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잘쯔부르크 | 3 ARTICLE FOUND

  1. 2012.12.15 나의 독일어 선생님 (6)
  2. 2012.12.12 베네치아를 떠나며.. 슈테판의 고민 (4)
  3. 2012.01.23 옛 선생님의 편지 (8)


(깨알같은 자랑글이니 수족위축증이 걱정되시는 분은 뒤로가기 클릭할것)

때는 2003년 10월.
모짜르테움에서 첫 학기를 시작한 것과 동시에 독일어 수업을 알아보러 잘츠부르크 국립대학의 언어연구소를 찾아갔었다.  이미 전공수업으로 시간표는 꽉 차있었지만, 독일어 공부를 안한지 너무 오래돼서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가서 이것저것 알아보다 보니 바로 지금 이순간, 내가 있는 이 건물의 2층에서 약 20분 전에 외국학생을 위한 독일어 반편성 시험이 시작되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당황한 채로 무작정 시험장에 뛰쳐 들어갔더니, 굉장히 엄하게 생긴 시험감독님이 내게 오면서 늦었다고 한소리를 하셨다.  나름 사정을 설명했는데도 전혀 화를 풀지 않으셨고, 여기가 무슨 카페인줄 아냐고 매서운 눈초리로 설교하시더니 시험지를 던지다시피 하면서 주셨다.  쪼그라든 간을 붙잡고 모자라는 시간에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며 문제들을 풀고 나서 며칠 후, 결과를 보러 갔다가 내 이름을 중급(Mittelstufe) 2반 학생 명단에서 확인하였다.  생애 처음으로 초급단계(Grundstufe) 딱지를 떼는 감격스런 순간이었다… 게다가 중급 1반을 건너뛰고! (이런 깨알같은 사소한 일에 기쁨을 느끼던 시절이 있었다)

첫 수업날, 한 반에 60명도 넘는 학생들이 앉아있던 빽빽한 교실에 찾아갔더니 굉장히 착하게 생긴 남자선생님이 계셨다.  목소리도 그다지 크지도 않았는데, 학생들이 떠들지 않고 거의 다 집중을 하며 듣는, 상당히 효율적인 분위기의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고, 선생님은 설명도 어찌나 명쾌한지, 내가 궁금해하고 가려워했던 독일어의 이상한 부분들을 차분하면서도 시원하게 설명을 해주셔서 듣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같은 반 학생들은 반편성 시험이 무색하게 참 말도 잘했고 대답도 적극적으로 잘 했는데, 난 그 많은 학생들 사이에서 손을 들고 발표하기가 머쓱해서, 그저 조용히 숙제만 열심히 할 뿐이었다.  안타깝게도 1주일에 세번씩 하는 수업 중에 한번은 전공 수업과 겹쳐서 갈 수가 없었는데, 장소도 멀어서 어지간하면 포기할 만도 했던 수업을 남은 두시간이나마 눈비를 뚫고 참 악착같이 다녔던 것 같다.

바쁜 와중에 각종 숙제와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다 봤지만, 출석과 몇가지 과제가 모자라서 최고점수(1점)을 받을 수가 없었다고 선생님은 학기말에 약간 난감한 표정으로 말씀 해 주셨다.  난 어차피 학점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고, 독일어를 많이 배울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었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씀드렸고, 학기가 끝난 후 감사 이멜도 한통 보냈다.  

(이 한통의 메일이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잘 한 일이었는지…)

이후, 메일을 주고받으며 생각지도 않던 성적 이야기가 나왔다.  왜냐하면 난 1점과 2점 사이에 있는 애매한 위치에 있었고, 그 상황에서 선생님이 망설임 끝에 2점을 주면서 나에게 미안하게 생각해 왔던 것이었다.  난 어차피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라고 한 적도 없었고 진짜 그냥 독일어를 배우고 싶어서 들었던 것이니 전혀 상관 없다고 했는데도, 전공수업을 그렇게 많이 들어가면서 독일어 수업까지 열심히 들으러 온것이 기특하다며 그럼 그냥 1점을 주겠다고 하시는것 아닌가?!  나야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ㅎㅎ

