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소재로 작곡하는 사람들...
개념미술을 음악에 빗대어 '개념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은 예 일듯...
행위예술과 음악공연의 경계랄까...? 
듣는이 입장에선 좀 지루하기도 하고...;;;
가학적인 음악을 추구하는 내 취향에도 들어맞...^^;;;
쓰고는 싶지만 듣고싶진 않은 음악 ㅋㅋ

http://www.soundexpanse.com/rs27-wandelweiser/ - 친구 제니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이들에 관한 다양한 자료가 있다(영어주의).


(출처: Alex Ross의 블로그 The Rest is Noise)



서울 상수역에 내려서 몇발자국 걸으면 오피스텔이 하나 있다. 평범해 보이는 이 공간에 벨을 누르고 들어가면 등받이도 없는 조그만 의자들이 놓여있고,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어색하게 앉아서 한 방향을 바라보며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 8시가 되자 그들이 바라보던 책상에 키가 190즘 되보이는 중년 백인 남성이 다가가 앉아서 말없이 조용히 종이 한장을 바라보며 뚜껑이 닫혀있는 펜촉을 이따금씩 그 종이에 갖다댔다가 떼었는데 그 소리는 들릴듯 말들 했다. 5분즘 지나니까 나름대로의 일관성이 있다는 사실은 인지가 되었지만, 정확히 어떤 법칙으로 타이밍을 잡아 펜촉을 종이에 대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규칙적인 듯 한데 아니기도 했다. 억겁과 같은 시간이 지난 듯 했지만 단 5분이 지나있을 뿐이었다.

"공연"9시가 넘도록 계속되었고, 연주자(?)의 진지한 태도는 공연이 끝나는 순간까지 지속되었다.

이 날은 스위스의 작곡가 만프레드 베르더가 자신의 작품 stück 1998” 를 ‘닻올림’이라는 즉흥음악 공연장에서 연주 한 날이었다. 그는 침묵과 극도로 미미한 소리들을 소재로 삼아 작곡을 하는 “반델바이저(Wandelweiser)”의 일원이다.


20여명의 작곡가로 이루어진 반델바이저 악파의 작곡가들은 일반인이 잘 모르는 현대음악 작곡, 그 중에서도 비주류에 속하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사조를 이루고 있다. 음악과 행위예술의 세계를 넘나드는 작품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그들은 기존의 음악회장에서의 작품발표(악기, 또는 성악가가 악보를 보며 시작과 끝이 분명한, 하나의 곡을 연주하는 것)에 대한 개념 자체를 도전한다. 그렇다고 파격 자체를 추구하기만을 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소리와 침묵과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수적인 소리들을 탐구하고자 한다.


피아니스트가 무대로 나와 피아노 뚜껑을 연 후 433초만에 다시 피아노 뚜껑을 닫고 나왔던 존 케이지(John Cage)의 ‘433초’가 초연되었을 당시, 이 공연이 이루어진 현장에서 관객들이 냈던 소리가 유일한 “음악”이었다. 이 곡에서는 연주자가 완전한 침묵으로 일관된 작품을 연주(?)했지만, 만약에 엄청나게 작은 소리들을 오랫동안 연주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 또한 연주자의 연주와 객석에서 나는 소리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바로 이 현상을 탐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파격적인 현대음악을 만드는 이들이지만, 반드시 그 소리가 소음이거나 불협화음은 아니다. 일반인의 귀에 익숙한 조성음악의 소리들을 마음껏 차용하기도 한다. 다만, 그 화음들이 기능적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버려야 한다. 일단, 하나의 음이 너무나도 작고, 그 다음 음이 어마어마하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울려퍼지는 경우가 다반수이기 때문이다. 진공상태에 있는 듯한 엄청나게 지루할 수도 있는 시간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청각을 총동원하여 ‘음악’을 찾아들으려 하게 되고, 문득, 그 어느 때보다도 ‘음악’과 가까이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이순간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자각이 극대화 되는 것이다.


