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을 전공한다고 치면 그냥 오선지에 콩나물을 잘 그리기만 하면 장땡이라고 생각하던 순수한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대학입시를 준비하며 왜 작곡이랑 화성학 공부에만 매진해도 부족할 시간에 전과목 내신 관리에 수능시험 준비, 피아노, 청음까지 해야하나..하면서 억울해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떻게 보면 그나마 이 시절이 가장 선택과 집중을 분산시키게 만드는 요소가 적던 시절이 아니었다 하는 생각이 든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선
의 생활이었으니...;ㅎ
그래도 남들 다한다는 동아리에는 발가락만 담궈보고 작곡에만 매진했으니..이 때도 뭐 순수하지 않았나 싶다.
실제로 활동을 하려고 나와보면 상황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단, 돈벌이를 위해 해야하는 수많은 딴짓들은 제외하고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보고자 한다:
1. 지휘
자기가 쓴 3중주 이상의 실내악 곡을 연주시키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지휘봉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 생각보다 흔하다.
왜냐하면, 곡을 쓸 당시에는 연주자에 대한 현실감각이 떨어져서 이 정도 되는 리듬과 음형은 서로 눈빛을 교환해가며 적당히 잘 하겠지..하고 맹신을 하기 때문이다.
현실을 이야기하자면 일단:
a.연주자들이 리허설하는 시간 절대부족
연주자 분들은 생각보다 스케쥴이 팍팍하신 바쁜 분들이어서 서로 맞는 시간을 찾는게 여간 힘들지 않은 일. 서로 친자매와 같은 찰떡같은 호흡을 과시하며 이신전심의 마음으로 약 20회에 걸쳐서 만나 각기 3시간씩 연습을 한다면 잘 연주될 것 같은 곡들이 실상은 연주날 전 일주일간 두번정도 기적같이 상봉하여 한명은 늦게 도착하고 또다른 세명은 일찍 떠나야만 하는 아햏햏한 리허설시간에 타이트하게 작전을 짜야하는 것이다..
b.자기것도 연주하기 바쁜 악보
연주자들에게 파트보를 주면서 상대방 소리를 들어가며 맞추기를 바라는건 생각보다 초인적인 능력이 요구된다. 얼마 안되는 리허설 시간동안 각자 들어야 할 제스쳐나 음형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긴 하지만, 만약 다같이 바쁘게 뭔가를 연주하는 상황이라면 그마저도 힘든 일.. 이 때는 악장 급 되는 연주자 한명이 연주하면서 몸짓으로 리드를 해야한다. 만약 그마저도 안된다면...
지휘자가 급하게 투입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이유들로 부정확한 연주를 하느니, 어차피 작곡가에게 남는 가장 귀중한 것은 연주를 녹음한 녹음본이니까 자신의 부자연스런 휘저음은 청중이 알아서 소화했길 바라며 오늘도 많은 작곡학도들이 교통정리를 하듯이 지휘봉을 잡아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것이다.
2. 글짓기
음악회를 가면 주어지는 프로그램 책자. 거기에는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된 화려한 글들로 작품해설을 수놓은 평론가들의 글이 있다. 그러므로 작곡가는 작품쓰기에만 전념...........한다고 착각하지 말자 ㅠ
그 화려한 작품해설들은 대부분 죽은사람의 작품들이다...brrr 아니면 이미 유명해서 너도나도 언급하고 싶은 작곡가의 작품이거나!
실상은 대략 이렇다:
이번에 연주할 곡에 대한 프로그램 설명이랑 네 프로필 정보 간단히 해서 x날 yy일까지 꼭 좀 보내줄래? 곡설명은 한 10줄정도면 될거야. 아, 사진도 있으면 그림파일로 하나 보내줘~ 아, 그리고 연주자들 명단도 좀 보내주라~ 고마워 그럼 수고!"
그럼 생전 생각해보지도 않은 나의 곡에 대한 해설을 글!로 써야하는 것이다. 이게 쉽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왜냐하면,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그 무엇이었다면, 일기를 썼거나..뭐 나같은 사람은 블로그에 끄적였겠지. 도무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표출 해내고자 소리예술이라고 불리우는 음악을 작곡한 것 아니었겠는가? 그런데 왜 ㅠ 갑자기 나에게 그 소리예술을 언어의 경지로 끌어내리라고 하냐구 ㅠㅠㅠ 그것도 곡도 다 쓰기 전에 ㅠㅠㅠㅠㅠ(쉿! 그렇다고 내가 곡을 다 쓰지 못했다고 손님들에게 말하진 말아줘! 꺼이꺼이)
3. 매니지먼트 및 비서 일
이런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를 챙겨주지 않고 나에대한 관심이 없을 때, 나를 홍보하고 나의 일정을 관리하는 일은 전적으로 내가 도맡아야 함은 당연한 일 ㅠ
4. 기획
이것도 마찬가지로 모든 예술가들이 직면한 일이겠지만, 작곡가는 특히 색다른 공연을 선보이고자 할 때, 자신의 작품이 어울리는 무대를 만들고자 할 때 작곡할때의 마인드와는 매우 다른 성질의 창의력을 선보여야 한다. 게다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환경에 처했다면 자신의 곡을 연주해 줄 연주자를 섭외해야 하고, 후원해 줄 사람 및 단체를 물색하여 자신의 공연을 세일즈 할 줄도 알아야 하고, 자신을 홍보하기 위해 어느정도 이상이 되면 나름 웹사이트도 만들고 유투브나 마이스페이스에 자신의 작품을 올려 누구든지 일부라도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것들도 일단 자급자족 해야지 뭐 어쩌겠누...;
물론 이런 외적인 할일들을 제외하더라도, 순수하게 예술적인 측면으로 봤을 때도 음악의 세계에만 머물어서는 한계가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미술 무용 등 다른 예술장르에 관심을 가질 경우, 음악에만 시선이 집중되어 있을 때와는 또 다른 색다른 영감이 떠오르기도 한다.
또한,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는 예술가로서
주변 정세 등...정치, 환경, 세계사, 국제외교 등의 문제에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는 예술가가 되려면 이러한 분야들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부분에대해선 이견도 많다. 음악의 역할에 대한 의견을 좁게 본다면, 순수하게 소리의 세계에만 깊게 파고들어야 주옥같은 작품이 나온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다)
실제로 주변에 작곡하는 친구들을 보면, 참으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둔 친구들이 있는 것 같고, 그런 것들이 곡에 반영되었을 때 참 재미있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 같다.
이런 다양한 분야에 순수한 관심을 가진 사람으로 치면 단연 내 친구 김포근양이 으뜸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스키, 수영,
스포츠댄스, 현대무용,
수중발레 등등 등 등 등 !
그리하여 최근에 보내준 김포근 작곡가의 수중발레 사진으로 이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ㅎㅎ포근아 나 이뻐? ㅋㅋ):
무려...
아랫 글은 그녀의 작품해설:
한바퀴 도는 순서대로 올릴게~"
싱겁냐고 하였는가? 절대 싱겁지 아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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