그러던 와중에 전공 이야기도 나오고, 유학생활에 대한 수다도 떨다보니 한달동안 거의 매일 이멜을 주고받게 되었고, 다음학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이미 온갖 고민을 상담하는, 굉장히 친한 친구처럼 되어버렸다.  아쉽게도 다음학기에는 시간표 사정상 다른 분의 수업을 들어야 했지만, 선생님을 우연히라도 마주치면 서로 굉장히 반가워하며 얼마 안되는 바쁜 쉬는시간 내내 수다를 떨다 황급히 갈길을 가시곤 했다.  나는 나름대로 그렇게 많은 학생들 중에 유독 나랑만 친하신 것이 왠지 으쓱하기도 하고,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아시고 진심으로 안부를 궁금해 하며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분이 잘쯔부르크에 계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선생님은 워낙 착하기로 소문난 분이어서 모든 학생들이 좋아하는 분이었다.  수업이 시작된지 두어달이 지났을 때부터 학생들은 수업이 끝난 후 삼삼오오 모여서 선생님과 같이 사진을 찍으려 했고, 내 음악회 뒷풀이나 생일파티에 오셨을때는 다른 친구들이 더 반가워 하면서 대화를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참 외롭고 어리둥절했던 유학생활의 초기에 이렇게 마음이 따뜻한 분과 알고 지내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  돌이켜보면 철없는 푸념에 가까운 수준의 유치한 이메일을 썼을텐데 항상 자상하게 답장을 해 주시고, 그냥 쓰는 말이 아닌, 진심으로 응원하는 마음이 느껴지게끔 한데다 내 생각이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에는 조심스럽게 방향을 바로잡아 주시기도 했다.  이후에 내가 작품발표를 할 때면 청중으로 오셨다가 뒷풀이까지 와서 놀다 가셨고, 생일파티에 친구들과 다른 친한 선생님들을 초대했을 때도 꼭 한번씩 들렀다 가셨다.  

특히, 2006년 졸업연주를 위한 작곡발표회를 혼자 치룬 직후가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진행이 미숙해서 상당히 늦게 끝났는데도 다 끝난 후 모든 사람과 인사를 마칠때까지 조용히 미소만 머금고 뒤에서 기다리시다가 내가 좀 한가해 졌을 때가 되어서야 나에게 오셔서 덕담을 쏟아부으셨다.  그 때의 수많은 칭찬들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너는 이제 진짜 작곡가(Du bist eine echte Komponistin)"라고 하셨던 것.  심지어 기존의 작곡가들이 쓴 현대음악 작품도 종종 듣곤 하지만, 내 음악이 더 좋았다고 하신 것이다.  이 때를 계기로 나 자신도 조용한 학생으로 머물지 말고 실제로 활동하는 활발한 작곡가로 자신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겠다고 결심하게 되었고, 마음이 위축되고 자신감이 부족할 때 지푸라기처럼 옛 칭찬들을 떠올리며 자신감을 불어넣고자 노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졸업 직후, 잘쯔부르크를 떠나기 전 여름에는 선생님과 선생님 아내와 다같이 잘쯔캄머구트로 놀러가 호수에서 수영을 하기도 했고, 인근 동굴에도 산책을 갔다 왔다.  2008년 초에 전자음악실에서 작업을 하고 작품발표를 할 일이 있었을 때에도 만나서 회포를 풀었고, 매년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냈고 서로의 생일 날에는 장문의 이멜이나 페이스북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그러다가 얼마전인 2012년 12월초, 잘쯔부르크를 잠깐 방문하면서 선생님과 사모님을 다시 뵈었다.  

