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음악 이야기 | 192 ARTICLE FOUND

  1. 2015.10.13 [문화 + 서울] 10월호 칼럼: 1세대 한국 서양음악 작곡가들의 선율 (2)
  2. 2015.09.27 [문화+서울] 9월호 칼럼 - 음악 재생 도구의 진화 - 카세트 테이프와 CD의 추억
  3. 2015.09.23 [문화 + 서울] 8월호 - 음악은 일필휘지로 완성되지 않아요! 작곡의 장애요인과 극복방법
  4. 2015.09.22 문화가 있는날 수요 어쿠스틱 콘서트 - 작곡가 신지수의 현대음악 렉쳐 콘서트 - 2015 9월 30일 충북문화관
  5. 2015.07.22 Nursery Rhyme Trilogy -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동요 편곡 모음집
  6. 2015.07.21 [문화+서울]채소 오케스트라, 얼음 악기와 3D 프린터 바이올린 (2)
  7. 2015.07.17 [문화+서울]작곡가는 단명한다? - 100세를 넘긴 작곡가들 소개
  8. 2015.05.19 [문화+서울] 동물을 위한 음악 - David Teie와 Snowdon 연구팀의 창작곡
  9. 2015.04.22 허은무 바이올린 독주회 - "제 4의 언어" 초연
  10. 2015.04.21 최우진 파이프오르간 독주회에서 제 곡이 연주 되었습니다. (1)
  11. 2015.04.21 [문화 +서울]청각 장애가 있어도 음악을 들을 수 있다?
  12. 2015.04.02 [문화+서울]아프리카의 복합리듬을 활용한 리게티의 연습곡
  13. 2015.03.31 [문화+서울]수세기에 걸친 러닝타임 - 롱플레이어와 Organ2 ASLAP
  14. 2015.03.29 [문화+서울]표절과 인용은 종이 한장 차이
  15. 2015.03.27 [문화+서울]국악기의 개량은 어디까지? 그리고 서양악기는? (3)


우리나라에 서양음악이 보급된 것은 서양문물이 보급된 개화기 시절 무렵이 그 시작점이다. 그 무렵은 하필면 일제 강점이와 맞물리기도 하고, 그리하여 친일행각을 벌인 것으로 의심되는 음악가들의 영향을 지금까지 받고 있다. 어찌됐건, 그들이 배운 것을 토대로 창작된 음악을 씨앗 삼아 현대 한국의 음악이 꽃 피우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 시절에 작곡된 곡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중학교에 입학하여 첫 음악시간에 배운 노래는 홍난파가 작곡한 “고향생각”이었다.

이은상의 시로 작곡된 “고향생각”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어제온 고깃배가 고향으로 간다하긔

소식을 전차하고 갯가으로 나갔더니

그 배는 멀리 떠나고 물만 출렁거리오


고개를 수그리니 모래씻는 물결이요

배뜬곳 바라보니 구름만 뭉게뭉게

때묻은 소매를 보니 고향 더욱 그립소


당시 예민한 사춘기의 귀로는 이 노래가 그렇게 어색할 수 없었다. 일단 선율 자체가 매우 동요스러운데 그에 상응하는 가사는 늙은이에 가까운 어른의 정서를 담은 것이 부자연스러웠다. 서울의 어느 병원에서 태어나 평생을 아파트에 살았던 대부분의 친구들은 이 가사가 그다지 와닿지도 않았겠지만, 서양음악과 동요에 길들여져서 선율 자체의 느낌은 익숙했을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뜯어보면 선율 자체도 그다지 아름답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특별히 개성있는 멜로디는 아니었는데다가 가사도 어색하게 붙어있고, 4/4박임에도 불구하고 서양음악의 대표적인 2+2 프레이징이 철저하게 지켜지지도 않는다.


특히 이 부분이 그러하다:

물만/ 출렁///(5마디)


결국 물만 출렁거린다는 표현에서 “거”와 “리”가 굉장히 강조가 되는 구조로 멜로디가 만들어졌다. 그나마 2절은 조금 낫다. 같은 불안정한 5마디 선율이긴 하지만 “그”와 “립”이 강조가 되었으니까. 당시 음악교과서에서는 전형적인 4마디 선율에서 마지막 세 음절에 늘임표(페르마타)가 붙은것이나 다름없다는 나름의 설명이 담겨있긴 한데, 그렇다면 그냥 4마디로 두면 나을 것을 왜 저렇게 바꿔놨난 하는 의아함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일단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이번 건은 개인적인 음악적 취향의 차이 때문이라고 해두기로 한다.



사실 2+2 프레이징이 안 지켜지는 대표적인(더 끔찍한) 예는 윤석중 작사, 윤극영 작곡의 어린이날의 노래이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라난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시만 읽었을때는 당연히 우리나라의 시조와 흡사하게 4개의 단어로 각 행이 이루어져 있고 이것이 일정하게 유지 되어있어서 노래도 이에 상응하게 작곡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어린이날 노래는 그렇지 않다.

날아라/ 새들아~/ ~/ ~~/~(5마디)

달려라/ 냇물아~/ ~/ ~~/~(5마디)

오월은/ 푸르~/~ /우리들은 /자란~/~(6마디)

오늘은/ 어린이날/ ~/~~/~(5마디)


이런 박자 시스템은 과장되게 생각하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연상시키는 불안정함을 담고 있다. 어린이날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던 이유가 결국 마음에 드는 선물을 받지 않았거나 놀이공원에 가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나보다. 이 노래가 얼마나 잘못 작곡 되었는지는 대학교때 작곡과 교수님이 열변을 토하며 설명하시곤 했는데 그때마다 속으로 크게 공감을 했었다.


지난해 음악인들 사이에서 어느정도 화제가 되었던 지휘자 구자범의 칼럼에서 언급된 애국가 또한 비판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한다.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되는 가사에 선율은 “해”와 “두”가 강조되게끔 쓰였기 때문이다. 원래 애국가는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멜로디를 사용했었다. 오늘날의 애국가 선율은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연상시키는 안익태의 “한국환상곡”의 마지막 합창부분인데, 이것이 1948이승만의 대통령령에 따라 국가의 멜로디로 정해진 것이었다. 그 사실만 본다면 안익태는 민족을 대변하는 위대한 음악가처럼 보이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에키타이 안”이라는 이름으로 독일 등지에서 활동했던 작곡가였던 안익태는 1942년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경축하는 '만주국 춘전곡'을 의뢰받아 4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큰 관현악과 혼성합창을 위한 교향적 환상곡 '만주'"를 완성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적인 맥락까지 생각을 해보면 차라리 독립투사들이 가사만 바꿔 불렀다는 “올드 랭 사인” 선율이 훨씬 애잔하고 아름답게 들려온다. 최근에는 가수 김장훈, 올드 랭 사인 곡조에 애국가 가사를 붙인 속칭 '독립군 애국가' 2012년 하계 올림픽 응원가로 리메이크하여 발표하기도 하였다.


안익태, 홍난파, 윤석영 등의 개화기 음악가들이 서양음악의 도입과 보급에 지대한 공을 세운것은 사실이지만, 어쩌고 보면 서양음악이 국악보다 우월하다는 위험한 인식도 함께 보급한 셈인데다가, 서양음악에 대한 제대로 기초가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음악적으로 세련되지 않은 노래들을 만들어 이것들이 현재에도 불리우게 되어 지금 우리에게까지 피해 아닌 피해를 끼치고 있다.


