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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야기/칼럼

[문화 + 서울] 8월호 - 음악은 일필휘지로 완성되지 않아요! 작곡의 장애요인과 극복방법


작곡가는 영감이 떠오르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미친듯이 오선지에 잉크를 처바르고, 단 한번의 수정도 없이 걸작이 탄생하는 줄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런 환상은 심지어 작곡가 자신들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이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과 열등감에 알게 모르게 시달리게 된다.

이러한 창작자에 대한 현실은 여러 영화나 대중매체에서 보여주는 작가, 작곡가, 심지어 논문을 쓰는 과학자 등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에서 비롯된 것이다. 얼마전에 작고한 천재 수학자 존 내쉬의 삶을 줄거리로 한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 주인공인 청년 내쉬가 기숙사 방에 틀어박혀 계절이 변하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생각해낸 새로운 수학이론을 방대한 양의 논문으로 집필하는 장면이 있다. 천재의 창작물,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대한 일반인(?)의 환상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모차르트의 삶을 다룬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도 그를 흠모하는 동시에 질투하는 작곡가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악보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하는 장면이 있다. 펜으로 작곡한 악보에 작곡과정에서 곡을 고친 흔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천재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널리 보급된 것 자체를 원망할 수는 없지만, 현실은 이런 것과 매우 다르기도 하다는 것을 천재는 아니지만 약간의 재능을 가져서 우여곡절 끝에 창작을 업으로 삼고 있는 많은 예술가들은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 작곡가가 영화에 나오는 천재처럼 곡을 술술 써내려가지 못하는 순간들에는 어떤 장애가 도사리고 있는가? 작곡가로 활동중인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일부 언급해 보도록 한다.


1. 집중력

하나의 아이디어를 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많은 끈기가 필요하다. 이 때 다른 생각은 안하고 오롯이 음악 그 자체에만 집중을 해야 하는데, 음악이 워낙 추상적인 예술이다 보니 이것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에 피아노로 먼저 처보고 기보를 하는 스타일이라면, 치고 들은 것을 악보고 옮겨적을 때 까지 오롯이 기억을 하고 기보를 해야 하는데, 그 짧은 순간에도 많은 정보들이 새어나갈 수 있다. 사실, 악보에 적는 것들은 매우 한정적이고, 그 음악의 분위기나 그밖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한 요소들은 기록이 불가능 할 수도 있다. 그런것들을 놓치지 않고 작곡의 동력을 유지하는 것은 실로 많은 에너지와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곡을 한창 신나게 쓰다가 잠깐 다른 일이 생겨서 자리를 뜨고, 몇시간 후, 또는 며칠 후에 다시 그 악보를 펴보면 예전의 그 타오르던 영감은 사라져서 온데간데 없고 웬 생뚱맞은 음표들이 날 바라보고 있던 경험이 있다. 이는 음악의 수많은 요소들 중 음 높이나 리듬 등 극히 일부만을 기보하고 기록이 불가능했던 더 중요한 요소들이 누락되어서 일 수도 있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려면 크게 두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곡을 다 쓸 때까지 몇날 며칠을 밤을 새더라도 자리를 절대로 뜨지 않는 것과, 최대한 많은 정보와 계획들을 바로바로 악보에 기록하고 기보해서 다음에 그 페이지를 볼 때 예전의 느낌을 그대로 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자리를 떴을 때에도 최대한 곡에대한 생각을 마음 한켠에서 끊이지 않게 하면서 그 영감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2. 멀티태스킹 능력

연필을 들고 오선지를, 또는 마우스를 들고 컴퓨터 화면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행위는 단순해 보이지만, 동시에 생각해야할 음악의 요소들은 실로 너무 여러가지여서, 이는 마치 정교하고 까다로운 게임을 하는 것과 같을 수 있다. 대중적인 음악을 예로 든다면, 아름다운 선율(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음의 높이가 변한다)을 생각하는 동시에 그 선율 안의 각각의 음이 울려퍼지는 순간 다른 악기들의 울림(수직적인 울림이라고도 한다)을 신경써야 하는 것이다. 이 두가지는 사실상 동시에 할 수 없는 동시에 동시에 해야만 하는 것들이라, 작곡가에겐 정신분열의 체험이 될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음색, 셈여림, 가사(노래일 경우) 등의 여러가지 다른 요소들도 동시에 고려해야 하므로, 어지간한 온라인 게임보다 더 현란한 마우스 움직임을 요할 수도 있다고 주장해도 어느정도 일리가 있다.


3. 심리적인 문제 - 자아에 대한 인식

작곡가들 사이에서 “생긴대로 곡 쓴다”는 말이 있다. 진심이 담긴 음악은 자신의 삶과 인간성을 담고 있다는 의미이다. 심지어, 진심이 담기지 않은 음악조차 작곡가의 진실되지 못한 삶의 태도를 닮아있다. 그러므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밖에 없는 창작과정이 어떤 순간에는 마치 옷을 벗는 듯한 부끄러움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런 식의 노출들을 즐기지(?) 못한다면 아무리 음악적인 재능이 있어도 작곡과정은 느리고 힘겨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음감이나 기타 작곡능력에 관계없이 창작이라는 행위가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만성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큰 질병이 생기기 전에 서둘러 다른 직업을 구하는 것이 개인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 이득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고통을 감수해낼 정도로 성취감과 희열이 크다면 당연히 계속 작곡을 하는 것이 좋다.


4. 시간개념

곡을 쓰는 시간과 결과물이 연주 되었을 때 소요되는 시간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간극이 있다. 예를 들어, 약 두어시간동안 정성껏 집중하여 작곡하여 대여섯 마디의 소절을 정교하게 만들어 냈다고 가정하면, 이는 대략 10초 안팎의 시간동안 울려퍼질 것이다. 이러한 시간인식의 차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곡의 진행이 어마어마하게 빨라지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으니 이제 넘어갈 때가 되었다고 작곡가는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음악적으로 아직 좀 더 움츠러들어 있어야 할 타이밍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절정에 다다른 지점에서 너무 금방 식어버려서 곡이 허무하게 끝나도록 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조금 힘들더라도 그 클라이맥스 섹션을 좀 더 붙들고 있어서 더 길게 만들어야 한다. 이런 것들은 듣는 사람의 입장을 늘 생각하면서 곡을 쓰는 ‘역지사지’의 능력이 있어야만 효과적으로 할 수 있으며, 어느정도의 재능과 훈련이 두루 필요한 부분이다. 이는 많은 음악을 듣고, 악보를 보거나 제작과정을 관찰하는 등의 다양한 창작과정에 대한 경험을 통해 어느정도 훈련될 수 있다.


작곡가도 다양한 성격과 성향들이 있어서 본인의 단점이 각기 다르다.

어떤 작곡가는 재료는 잘 정리하고 나열하는데, 그를 활용하는 능력이 부족하기도 하다. 어떤 작곡가는 시작할 때의 순간적인 아이디어는 번뜩이는데 이를 긴 작품으로 끌고 나가는 동력과 끈기가 부족하고, 어떤 이는 반대로 꾸준히 곡을 대단한 분량으로 써내려가는데, 결정적으로 창의력이 부족하여 특별한 아이디어가 없는 밋밋한 작품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듯 같은 직업군 안에서도 천차만별의 사람들이 존재하니, 인간은 공통점이 많으면서도 참으로 다양하고 개별적인 존재인 듯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중매체에서 본 것만을 가지고 특정 직업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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