그동안 글로 주고받았던 깨알같은 이야기들을 다 기억하시면서 어떻게 되었는지 그 이후를 물어보셨는데, 나 자신은 이미 잊은 일들까지 있어서 내가 당황할 정도였다.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하건 간에 항상 미소를 머금고 계신 선생님 부부는 항상 사랑의 기운을 내뿜고 계셔서 마치 치유를 받는 기분이었고, 오랫만에 독어로 이야기 하느라 버벅거리고 틀린표현을 밥먹듯이 하는 나와 대화하는 것이 어지간히 지루할 만 했는데도 계속 즐겁게 들어주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난 마음 편하게 속깊은 이야기를 다 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 든다. 게다가 이번에 만나서는 사진도 안찍어서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사진이 없다는 것도 몹시 아쉽다.  다음에 뵐 때는 더 편한 마음으로 회포를 풀고, 독일어 표현이 세련되지 않은 것이 창피해서 진솔하게 속이야기를 하는 일을 주저하는 오류는 범하지 말아야겠다.

2005년 11월.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 펌

증조 할아버지부터 4대째 같은 이름을 가진 한네스, 조상님들은 다들 직업이 Mauer(벽공)였지만 선생님만 독일어교사가 되셨다.. 둘째 아들이 베이스기타를 전공하고 비엔나에서 어렵게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면서 내가 하는 활동에 더욱 관심을 가지시는 선생님의 아들은 사진으로만 봤지만 선생님 부부를 닮아서 그런지 참 표정이 따뜻했다.

중년의 모습이었던 10년전의 선생님은 이제는 머리카락이 완전히 은발로 변해있었다.  번개같이 흘러가는 시간을 잠시 붙잡고, 희미해져가는 기억들을 다시 살릴 수가 있어서 잘쯔부르크에서의 며칠은 한편으로는 참 기쁜 나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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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eree.tistory.com BlogIcon Mr. Tipo 2012.12.15 18: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표정이 온화하셔~ 좋으신분 같으다.

    • Favicon of https://jagto.tistory.com BlogIcon 작토 2012.12.16 02: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평소 삶의 태도가 세월을 거듭할수록 외모나 분위기로 드러나는 것 같아..
      이런 분들과 알고 지내다 보면 항상 긍정적이고 따뜻한 마음가짐을 지니고 살아야지~ 하고 다짐하게 돼^^

  2. Favicon of https://arthurjung.tistory.com BlogIcon Arthur Jung 2012.12.16 11: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츠부르크에서 만난 귀인이군요^^
    사람 사이의 인연이라는 게 참 오묘한 것 같아요..
    어쩔 때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는 반면,
    또 다른 때는 별일 안해도 그냥 자연스럽게 가까운 사이가 되기도 하고..
    사랑도 그런 걸까요? ㅋ

  3. 아이구 2012.12.19 06: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좋아서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나네요
    선생님도 제자도 아름다워라....





2012년 11월 30일: 베네치아를 떠난 날…
아틀리에 플레인 베니스(링크)에서의 2주반의 기간은 잔잔한 듯 하면서도 다이나믹하기도 한, 일상과 여행이 공존하는 나날들이었다.  떠나오기 직전에서야 레지던시 운영을 하느라 고생중인 율마와 수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진심으로 마음속 깊이 우러나오기 시작했는데, 그 뒤늦은 타이밍 때문에 굉장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Say goodbye에 참 익숙치 않은 나를 안아주는 Su를 견뎌낸(?) 후 머쓱하게 인사를 하고 황망히 뒤돌아 나와 다음 행선지인 오스트리아 행에 온 신경을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몇달 전부터 싼 값에 예약했던 잘쯔부르크 행 기차표를 자세히 보니 베네치아에서 버스를 타고 오스트리아에 들어가서 기차를 갈아 타는 여정이었다.

