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오스트리아 | 4 ARTICLE FOUND

  1. 2012.12.12 베네치아를 떠나며.. 슈테판의 고민 (4)
  2. 2012.10.02 셉 홀처(Sepp Holzer)의 permaculture 농법 (2)
  3. 2012.01.26 내 생애 첫 위촉곡 (8)
  4. 2012.01.23 옛 선생님의 편지 (8)



2012년 11월 30일: 베네치아를 떠난 날…
아틀리에 플레인 베니스(링크)에서의 2주반의 기간은 잔잔한 듯 하면서도 다이나믹하기도 한, 일상과 여행이 공존하는 나날들이었다.  떠나오기 직전에서야 레지던시 운영을 하느라 고생중인 율마와 수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진심으로 마음속 깊이 우러나오기 시작했는데, 그 뒤늦은 타이밍 때문에 굉장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Say goodbye에 참 익숙치 않은 나를 안아주는 Su를 견뎌낸(?) 후 머쓱하게 인사를 하고 황망히 뒤돌아 나와 다음 행선지인 오스트리아 행에 온 신경을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몇달 전부터 싼 값에 예약했던 잘쯔부르크 행 기차표를 자세히 보니 베네치아에서 버스를 타고 오스트리아에 들어가서 기차를 갈아 타는 여정이었다.

여유있게 나와서 버스터미널이 있는 트론케토(Tronchetto)역에 일찍 도착하려고 집에서 일찌감치 나왔는데, 아쿠아 알타 때문에 대운하의 수면이 상승해서 바포레토 노선들이 엉망이 되어있었다.  베네치아를 가로지르지 않고 그 주변의 넓은 바다로 돌아가는 바포레토를 탔지만, 다행히 워낙에 일찍 나온 탓에 버스시간에 늦지는 않은 듯 하였으나, 표에 적힌 버스 출발 시간을 잘못 읽은 나의 어이없는 실수로 인해 커피숍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오스트리아 행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이로서 오랫동안 그려오던 나의 치밀한 시나리오는 산산조각이 나고, 나는 두시간을 기다린 후 다음 버스 운전기사가 유두리를 발휘하기를 바라는 애매한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여행을 많이 해봤지만, 10년전 베낭여행을 제외하면 다 아무리 늦어도 몇주 전에는 동선을 정하곤 했는데, 도시간 이동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은 개인적으로 너무 큰 스트레스이다... 하지만 누굴 탓하리오… 정말 20대까지는 하지 않던 말도 안되는 실수들을 최근에는 남발하는 것 같다.  수학을 정말 잘하는데 산수를 틀려서 답을 못 맟추는 기분.. 나이가 들 수록 심해지려나? ㅠ

베네치아에 놀러온 수연이를 더이상 시간낭비 하게 할 수는 없어서 시내로 가는 바포레토를 태워 보내고 난 같이 커피를 마셨던 그 샵으로 다시 들어가서 물 한병을 사고 자리에 앉았다.  웨이터가 와서 자릿세 50센트를 받아간 후,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있는 와중에 7-8명의 오스트리아 젊은이들이 우르르 들어와서 자기들끼리 대화를 하고 있는데, 묘하게 나의 잘쯔부르크 유학시절의 마음이 데자뷰처럼 재연되고 있다.  바깥의 회색빛 날씨와 함께…

독일어 대화 내용이 잘 들리는 지금 나의 마음이 반갑지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그들의 언어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어진다.
자존감이 부족한 것일까?
어차피 그들과 나는 이방인이고 정신적인 교류가 수월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조섞인 센치함인 것일까?  
독일어를 할 줄은 알지만, 아주 어려운 이야기는 이해할 수 없는 나의 상황이 싫은 것일까?  깊이있는 대화를 결국엔 하지 못한 것만 같은 찝찝함과 아쉬움인가?

결국 두시간이 넘어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시간표를 다시 한번 잘못 읽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로 기차역으로 갔다가 거기서도 뾰족한 수가 없어서 되돌아왔다.  참고로 트론케토 버스터미널에서 로마 광장까지 가는 1유로짜리 모노레일이 있으므로 여기선 편도 7유로짜리 바포레토를 타지 않아도 된다.  굉장히 다행이다.

