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 이야기/태교일기

출산후기 (적나라함! 긴 글 - 스압주의)


*본 글은 아이를 낳은 지 19일 되는 날 쓰기 시작하여 125일 되었을때 보완하고, 아이가 14개월 8일 된 날 완성 했습니다. 




그동안 써오던 태교일기를 앍어오신 분이라면 무척 궁금하셨을 것 같네요.. 

저는 무사히 딸아이를 낳았답니다.

그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관계로... 더 기억의 저편에 사라지기 전에 생생하게 후기를 남겨드리고파 아이를 재우고 다음 수유텀이 도래하기전 폭풍전 고요인 이 타임에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참고로 자정을 넘긴 오늘은 아이 나이 19일 ㅎ


결과적으로 자연분만에 성공할 수 있었는데, 그럴 수 있었던 힘은 자연분만에 대한 평소 나의 간절한 바램, 운동-특히 막달에 잠실 롯데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들은 순산요가 강좌, 그리고 mp3 파일들로 들은 순산을 위한 최면(hypnobirth) 음성파일들이었다 ㅎㅎ 


아이를 가지기 전, 결혼도 하기 한참 전에 우연히 보게 된 자연분만에 관한 다큐들로 인해 나의 혹시 모를 출산에 대한 간절함은 매우 커졌다. 처음은 뮤지컬 배우 최정원씨가 수중분만을 했던 2000년대 다큐였고, 두번째로 영향이 컸던 것은 뉴욕의 산모들을 취재한 the business of being born이라는 미국 다큐였습니다. 2009년즘 처음 본거 같은데, 예전엔 지인이 보내준 링크에 어찌저찌 담겨있는걸 간신히 본거같은데 요즘엔 유투브에도 나와있네요.





당시 미국 병원에서는 왜 제왕절개가 많을까, 자연분만이 과연 어려운 것인가, 출상산파(?)를 고용하여 집에서 아이를 낳는 산모들은 무슨 일을 겪을까를 취재한 다큐를 보며, 아이가 나오고 싶을때 자연스럽게 나오게 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정신무장을 할 수 있었다.



[40주 - 미친듯이 걸어다닌 한 주] 

예정일을 넘긴 시점부터는 유도분만을 피하기 위한,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예정일 이후 첫 진료날 까지 아이 소식이 없으면 유도분만 날을 잡자는 의사샘의 말씀이 있었기에 은근한 압박이 있었지만, 워낙 한달 전부터 심한 가진통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걱정하진 않았다.  우리 꼬롱이는 분명히 일찍 나올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남편과 이야기하며 생각한 건데, 아이 머리가 좀 크고 무거웠다면 일찌감치 골반으로 내려와 출산일도 예정일보다 좀 빠를 수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꼬롱이는 머리가 아주 작게 태어나서 예정일을 넘긴것 아닐까 싶다. 과학적인 근거는 찾지 않고 우리끼리의 생각 ㅋ


마지막 진료날, 아이 몸무게가 3.3키로에 육박하고 예정일을 넘겼기 때문에 더이상 지체하면 너무 늦어진다며 이번 주 금요일로 유도 날짜를 잡았다.  별 생각 없이 덤덤하게 의사샘 말씀대로 예약을 하기 했는데, 병원에서 나오면서 눈물이 나려 했다.  우리 꼬롱이가 원하는 때에 자연스럽게 나오게 해주고 싶었는데 뭔가 실패한 산모인 것처럼 몰아가는 병원의 분위기가 야속했고, 그토록 열심히 걸어다니고 매일 19층 집까지 계단을 걸어 올라왔는데도 아이를 내보낼 생각이 없는 이 몸뚱아리가 원망스러웠고, 방 뺄 생각이 없는 꼬롱이의 마음속이 너무나 궁금했고 배는 답답하고 속은 텁텁하고..... 게다가 무슨 드라마에나 나올것 같은 급작스러운 진통까지 종종 느껴지면서 공공장소에 걸어다니는 것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음악회는 끊은지 한참 됐고... 수업은 대리 강의 맡겼고!