여유있게 나와서 버스터미널이 있는 트론케토(Tronchetto)역에 일찍 도착하려고 집에서 일찌감치 나왔는데, 아쿠아 알타 때문에 대운하의 수면이 상승해서 바포레토 노선들이 엉망이 되어있었다.  베네치아를 가로지르지 않고 그 주변의 넓은 바다로 돌아가는 바포레토를 탔지만, 다행히 워낙에 일찍 나온 탓에 버스시간에 늦지는 않은 듯 하였으나, 표에 적힌 버스 출발 시간을 잘못 읽은 나의 어이없는 실수로 인해 커피숍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오스트리아 행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이로서 오랫동안 그려오던 나의 치밀한 시나리오는 산산조각이 나고, 나는 두시간을 기다린 후 다음 버스 운전기사가 유두리를 발휘하기를 바라는 애매한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여행을 많이 해봤지만, 10년전 베낭여행을 제외하면 다 아무리 늦어도 몇주 전에는 동선을 정하곤 했는데, 도시간 이동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은 개인적으로 너무 큰 스트레스이다... 하지만 누굴 탓하리오… 정말 20대까지는 하지 않던 말도 안되는 실수들을 최근에는 남발하는 것 같다.  수학을 정말 잘하는데 산수를 틀려서 답을 못 맟추는 기분.. 나이가 들 수록 심해지려나? ㅠ

베네치아에 놀러온 수연이를 더이상 시간낭비 하게 할 수는 없어서 시내로 가는 바포레토를 태워 보내고 난 같이 커피를 마셨던 그 샵으로 다시 들어가서 물 한병을 사고 자리에 앉았다.  웨이터가 와서 자릿세 50센트를 받아간 후,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있는 와중에 7-8명의 오스트리아 젊은이들이 우르르 들어와서 자기들끼리 대화를 하고 있는데, 묘하게 나의 잘쯔부르크 유학시절의 마음이 데자뷰처럼 재연되고 있다.  바깥의 회색빛 날씨와 함께…

독일어 대화 내용이 잘 들리는 지금 나의 마음이 반갑지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그들의 언어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어진다.
자존감이 부족한 것일까?
어차피 그들과 나는 이방인이고 정신적인 교류가 수월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조섞인 센치함인 것일까?  
독일어를 할 줄은 알지만, 아주 어려운 이야기는 이해할 수 없는 나의 상황이 싫은 것일까?  깊이있는 대화를 결국엔 하지 못한 것만 같은 찝찝함과 아쉬움인가?

결국 두시간이 넘어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시간표를 다시 한번 잘못 읽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로 기차역으로 갔다가 거기서도 뾰족한 수가 없어서 되돌아왔다.  참고로 트론케토 버스터미널에서 로마 광장까지 가는 1유로짜리 모노레일이 있으므로 여기선 편도 7유로짜리 바포레토를 타지 않아도 된다.  굉장히 다행이다.

계획보다 네시간이나 늦은 세시 반에 결국 버스를 타고 오스트리아의 Villach에 내려서 기차로 갈아타는 바람에 잘쯔부르크에는 계획보다 무려 6시간 늦은 밤늦게 도착했다.  고맙게도 유학당시 작곡과 동기였던 슈테판이 마중나와줬고, 새로 지은 기차역을 제외하고는 변한 것이 거의 없는 잘쯔부르크 중심부를 잠깐 산책하고 한잔을 걸치며 회포를 풀었다.  


현대음악에 회의를 느끼고 자신의 진정한 음악적 정서는 후기낭만 스타일에 있는 것 같아서 작곡을 과연 계속 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슈테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오케스트라 곡을 작곡중이라고 했다. 곡의 주제는 우크라이나의 대학살을 고발하는 내용인데, 정치적인 작품인 것을 활용하여 연주를 위한 지원사업을 알아보다가 유네스코에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를 하게 되고, 몇년 후, 파리의 유네스코 헤드쿼터에서 자체행사의 일원으로 초연될 예정이라고 한다.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싶어하는 슈테판다웠고, 한편 오스트리아라는 선진국이자 중립국인 나라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렇게 자유롭게 남의 나라의 일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슈테판이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당장 한국만 생각해도 머리가 복잡한 나에게는 우크라이나의 학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듣는 것은 조금은 뇌에 과부하가 걸리는 일이었다.  