사실 이런 현상은 개화기의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던 그 시절에 팽배했던 인식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현재에는 표면적으로는 많이 사라졌고 우리의 것을 소중히 하려는 움직임이 일단은 생겨났다. 하지만, 서양의 어법으로 깊게 물들어버린 한국의 음악적 전통과 음악인들의 귀는 돌이킬수가 없을 것이라는 점이 안타깝다. 많은 젊은 국악인들이 악기는 국악기를 타고 있는데, 서양의 음악적 패러다임으로 그 악기들을 연주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원문 보기(문화+서울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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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2.12 1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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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도구의 진화 - 카세트 테이프와 CD의 추억


요즈음에는 가장 값싸게 구매되는 문화상품이 음악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음악을 듣는 것이 너무나 쉽고 간편하고 저렴한 행위가 되었다. 불과 100여년 전, 축음기가 발명되기 이전까지는 직접 악기나 목소리로 소리내어 연주하는 것을 듣지 않으면 음악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시절과 비교해 보면 실로 엄청난 변화이다. 컴퓨터를 통해 파일로 유통되고 소비되는 21세기의 음악 재생 방식이 없던 시절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지만, 사실 현재와 같은 음악감상 형태는 몇년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어떤 방식으로 음악을 틀고 감상했을까?필자가 경험한 어린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추억을 떠올리며 되짚어 보고자 한다.


몇살인지 기억도 안나는 까마득히 어린 시절, 음악을 들을 때 사용했던 것은 카세트 테이프였다. 당시 납작하고 큰 기계에 테이프를 넣고, 옆의 빨간 버튼을 누르지 않도록 조심하며 삼각형 버튼을 세게 꾹 누르면 테이프 속의 작은 바퀴들이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미세한 기계소리가 시작되고 잠시 후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들으면서 졸다 보면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음악이 끝났음을 알려온다.


당시 즐겨 듣던 테이프는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이었다. 피아노 학원에서 선물로 받은 모음곡집을 연습하면서 알게 된 세계 여러 나라의 춤들을 들으면서 바비인형을 모형삼아 춤으로 만들며 놀았었다.당시에 유명했던 피겨 스케이트 선수인 이토 미도리를 따라하며 안무를 짰던 기억이 난다. 이후에는 음악을 전공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동네 음반가게에 가서 피아노 음악과 클래식 음반을 사서 듣곤 했다. 당시에는 CD도 나와 있었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더 많은 음악을 듣기 위해 카세트를 사모았다.


음악감상을 몹시 좋아하던 부모님은 카세트와 함께 레코드 판(LP)도 즐겨 들으셨다. 레코드 판 같은 경우는 짦은 바늘과 같은 것을 턴테이블 위 레코드판에 살포시 올려 놓아야 하는데, 이때 레코드 판에 흠집이나 먼지가 있으면 바늘촉이 걸려서 음악이 진행되지 않는다. CD를 듣다가 가끔 튀기곤 하는 그 현상과 비슷한데, 가족들이 즐겨 듣던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그런 흠집이 나있었다. 공교롭게도 2악장 막바지 바이올린 솔로의 트릴 부분에서 바늘이 늘 걸려서, 마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트릴이 계속되었는데, 나중에는 그 때가 다가오면 자동으로 바늘을 들어 약간 비껴가게끔 손을 보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나이가 30대 이상인 사람들은 카세트와 레코드판을 기억 할 것이다. 굉장히 오래 전 일인 듯 느껴지지만, 불과 20여년전의 추억들이다. 이후에 CD가 보급되어 대세를 이루던 시절이 불과 10여년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시대변화가 얼마나 빠른 것인지 갑자기 실감이 난다.


CD를 처음 접했을 때는 그 편리함과 깔끔한 음색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테이프처럼 어림짐작으로 찾지 않아도 트랙을 검색하여 음악이 시작되는 부분으로 자동으로 옮겨지는 것과, 음악이 다 끝나도 툭 하는 소리가 나지 않고 조용히 있다는 점 이 두가지가 몹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트랙을 검색하는 기능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일부러 한 음반의 트랙들을 순서를 바꾸고 건너뛰어가며 듣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기본적인 기능인데도, 마치 신세계를 체험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때 당시 갖고 있던 워크맨으로 테이프를 들으면 음이 전체적으로 높게 들리곤 했는데, 어렵게 장만한 휴대용 CD 플레이어에서는 그런 현상이 전혀 없어서 어찌나 든든한지 몰랐다. 그때 당시 휴대용 CD 플레이어는 학생들에게 초 럭셔리 아이템이었고, 자율학습 시간에 CD를 듣고 있자면 괜시리 어깨에 힘이 들어가곤 했다. 그때 가장 갖고 싶었던 건 SONY에서 나온 초소형 플레이어였다. CD 크기와 같고 두께가 1cm도 안됐던 걸로 기억하는데, 당시 형편이 여의치 않아(?) 좀 더 두꺼운 Panasonic을 소장하였다.


이 시절 잠시 미니디스크(MD)가 유행하기도 했는데, 주로 얼리 어답터 친구들이나 외국에 살다 온 친구들이 가지고 있었다. 손바닥 보다도 작은 네모난 디스크를 넣어서 재생하는 기계가 너무나 작고 귀여우면서도 훌륭한 음색을 자랑해서 굉장히 탐나긴 했으나, 기계는 어찌어찌 구한다 해도 이미 CD로 지출이 심한 상태에서 도저히 그만큼의 음반을 모을 수가 없었다는 어려움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꼈는지, MD시장은 의외로 금방 식어버렸고, 지금은 자취를 찾을 수가 없다.


몇년 지나지 않아 손가락만한 작은 기계에 500개가 넘는 노래를 저장할 수 있다는 mp3 플레이어가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디지털 음반 시장이 활성화 되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한번에 휴대할 수 있는 음악의 양이 늘 한계가 있었으므로, 이는 획기적인 기능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한 음악보급이 이루어 지면서 음반시장은 빠른 속도로 쇠퇴되었다.


몇년 전에는 작곡과 지도교수님의 유품을 동료 제자들과 함께 정리하다가 릴투릴(reel-to-reel) 테이프를 발견하기도 했다. 이는 카세트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음반 형태인데, 복잡한 고가의 재생도구가 필요한 관계로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었다고 한다. 난생 처음 보는 릴투릴을 보고 차마 전부 버릴 수가 없어서 일부를 간직하고 있다.

이제는 음악을 듣는 것은 마음 먹기에 따라 단 한푼도 들지 않는 일이다. 필자의 경우도 원하는 음악이 있으면 일단 인터넷으로 검색을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제는 그렇게 쉽게 찾은 음악들은 잘 기억에 남지도 않는다. 기다림의 세월을 거쳐 어렵게 용돈을 모아 듣게 되는 테이프나 CD의 음반들이 강렬히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얼마전, 중학생 때 이후로 듣지 않았던 마이클 잭슨의 초기 음반을 카세트 플레이어가 내장된 소형 오디오를 사서 테이프로 틀어봤다. 당시에는 가사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주의깊게 들었는데, 이제는 흔한 사랑노래들이 덜 와닿는 것 처럼 이 노래들도 더 짧게 느껴지고 감흥이 덜 한 것 같다. 내가 어릴 적에는 고작 이런 것에 감동을 받았었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때는 차라리 영원히 다시 듣지 말걸 그랬나 하는 회의감도 들지만, 이를 계기로 추억을 더듬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이제는 이세상에 없는 마이클 잭슨의 풋풋한 목소리를 들으니, 가는 세월은 잡을 수 없구나 하는 늙은이같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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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는 영감이 떠오르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미친듯이 오선지에 잉크를 처바르고, 단 한번의 수정도 없이 걸작이 탄생하는 줄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런 환상은 심지어 작곡가 자신들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이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과 열등감에 알게 모르게 시달리게 된다.