계획보다 네시간이나 늦은 세시 반에 결국 버스를 타고 오스트리아의 Villach에 내려서 기차로 갈아타는 바람에 잘쯔부르크에는 계획보다 무려 6시간 늦은 밤늦게 도착했다.  고맙게도 유학당시 작곡과 동기였던 슈테판이 마중나와줬고, 새로 지은 기차역을 제외하고는 변한 것이 거의 없는 잘쯔부르크 중심부를 잠깐 산책하고 한잔을 걸치며 회포를 풀었다.  


현대음악에 회의를 느끼고 자신의 진정한 음악적 정서는 후기낭만 스타일에 있는 것 같아서 작곡을 과연 계속 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슈테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오케스트라 곡을 작곡중이라고 했다. 곡의 주제는 우크라이나의 대학살을 고발하는 내용인데, 정치적인 작품인 것을 활용하여 연주를 위한 지원사업을 알아보다가 유네스코에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를 하게 되고, 몇년 후, 파리의 유네스코 헤드쿼터에서 자체행사의 일원으로 초연될 예정이라고 한다.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싶어하는 슈테판다웠고, 한편 오스트리아라는 선진국이자 중립국인 나라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렇게 자유롭게 남의 나라의 일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슈테판이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당장 한국만 생각해도 머리가 복잡한 나에게는 우크라이나의 학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듣는 것은 조금은 뇌에 과부하가 걸리는 일이었다.  

슈테판은 나의 이런 심정은 모른채, 이세상에는 홀로코스트 말고도 끔찍한 일이 너무 많은데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른다면서 모든 숨겨진 정치범죄는 끝까지 추적하고 파헤쳐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두말하면 잔소리지.. 한국만 해도 어디 파헤칠게 한두가지인가? 한국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려다 내 입만 아플거 같아서 관뒀다.  슈테판 이야기는 이게 다가 아니지만, 일단 여기까지만 써야 할 듯..


update(20131024): 슈테판의 교향곡 관련 기사(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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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break-t.tistory.com BlogIcon 딸기향기 2012.12.12 02: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토님 블로그 예전에서 들린 적 잇는거 같은데.. ^^ 제 친구랑 닉넴이 비슷해서..ㅎ
    짤츠부르크에서 유학하셨군요! sound of music의 팬이라서 많이 기대했고 그래서 다녀왔던 곳이었는데... 작토님한테는 그 이상의 곳이겠네요! 가끔 블로그 들리겠습니다 ~

    • Favicon of https://jagto.tistory.com BlogIcon 작토 2012.12.13 13: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딸기향기님 반가워요:)
      어릴때 sound of music 참 좋아했었는데..ㅎㅎ어쩌면 그래서 잘쯔부르크가 더 각별하기도 했죠. 지금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를 지닌이 장소이지만요^^

  2. Favicon of https://tranky.tistory.com BlogIcon 라플란드 :) 2012.12.12 03: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치 범죄를 다 털어낼 수 있을까요?
    특히 한국에서...요즘 상황 보면 그럴 것 같지 않아 참 씁쓸하네요.



 

오늘은 음악과 전혀 관련은 없지만, 제 개인적인 관심사에서 비롯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2010년 가을, 박사과정을 밟으며 한창 슬럼프를 겪고있던 시절, 난데없이 자연주의 농업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던 시기가 있습니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정말 뜬금없는 주제에 꽃혀서 며칠을 농업에 빠져 지냈죠 ㅋㅋ  이 때 유투브 동영상으로 접하게 된 어느 오스트리아의 신기한 농부 이야기입니다.