소리와 침묵과의 관계연주자와 객석의 관계를 파헤지는 것에서 더 나아가일상생활과 연주의 경계 또한 허물 수 있는 방법이 있다위에 언급한 만프레드 베르더의 작품의 경우각 페이지를 공연을 하면 다시는 다른곳에서 다시는 재연이 되지 않아야 하며공연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아직 공연되지 않은 새로운 페이지를 작곡가에게 직접 건네받아 그걸 연주해야 한다악기편성은 자유이지만 연주자 인원수에 따라 각기 다른 곡이 작곡(?)되어 있기 때문에 사전에 통보하여 올바른 악보를 건네받아야 한다관객은 없어도 되고단지 지구상 어디에선가 이 공연이 행해지기만 하면 된다이 악보는 A4 용지에 숫자만 적혀있고 음표는 단 하나도 적혀있지 않다현재까지 만들어진 악보(?)들을 전부 이어서 연주한다면 아마 500시간이 넘을 것이다뉴욕 출신 작곡가 Craig Shepard(크레그 셰퍼드)의 경우 31일간 스위스를 도보로 횡단하며 매일 하나의 트럼펫 곡을 작곡하고 이를 그날 저녁에 연주하였다이 경우도작곡과 연주작품의 개념이 하나의 예술행위로 귀결되면서 그 경계가 허물어지고현장에서 그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는다이 점에서는 행위예술의 특성과도 교집합을 강하게 이룬다.



'아이디어가 곧 예술'이라는 개념미술의 모토를 음악에 대입한다면, ‘개념음악’이라는 단어로 반델바이저를 분류할 수 있을까? 반델바이저라는 단어 자체도 다다이즘의 ‘다다’못지 않게 모호한 뜻으로 이루어져있다. 억지로 번역하자면 '변화의 지표' 또는 '변화를 현명하게 하는 사람' 등으로 해석이 가능하지만, 사실상 표준 독일어에도 없는 단어이고, 결합되기 이전의 두 단어, wandelweiser가 암시하는 의미들만이 Wandelweiser에 대한 뜻을 추측하는 근거로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단어 뜻에서부터 악보, 음 재료, 소리, 연주형태 등 모든 것이 애매모호한 반델바이저 악파는 결국 그 존재 자체로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의 삶은 어디부터가 연극이고 어디까지가 리허설인가, 우리가 추구하는“진짜”는 무엇이고, 우리는 무엇을 보고 듣기 위해 모두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하나의 멋진 작품을 완성하야 발표하겠다고 고군분투 하지만 결국 그들은 삶과 예술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듯이, 반드시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인생은 하루하루 자체가 작품이고, 모든 사람이 창작자이며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 않은가? 그 어떤 드라마틱한 선율도 이루어낼 수 없는 가치를 단 하나의 음만으로도 제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접하며 잔잔하지만 강렬한 감동을 받게 되었다.



자료출처:
http://surround.noquam.com/listening-at-the-limits/
http://www.newyorker.com/magazine/2016/09/05/silence-overtakes-sound-for-the-wandelweiser-collective
http://www.soundexpanse.com/rs27-wandelweiser/
http://www.dotolim.com/?tag=만프레드-베르더 (원고에 적힌 이 분의 공연 묘사는 2013년 공연으로.. 본 웹사이트에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글은 문화 + 서울 2016년 10월호에 기고된 칼럼입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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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음악회에 갔다가 굉장히 오랫만에 존경하는 대 선배님을 뵈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여기있는 이 블로그를 자주 와서 읽어보시며 음악회 정보를 검색할 때 참고하러 들르신다고, 게다가 이런거 좀 읽어보라며 제자들에게도 무려 추천을 하신다며... 

그리고 앞으로도 애독 하시겠다고...잘 부탁한다고...........





여기가 이렇게 유명한 곳이었다늬...!

작곡학도의 성지가 될 것이라는 후배의 예언이 들어맞기 시작하나요??!?