눈물로 밤을 지새며 남편에게 온갖 패악질을 부리다가 결국 각방생활 개시;;;


결과적으로 걷기와 계단운동은 분만시에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현재 산후회복이랑 육아와 수유를 위한 체력 비축의 역할을 톡톡히 한 것 같다.  잠이 부족하고 모유 만들어 바치느라 진이 빠지긴 하지만 몸이 고장난 느낌은 사라진지 꽤 됐으니 말이다.  돌아보면 예정일을 넘기면서부터 일주일간 꼬롱이가 나왔으면 하는 바램에 미친듯이 걷고 운동을 한 것이 축복이었다. 꼬롱이는 알아서 뱃속에서 좀 더 자라주고, 엄마는 열심히 운동하고 ㅋ 뱃속에 있을 때가 천국이라는 말... 그 때는 정말 그말이 너무너무 싫었으나... 사실이었다 ㅋ!


결국 유도분만 하기로 한 금요일 하루 전 오후, 

다음날 분만을 하러 가기 위해 짐을 주섬주섬 챙기다가, 안그래도 나올 준비중인 꼬롱이한테 괜히 빨리 나오라고 다그치는거 같아서 너무나 미안한 마음에 엉엉 울어버렸다.  그것도 밖에서 산책하면서 미친x처럼 길에서 ㄷㄷ 

그리고 내가 봤던 다큐가 갑자기 떠올랐다. 내 아이는 준비되면 알아서 나올 것이라는 다큐 속 주인공 산모의 얼굴과 목소리가 떠올랐고, 우리 아이도 그럴 것이고, 내 몸은 내가 알아서 챙길것이라는 결심도 섰다.

결국 훌쩍이며 집에 오는 길에 유도날짜를 미루기로 결심. 때마침 안내전화가 왔을 때 나의 생각을 강하게 어필했다.  고로... 일단 진료를 다시 한번 받은 후에 유도분만을 할지 여부를 결정하기로...!

병원에서 나와 서울숲으로 놀러가서 한강 전망대에서 찍은 컷


병원에 가서 일단 초음파로 양수의 양을 확인했는데, 양수 양이 부족하다며 오늘 유도 해야한다는 의사샘 말씀에 마음이 무거워질 무렵, 꼬롱이가 꿈틀대더니 초음파 화면상으로 공간이 조금 더 생겼다! ㅋㅋ 그래서 위험수준인지 여부를 정하는 양수의 양에 턱걸이를 하여 무사통과를 하게 되니 의사샘도 웃으시고, 결국 3일 후인 월요일에 다시 양수상태를 보는 것으로 결론;; 밀당의 귀재 꼬롱이 덕에 주말을 건졌다고 생각했다.  그땐 그리 생각했다.......


2015년 10월 16일 23시경(40주 6일)

유도분만 날을 기껏 미뤄놨는데 저녁산책 하다가 늦어서 서둘러 집에 오는 길에 엄청난 진통과 배뭉침이 나타나서 길에서 데굴데굴 구를뻔하며 간신히 집으로 기어왔다. 속옷을 혹시나 하고 3주전에 받은 테스트 용지에 대 봤더니 녹색으로 확 변한것이 양수가 맞다;; 그때만 해도 유레카를 외치며 당장 병원에 가자고 들떠있었다. 양수가 먼저 터지는 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할 수 있는 일인지는 모른채;;;


2015년 10월 17일 0시(41주 7일)

병원에 도착하여 다시 검사받고 양수가 파수된것을 확인하고 진통대기실 겸 회복실 안착. 일단 자연진통이 오는지 확인해보고 아니면 내일 7시부터 촉진제를 맞거나 일단 9시 의사선생님 진료 후에 정하겠다고 하길래 최대한 자연진통이 걸리길 원했던 나는 후자를 선택. 남편은 비어있는 옆 침대에서 자고 나도 잠을 청함. 이때만해도 아까의 어마어마한 배뭉침으로 인해 무지개빛 꿈에 부풀어있었음.


한달간 시달리던 가진통조차 없는 평온한 밤을 보낸 후...


2015 10월 17일 09시(41주)

밤사이에 진통이 오는지 확인 해 보고 유도분만을 위한 촉진제 투여 여부를 의사샘 회진때 결정하기로 했는데, 진통은 커녕 평소에 앓던 가진통조차 없었다. 