자연상태로 존재하는 식물들은 한가지만 독자적으로 이루어진 경우은 거의 없고 다들 마구 섞여 있습니다. 경쟁에 살아남아 어느정도 이상 자란 식물들은 서로에게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해가며 동물과 곤충에게도 친숙한 환경을 제공하고 해를 거듭해도 자생력을 잃지 않죠. 인간만 개입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살려서 자연상태에 최대한 가깝게 꾸미되, 식물의 종류를 최대한 인간이 수확하여 섭취할 수 있는 것들로 심고 키우은 농법이 바로 permaculture 농업입니다.

제가 유학했던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서 아주 가까운 산자락에 Sepp Holzer라는 농부가 살고있습니다. 집안대대로 농부 가정이었던 홀쩌는 어릴때부터 전통적인 단작(monoculture)농업에 회의감을 느끼고 자연을 관찰하곤 했다고 합니다. 어른이 되어 자신이 맡은 땅을 책임지고 경작하기 시작하면서 이것 저것 시도를 해보기 시작한게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차츰 발전하여 현재 산 두개를 소유하고 있고 일년 내내 수확만 하기에도 일손이 모자라는 거대 왕국을 세우기에 이르죠! 놀라운 사실은, 알프스 산자락 해발 1400미터의 추운 지방인데도 인공호수의 수면에서 반사되는 태양열을 이용하여 레몬이나 라임같은 남쪽나라 과일도 재배하고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 내에서도 가장 추운 지방인 이 곳에서 농업을 하는 홀처는 토양의 비옥함을 유지하는 것을 가장 큰 관심사로 두고 있고, 땅을 지배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자연과 대화하고 이해하는데 노력하는 것, 경험을 토대로 자연의 원칙에 겸허히 순응하는 것을 가장 중요히 여기고 있습니다.  한가지만 경작하는 일반 농업에서 토양을 대상으로 투쟁을 하는 듯한 농법과는 접근방식 자체가 다른 것이죠. 

1960년대부터 천천히 경작을 시작하여 시행착오 끝에 산 전체를 비옥하고 먹을거리가 풍부한 토양으로 만들어 낸 홀처는 일체의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얼핏 보면 그냥 자연상태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것 처럼 보이는 곳이 많습니다.  홀처의 자연을 아끼는 마음은 매우 극단적이어서, 심지어 나무 및 식물들을 손으로 잡고 그들의 심정을 느끼려고 노력할 때도 있다고 합니다. 

270개의 크고 작은 호수들까지 관리하고 있는 홀처는, 물의 중요성 또한 인지하고 있어서, 호수를 통해 지대에 저장되는 수분으로 인해 땅이 일정한 습도를 유지하도록 자연스럽게 유지하고 있죠. 

다양성을 농장 전체의 최고의 생존전략으로 삼는 홀처는 닭, 돼지, 염소 등 다양한 가축들 또한 방목하여, 이들 동물들의 자연스러운 본능적인 행동들이 농업에 기여하도록 유도합니다. 이들을 절대로 가두지 않고 자유롭게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다니게 하는게 이 농업의 성공요인이라고 합니다. 

홀처의 농법은 유명세를 타서 이제는 그의 농법을 배우려는 농부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홀처 자신 또한 자신의 노하우를 최대한 공유하기 위해 다양한 워크샵을 농장에서 열기도 하구요.

홀처의 농법을 접하면서 자연에서 비롯된 인간들의 삶은 자연에 귀기울이고 순응할 때 가장 행복한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삶의 모든 면이 이렇지 않을까요?  욕심을 버리고 우주의 원리에 순응하는 마음가짐을 가졌을 때, 노력은 하되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평화로운 마음가짐을 얻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그 때 당시 홀처에게서 큰 깨달음을 얻고 마음을 다잡고 다시 제 전공공부에 매진하였는지는.... 잘 기억이 안나네요! ^^;;



 작토(Jagto)를 좋아해 주시면 페북으로 업데이트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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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ebold 2012.10.02 2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배우고 싶네요. 잘 봤습니다. ^^




작곡을 전공하다가 일개 학생신분에서 벗어나 작곡가로서 거듭나는 과정으로는 누군가에게 작품을 위촉받아 자신의 창작의 댓가를 금전적으로 받는 일이 생기는 것이 포함되지 않을까?