슈테판은 나의 이런 심정은 모른채, 이세상에는 홀로코스트 말고도 끔찍한 일이 너무 많은데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른다면서 모든 숨겨진 정치범죄는 끝까지 추적하고 파헤쳐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두말하면 잔소리지.. 한국만 해도 어디 파헤칠게 한두가지인가? 한국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려다 내 입만 아플거 같아서 관뒀다.  슈테판 이야기는 이게 다가 아니지만, 일단 여기까지만 써야 할 듯..


update(20131024): 슈테판의 교향곡 관련 기사(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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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break-t.tistory.com BlogIcon 딸기향기 2012.12.12 02: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토님 블로그 예전에서 들린 적 잇는거 같은데.. ^^ 제 친구랑 닉넴이 비슷해서..ㅎ
    짤츠부르크에서 유학하셨군요! sound of music의 팬이라서 많이 기대했고 그래서 다녀왔던 곳이었는데... 작토님한테는 그 이상의 곳이겠네요! 가끔 블로그 들리겠습니다 ~

    • Favicon of https://jagto.tistory.com BlogIcon 작토 2012.12.13 13: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딸기향기님 반가워요:)
      어릴때 sound of music 참 좋아했었는데..ㅎㅎ어쩌면 그래서 잘쯔부르크가 더 각별하기도 했죠. 지금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를 지닌이 장소이지만요^^

  2. Favicon of https://tranky.tistory.com BlogIcon 라플란드 :) 2012.12.12 03: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치 범죄를 다 털어낼 수 있을까요?
    특히 한국에서...요즘 상황 보면 그럴 것 같지 않아 참 씁쓸하네요.




옛 선생님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냈다가 답장으로 딸이 만들었다며 보내주신 카드를 받았다. ㅎㅎ



보내주신 분은 나의 지도교수님 프란츠 짜운쉬름(Prof. Franz Zaunschirm)!
 

(사실... 저기에 있는 Prof. Zaunschirm은 오스트리아식 표현으로는 틀린 표기이다.  왜냐하면, 앞에 Prof같은 호칭을 붙일 때, 그 사람이 살아오면서 달게 되는 모든 경력을 순서대로 다 나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박사학위를 땄으면 Dr. 
-석박통합이 아니고, 따로 석사학위를 받았다면 Mag.  (마기스터의 줄인말. 석사학위만 있는 사람도 Mag.라는 존칭이 붙는다)
-교수니까 Prof.
-그런데 대학 교수이므로 Univ.Prof.
-계약직이나 외부 전임강사가 아닌 정교수일 경우 O.Univ.Prof. (O.는 ordentlich의 약자)

그러므로 나의 옛 스승님의 정식 명칭은 무려
O. Univ. Prof. Mag. Dr. Franz Zaunschirm
 되시겠다;


근데 이걸 왜 설명했지?ㅠ  그럼 서둘러서 삼천포로 흘러간걸 물꼬를 돌려서...)


학부때까진 작곡만 주구장창 파다가 유학나와서 석사과정을 밟을땐 음악이론(Musiktheorie)전공도 병행했었다.  (그래봤자 겹치는 과목이 엄청 많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하여, 강의법 등 교육내용과 작곡이론 및 음악학을 짬뽕시킨 전공인 무직테오리를 작곡전공과 동시에 밟을때 나를 가장 자상하게 도와주신 짜운쉬름 선생님 이야기를 하려 한다.

선생님을 처음 뵈었을 때, 딱 전형적인 오스트리아 아저씨를 떠올렸을 때의 이미지였다.
 

당장 비엔나 왈츠라도 추실 것 같은 말끔한 정장차림에 매일 바뀌는 형형색색 나비 넥타이와 한결같은 콧수염까지.. 내가 나름 갈고 닦았던 독일어회화가 모두 일시정지 할 것만 같은 교과서적인 차림새를 하고 계셨다.  게다가 좀처럼 변하지 않는 (약간 화난 듯한..이라고 오해했던) 무표정한 얼굴.  아주 웃기고 재미있는 일이 있을 때는 살짝 눈만 반짝이시는 듯 할 뿐 시종일관 변하지 않는 표정...  질문이라도 하면 엄청나게 빠른 말투로 이것저것 설명 해 주시는데, 많은 정보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무표정한 얼굴과 오스트리아 억양에 적응하지 못한 나는 대략 패닉상태로 고개만 끄덕거릴 뿐이었다.