이러한 창작자에 대한 현실은 여러 영화나 대중매체에서 보여주는 작가, 작곡가, 심지어 논문을 쓰는 과학자 등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에서 비롯된 것이다. 얼마전에 작고한 천재 수학자 존 내쉬의 삶을 줄거리로 한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 주인공인 청년 내쉬가 기숙사 방에 틀어박혀 계절이 변하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생각해낸 새로운 수학이론을 방대한 양의 논문으로 집필하는 장면이 있다. 천재의 창작물,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대한 일반인(?)의 환상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모차르트의 삶을 다룬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도 그를 흠모하는 동시에 질투하는 작곡가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악보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하는 장면이 있다. 펜으로 작곡한 악보에 작곡과정에서 곡을 고친 흔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천재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널리 보급된 것 자체를 원망할 수는 없지만, 현실은 이런 것과 매우 다르기도 하다는 것을 천재는 아니지만 약간의 재능을 가져서 우여곡절 끝에 창작을 업으로 삼고 있는 많은 예술가들은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 작곡가가 영화에 나오는 천재처럼 곡을 술술 써내려가지 못하는 순간들에는 어떤 장애가 도사리고 있는가? 작곡가로 활동중인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일부 언급해 보도록 한다.


1. 집중력

하나의 아이디어를 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많은 끈기가 필요하다. 이 때 다른 생각은 안하고 오롯이 음악 그 자체에만 집중을 해야 하는데, 음악이 워낙 추상적인 예술이다 보니 이것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에 피아노로 먼저 처보고 기보를 하는 스타일이라면, 치고 들은 것을 악보고 옮겨적을 때 까지 오롯이 기억을 하고 기보를 해야 하는데, 그 짧은 순간에도 많은 정보들이 새어나갈 수 있다. 사실, 악보에 적는 것들은 매우 한정적이고, 그 음악의 분위기나 그밖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한 요소들은 기록이 불가능 할 수도 있다. 그런것들을 놓치지 않고 작곡의 동력을 유지하는 것은 실로 많은 에너지와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곡을 한창 신나게 쓰다가 잠깐 다른 일이 생겨서 자리를 뜨고, 몇시간 후, 또는 며칠 후에 다시 그 악보를 펴보면 예전의 그 타오르던 영감은 사라져서 온데간데 없고 웬 생뚱맞은 음표들이 날 바라보고 있던 경험이 있다. 이는 음악의 수많은 요소들 중 음 높이나 리듬 등 극히 일부만을 기보하고 기록이 불가능했던 더 중요한 요소들이 누락되어서 일 수도 있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려면 크게 두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곡을 다 쓸 때까지 몇날 며칠을 밤을 새더라도 자리를 절대로 뜨지 않는 것과, 최대한 많은 정보와 계획들을 바로바로 악보에 기록하고 기보해서 다음에 그 페이지를 볼 때 예전의 느낌을 그대로 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자리를 떴을 때에도 최대한 곡에대한 생각을 마음 한켠에서 끊이지 않게 하면서 그 영감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2. 멀티태스킹 능력

연필을 들고 오선지를, 또는 마우스를 들고 컴퓨터 화면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행위는 단순해 보이지만, 동시에 생각해야할 음악의 요소들은 실로 너무 여러가지여서, 이는 마치 정교하고 까다로운 게임을 하는 것과 같을 수 있다. 대중적인 음악을 예로 든다면, 아름다운 선율(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음의 높이가 변한다)을 생각하는 동시에 그 선율 안의 각각의 음이 울려퍼지는 순간 다른 악기들의 울림(수직적인 울림이라고도 한다)을 신경써야 하는 것이다. 이 두가지는 사실상 동시에 할 수 없는 동시에 동시에 해야만 하는 것들이라, 작곡가에겐 정신분열의 체험이 될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음색, 셈여림, 가사(노래일 경우) 등의 여러가지 다른 요소들도 동시에 고려해야 하므로, 어지간한 온라인 게임보다 더 현란한 마우스 움직임을 요할 수도 있다고 주장해도 어느정도 일리가 있다.


3. 심리적인 문제 - 자아에 대한 인식

작곡가들 사이에서 “생긴대로 곡 쓴다”는 말이 있다. 진심이 담긴 음악은 자신의 삶과 인간성을 담고 있다는 의미이다. 심지어, 진심이 담기지 않은 음악조차 작곡가의 진실되지 못한 삶의 태도를 닮아있다. 그러므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밖에 없는 창작과정이 어떤 순간에는 마치 옷을 벗는 듯한 부끄러움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런 식의 노출들을 즐기지(?) 못한다면 아무리 음악적인 재능이 있어도 작곡과정은 느리고 힘겨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음감이나 기타 작곡능력에 관계없이 창작이라는 행위가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만성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큰 질병이 생기기 전에 서둘러 다른 직업을 구하는 것이 개인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 이득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고통을 감수해낼 정도로 성취감과 희열이 크다면 당연히 계속 작곡을 하는 것이 좋다.


4. 시간개념

곡을 쓰는 시간과 결과물이 연주 되었을 때 소요되는 시간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간극이 있다. 예를 들어, 약 두어시간동안 정성껏 집중하여 작곡하여 대여섯 마디의 소절을 정교하게 만들어 냈다고 가정하면, 이는 대략 10초 안팎의 시간동안 울려퍼질 것이다. 이러한 시간인식의 차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곡의 진행이 어마어마하게 빨라지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으니 이제 넘어갈 때가 되었다고 작곡가는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음악적으로 아직 좀 더 움츠러들어 있어야 할 타이밍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절정에 다다른 지점에서 너무 금방 식어버려서 곡이 허무하게 끝나도록 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조금 힘들더라도 그 클라이맥스 섹션을 좀 더 붙들고 있어서 더 길게 만들어야 한다. 이런 것들은 듣는 사람의 입장을 늘 생각하면서 곡을 쓰는 ‘역지사지’의 능력이 있어야만 효과적으로 할 수 있으며, 어느정도의 재능과 훈련이 두루 필요한 부분이다. 이는 많은 음악을 듣고, 악보를 보거나 제작과정을 관찰하는 등의 다양한 창작과정에 대한 경험을 통해 어느정도 훈련될 수 있다.


작곡가도 다양한 성격과 성향들이 있어서 본인의 단점이 각기 다르다.

어떤 작곡가는 재료는 잘 정리하고 나열하는데, 그를 활용하는 능력이 부족하기도 하다. 어떤 작곡가는 시작할 때의 순간적인 아이디어는 번뜩이는데 이를 긴 작품으로 끌고 나가는 동력과 끈기가 부족하고, 어떤 이는 반대로 꾸준히 곡을 대단한 분량으로 써내려가는데, 결정적으로 창의력이 부족하여 특별한 아이디어가 없는 밋밋한 작품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듯 같은 직업군 안에서도 천차만별의 사람들이 존재하니, 인간은 공통점이 많으면서도 참으로 다양하고 개별적인 존재인 듯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중매체에서 본 것만을 가지고 특정 직업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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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클릭 -> 충북문화재단 공연소개 페이지로 이동




2015년 09월 30일 19시

충북문화관 숲속갤러리 2층 전시실

주최/주관: 충북문화재단


충북문화관 문화가 있는날 "수요 어쿠스틱 콘서트" 

작곡가 신지수의 현대음악 렉쳐 콘서트 

출연진 : 작곡가 신지수, 바이올린 이수아 


<프로그램> 


violin plays Munmyo(2005)

Fantasy for solo violin(2015) 

(바이올리니스트 이수아 독주)


그 외 작곡가 신지수의 대표 작품들을 영상과 해설과 함께 선보입니다.

노카(2012), Parallel Universe(2014)

정신분열적 피아노 토카타(2013)

거문고와 기타를 위한 "제 11차원"(2013)



친정이 있는 청주에서 작은 공연을 열게 되었어요.

