을 활용하기도 했는데, 이는 멜로디의 음의 수와 리듬형태의 음의 개수가 어긋나서 그 둘의 최소공배수에 도달할 때 까지 끊임없이 같으면서도 다른 형태의 선율이 반복되는 기법이다.


Study 49c의 마지막 부분 원본 악보(?)

(출처: www.nancarrow.de)


이 작품들은 30여년이 지나 60대가 되어서야 연주되기 시작하였고, 그 이전에는 작곡가 본인은 철저한 은둔생활을 하며 아내에게 전적으로 생계를 맡기다시피 하며 본인은 자신만을 위한 지하 스튜디오 공간에서 두루마리 종이에 구멍을 뚫으며 지냈다고 한다. 이렇게 작곡된 자동피아노를 위한 습작(Study)들은 51개가 남겨져 있다.

아내가 수많은 두루마리 종이들을 보며 나중에 만약에 남편이 먼저 세상을 뜨면 이것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 지 물어봤더니 어깨를 으쓱하고서는 "태워버려."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의 작품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에 관심이 없었던 낸캐러우는, 일평생을 멕시코에 살면서도 그 나라의 음악계와 교류가 없었다고 한다. 85세에 타계하였을 때에는 단 두명의 멕시코 작곡가만이 그의 장례식을 지켜봤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세상과의 교류에 비중을 두지 않는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70년대부터 시작된 낸캐로우의 작품에 대한 미국 음악계의 관심은 그를 어쩔 수 없이(?) 수많은 기자들 및 음악가들과 교류를 하게 만들었고, 말년에는 그의 작품이 연주되는 많은 음악회들에 불려다니게 되었다. 특히 동년배 헝가리 작곡가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현대음악가인 죄르지 리게티는 그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칭송하며 자신도 낸캐러우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그가 태워버리라고 했던 두루마리 종이들은 결국 현대음악계의 귀중한 자료로 취급되어 스위스의 파울 자허(Paul Sacher) 재단이 구입하여 보관하고 있다. (이 재단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필사본을 사들이는 등, 현대음악 자료 보존에 지대한 공을 세우고 있는 재단이다)


리게티가 말하는 낸캐러우(독일어, 스페인어 자막) - 1:20 꼭 들어보세요!


작업하며 정확한 리듬 기보를 위해 돋보기를 사용중인 작곡가 낸캐러우(출처: www.nancarrow.de)


자신의 커리어와 세속적인 성공에 관심이 없었던 은둔형 작곡가의 삶은 그만큼 자신의 예술적 호기심과 탐구정신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져다 줬고, 그리하여 현대음악계에 둘도 없는 독창적인 리듬의 세계를 선사하여 인류에게 귀중한 자산이며 성공의 기준과 방법은 책에 쓰여 진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남들이 봤을 때 미친 짓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자신만의 독특한 관심사는, 그만큼 독특하기 때문에 세상에 더없이 귀중한 유산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세상의 트리플 A형들이어, 그들은 정녕 위대하오니 절대로 능구렁이들 틈바구니에서 주눅 들지 말 지어다!





참고자료:

http://www.artsjournal.com/postclassic/2007/08/a_farewell_retrieved_from_the.html - Kyle Gann

http://www.nancarrow.de/arbeitsweise.htm - 낸캐러우 소개 독일어 사이트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do?docid=b18j2149a&q=자동%20피아노 - 다음 백과사전

http://en.wikipedia.org/wiki/Conlon_Nancarrow#Later_life - Wikipedia

The Music of Conlon Nancarrow By Kyle Ga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