유학 떠나기 전에 잠시 들었던 유학대비 독일어 수업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유학생들 하는걸 보면 폭포와 같이 쏟아지는 양질의 정보를 큰 대야로 받아도 모자랄 판에 겨우 숟가락 하나로 허겁지겁 받으러 다니는 형상이라는.. 


(언어의 장벽과 그것을 깨야만 하는 이유를 참 찰지게 비유하셨던 그때의 강사님은 오르간 전공으로 10년을 유학하셨던 분이었다.)

이런 저런 들은 이야기도 있고 하니 부끄러운 모습으로 남지 않기 위해 두려움을 무릅쓰고 열심히 수업을 듣고 이것저것 이해하건 말건 물어보고 했다.  '선생님이 화나신게 아닐게야!  분명히 내가 한 헛소리들은 신경 쓰시지도 않을 것이야!'라고 자기최면을 애써 남발하며...

총 3년의 오스트리아 유학시절 중 첫 2년은 인근 대학에서 독일어 수업을 받으러 다녔다.  그 사실을 안 짜운쉬름 선생님은 지나가다 나의 독일어 교재를 보고 의아해 하면서 물어보셨다.  이제 전공공부 하느라 바쁠텐데 왠 독일어 수업?

그 때 난 강박증 비슷하게, 계속 어학 수업을 들어야만 한다는 집착때문에 작곡공부와는 별개로 덤으로 수업을 다니고 있었지만, 사실 엄연히 다니던 대학을 두고 다른 곳에 가서 전공과 관계없는 어학수업을 듣는 일이 그닥 효율적이진 않았기 때문에 선생님이 어떻게 생각 하실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이렇게 대답했었다:
계속 배우지 않으면 까먹으니까요;;


선생님은 인상이 깊으셨는지 눈이 약간 커지시면서 (aber 표정은 그대로)
마치 수영할때 가만있으면 가라앉으니까 계속 팔다리를 움직여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란 말이지?
라고 하시곤 홀연히 복도에서 사라지셨다. 


.....(저거 칭찬인긔?  이미 떠나셨으니 여쭤볼 수 없음 ㅠ)

세월이 제법 지나 선생님의 진심은 그 무표정한 콧수염 너머에 따뜻한 마음에 있다는 걸 점차 깨닫게 되고, 선생님도 나를 낮설게 여기지 않으시고 먼저 챙겨주기 시작하셨다.  

유학시절 급성 맹장염으로 입원을 한 적도 있었는데, 그 때 주치의(Hausarzt)시스템에 대해 처음으로 뼈저리게 체험하고 뒤늦게 주치의를 구하느라 아픈 몸 이끌고 방황할 때, 어떻게 알아내셨는지 먼저 내가 사는 집으로 전화하셔서 안부를 물어보시고 수소문 끝에 적절한 의사를 찾아서 예약도 도와주시기도 하였다.  

사실 맹장염이 시작은 급성이었는데 수술 후유증이 심하고 의지할 주치의조차 없어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었다.   아프고 무기력해져서 비행기타고 한국에 갈 힘조차 없이 늘어져 있을 때 이렇게 선생님께서 챙겨주시니 감사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었다.  '그래, 더이상 이렇게 아프다고 넋놓고 있는다는건 부모님과 선생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라고..다짐하면서 열심히 관리를 하고 애써 학교에 다시 나갔었고, 쓰다 만 곡을 열심히 완성해서 다음학기에 연주시킬 수 있었다. 


입학 하자마자 우연찮게 봤던 어느 작곡과 학생의 졸업연주를 가볼 일이 있었는데, 이 친구는 자기 혼자 음악회 전체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제대로 된 하나의 콘서트를 만들어 나갔었다.  그때 순진했던 나는 당연히 모든 작곡전공 석사 졸업연주 이런 식인 줄 알고 미리부터 치밀하게 준비 해 나가 1시간 반 분량의 음악회를 기획하고 한 곡은 지휘까지 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꼭 혼자 할 필요는 없었고 한사람당 30분 이상 분량만 발표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이건 또 무슨 집착인지, 나도 꼭 그 때 처음봤던 그 음악회만큼 하고 싶어서 극구 추진했었다.