만삭오브 만삭의 몸을 이끌고…ㅋㅋㅋㅋ


토크콘서트 형식의 오붓한 공연이라, 부담없이 진행은 되겠지만, 예정인 열흘 전이라 해설하다가 진통이 올까봐 그게 걱정이네요 ㅎㅎ;; 첫째 아기는 예정일보다 늦게 나오곤 하더라 하는 주최측 선생님의 설득에 넘어가서 날은 이렇게 잡긴 잡았는데.. 혹시 모르니 출산 가방도 들고갑니다 ㅋㅋㅋㅋㅋㅋ



(공연소개 하면서 결국 또 아기 이야기 -_- )


다쉬 음악으로 화제를 돌려서…


바이올린 독주곡 두개를 수아언니가 라이브로 연주하고, 그 외에 이전의 설치예술 작품들(Nokha, Parallel Universe 등)을 영상으로 소개하면서 해설을 하는 반 토크, 반 음악회의 형식으로 진행하려 합니다. 


혹시 이날 청주 지나가시는 분은 잠깐 들러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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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회를 해놓고 공지도 안 올렸네요;;;

임신을 하면 온몸의 피가 자궁으로 모여서 뇌의 기능이 저하된다고 하죠? ㅋㅋ

한마디로 정신이 없습니다 ㅠ




지난 7월 2일 성공회 성당에서 앙상블 판의 정기연주회가 열렸습니다.

저는 이번 곡 발표 기회에는 때마침 관심을 갖고있던 동요들을 몇개 모아서 편곡 시리즈물을 내놨습니다.

과거의 일을 뒤늦게 올리려니 민망하네요;;;

암튼, 그랬습니다 ㅎㅎ



곡 해설:

기존의 잘 알려진 동요 세 곡을 각기 다른 스타일로 현악앙상블을 위해 편곡하였다.  
1. '동네 한바퀴'는 같은 음이 반복이 심하며, 선율이 진행하는 듯 하지만 같은 패턴이 다른 음높이에서 재현이 되는 경우가 빈번한 관계로 이를 현악앙상블 버전에서는 트레몰로(빠른 음의 반복)과 두가지의 제한된 음형을 여러 악기에서 제시하는 방식으로 편곡하였다. 
2. '고향의 봄'은 바이올린 독주와 현악오케스트라를 위한 미니협주곡의 형태로 편곡을 하여, 바이올린의 화려함을 극대화시키게끔 노래 선율을 변형하였다. 반주는 후기 낭만파 시대의 화성적 어법을 차용하였다.
3. 다소 해학적인 분위기로 악기간의 대화가 활발하게 오가는 짜임새를 지닌 '옹달샘' 편곡은 원곡의 ¾박자를 살려 왈츠풍으로 진행되며 이따금씩 첼로의 독주능력을 뽐내게끔 되어있다. 



1.은 공포영화에서 곧 살해당할 주인공이 밤중에 동네 한바퀴 도는 분위기,

2.는 그나마 양호...좀 과하게 짠해서 거시기 하지만;;

3.은 4차원 옹달샘.. 마시면 웜홀에 들어갈것만 같은 물을 뿜어내는 옹달샘인가?


고로, 태교에는 안 좋은 것으로 결론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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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이전에 허은무 선생님의 독주회에서 초연된 "제 4의 언어" 실황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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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비슷한 작업을 하신 피아니스트 박종화 선생님의 다가오는 9월 순회공연과 음반발매가 기대됩니다.  여러 우리나라의 동요들을 현대 작곡가들이 편곡한걸 초연!


자세한건 기사로 읽기(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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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널리 보급되고 연주되는 악기들의 재료는 어느정도 공통점이 있다.  공명이 잘 되면서 내구성이 좋고, 음이 일정하게 유지가 되는 재료들로서 역사적으로 검증을 거친 것들이다.  대표적으로 수많은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쓰이는 재료는 아마 나무일 것이다.  그 외에도 (동물보호법이 발효되기 이전에는) 동물의 신체부위(가죽, 뼈 및 털), 극히 드문 경우(주술적인 이유 등으로 인간의 뼈, 그 외에 산업혁명을 거친 이후에는 플라스틱과 철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소리를 내는 재료로서 반드시 이런 것들만 사용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소 여러 단점들과 제약이 있다고 하더라도 특색이 있는 색다른 재료로 악기를 제작하기도 한다.


1. 채소로 만든 오케스트라[각주:1]

비엔나 베지터블 오케스트라(Vienna Vegetable Orchestra)라는 이 단체는 채소로 만든 악기들에 마이크를 달아서 공연에 사용하면서 살아있는 악기의 소리를 표현하고자 하는 단체이다.  이들은 그날 쓰일 악기를 그날 만들면서 순회공연을 여는 비엔나 베지터블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의 하루는 공연 당일 아침에 장을 보러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곳에서 보이는 채소들을 보면서 저녁때 공연에 쓰일 악기를 구상하고, 이것들을 사들인 후 반나절에 걸쳐서 악기제작에 들어간다.  

아무래도, 정확한 악기의 모양새와 연주법을 미리 알기가 힘들기 때문에, 사전에 작곡된 곡이라고 해도 약간의 즉흥적인 요소가 들어가는 유동적인 음악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들이 연주하는 스타일은 프리재즈, 노이즈 뮤직 전자음악 등으로 분류될 수 있다.

기아에 허덕이는 가난한 나라도 많은 상황에서 채소를 그렇게 낭비(?)해가며 공연을 여는것이 과연 온당한가 의문을 품는 (안티)팬들도 없잖아 있지만, 이들이 소비하는 자원과 에너지는 오히려 기존의 정형화된 악기 제작에 사용되는 자원보다 규모가 적으며 이들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도 극히 미미하다고 한다.  게다가, 공연이 끝나면 악기를 국으로 끓여서 관객들에게 수프를 나눠준다고 하니, 음악회도 여는 비용으로 뒷풀이 음식까지 해결이 되는 셈이다.

공연이 진행되면 될 수록 악기가 조금씩 부러지거나 닳아 없어지기도 하고, 식재료의 파편들이 무대위로 흩날리다보니 일반적인 음악공연에 비해서는 다소 지저분해진다는 애로사항이 있기도 하지만, 악기의 재료가 주는 신선한 생동감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서는 기꺼이 감수하고자 하는 부분이다.  열명의 단원들로 구성된 이 단체는 칼과 드릴 및 부엌도구를 가지고 다니면서 평균 한달에 두어번 정도 공연을 열며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닌다. 




2. 얼음으로 만든 악기들[각주:2]

스웨덴 북부에서는 기타리스트 찰리 섹스턴(Charlie Sexton)과 린 베릴(Lindsey Verill) 등으로 구성된 뮤지션들이 아이스 뮤직(Ice Music)이라는 공연을 이글루 안에서 열었는데, 이때 사용된 모든 악기들은 얼음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기타와 베이스, 타악기 등으로 이루어진 이 밴드의 음악을 듣기 위해서 모든 관객들은 두꺼운 자켓으로 중무장을 하고 눈을 뚫고 이글루 안으로 들어와서 객석에 자리를 잡아야 했다.  덴마크와 스웨덴의 가수들과 협업하여 블루스와 앰비언트 뮤직과 함께 즉흥연주가 뒤섞인 열린 장르의 음악을 선보였다.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최대한 조심스럽게 악기를 제작하고는 있지만 워가 내구성이 약하기 때문에 리허설을 하다가 손상이 가기도 한다.  실제로 바이올린같은 경우는 공연이 시작도 되기 전에 금이 갔었고, 기타의 경우는 한번은 공연 전에 완전히 박살이 나서 대신 밴조를 들고 연주했다고 한다. 하지만, 경미한 손상일 경우는 입김만 조금 불어넣어도 복구가 가능하기도 하며, 온도는 영하 5도 정도로 유지하면 연주에는 큰 지장이 없다.  물론, 체온으로 악기가 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연주자도 두꺼운 옷으로 무장해야 하며, 연주 중간중간에 드라이아이스를 동원해서 최대한 악기 주변 공기의 온도라도 낮게 유지하려고 한다.  하지만, 조명과 연주 자체의 충격과 마찰 등으로 인해 악기를 영하5도로 온도를 유지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관계로, 대부분의 경우 공연 도중에 악기가 녹는것이 확연히 드러난다(실제로 악기에서 고드름이 생기기도 하고 음색의 변화가 들리기도 한다).    