오랜 세월동안 막연히 동경만 하던 일이 나에게도 드디어 이루어졌었다.

사연을 이야기 하자면 좀 길다...


때는 2004년 여름.  오스트리아로 유학 온지 1년이 되어갈 때였다.

열심히 하겠다는 결심으로 온갖 희한한 과목들로 시간표를 꽉꽉 채워왔던 지난 두 학기...
덕분에 되려 작곡에 소홀하게 되고 지도교수님이 약간 기분이 언짢으신 듯 했기 때문에 꾸역꾸역 현악 사중주 곡도 완성해서 콩쿨에 내고.. 청소하고 요리하고 빨래도 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첫 1년을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하얗게 불태우고 지칠대로 지쳐 슬럼프가 찾아왔던 여름방학.
수업이 없으니 제대로 된 곡을 써야 했지만, 집주인의 시집살이(?)를 못견디고 기어이 이사를 가는 등, 각종 딴짓에 여념이 없었던데다, 원하던 여행도 제대로 하고 싶었던 걸 보니 어지간히 곡이 쓰기 싫긴 했나보다.  

꿈에 그리던 이웃나라 스위스를 일주일에 걸쳐 다녀오던 길, 동선을 어이없이 비효율적으로 잡은 나는 스위스 서쪽 끝에서 바로 잘쯔부르크까지 하루만에 집으로 올 예정으로 일찌감치 기차에 올랐었다. 베른에서 라우터브운넨까진 무사히 왔는데, 그 이후에 기차가 느릿느릿 거북이걸음을 하더니 취리히에 다 와서 제대로 문제가 생겼다....고 추측만 할 뿐 불어는 커녕 엄청난 억양의 스위스독일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난 대략 패닉상태.  

옆자리에 앉아있던 청년이 오스트리아 사투리로 승무원에게 이것저것 물어본다.  '오옷..이건 들린다!'  귀를 있는대로 쫑긋 세우며 경청했다.  아마도 오늘 자정즘에 취리히까진 가더라도 그 이후엔 기차들이 올스톱일 거라는... !@#$% 

국제미아가 되는 것인가...

승무원이 떠난 후 오스트리아 청년과 폭풍대화에 돌입했다.  대체 어찌된 일인지, 보상은 해주는지.. 숙박은? ㅠ
아무것도 해결된 건 없지만 어찌됐건 통성명을 하고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휴가를 바르셀로나에서 보내고 기찻길로 집으로 돌아가려던 후버트.  
오스트리아가 닭다리 뉘어놓은 것 처럼 생겼다면 서쪽의 얇은 뼈 부분.  산간지역이라 인구밀도가 낮고 교류가 적어 사투리가 심한 Dornbirn이라는 동네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알아듣기 힘든 희한한 말투로 독어를 하고 있었다.  견디다 못해 한마디 해줬다.

정말 너희 동네 억양 특이하구나...


으잉?  난 표준어(Hochdeutsch) 쓰고 있었어..


'오우;;;;'


엄청난 사투리로 들렸던 후버트의 말투가 사실은 나름 나를 배려해 준답시고 자신의 사투리를 엄청 완화시킨 나름 표준어였던 것이다. 
얼마 후에 후버트에게 전화가 와서 수화기 넘어로 대화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는데, 마치 영화에 나오는 외계인 언어를 미루어 짐작하듯이, 독일어 단어들의 단편들이 흩어져 들리는 희한한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말, 다르구나;;;;ㅎㅎㅎ


알아들었어?  내가 뭐라고 했었는지?


뇌의 주름을 총동원해서 한두마디 해독해 봤더니, 재밌다며 박장대소한다.

