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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야기/추억

트루음 쇼 - 절대음감의 비밀2 (부제:방송출연을 하고 피봤던 사연 ㅠ)

지난 글에 이어서...
 

이 절대음감이라는 것은 입시시험이나 곡을 쓸 때 등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면 그다지 도움이 안되는 능력이고 오히려 음악감상에는 크게 방해가 되는 능력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 사람들이 이에 대해 많은 환상과 오해가 있는 듯 하다.  특히 대학교 4학년 때 방송출연(?)을 계기로 실감하게 되었었는데.....



계속: 


때는 대학교 4학년의 어느 따분한 오후.
동기들, 후배들과 과방에서 의미없는 시창놀이 및 가십대결을 펼치고 있을 때 갑자기 과방 문이 열리면서 티비에 출연할 작곡과 사람 네 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딱히 바쁜 일이 없었던 나와 몇몇 후배들은 흔쾌히 출연에 동의 했고, 곧이어 인접한 강의실에 옹기종기 모였다.

이어서 들어온 피디와 카메라맨.  (혼자였는지 둘이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일단 그들의 브리핑을 들었다.

- 쇼프로에 출연할 꼬마천재가 있는데, 그 아이는 [[절대음감소녀]].  즉, 어떤 소리를 들어도 정확히 어느 음인지 맞출 수 있다고 한다.
- 그 아이의 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대한민국에서 음감 안좋다면 서러울 서울대 작곡과 학생들(응?)을 불러다가 음감테스트를 하고, 그 능력을 그 천재아이와 비교를 할 것이다.
- 우리(대학생들)는 피디가 준비한 사전에 녹음된 소리들을 듣고 어느 음인지를 알아맞추면 된다.

라고 대략 설명을 듣고 나서 우리에게 들려주신 소리들...

요강 깨지는 듯한 소리
돌찢는 소리
누굴 패는듯한 둔탁한 소리
종소리인 듯 하나 음이 여러개 뒤섞여서 윙윙거리는는 소리 

등등등..한마디로 일정한 음높이가 없는 소리들이었다 




여기서 짧은 상식 한토막...


음높이를 알 수 있는 소리(악음)은 파형이 일정하고 강도와 주기가 규칙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소음이라고 칭하며 불규칙한 파형으로 인해 주기가 규칙적이지 않고 그러면 음높이를 알수 없고 추측도 할 수 없다.


윗 망치소리도 그림상으로만 보면 나름 높이가 일정한 소리이다.. 규칙적인 파형이 있기 때문. 
사실 그림이 좀 의심스럽긴 하다.. 



왼쪽처럼 복잡해 보여도 규칙적이면 음높이를 알 수있다.. 하지만 오른쪽은....영락없는 '소음'이다.. 
그러므로 타악기 중에서도 음높이가 일정한 타악기가 있고 (예:실로폰, 마림바..), 그렇지 않은 타악기(윗 오른쪽 그림의 심벌즈 소리와 같은 경우)가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들은 파형이 불규칙한 소음들과, 설사 들리더라도 너무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파형이어서 한개의 음으로 들리지 않는 음들의 향연이 녹음기에서 펼쳐진 것이다..  

그나마 음높이를 추측할 수 있었던 소리들도 문제였다.

왜냐하면, 그 음들은 피아노 건반을 기준으로 정확하게 조율된 음이 아니라 대략 그 건반 사이의 미세하게 부정확한 음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파와 파샾사이, 그러니까 파에서 반음이 채 못올라간 파+1/6음~1/4음? 정도 되는 음일 경우, 자신있게 "파다!" "파샾이다!"라고 말할 수 없는, 고개를 약간 갸우뚱 하게 되는 음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있게 음높이를 즉석에서 말 할 수 있는 소리는 그 피디님께선 단 하나도 들려주지 않으셨다;;;

그리고 우린 사명감에 불타 위에 말한 현상을 열정적으로 설명드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관심이 없으신 듯 했다.

속이 터졌다.


어째됐건 최선을 다해 들리는 소리에 가까운 음을 맞추려고 노력해 드렸고, 그러는 장면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잡아가셨다.. 나의 내천자와 함께...

그 이후로 난, 방송에 언제 나올지 일정도 모르고, 어차피 먼 훗날 방송될테고, 뭔가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이미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나올테고 우린 그저 꼭두각시였을 거란 막연한 텁텁함과 찝찝함에 사로잡혀 기분이 언짢았던 관계로 그 방송에 대한 생각을 아예 접어두고 잊고 살았다.


몇 주 후...

전해들은 이야기는 내 생각보다 그닥 크게 다를것이 없었지만 상상 이상으로 왜곡이 심했다는게 반전이라면 반전이랄까...

화면은 두갈래로 나뉘고:
우리가 레-레샾 사이의 미분음을 듣고 갸우뚱 하는 동안 천재소녀는 레!라고 자신있게 외치는 장면.
전자음악실에서 분석 한 결과 레에 가깝다는...그러므로 천재소녀가 더 잘듣는다는 결론(?)


시청자 게시판에서는 악플이 난무했다는 뒷이야기도 들었다..
서울대 작곡과 가면 저런거 배워요? 라는 댓글도 있었다는군.





아햏햏..




얼마전에 방송사 맛집소개의 허구성을 낯뜨겁게 파헤친 트루맛 쇼라는 다큐를 보면서 떠오른,
암흑과 같던 대학교 4학년을 돌이켜봤을때 참 색다르게 달달하고 텁텁했던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