결국 자는듯 마는듯 불편한 밤을 보내고 의사샘 회진 끝에 9시부터 본격 촉진제 투여! 옥시토신이 누가 모성 호르몬이랬을까? 투여받는 나는 온갖 욕설뿐이 안나오던데... 점점 강도가 세지고 간격이 좁아지면서 오후 3시경에는 2분간격의 어마무시한 진통이 되었다. 벌써 대기실엔 두어명의 산모가 왔다 가고, 


2015 10월 17일 오후 16시 마지막 내진때 선생님이 양수막을 완전히 터트리셨는지 뜨거운 액체가 콸콸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며 촉진제 투여를 멈춰버리고 자연진통이 와서 계속 진행되면 좋고 아니면 내일 다시 유도를 시작하자고 한다.  제발 진통이 멈추지 않고 분만으로 이어지길 기도하던 마음이 무색하게 서서히 줄어들어서 해가 진 7시 무렵엔 아예 없어져 버렸다. 허무하고 허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할 무렵  일단 저녁을 드시라며 밥이 나왔다. 링겔로 연명하던 하루의 마무리는 허겁지겁 병원밥으로... 이놈의 망할 링겔은 왜 꼽고 있는건지... 손이 따갑기만 하다.



자궁문은 1.5센치밖에 안열려서 분만실이 아닌 대기실에서 밤을 보내야 할 판인데, 답답해서 걷기운동이라도 하면 아이가 내려오려나 싶어도 양수가 나오고 있으니 걷지 말라고 하고, 이날 하루동안 대기실을 드낙거린 산모만 몇명인지... (제왕절개 두명, 자연분만 두명, 34주 이른둥이 큰 병원으로 가기 위해 대기... 커튼 뒤로 들리는 사연들이 많았다)

제왕절개 회복실까지 겸하느라 빠방하게 난방을 틀어둬서 진통하던 나는 온몸이 불덩이같고, 각종 설움과 울분이 폭발하여 간호데스크에서 하소연을 했다. 제발 가족분만실로 옮겨주세요 엉엉~

산모가 입원한 시점이 중요한게 아니라 진행상태가 중요한거라며 등만 쓰다듬어 주시던 간호사도 계셨지만, 만 하루가 되도록 1.5센치 자궁문인 채로 2분간격 진통만 겪다 도루묵 돼서 ㅈㄹ거리는 산모가 안쓰러웠는지 시끄러웠는지, 결국 밤에 가족분만실로 옮겨주셨다. 이때만 해도 진통이 다시 없어져 버려서 링겔 꽃은 손과 콸콸거리는 양수만 제외하면 불편한게 없는 몸이었던지라, 가족분만실 옮기면서 와~ 호텔같다! 화장실도 딸려있어! 우리 둘(셋?)밖에 없어~ 하며 즐거워하고, 남편도 덕분에 편히 잘 수 있다며 고마움을 표시해줬다.. ㅋㅋ


내일이 오기 전에 제발 자연진통이 와달라며 기원 또 기원을 하고 있는데, 자정무렵 10분 간격의 진통이 시작됐다.

남편은 옆에서 코를 콜며 자고 있는데, 아무래도 내일 아침즈음에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가 본격적인 육아전쟁일 듯 하여 지금은 깨우지 않고 혼자 견뎌냈다.  아직 이정도면 뭐 그래도 혼자 버틸 수 있어... 생리통의 한 20배 정도밖에 안아픈걸 ^^;


심장박동 측정기를 통해 꼬롱이는 여전히 귀엽게 쿵작쿵작쿵작쿵작....하고 힘차게 심장을 펌핑하는게 보였다 ^^




아픔과 지루함을 이겨내기 위해 진통 어플이나 만지작 거리던 이 시기는 그나마 가장 평화로웠다.  자연진통이 시작되었으니 곧 아이가 나올거란것도 알고 있어서 수술은 안할거라는 확신(이 때만 해도 금방 나올줄 착각;;;)도 있고, 밖에 전망도 좋고... 



새벽 7시가 되면서 촉진제 투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0분 간격이던 진통이 순식간에 5분이 되었고 강도도 어마어마하게 늘었지만, 아직은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견딜 정도의 멘탈이 남아있었다.  커피+가벼운 식사를 위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바깥외출을 남편에게 허락했고, 시간을 빨리 가게 하기 위해 병실 티비를 틀며 키아누 리브스의 매서운 콧날을 감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9시 이후로는 진통어플은 더이상 조작이 불가했고, 티비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대화가 불가능 할 정도로 진통이 자주 와서, 챙겨온 짐볼 위에 앉다가 침대위에 엎드리다가 간호사에게 심장박동측정기를 잘 대고 있으라는 핀잔듣기를 무한반복... 