이렇게 시간을 때우며 취리히까지 자정에 갔더니 모든 기차 올스톱.  다음기차는 무려 새벽 7시 -_- 

먹을수도 잘 수도 없는 애매한 시간 애매한 장소에 떨어진 우리들은 그저 하염없이 시내를 걸어다닐 수 밖에 없었다..  견디다 못해 새벽 두시에 야식을 사다가 호숫가에 앉아서 먹고, 새벽 5시에 아주 이른 아침을 먹으면서 알콜중독 스위스인들과 눈인사를 하고 겁에 질려 서둘러 나와 취리히 구석구석을 배회하며 어두운 가게들을 아이쇼핑하고 유적지를 기웃거리며 폭풍수다를 떨었으니...  

비포선라이즈가 따로 없었다.  

그러나...

머리로는 낭만적이라고 생각됐는데, 몸은 그저 피곤에 쩔어 낭만이고 나발이고 집에만 가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고, 옆에 있는 후버트는 남자로 보이는게 아니라 독어회화로 나의 뇌를 폭파시키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악마같았다.  (실상은 취리히에서 국제미아로 전락할 뻔한 나를 구제해준 아주 고마운 친구였는데 말이다) 

토할 것 같은 우여곡절 끝에 각자 집으로 무사히 도착한 후 우린 근근히 소식을 주고받는 펜팔이 되었다. 난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을 준비하러 잠시 한국에 왔고, 후버트는 난데없이 스페인어 어학연수를 받겠다며 직장을 때려치우고 남미로 떠났다.  이 때가 2007년 초:

거의 소식이 끊긴지 1년이 넘어갈 무렵, 후버트에게 이멜이 왔다.

"잘 지내지?  (중략)
사실은 부탁하고 싶은게 있어서 연락했어.  내 베프가 몇달 후에 30번째 생일인데, 아주 특별한 선물을 해 주고 싶거든.  혹시 네가 내 친구를 위해서 짧은 소품을 작곡 해 줄 수 있을까 해서.. 그래서 그 악보를 친구한테 전달 해 주고싶어.  친구만을 위해 특별히 작곡된 곡을 선물하는거지.  내 친구중에 첼로하는 애가 있는데, 그애한테 연주를 맡길 까 생각중이야.  그러니까 첼로 솔로 곡을 써 줄 수 있겠니?
물론 작품료는 내가 내줄께 (어느정도로 할 건지 상의해보자) 그러니까 내가 너한테 위촉하는거지.
그럼 답장 기다릴께.  안녕!"


이렇게 하여 내 생에 첫 위촉곡이 탄생했다.  드디어 끝없이 갈고 닦은(?) 내 작곡내공을 상업적인(?)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거만하게도 시간당 노동비를 20유로로 계산하고, 솔로 첼로곡 작곡에 필요한 시간을 대략 10시간으로 잡아서 무려 200유로를 불렀는데, 다행히도 후버트가 흔쾌히 받아들여서. 일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친구의 이름 타마라(Tamara)의 철자를 응용해서 음이름으로 시(Ti) 미(mi) 라(ra) 를 응용한 첼로소품을 작곡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오글거리는 컨셉이지만, 타마라를 개인적으로 모르는 나는 음악적으로 그 친구만이 해당되는 곡을 만드는게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내놓은 나름의 해결책이었다. ㅋ


필사본을 보내기 전에 컴퓨터로 입력해 두었다 ㅋ(근데 지금보니 크레센도 표시가 다 날라가있네 아하핳)  ©J.S.Shin

 
곡을 부랴부랴 완성하고서 가장 빠른 우편으로 후버트에게 필사본을 보냈고, 후버트는 내 한국통장에 거금을 송금해주고 거래(?)가 완료되었다.
 
후버트의 투자로 자기만의 곡을 받게 된 그 친구는 참 복받은듯!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지닌 친구가 지구 어딘가에 있다는게 참 신기하다.  

지금은 공부를 더 하겠다며 석사과정을 밟고있는 후버트.  착한사람이 성공한다는 만인의 진리(?)를 널리 증명하길 바라며 응원하는 마음을 보내고 싶다.