3. 3D 프린터로 제작한 "바이올린"


3D 프린터가 개발되면서 얼마나 정교한 물건을 복제 가능할지에 대한 궁금증과 실험이 끊이지 않았다. 레코드판(LP)을 복제하여 재생해 보기도 했지만, 악기를 복제해서 연주해 보기도 하였다.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복제하여 연주 시범을 보인 바이올리니스트 사이먼 휴윗 존스(Simon Hewitt Jones)의 시도에서 그러한 예를 볼 수 있다.  한편, 이름은 3D 바이올린이지만 기존의 바이올린과 전혀 다른 구조와 형태를 지닌 새로운 프린터용 바이올린이 개발된 경우도 있다.  이는 2015년 4월 뉴욕 Javits Center에서 열린 3D 프린터 쇼에서 선보였던 것으로, 2개의 줄로 연주되고 활로 연주된다는 점은 기존의 바이올린과 동일하다.[각주:3]  

(Credit: MONAD Studio / Eric Goldemberg / Veronica Zalcberg) 출처: BBC



새로운 재료와 현대의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악기들에 대한 시도는 음악계에 신선한 바람을 넣어주면서 우리의 고정관념을 버리게 해주는 좋은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시금 전통적으로 이어져 내려온 견고하고 아름다운 악기들의 가치를 새삼 더 감사히 느끼게 해주는 부작용(?) 또한 낳는 듯 하다.  결국, 새로운 악기가 발명되는 것에 맞춰서 그것을 연주할 인간의 능력도 개발되어야 하는데, 그 변화의 속도에 과연 인간이 따라잡을 수 있을지가 어쩌면 변화 가능성 자체보다도 더 큰 변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잡지 직접 보기(문화 + 서울 7월호)



  1. http://www.vegetableorchestra.org [본문으로]
  2. 출처: wsj http://www.wsj.com/articles/in-sweden-musicians-play-hot-licks-on-ice-instruments-1426023783 [본문으로]
  3. http://www.bbc.com/culture/story/20150330-the-weirdest-musical-instruments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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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민 2015.08.17 1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는 포스팅이네요!ㅎㅎ 오늘 처음 방문했는데 자주 들리겠습니다




천재는 오래 살지 못한다고 하였는가? 최소한 음악에서는 슈베르트, 모짜르트, 베토벤 등 단명했던 천재 작곡가들이 존재하고 이들이 짧은 생애에 남긴 주옥같은 작품들을 보면, 너무나 열렬히 창작욕을 불태우는 바람에 그 불씨가 오래 가지 못하였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젊은 나이인 30대에 운명을 달리 하였다.


운동선수나 모델 등, 젊은 신체가 중요한 특정 직업을 제외하면 이제 갓 자신의 분야에 본격적으로 몸을 담그고 활동하기 시작할 나이인 30대에 이미 요절했던 이들 작곡가들과 달리 대기만성하며 오래 살았던 작곡가들 또한 역사에 걸쳐 여럿 존재한다.


일단, 하이든(J. Haydn)은 당시로서는 매우 많은 나이인 77세까지 살면서 고전주의 시대의 주요 형식들(현악 사중주, 피아노 트리오, 관현악, 소나타 등)을 완성시키는가 하면, 후배 작곡가들인 모짜르트가 사망한 이후에도 활동을 하였다. 또한 20세기 프랑스 음악에 한 획을 그었던 작곡가 겸 오르가니스트 올리비에 메시앙(O. Messiaen)84세까지 살며 까마득한 후배 음악인인 정명훈 지휘자가 자신이 작곡한 투랑갈릴라 심포니를 해석한 것을 마음에 들어하기도 하였다. 출세에 관심을 두지 않고 평생의 절반을 넘게 멕시코에 은둔하며 작업을 하던 콘론 낸캐러우(C. Nancarrow)도 환갑을 넘긴 후부터 유명해 지기 시작하여 85년의 생애의 말년을 화려하게 보냈다.


이렇듯, 많은 작곡가들이 장수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이상하리만치 그들에 대해 무지하며 작곡가는 수명이 짧은 직업이라고 오해를 하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이번 기회에 100세를 넘긴 최장수 작곡가들 중 최근까지 살아있던 대표적인 분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엘리엇 카터(Eliot Carter, 1908-2012)

클래식계에서 명망이 높던 현대음악 작곡가인 엘리엇 카터는 하버드 대학에서 당시 미국의 대표 작곡가 찰스 아이브스(C. Ives)에게 지도를 받으며 음악을 전공한 후, 1930년대에 파리에서 공부한 후 귀국하여 자신의 나라 미국에서 활동하며 유럽 풍의 음악을 작곡하며 100세가 넘도록 활발히 작품활동을 하였다. 그가 100세가 되던 해인 2008년에는 뉴욕 카네기 홀에서 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축하공연이 열렸고, 이때 바렌보임의 피아노 연주로 그 해에 작곡된 곡을 초연하기도 하였다. 90세에서 100세 사이에 무려 40개가 넘는 곡을 작곡하였고, 100세를 넘긴 이후에도 약 20개의 곡을 더 썼다고 한다. 작곡가 자신이 100세 기념 음악회에서 인터뷰를 할때, 자신이 쓰는 현재의 음악을 음악사학자들이 어느 시대로 분류를 해야 할지 애먹는다고 밝혔다. 이미 “후기 카터 음악”으로 분류되었던 작품들을 발표한지도 수 세기가 지나버렸는데도 새로이 곡을 발표하였기 때문이다. 미국 현대음악사에 이토록 지대한 영향을 끼친 카터는 늘 밝고 긍정적인 표정으로 대중을 마주하였고, 그의 건강한 삶의 태도와 늘 쉬지 않고 작곡을 하는 꾸준함이 장수에도 보탬이 되었다고 생각이 든다.



2. 로이 더글라스(Richard Roy Douglas, 1907-2015)

영국의 작곡가이자 편곡자였던 로이 더글라스는 여러 영화음악과 현대음악 작품들을 편곡하였다. 특히, 김연아가 스케이팅 음악으로 사용하여 유명하게 된 ‘종달새의 비상’을 작곡한 랄프 본 윌리엄스(Ralph V. Williams)의 어시스트로 젊은 시절의 일부를 보냈는데, 윌리엄스의 말년에는 더글라스의 작품 기여도가 단순한 편곡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아서 어떤 곡은 윌리엄스의 뜻에 따라 더글라스의 이름으로 출판되기도 하였다. 실내악이나 현악 오케스트라 등 순수음악을 작곡하는가 하면, 라디오 프로그램 등 실용음악에도 기여를 한 더글라스는 평생 독신으로 살며 여동생과 말년까지 함께 살았다고 한다.