진통을 하며 압력이 위로 쏠려서 구토를 했고, 나중에는 초록색 물(쓸개즙)이 입에서 콸콸 쏟아져나왔다. 기겁을 한 남편이 간호사실에 보고하러 갔으나 이런건 보통(???)이라는 대답을 듣고 왔다.

나중에는 졸면서 이상한 꿈을 꾸다가 진통과 함께 확 깨어나기도 할 정도로 탈진 돼있었는데, 난 누구(산모)고 여긴 어딘지(분만실 ㅠ)깨닫는 순간 엄습하는 공포와 막막함이 너무 견디기 힘들어 어떻게든 잠에 안들려고 온갖 신경을 호흡에만 집중시켰다.  

합~(들이쉼) 

스....sssssssssssss.....(길게 내쉼) <- 이틀동안 -_-


2015 10월 18일 오후 13시

병원에 오고 두 밤을 자고 오후가 되었는데 자궁문이 2.5센치밖에 안열려있다.  그놈의 내진만 몇번째인지...  

형용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절망감이 들었다.

다 필요없고 수술이나 해서 이 고통이 끝났으면 했다.


보다못한 간호사 한 분이 아주 특별한 제안을 했다. 

내진을 하면 아기가 속에서 움직이는게 보인다며, 엄마도 낳을 준비가 다 돼있고 아기도 나오고 싶어하는데 자궁문만 안열린 듯 하니 본인이 약간의 마사지(?)를 해서 자궁문을 열어보겠다는 것이다. "다 괜찮으니 제발 자연분만만 하게 해주세요!"를 외친 것으로 동의를 끝낸 나는 그 신의 손을 가진 간호사에게 모든 희망을 걸었다.

"이번부터는 진통이 올때마다 아이를 낳듯이 힘을 줘보세요"

 간호사 샘은 이젠 아예 매 진통마다 내진 비슷한걸 하기 시작했다. 그냥 내진도 아파 죽겠는데 진통을 하면서 내진을 당하는 고통이란.... 이 순간을 떠올리면 나에겐 둘째란 영원히 없다 ㅋㅋㅋㅋ

그런데 이러길 시작한지 불과 10여분이 지났는데, 자궁문이 7센치로 열렸다면서 이제 슬슬 분만준비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기적도 이런 기적이 없었다. 만 이틀가까이 1센치밖에 안열린 자궁이... 간호사의 신의 손짓으로 바로 7센치라니... 꿈만같았다.

자궁문이 다 열렸다는 말을 들을 겨를도 없이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분만이 시작되었다.

"무릎에 손을 대고, 남편은 산모님 머리를 받쳐주세요, 크게 숨을 쉬고 다음 진통에 힘을 줘보세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이 때부터 막당에 들은 순산요가 수업 내용이 빛을 발했다. 힘주기 연습을 할때 수없이 했던 지겨운 동작, 강사샘이 알려주신 바로 그 동작이 시작된 것이다. 연습덕인지 본능때문인지, 반사적으로 힘이 들어갔다.


"크게 심호흡을 한다음에 다시 힘 줘보..."라고 간호사 분이 말씀하셨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숨을 쉴 겨를도 없이 내 몸통은 이미 반사적으로 초승달 모양이 된 채로 아래에 힘을 주고 잇었다. 엄청난 핵대변을 보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주변에선 간호사 샘들이 말이 간간히 들려왔다:


"산모님 잘 하고 계세요!"


이 때 소리를 지르면 안 좋다고는 많이들 했지만, 어차피 똥누듯이 힘주는데 소리를 지르긴 곤란했고, 이를 악물고 목구멍애서 끄~~~~~~~~~응 하는 소리만 자꾸 났다. 이정도느 괜찮겠지 싶었는데:

"산모님! 소리를 내시면 힘이 빠져나가서 아이가 나오는 힘이 덜 들어가요"

"아 죄송합니다!" (끙 소리도 내지 말라는건가;;;)

남편 말로는 이말을 들은 후부터 난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며, 어떻게 그와중에 조용히 있냐고 독하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 소리를 안내니 더 집중이 가능했던 것 같기도.. ㅎㅎ

몇번의 힘이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간호사 샘들이 다시 숨을 들어마시고 힘을 주라고 옆에서 안내해주는 타이밍보다도 빠르게 나도 모르게 힘이 마구마구 들어갔다. 반사적으로 머리가 확 들어올려지고, 남편은 엉겁결에 머리를 받쳐주고...