오옷.. 내생애 첫 메인등록까지..!  이래저래 뜻깊은 글인듯!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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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인맘 2012.01.26 2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밤 눈을 뗄 수 없었던 재밌고 따뜻한 신토끼의 무용담?!?! ^^

  2. 2012.01.26 2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jagto.tistory.com BlogIcon 작토 2012.01.27 20: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앗!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한번 검색해서 정리 싹 해봐야겠어요~ ㅎㅎ
      믹시위젯이 다른 사람들 거랑 다르게 색깔도 다르고 슬림하게 생겼던데, 그것도 하단정리하면 가능한가요?

  3. Favicon of https://namsieon.com BlogIcon 작가 남시언 2012.01.27 11: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단하시네요 ㅋㅋㅋㅋ
    음악 하시는 분들...정말 대단하신듯 ㅋㅋ

  4. jg lee 2014.04.07 2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갑습니다. 작곡 검색하다 들어왔네요. 아는척하고 지낼까용??
    제 페북으로 들어오실수 있으면 좋겠는데...

    • Favicon of https://jagto.tistory.com BlogIcon 작토 2014.04.09 10: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반갑습니다^^ 페북은 직접 만난 사람들하고만 친구를 맺지만 제 페북페이지로 오시면 블로그 소식 드립니다^^ http://www.facebook.com/jagtotistory




옛 선생님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냈다가 답장으로 딸이 만들었다며 보내주신 카드를 받았다. ㅎㅎ



보내주신 분은 나의 지도교수님 프란츠 짜운쉬름(Prof. Franz Zaunschirm)!
 

(사실... 저기에 있는 Prof. Zaunschirm은 오스트리아식 표현으로는 틀린 표기이다.  왜냐하면, 앞에 Prof같은 호칭을 붙일 때, 그 사람이 살아오면서 달게 되는 모든 경력을 순서대로 다 나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박사학위를 땄으면 Dr. 
-석박통합이 아니고, 따로 석사학위를 받았다면 Mag.  (마기스터의 줄인말. 석사학위만 있는 사람도 Mag.라는 존칭이 붙는다)
-교수니까 Prof.
-그런데 대학 교수이므로 Univ.Prof.
-계약직이나 외부 전임강사가 아닌 정교수일 경우 O.Univ.Prof. (O.는 ordentlich의 약자)

그러므로 나의 옛 스승님의 정식 명칭은 무려
O. Univ. Prof. Mag. Dr. Franz Zaunschirm
 되시겠다;


근데 이걸 왜 설명했지?ㅠ  그럼 서둘러서 삼천포로 흘러간걸 물꼬를 돌려서...)


학부때까진 작곡만 주구장창 파다가 유학나와서 석사과정을 밟을땐 음악이론(Musiktheorie)전공도 병행했었다.  (그래봤자 겹치는 과목이 엄청 많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하여, 강의법 등 교육내용과 작곡이론 및 음악학을 짬뽕시킨 전공인 무직테오리를 작곡전공과 동시에 밟을때 나를 가장 자상하게 도와주신 짜운쉬름 선생님 이야기를 하려 한다.

선생님을 처음 뵈었을 때, 딱 전형적인 오스트리아 아저씨를 떠올렸을 때의 이미지였다.
 

당장 비엔나 왈츠라도 추실 것 같은 말끔한 정장차림에 매일 바뀌는 형형색색 나비 넥타이와 한결같은 콧수염까지.. 내가 나름 갈고 닦았던 독일어회화가 모두 일시정지 할 것만 같은 교과서적인 차림새를 하고 계셨다.  게다가 좀처럼 변하지 않는 (약간 화난 듯한..이라고 오해했던) 무표정한 얼굴.  아주 웃기고 재미있는 일이 있을 때는 살짝 눈만 반짝이시는 듯 할 뿐 시종일관 변하지 않는 표정...  질문이라도 하면 엄청나게 빠른 말투로 이것저것 설명 해 주시는데, 많은 정보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무표정한 얼굴과 오스트리아 억양에 적응하지 못한 나는 대략 패닉상태로 고개만 끄덕거릴 뿐이었다.