어느덧 선배 후배 제자 지인 및 워너비 작곡가들에게 은근 주목받는 블로그가 되고 나니 글 쓰기가 여간 조심스러운게 아닙니다...  ㅠ   만,

결국 글을 쓰기 시작을 하면 정줄을 놓고 유체이탈이 되어 방언이 터져 나오듯이 타자기를 두르립니다.. ㅎㅎ 그렇지 않으면 퀄리티 컨트롤에 대한 압박 때문에 미적거리다 글을 임시저장 해 놓고 최소 3개월은 방치 하거든요 ㅠ 

제 티스토리 관리자 페이지를 한번 구경하신다면 연민의 눈물이 절로 또르르 굴러나오실 겁니다.

임시저장만 십여개... ㄸㄹㄹ




오늘도 어김없이 미치도록 쓸데없는 서두를 늘어 놨습니다.

그럼 본론:




지난 주 화요일에 본 공연은, 여느 현대음악 공연이나 다름 없는 것과 동시에 매우 특별하고 감동적인 공연이었습니다. 

일단, 여느 현대음악 공연과 다름이 없었던 점은, 아담한 공연장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지 오래 되지 않은 듯한 젊은 연주자 분들이 한국 작곡가의 곡을 초연 했다는 점, 단체명에 쓰인 단어들이 뭔가 앞서나가는 현대예술을 암시했다는 점, 다들 흑백 의상을 입고 계셨다는 점 등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특별하고 감동적인 점은:

말씀 드리자면 이야기가 약간 길어질 수도 있겠네요^^

이 단체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셨던 선배 언니와 올 초부터 부쩍 친하게 지내게 되었는데, 제가 "노카" 공연을 연 날인 5월 11일, 공연을 보러 오신 언니와 잠시 수다를 떨 기회가 생겼고, 그때 언니가 몇몇 선배들과 의기투합 해서 단체를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언뜻 하셨습니다.  그 취지는:

"우리나라에 양질의 현대음악 연주를 제공하여 좋은 작품을 녹음하고 음반을 제작하며 출판까지 하는 것."


project21AND에서 출판되어 판매중인 악보들(출처: 페이스북 페이지)


저희 또래와 선배님들이 현대음악으로 작품활동을 하면서 공통적으로 아쉬워 해오는 부분이 바로 연주입니다. 애써 곡을 열심히 작곡 했어도 너무나도 바쁜 연주자님들, 그리고 그들에게 리허설 수당을 두둑히 줄 수 없는 주최측의 사정으로 인해 턱없이 부족한 리허설 일정을 할당받은 곡들은 제대로 해석되지 못한 채 초연을 하고 영원히 서랍속에 들어가있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같은 곡이 여러번 연주가 되면 참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왜냐하면 많은 작곡단체들은 현대음악 발표회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초연곡 위주로 하는 것을 더 의미있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최대한 많은 곡들이 초연되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여러 번의 연주를 거쳐 다양하고 깊이 있는 해석을 하면 더 빛을 발했을 수많은 곡들이 단 한번 연주 된 후 다시는 세상에 선보이지 않는 다는 것은 참 슬픈 일입니다.  

제 곡들을 예를 들어도, 현악사중주 3번은 두번 연주 되었는데 두번째가 훨씬 나았기 때문에 속으로 정말 십년감수 했다는 생각까지 들었고, 피아노 솔로 곡은 세 명의 피아니스트가 총 여섯 번을 연주했는데, 여섯번째가 가장 제 의도에 가까웠습니다. 물론 무조건 나중 연주가 더 나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만, 작곡가 본인도 자신의 곡을 들어본 후 나중에 다음 연주자에게 어떻게 곡에 대해 설명을 하고 연주를 도와줄지에 대한 노하우도 생기고, 같은 연주자가 여러번 연주를 하면 당연히 그 해석의 깊이가 깊어질 수 있습니다.