3. 버나드 비어만(1908-2012)

엘리엇 카터와 동시대를 살며 100세를 넘게 장수한 작곡가 비어만은 주로 대중음악을 작곡하였다. 본래 법학을 공부하여 법조계에 종사하다가 2차대전에 3년간 참전한 이후부터 작곡을 하기 시작하여 영화음악에 쓰인 노래들로 유명해졌다. 음악이 처음부터 본업은 아니었으나, 일과를 마치고 남는 시간에 오페라를 작곡하기도 하는 등 취미 이상으로 음악에 몰두한 결과 2차대전 참전하고 제대하기 직전에 오페라를 완성할 수 있었으며 이는 음반으로 출시되기도 하며 그가 활발하게 활동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사라 본, 프랑크 시나트라 등의 가수들이 그의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으나 1952년경 작곡가로서의 커리어에 종지부를 찍고 사업가로 변신하였고, 이후 수십년간 뚜렷한 작곡활동을 하지 않다가 1980년대에 아내의 설득에 힘입어 다시 작곡활동을 시작하여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노래 “Club Mambo”로 재기하였다. 6개의 음반을 출시하였으며,“We Have Something To Say”60세 노인들의 애환을 살짝 담기도 하는 등, 연로한 작곡가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담기도 하였다.



마치 10대때 공부 성적에 따라 평생이 좌지우지 될 것 같은 조급한 마음으로 인생을 시작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는 이렇게 100년에 걸쳐 인생의 여러 다양한 시기를 거친 작곡가들의 삶이 조금은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대게는 천부적으로 가진 재능을 최대한 갈고 닦아 젊은 시절에 빛을 발하고 그 성과를 말년에 누리는 삶의 형태를 대한민국의 표준으로 삼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삶이라면 그것이 언제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모르기 때문에 너무 이른(?) 중년의 나이에 자신의 인생을 결론짓지 말고, 70세가 되어 다시 작곡을 시작한 비어만이나, 100세가 넘도록 작품활동을 한 엘리엇 카터처럼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꾸준히, 느긋하게 보내는 삶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맥락에서 아직 이룬것이 없는 30대의 필자도 위에 언급된 최장수 작곡가들의 삶을 보고 용기를 얻는다. 인생은 60부터라고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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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위한 음악 - 인간과 다른 청각구조를 지닌 고양이를 위한 음악을 쓰는 David Teie

(본문 직접 보기 - 문화+서울 5월호)


이태리어로 “보통의 빠르기”라는 뜻을 지닌 모데라토(moderato)라는 음악용어는 대략 1분당 80회 정도의 박자 속도를 뜻하며, 이것은 인간의 심장 박동수와 흡사한 빠르기이다. 우리가 편하게 듣는 음악의 기준이 되는 표준 속도는 이렇듯 인간의 신체반응에서 자연스럽게 유추된 것이다. 이는 “빠르게”라는 뜻을 지닌 알레그로(allegro)보다는 다소 느리고, 소나타나 교향곡의 느린 악장 기준으로는 다소 가벼운듯 빠르게 진행되는 정도의 템포(tempo, 빠르기)이다.


우리가 편하다고 생각하는 음악을 곁에 있는 강아지에게 들려주고서는 별 반응이 없다며 동물은 음악을 들을 줄 모른다고 간단하게 결론 내리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몸에 최적화된 음악을 동물이 들었다고 해서 반드시 그들도 이를 음악으로 인식하길 바라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인간은 갓난아기때 가장 넒은 범위의 주파수를 듣다가 점점 나이가 들 수록 청각기관의 노화가 진행되면서 그 범위가 좁아진다. 어릴때 듣던 아주 높은 음이 더이상 안들릴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듣지 못하는 아주 높거나 낮은 소리를 들려주고서 반응이 없다고 음악도 들을 줄 모른다고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면 아마 어처구니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동물에게도 그들의 청각기관에 따른 고유의 주파수가 있다.


위스콘신-매디슨(Wisconsin-Madison) 대학의 찰스 스노든(Charles Snowdon) 심리학 교수는 작곡가 데이비드 타이(David Teie)와 함께 고양이의 청각세계를 연구하였고, 그들이 대체로 인간보다 한 옥타브 높은 음역대의 목소리를 지녔다는 것과 미끄러지는 음을 많이 낸다는 것 등의 다양한 특징들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고양이의 소리들을 그대로 재생하기 보다는 이것을 재료로 삼아 새로운 곡을 쓰는 것을 연구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만들어 냈다. 세계 최초로 고양이만을 위한 음악을 작곡하여 발표한 것이다.


2015215, 스노든의 연구팀은 총 세 곡을 공개한 후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공개투표를 요청하였다[각주:1]. 이중 한 곡은 고양이가 가르랑 거리는 소리를 표본으로 삼아 1분당 1380개의 박자로 이루어진 음악이고, 대부분 곡들의 멜로디는 인간의 기준으로는 아주 높은 음역대에서 짧고 조용히 연주된다[각주:2].


유투브에도 공개된 이 음악을 들은 네티즌들은 자신의 고양이가 평소에는 음악에 전혀 반응을 안했는데, 이 음악을 트는 순간 스피커를 뚫어지게 쳐다보는가 하면 옆에서 아주 편하게 그르렁 거리며 눕기도 했다며 놀라워했다. 인간이 듣기에는 장난처럼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들에 고양이들은 강렬하게 반응을 한 것이다.


이 즈음에서 많은 사람들이 강아지를 위한 음악에 대해 궁금해 할 것이다. 고양이를 위한 음악을 작곡하는데 성공한 스노든 연구팀이 혹시 강아지를 위한 음악을 작곡할 생각은 없는지?


강아지는 종에 따라 체구도 다양하고 목소리도 다양하기 때문에 종 별로 각각 고유의 음악을 만들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므로 향후 강아지를 위한 음악은 각 종마다 따로 발표를 할 것이라고 스노든 연구팀은 홈페이지(musicforcats.com)에서 향후 계획을 밝혔다[각주:3].


고양이를 위한 음악을 연구하기 이전에 스노든 연구팀이 최초로 만든 ‘동물음악’은 사실은 원숭이를 위한 음악이었다. 원숭이들이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할 때 내는 소리는 인간이 듣기에는 날카롭고 거북한 소리이고, 심장박동 또한 매우 빠른 편이어서, 이런 특징들을 담은 음악을 제작하여 실험실 원숭이들에게 들려줬을때, 인간의 음악소리와는 달리 뚜렷한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각주:4] 원숭이들이 실험실에서 유일하게 반응을 보인 ‘인간음악’은 헤비메탈 밴드 메탈리카의 음악이었고, 이를 들으며 인간과는 달리 몹시 차분해지는 효과를 받았다고 한다[각주:5]


말을 위한 음악의 경우는 아직 개발단계에 있는데, 규칙적인 박자(?)로 오랫동안 뛰는 말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말은 리듬이 고르고 규칙적인 음악을 선호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말이 뱃속에서 듣는 어미의 심장소리를 뇌에 각인시킨 후 태어난 후에 이를 적용시킨다는 이론을 전제로, 말의 태아시기 자궁속의 소리를 최대한 파악하려고 작업중이라고 한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니까 남들도 좋아할 것이라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인해 우리가 사랑하는 애완동물들에게 본의아니게 고통을 주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불현듯 들기 시작한다. 우리가 원숭이가 좋아하는 메탈리카의 음악을 듣고 그들처럼 차분하고 이완되지 않듯이 그들도 인간의 음악을 듣고 각성상태가 된다거나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아무렇지도 않다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인간의 잣대로 음악을 작곡했다고 하면 아무리 동물의 소리를 소재로 삼았다고 한들 우리가 음악을 듣고 느끼는 감동과 같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알 길이 없다. 어쩌면 그저 자신과 비슷한 소리를 내는 스피커가 신기한 것일 뿐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스노든 팀의 언급은 없었지만, 고래의 울음소리(혹은 노래 소리)를 즐겨 듣는 필자는 고래를 위한 음악에도 관심이 간다. 엄청나게 큰 체구와 느릿한 움직임으로 말이암아 추측컨데, 고래는 엄청나게 느린 박자의 낮고 깊은 소리를 선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느린 음악에 관심이 많은 필자로서는 ‘고래음악’을 한번 작곡해볼까 하는 생각을 언뜻 해보게 된다. 물론 물속에서 고래에게 들려주는 일이 만만치 않겠지만 말이다.