유학 떠나기 전에 잠시 들었던 유학대비 독일어 수업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유학생들 하는걸 보면 폭포와 같이 쏟아지는 양질의 정보를 큰 대야로 받아도 모자랄 판에 겨우 숟가락 하나로 허겁지겁 받으러 다니는 형상이라는.. 


(언어의 장벽과 그것을 깨야만 하는 이유를 참 찰지게 비유하셨던 그때의 강사님은 오르간 전공으로 10년을 유학하셨던 분이었다.)

이런 저런 들은 이야기도 있고 하니 부끄러운 모습으로 남지 않기 위해 두려움을 무릅쓰고 열심히 수업을 듣고 이것저것 이해하건 말건 물어보고 했다.  '선생님이 화나신게 아닐게야!  분명히 내가 한 헛소리들은 신경 쓰시지도 않을 것이야!'라고 자기최면을 애써 남발하며...

총 3년의 오스트리아 유학시절 중 첫 2년은 인근 대학에서 독일어 수업을 받으러 다녔다.  그 사실을 안 짜운쉬름 선생님은 지나가다 나의 독일어 교재를 보고 의아해 하면서 물어보셨다.  이제 전공공부 하느라 바쁠텐데 왠 독일어 수업?

그 때 난 강박증 비슷하게, 계속 어학 수업을 들어야만 한다는 집착때문에 작곡공부와는 별개로 덤으로 수업을 다니고 있었지만, 사실 엄연히 다니던 대학을 두고 다른 곳에 가서 전공과 관계없는 어학수업을 듣는 일이 그닥 효율적이진 않았기 때문에 선생님이 어떻게 생각 하실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이렇게 대답했었다:
계속 배우지 않으면 까먹으니까요;;


선생님은 인상이 깊으셨는지 눈이 약간 커지시면서 (aber 표정은 그대로)
마치 수영할때 가만있으면 가라앉으니까 계속 팔다리를 움직여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란 말이지?
라고 하시곤 홀연히 복도에서 사라지셨다. 


.....(저거 칭찬인긔?  이미 떠나셨으니 여쭤볼 수 없음 ㅠ)

세월이 제법 지나 선생님의 진심은 그 무표정한 콧수염 너머에 따뜻한 마음에 있다는 걸 점차 깨닫게 되고, 선생님도 나를 낮설게 여기지 않으시고 먼저 챙겨주기 시작하셨다.  

유학시절 급성 맹장염으로 입원을 한 적도 있었는데, 그 때 주치의(Hausarzt)시스템에 대해 처음으로 뼈저리게 체험하고 뒤늦게 주치의를 구하느라 아픈 몸 이끌고 방황할 때, 어떻게 알아내셨는지 먼저 내가 사는 집으로 전화하셔서 안부를 물어보시고 수소문 끝에 적절한 의사를 찾아서 예약도 도와주시기도 하였다.  

사실 맹장염이 시작은 급성이었는데 수술 후유증이 심하고 의지할 주치의조차 없어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었다.   아프고 무기력해져서 비행기타고 한국에 갈 힘조차 없이 늘어져 있을 때 이렇게 선생님께서 챙겨주시니 감사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었다.  '그래, 더이상 이렇게 아프다고 넋놓고 있는다는건 부모님과 선생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라고..다짐하면서 열심히 관리를 하고 애써 학교에 다시 나갔었고, 쓰다 만 곡을 열심히 완성해서 다음학기에 연주시킬 수 있었다. 


입학 하자마자 우연찮게 봤던 어느 작곡과 학생의 졸업연주를 가볼 일이 있었는데, 이 친구는 자기 혼자 음악회 전체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제대로 된 하나의 콘서트를 만들어 나갔었다.  그때 순진했던 나는 당연히 모든 작곡전공 석사 졸업연주 이런 식인 줄 알고 미리부터 치밀하게 준비 해 나가 1시간 반 분량의 음악회를 기획하고 한 곡은 지휘까지 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꼭 혼자 할 필요는 없었고 한사람당 30분 이상 분량만 발표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이건 또 무슨 집착인지, 나도 꼭 그 때 처음봤던 그 음악회만큼 하고 싶어서 극구 추진했었다.

