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음악의 특징을 자신의 작품에 활용한 현대음악 작곡가 리게티, 그의 피아노 연습곡 1권의 1번.


우리가 평소에 듣는 대중음악이나 가요, 동요 등은 비교적 단순한 리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다들 하나의 리듬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음악들이다. 음악이 하나의 리듬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할 만큼 우리는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리듬이 진행되고 있는 음악을 상상하기 힘들어 한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리듬을 가진 음악이 일상적으로 들리는 곳이 이 세상에는 여러 군데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이다.


리듬”은 커녕 “음악”이라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는 언어를 구사하는 사하라 이남의 부족들은 리듬 자체를 인간의 삶의 일부로 봐 왔다. 엇갈려 부딫히는 서로 다른 리듬은 도전, 또는 정신적 갈등을 상징하고, 일정한 비트로 평화롭게 반복되는 리듬은 말 그대로 평화와 번영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리듬으로 인간사를 표현하는 만큼 그 다양성도 말할 수가 없는데, 우리 귀로는 이해하기 힘들정도로 복잡다단하게 리듬들이 얽혀가며 진행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일정한 박자, 또는 “비트”라는 개념이 모호해 지면서 기준을 삼을 박자를 찾지 못하고 영원히 흘러가는 듯한 음악으로 인지되는 것이다.


하나의 일정한 박자를 유지하는 단순한 음악은 사실 서양음악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리듬이 아무리 복잡해도 그들은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단위 박이 존재하게끔 음악이 설계되었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복합적인 리듬보다는 동시다발적으로 울리는 음 높이들의 구조, 즉 ‘화성’을 중시하는 것이 서양음악의 가장 큰 특징이다. 결과적으로 서양음악의 전통에서 파생된 대중음악도 일정한 패턴을 계속 반복하면서 멜로디와 화성을 강조하는 음악이 대세를 이루게 된 것이다. 한편, 서양음악의 전통을 이어오면서도 새로운 영감의 원천을 찾아 헤메던 현대음악 작곡가들은 다른 문화권에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는데, 헝가리 출신 작곡가 죄르지 리케티(György Ligeti)는 앞서 언급한 사하라 이남 지역의 리듬을 자신의 피아노 연습곡에 응용하기 시작하였다.


피아노를 위한 음악이면 극소수의 곡을 제외하고 대부분 두 손을 위해 작곡되며 악보도 오른손과 왼손을 위한 오선보가 따로 존재하고 둘이 나란히 놓여있다(주변의 피아노 악보를 참고하시라). 그렇다면 당연히 오른손과 왼손이 같은 박자표(2/4, 4/4, 3/4 )을 보며 동시에 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리게티가 작곡한 피아노 연습곡 1번은 이러한 기본적인 법칙조차 무시가 된다. 첫 세마디는 그렇게 되는 듯 하더니 한 음 간격으로 두 손이 엇갈리면서 악보를 가로짓는 마디줄이 중간에 끊기고 마치 바코드가 찢어진 것 처럼 엇갈리기 시작하더니 곡의 마지막까지 거의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가 박자를 셀 때 기본적으로 외치는 “강, 약”이 각 손마다 다른 것이다. 당연히 피아니스트들의 원성이 자자했을 것이고, 리게티가 이미 유명한 작곡가가 아니었다면 이 곡은 영영 무시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몇몇 용기있는 피아니스트들이 도전을 하였고 그들의 눈물겨운 노력 끝에 이 곡은 비교적 스탠더드한 레퍼토리가 되어있다.


아프리카에서는 각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맡은 리듬을 하나씩 연주함으로 인해서 엇갈리게 되는 박자를 한명의 인간이 피아노로 서로 다른 박자표를 보면서 연주하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전해 들은 이야기로, 이 곡을 연주해야 하는 누군가가 현대음악 피아니스트로 유명하며 리게티의 연습곡으로 음반을 낸 피에르 로랑 에마르(Pierre Laurent Aimard)에게 도대체 어떻게 이 곡을 연습하는지, 요령을 좀 알려달라고 했다 한다. 그의 대답은, “결국 연습밖에 답이 없습니다. 피아노 앞에서는 물론이고, 버스에서, 길을 걸으면서 항상 양손이 다른 리듬을 치는 연습을 꾸준히 하십시오. 언젠가는 익숙해 질 것입니다”라고 다소 상투적인 대답을 해서 질문자는 요령껏 헤어나올 수 없는 이 어마어마한 과제앞에 더욱 좌절했다고 한다. 이 곡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만 해도 극히 소수의 연주자만이 연주를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피아노 콩쿨에 단골로 연주되며 피아노를 전공하는 학생들도 연주에 도전을 할 정도이니, 인간의 능력은 역시 그 한계를 모르고 발전하는 듯 하다.


사실, 복합리듬을 음악의 한 요소로 구성하는 문화권은 아프리카 외에도 인도, 카리브 등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우리나라의 장단도 다소 그런 요소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월드 뮤직’의 장르하에 소개되는 여러 문화권의 대중음악은 이상하게도 리듬의 복잡성을 완전히 배제한, 서양의 대중음악의 구조를 지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계를 지배하는 듯한 서양 문화권의 영향력으로 인해 이렇게 풍부한 리듬자원(?)을 가진 전세계의 음악들이 주목을 받지 못하고 쇠퇴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대중음악에서 단지 가창력이나 단순한 반복만이 아닌, 복잡한 리듬도 즐길 수 있기 위해 우리도 피아니스트 에마르를 본받아 양손으로 각기 다른 리듬을 연주하는 연습을 생활화 하자고 하면 너무 지나친 요구일까?


[문화+서울] 3월호 직접 보기(새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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