이런 과정을 보신 선생님은 퍽 감명이 깊으신 듯 했다.  나중에 만난 필자의 부모님에게 까지 그 때 음악회 이야기를 하시면서 칭찬을 펼치신 것으로 봐서 말이다.  

나중에는 성공의 조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전공분야만 열심히 파고드는게 성공의 충분조건이 아닌 이유에 대한 체계적인 가르침이 있으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듯한 내용이 당시에 그저 공부밖에 할줄 아는게 없었던 필자같은 사람에겐 꽤 큰 도움이 되는 이야기 들이었다.  이런식으로 선생님은 학생 하나하나에게 필요한 것 위주로 가르치셨고, 당신의 경험담을 아낌없이 나누는 자상한 분이었다.

여차저차 해서 무사히 졸업을 할 수 있었고, 졸업 무렵에는 필자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시는 든든한 멘토가 되신 선생님은 너같은 애를 이대로 졸업하게 할 수는 없다며 모짜르테움 재단에서 매년 젊은 음악인 한명에게 수여하는 메달을 받도록 하겠다며 재단측에 적극 추천을 하신 결과 나는 파움가르트너 메달(Bernhard-Paumbartner Medal)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ㅠ  덕분에 부모님이 처음으로 잘쯔부르크를 방문하셨을 때 뜻깊은 추억거리를 남겨드릴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더 감사하는 마음이 컸다. 


졸업식 다음날 메달을 받았다.  시상식때 찍은 사진
왼쪽이 짜운쉬름 선생님이다.
(오른쪽은 선생님 못지않게 무표정의 대가인 당시 모짜르테움 대학 총장 
존칭은 어마어마하게 길고 복잡할테니 생략 ㅠ)

메달사진 투척~! 
(자랑 맞음)  

선생님과의 긴 인연은 졸업 이후에 선생님이 잠시 한국을 방문하면서도 이어졌지만, 글이 길어진 만큼 다음기회에 이야기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매년 연말이 되면 유럽 사람들 하는거 따라서 옛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곤 하는데, 매번 이렇게 답장을 해주시는 선생님 덕분에 옛 생각도 하면서 더 힘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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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gracedealer.tistory.com BlogIcon ★Jefferson 2012.01.24 01: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정말 멋진분께서 제 블로그에 글남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도 사실은 작토님처럼 전문적인 음악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음악듣고 공연가는것을 너무 좋아해서 서브블로그로 음악블로그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번 구경오세요. 제 닉네임 클릭하시면 아마 바로 링크가 되있을겁니다.^^

    http://blog.naver.com/nsync123 <- 그리고 여긴 제가 작년에 재즈 교양수업들으면서 음악일기 비슷하게 적었던 것이구요..^^

    • Favicon of https://jagto.tistory.com BlogIcon 작토 2012.01.24 19: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와~ 네이버 블로그도 잘 꾸미셨는데요! 구독신청 했어요 ㅋㅋ
      저도 재즈 엄청 좋아하는데, 아는게 하나도 없어서 뭐부터 들어야할지도 모르겠어요...크흑 ㅠ
      영광은 무슨^^;; 님같은 애호가님들이 관심을 가져주시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요 ㅎㅎㅎ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2. Favicon of https://www.walkview.co.kr BlogIcon 워크뷰 2012.01.24 01: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멋진 사진입니다
    저는 감히 상상도 할수 없는 멋진 사진을 오늘 보았네요^^
    피아노만 보면 기분이 좋아요 칠줄은 몰라요^^

  3. Favicon of https://tranky.tistory.com BlogIcon 라플란드 :) 2012.01.24 10: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표정 하시다더니 굉장히 밝은 표정이신데요, 마지막 사진은^^
    항상 밝고 긍정적인 모습 잘 읽고 가요.
    오늘 또 하나 배우고 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4. Favicon of https://aiesecks.tistory.com BlogIcon 아디오스(adios) 2013.01.04 01: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자들 편지에 일일이 답장을해주시는군요... 정말 다정한 분이신거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