이런 과정을 보신 선생님은 퍽 감명이 깊으신 듯 했다.  나중에 만난 필자의 부모님에게 까지 그 때 음악회 이야기를 하시면서 칭찬을 펼치신 것으로 봐서 말이다.  

나중에는 성공의 조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전공분야만 열심히 파고드는게 성공의 충분조건이 아닌 이유에 대한 체계적인 가르침이 있으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듯한 내용이 당시에 그저 공부밖에 할줄 아는게 없었던 필자같은 사람에겐 꽤 큰 도움이 되는 이야기 들이었다.  이런식으로 선생님은 학생 하나하나에게 필요한 것 위주로 가르치셨고, 당신의 경험담을 아낌없이 나누는 자상한 분이었다.

여차저차 해서 무사히 졸업을 할 수 있었고, 졸업 무렵에는 필자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시는 든든한 멘토가 되신 선생님은 너같은 애를 이대로 졸업하게 할 수는 없다며 모짜르테움 재단에서 매년 젊은 음악인 한명에게 수여하는 메달을 받도록 하겠다며 재단측에 적극 추천을 하신 결과 나는 파움가르트너 메달(Bernhard-Paumbartner Medal)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ㅠ  덕분에 부모님이 처음으로 잘쯔부르크를 방문하셨을 때 뜻깊은 추억거리를 남겨드릴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더 감사하는 마음이 컸다. 


졸업식 다음날 메달을 받았다.  시상식때 찍은 사진
왼쪽이 짜운쉬름 선생님이다.
(오른쪽은 선생님 못지않게 무표정의 대가인 당시 모짜르테움 대학 총장 
존칭은 어마어마하게 길고 복잡할테니 생략 ㅠ)

메달사진 투척~! 
(자랑 맞음)  

선생님과의 긴 인연은 졸업 이후에 선생님이 잠시 한국을 방문하면서도 이어졌지만, 글이 길어진 만큼 다음기회에 이야기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매년 연말이 되면 유럽 사람들 하는거 따라서 옛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곤 하는데, 매번 이렇게 답장을 해주시는 선생님 덕분에 옛 생각도 하면서 더 힘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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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gracedealer.tistory.com BlogIcon ★Jefferson 2012.01.24 01: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정말 멋진분께서 제 블로그에 글남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도 사실은 작토님처럼 전문적인 음악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음악듣고 공연가는것을 너무 좋아해서 서브블로그로 음악블로그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번 구경오세요. 제 닉네임 클릭하시면 아마 바로 링크가 되있을겁니다.^^

    http://blog.naver.com/nsync123 <- 그리고 여긴 제가 작년에 재즈 교양수업들으면서 음악일기 비슷하게 적었던 것이구요..^^

    • Favicon of https://jagto.tistory.com BlogIcon 작토 2012.01.24 19: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와~ 네이버 블로그도 잘 꾸미셨는데요! 구독신청 했어요 ㅋㅋ
      저도 재즈 엄청 좋아하는데, 아는게 하나도 없어서 뭐부터 들어야할지도 모르겠어요...크흑 ㅠ
      영광은 무슨^^;; 님같은 애호가님들이 관심을 가져주시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요 ㅎㅎㅎ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2. Favicon of https://www.walkview.co.kr BlogIcon 워크뷰 2012.01.24 01: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멋진 사진입니다
    저는 감히 상상도 할수 없는 멋진 사진을 오늘 보았네요^^
    피아노만 보면 기분이 좋아요 칠줄은 몰라요^^

  3. Favicon of https://tranky.tistory.com BlogIcon 라플란드 :) 2012.01.24 10: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표정 하시다더니 굉장히 밝은 표정이신데요, 마지막 사진은^^
    항상 밝고 긍정적인 모습 잘 읽고 가요.
    오늘 또 하나 배우고 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4. Favicon of https://aiesecks.tistory.com BlogIcon 아디오스(adios) 2013.01.04 01: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자들 편지에 일일이 답장을해주시는군요... 정말 다정한 분이신거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