참고자료: Applied Animal Behaviour Science - “Cats prefer species-appropriate music” (Charles T. Snowdon, David Teie, Megan Savage)





  1. The Independant - “Music for cats: These songs are scientifically proven to be your cat’s jam” (C. Hooton) [본문으로]
  2. Daily Mail - “Listen to the meow-sic!” (R. Gray) [본문으로]
  3. http://musicforcats.com/64-future.htm [본문으로]
  4. NPR - “Music Written For Monkeys Strikes A Chord” (R. Harris) [본문으로]
  5. The Guardian - “Scientists create music that helps monkeys chill out” (Ian Sample)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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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허은무 선생님의 독주회가 4월 23일(이번주 목요일!)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립니다.  제 곡 제 4의 언어가 초연될 예정인데요, 며칠전에 같은 제목의 오르간 곡과는 내용이 완.전.히. 다릅니다.  (아이디어만 같음요...)


독주회로서는 조금 특이하게 피아노 대신 현악 오케스트라의 반주로 이루어집니다.(지휘자 포함 총 11명이 무대에 오르네요!)

프로그램 전반부에는 과거, 후반부에는 현재를 다루는 컨셉입니다.  

아래는 기획사 블로그에서 퍼온 자세한 정보입니다:




2015. 4. 23(목) 오후 8시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주  최 : (주)마스트미디어
후  원 :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미국 예일대학교 음악대학 동문회, the Strad 
입장권 : 전석 2만원 (학생 50% 할인)
예매처 : SAC Ticket 580-1300, 인터파크 티켓 1544-1555
문  의 : (주)마스트미디어 02-541-2513



[프로필]
 
바이올리니스트 허은무
 
바이올리니스트 허은무는 무대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관객에게 전달하며 한 순간에 관객을 매료시키는 힘을 지녔다. 그는 2003년 귀국독주회로 음악저널 신인음악상을 수상했으며, 그 이후의 독주회에서도 특색 있고 개성 있는 무대와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매 연주마다 주목을 받았다. 특히 2007년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개최한 독주회에서는 한국에서 잘 연주되지 않은 프랑스 작곡가의 근대음악과 한국 작곡가의 ‘거문고와 바이올린 듀오’를 선보이며 KBS FM 라디오 ‘음악실 초대석’에 출연해 본인의 음악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바이올리니스트 허은무는 예원학교, 서울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을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장학생으로 석사를 취득하였다. 선화음악콩쿠르, 조선일보 콩쿠르 등에서 일찍 두각을 나타낸 그는 미국 뉴욕 링컨센터, 미국 예일 대학, 러시아 차이코프스키 음악원홀, 핀란드 등에서 연주했으며, 프랑스 국제 음악캠프의 강사로 초빙되어 그의 음악적 시야를 넓힌 바 있다.
 
그는 독주회 개최뿐만 아니라 솔리스트로서 코리안심포니, 서울 필하모닉, 프라임 오케스트라, 안산 시립국악단과 협연하였고, 특히 2013년에는 대구 MBC 오케스트라와 베토벤 콘체르토 솔리스트로 호평을 받았다. 허은무는 현악 체임버 단체인 Joy of Strings 악장을 역임하였고 지금은 앙상블 판(Ensemble PAN)의 리더로 활동하며, 솔리스트, 실내악 연주자, 오케스트라 악장 및 연주 코디네이터로서 새로운 현대곡 발굴에도 기여하고 있다. 
 

 



[프로그램]
 
현재와 과거
 
A. Vivaldi  
The Four seasons
 
김성애  
'Sound of Soundless'(소리 없는 자의 소리) Violin Solo and Chamber Ensemble (2014)
 
신지수  
제4의 언어(The Fourth Langu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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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지난 일이지만 기록을 위해 남깁니다. (우진아 미리 홍보 못해서 미안 ㅠ)




오르가니스트 최우진의 독주회가 2015년 4월 17일 영산아트홀에서 열렸습니다.  이 때 제 곡이 초연 되었습니다. 

레알 토하면서 쓴 곡입니다(자세한 이유는 개인적으로 물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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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8.31 22: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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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유학했던 영국 사우스햄턴에서 달팽이관 이식술을 받은 청각 장애인이 감상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연구가 진행중이었는데, 그로 인해 청각장애인 또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게 5년 전 일이었는데, 무의식에 자리잡았던 지적 호기심을 이번 기회에 (과다)충족 시키게 되었습니다.  인터넷 바다에서 헤멘게 다이지만, 나름 공부가 많이 되었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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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잡지에 실린 글의 원고입니다:


"청각장애인이 듣는 베토벤" - 청각 장애가 있어도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들그리고 베토벤의 후기 음악


보통 사람들은 음악은 소리에 의한 예술이라고 당연스럽게 생각하고듣는 것에 문제가 있으면 음악을 들을 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렇기 때문에 귀머거리가 된 작곡가 베토벤을 매우 불쌍한 존재로 보거나반대로 역경을 극복한 인간승리의 존재로 여기게 된다하지만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전혀 음악을 할 수 없는 것일까?

온전한 청각을 지닌 사람이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소리는 그 근원지로부터 진동의 형태로 공기를 타고 귀까지 전달되어 온 것이다.이 진동이 귀의 청각 신경을 자극하여 경우에 따라 음악을 구성하는 하나의 음으로 인지되는 것이다이러한 복잡한 단계들 중 어느 것이라도 방해를 받으면 음악 감상에 저해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이 모든 과정 자체가 전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예를 들어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은 그 장애의 종류에 따라 공기의 진동이 귀에 전달이 되지 않을 수도 있고청각 신경에 손상이 가서 전달 된 공기의 진동을 처리하지 못하는 수도 있다1.

중요한 것은 소리의 근원은 진동이라는 사실이다그렇다면 진동을 귀로는 느끼지 못하더라도 신체의 다른 기관으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우리가 클럽이나 행사장 같은 곳에서 아주 큰 스피커로 낮은 음을 들을 때에는 온몸으로 진동이 느껴지는 듯한 체험을 할 수 있다이것은 귀로 전달되는 자극과 더불어 다른 감각기관에서도 느껴지는 것이므로 청각에 문제가 있는 사람도 느낄 수 있는 자극이다또한소리를 내는 근원지에서 생성되는 최초의 진동을 직접 피부로 느낀다면공기라는 매개체를 거쳐 귀로 듣는 과정 자체가 필요없게 된다.

베토벤이 작곡을 할 때 즐겨 사용한 피아노는 어떻게 해서 소리를 내는 악기인가건반을 누르면 레버들이 작동하여 해머가 피아노 본체 안에 설치된 줄을 때리고그 줄에서 나는 진동이 공기를 거쳐 소리가 되는 것이다청각을 상실한 베토벤은 이 피아노 줄에 막대기를 대고 이것을 얼굴에 대면서 소리를 느꼈다고 한다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청각장애인이 음악수업을 원활히 참가하게 돕는 장치가 영국에서 개발되기도 하였는데이는 손가락을 통해 진동을 직접 느끼게 해 주는 장치이다2.