초연 위주로 음악회를 꾸리느라 애써 쓴 곡들이 대부분 재공연이 되지 않는다는 이 현대음악 연주의 현실은 단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여러나라의 현대음악계의 고질적인 문제이긴 합니다. 하지만, 첫 공연에서 성심성의껏 준비하여 충분한 리허설을 거친 제대로 된 해석을 거칠 수 없는 현실에 닥친 한국은 그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볼 수 있고, 결과적으로 작곡가들의 창작욕구와 작품의 질이 저하되는 폐해를 낳게 됩니다. 열심히 써봤자 어렵고 까다로운 부분은 제대로 연습이 안될거면, 일부러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곡을 쓸 이유와 동기부여가 옅어지는 것이지요.  대충 쓴 곡을 대충 연주하며, 무대와 객석에서 함께한 수많은 음악가들이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 음악회인지 결혼식인지 알 수 없는 많은 공연들을 봐오면서 이게 소위 말하는 "작품활동"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내가 현대음악 작곡이란 것을 과연 하긴 해야 하나에 대한 회의감까지 들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현대음악 공연들의 수준을 단정짓는 것은 하나의 편견일 수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굉장히 역사가 오래된 한 작곡단체에서 하는 공연에서 매우 수준 높은 연주(심지어 피아니스트는 곡을 모두 외워서 악보를 안보고 쳤습니다.  현대음악 공연에서는 거의 없다시피 한 일입니다)를 하는 것을 보며, 무조건 오래된 작곡단체나, 같은 포맷을 유지하며 장기간 지속된 공연 시리즈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면 안되겠다고 느끼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연주자와 작곡가가 한명 한명 노력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얼마 전 부터는 상당히 수준 높은 현대음악 전문 단체들도 생겨나고 있어서(10년이 넘은 TIMF앙상블을 비롯, 카리엔 앙상블, 올해 창단된 앙상블 Eins 등) 연주자들도 이런 점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는 것이 반갑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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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제 선배 언니와 오빠들(이라고 하기엔 제겐 선생님 뻘이지만...)께서도 project21AND라는 이름으로 소수의 작품에 많은 투자를 하여 전문적인 녹음과 연주를 하겠다고 의기투합하신 것입니다.  특히, 연주보다 몇달 전 이미 녹음 작업을 한다는 점이 신기했습니다.  그에 곁들여 일반인 및 잠정적 후원자 분들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도 기획하고 있으며, 앞으로 10년을 내다보는 장기간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고 합니다. 


김지향 Moiré 2의 녹음 현장(출처: 페이스북 페이지)


얼마전에 치룬 첫 연주회는 현대음악 공연이 종종 열리는 일신홀에서 이루어 졌는데, 일신홀 개관이래 사상 처음으로 입석을 팔아야 할 정도로 일찌감치 모든 자리가 매진이 되었습니다. 저는 간신히 자리를 얻을 수 있었는데, 시작 직전에 도착한 것 치고는 상당히 운이 좋은 경우였습니다.  아비규환이 될 뻔한 음악회장 로비는 질서를 유지한 관객분들 덕분에 심하게 혼잡하지는 않았지만, 수십미터로 늘어진 대기줄 때문에 공연이 20분이나 늦게 시작되는 사태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연주자들의 밀도 높은 연주는, 정말 제 마음까지 뿌듯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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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나고 선배 언니와 인사하느라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쁘게 오가며 뒷풀이 장소인 근처 식당의 명함을 제 손에 쥐어주고는 황급히 다시 사라져 버릴 정도로 뒷정리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언니의 그런 모습을 보니, 왠지 마음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나라면 자신의 곡이 연주되는 것도 아닌데 저렇게 열심히 일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보면, 확답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언니의 이타적인 행보가 더욱 신선하고 먹먹하게(?) 다가왔습니다.  저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게 되었고,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선배님들이 존경스럽습니다.  


쓰다 보니 좀 민망할 정도로 찬양 일색의 글이 되어버렸군요 ㅎㅎ

project 21AND가 만수무강 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한껏 보내며 새벽 글을 이만 마칩니다^^;;;





*부록: 이화미디어의 공연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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