"아이 머리가 숱이 약간 적게 보이네요"


베테랑 간호사분의 능숙한 격려였다. 너무나 희망찬 메시지... 내 아이가 육안으로 보인다는 그 말.....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멈추라고 한다. 여기서 더 밀면 위험하다고(?)... 

그래서 밀기를 멈춘 채로 아이 머리가 가랑이 사이에 낀 채 의사 선생님을 기다렸다. (이제까지는 간호사분들과 분만을 진행 한 것이다)

아마도 실제 분만의 순간에는 안전상 의사선생님이 필요한데, 내가 분만이 이렇게 빠를 줄 몰라서 의사 선생님 내려오실 타이밍이 안 맞았던 듯 하다.

그래서 그렇게 난 아이 머리를 걸친 채로, 애를 낳기 직전 상태로 몇분간 대기해야했고 그래서인지 아이 머리에 테두리처럼 둘러진 자국이 있었는데 크면서 금방 사라졌다.

사람마다 경험이 다르겠지만, 난 분만 자체에 대한 고통이 없었다. 그저 엄청나게 아프고 뻐근하다는 기분? 진통을 하도 오래해서 덜 느껴진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내 몸 구조가 유리해서일 수도 있다. 

드디어 의사선생님이 도착하시고, 두어번의 힘주기 후 "이제 힘 빼세요"라는 엄청나게 반가운 간호사 샘의 지침이 내려왔다. (이는 순산요가 시간에 배운 분만 2기 - 머리가 이미 나와서 나머지 몸통을 빼내는 순간 힘을 오히려 빼고 입을 크게 벌리고 하아하아 하고 숨쉬는 단계 - no 고통 ㅋㅋ)

그 사이 한 간호사가 능숙하게 남편의 손에 장갑의 끼워주고 가위를 쥐어주고 창 밖을 잠시 보라 하고 있었다.  

각종 다큐에서 본 응애~응애~소리가 우리 아기 입에서 들려왔다.  남편보고 탯줄을 자르라고 하는걸 내가 뜯어말리려 했다(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가지고, 탯줄을 좀 기다렸다가 자르는게 아이한테 좋다고 해서;;;). 하지만 병원에서는 처치를 어서 해야한다며 속히 진행을 시켰고, 아이를 씻고 건강을 확인하는 절차에 들어가는 내내 아기는 응애응애거리고, 아빠가 열심히 달래는 소리가 났다.  나는 바로 회음부 절개를 꼬매는 시술이 시작되었는데, 무통을 안맞아서 그런지 욕이 나올정도로 따끔거렸다. 

마취 주사 두 대나 놨다고 하는데도 너무 기분나쁘게 따가워서(화장실에 들어갈때랑 나올때가 다르다더니, 분만이 끝난 동시에 그 곳;;;의 감각이 확 살아나면서 견딜수 없게 찢어지는 아픔이 느껴졌다) 자꾸 씩씩거이고 아야아야 하게 되었는데, 곧이어 아이를 초록 천으로 감싼 간호사분이 내 얼굴 옆에 아기가 뉘어지게끔 갖다주시고 울고있던 아기는 "꼬롱아 태어나느라 고생했어~ 이제 괜찮아~~~ ^_____^"하는 내 목소리를 듣고 바로 울음을 멈췄다.


우리 병원에서 해주는 아빠를 위한 캥거루 케어.  이날 맨 가슴에 아기를 안은 아빠는 핵감동을 먹고 딸바보로 등극한다 ㅋㅋㅋㅋ


병원밥. 출산 직후엔 미역국을 대접으로 주고, 다음부턴 여러가지 반찬을 함께 주는데 맵고 짠 음식은 없다. 


병실샷(태어난 날 밤)





퇴원후 ^^



애기를 출산하고 14개월이 지나서야 완성한 후기(사실은 거의 다 적은 채 정리 마무리만 못하고 있었다)! 남들은 다 잊고 둘째를 낳는가고 하지만 뒤끝으로 치면 세계에서 손꼽히는 멀티 A형인 나로서는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네버엔딩 육아에 비하면... 쉬운? 편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드디어) FI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