한국에서도 비슷한 장치가 개발되었는데손가락이 아닌온 몸으로 진동을 느낄 수 있는 의자 형태의 “뮤직 시트”이다이는 음악에서 나오는 여러 음들의 높낮이를 다양한 주파수로 변환하여 의자의 다양한 부분에 설치된 스피커에 전달하는 도구이며 이는 서강대 예술공학 박사 송은성씨와 현대차 기업 브랜드 마케팅 팀의 합작품이다3.

그렇다면청각 장애인이 듣고 연주하기 좋은 음악이나 악기가 따로 있을까?

청각장애인이자 세계적인 타악기 연주자인 에블린 글레니(Evelyn Glennie)는 타악기 소리를 진동으로 느끼며 연주를 하고이를 더 수월하게 하기 위해 맨 발로 무대위에 선다청각장애가 있으면서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상상하기가 어렵지만의외로 여러 교육기관에서 오히려 악기연주를 적극 권장하는 추세이다4대체로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이 악기를 연주하고자 한다면음 높이를 미세하게 조정해야 하는 바이올린과 같은 악기보다는 타악기나 음의 진동을 직접 느낄 수 있는 하프기타등의 악기를 선호하고호흡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관악기의 경우 정해진 위치에 음높이가 고정되어 있는 목관악기가 연주에 용이하다5청각장애인을 위한 달팽이관 이식술(cochlear implant)이 발달한 영국 연구팀의 자료를 보면 환자들이 음악을 인지하는 과정에 주기적인 강한 비트가 들어간 드럼을 활용한 음악이 감상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6.

베토벤이 말년에 작곡한 많은 곡들특히 피아노 소나타의 특징을 보면 빠른 반복과 엄청나게 긴 트릴을 자주 사용하였고피아노의 양쪽 끝 극단적인 음역대의 소리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페달을 남발하기도 했다7베토벤 후기 소나타의 악보를 보면 어떤 경우는 몇장에 걸쳐서 시커먼 음표들이 수많은 덧줄에 걸쳐져 반복적으로 작곡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이는 실제로 연주하면 감상자에 따라 매우 지저분한 소리로 인식되기도 한다이렇게 음악의 진행감은 더디면서 소리의 진동만 증폭되는 소리들은 약간의 광기와 음향적인 탐색의 열망이 더해지지 않으면 당시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음악 구조이다이런 특징들로 인해 말년으로 갈 수록 괴짜로 악평이 나버린 작곡가이지만그러한 평가는 어쩌면 귀가 온전한 사람들의 편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이 음악은 어쩌면 청각장애가 있는 감상자들에게는 더욱 즐거운 음악일 수도 있겠다천재 작곡가가 귀가 온전하지 못하여 소리를 진동으로 느껴가며 작곡한 음악이라면 멀찌감치 앉아서 팔짱을 끼고 듣는 것 보다는 피아노에 온 몸을 기대고 진동으로 느끼며 감상했을때 가장 감동적으로 들려오는 음악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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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음악치료학의 이해와 적용 (2005 정현주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p.70

2ablenews “청각장애인도 음악을 즐길 수 있다” 9/08/2006 기사박화중http://www.imdusa.org/imd/ablenews/090806ablenews.html

3청각장애인用 카시트 개발 김은정 기자 -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5/26/2013052602416.html?Dep0=twitter

4http://www.mtabc.com/page.php?61

5http://www.stthomas.edu/rimeonline/vol1/hash.htm

6http://www.sciencedaily.com/releases/2015/01/150126112432.htm

7http://www.theguardian.com/music/2012/nov/19/feel-music-deaf-children-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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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음악의 특징을 자신의 작품에 활용한 현대음악 작곡가 리게티, 그의 피아노 연습곡 1권의 1번.


우리가 평소에 듣는 대중음악이나 가요, 동요 등은 비교적 단순한 리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다들 하나의 리듬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음악들이다. 음악이 하나의 리듬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할 만큼 우리는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리듬이 진행되고 있는 음악을 상상하기 힘들어 한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리듬을 가진 음악이 일상적으로 들리는 곳이 이 세상에는 여러 군데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이다.


리듬”은 커녕 “음악”이라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는 언어를 구사하는 사하라 이남의 부족들은 리듬 자체를 인간의 삶의 일부로 봐 왔다. 엇갈려 부딫히는 서로 다른 리듬은 도전, 또는 정신적 갈등을 상징하고, 일정한 비트로 평화롭게 반복되는 리듬은 말 그대로 평화와 번영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리듬으로 인간사를 표현하는 만큼 그 다양성도 말할 수가 없는데, 우리 귀로는 이해하기 힘들정도로 복잡다단하게 리듬들이 얽혀가며 진행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일정한 박자, 또는 “비트”라는 개념이 모호해 지면서 기준을 삼을 박자를 찾지 못하고 영원히 흘러가는 듯한 음악으로 인지되는 것이다.


하나의 일정한 박자를 유지하는 단순한 음악은 사실 서양음악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리듬이 아무리 복잡해도 그들은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단위 박이 존재하게끔 음악이 설계되었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복합적인 리듬보다는 동시다발적으로 울리는 음 높이들의 구조, 즉 ‘화성’을 중시하는 것이 서양음악의 가장 큰 특징이다. 결과적으로 서양음악의 전통에서 파생된 대중음악도 일정한 패턴을 계속 반복하면서 멜로디와 화성을 강조하는 음악이 대세를 이루게 된 것이다. 한편, 서양음악의 전통을 이어오면서도 새로운 영감의 원천을 찾아 헤메던 현대음악 작곡가들은 다른 문화권에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는데, 헝가리 출신 작곡가 죄르지 리케티(György Ligeti)는 앞서 언급한 사하라 이남 지역의 리듬을 자신의 피아노 연습곡에 응용하기 시작하였다.


피아노를 위한 음악이면 극소수의 곡을 제외하고 대부분 두 손을 위해 작곡되며 악보도 오른손과 왼손을 위한 오선보가 따로 존재하고 둘이 나란히 놓여있다(주변의 피아노 악보를 참고하시라). 그렇다면 당연히 오른손과 왼손이 같은 박자표(2/4, 4/4, 3/4 )을 보며 동시에 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리게티가 작곡한 피아노 연습곡 1번은 이러한 기본적인 법칙조차 무시가 된다. 첫 세마디는 그렇게 되는 듯 하더니 한 음 간격으로 두 손이 엇갈리면서 악보를 가로짓는 마디줄이 중간에 끊기고 마치 바코드가 찢어진 것 처럼 엇갈리기 시작하더니 곡의 마지막까지 거의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가 박자를 셀 때 기본적으로 외치는 “강, 약”이 각 손마다 다른 것이다. 당연히 피아니스트들의 원성이 자자했을 것이고, 리게티가 이미 유명한 작곡가가 아니었다면 이 곡은 영영 무시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몇몇 용기있는 피아니스트들이 도전을 하였고 그들의 눈물겨운 노력 끝에 이 곡은 비교적 스탠더드한 레퍼토리가 되어있다.


아프리카에서는 각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맡은 리듬을 하나씩 연주함으로 인해서 엇갈리게 되는 박자를 한명의 인간이 피아노로 서로 다른 박자표를 보면서 연주하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전해 들은 이야기로, 이 곡을 연주해야 하는 누군가가 현대음악 피아니스트로 유명하며 리게티의 연습곡으로 음반을 낸 피에르 로랑 에마르(Pierre Laurent Aimard)에게 도대체 어떻게 이 곡을 연습하는지, 요령을 좀 알려달라고 했다 한다. 그의 대답은, “결국 연습밖에 답이 없습니다. 피아노 앞에서는 물론이고, 버스에서, 길을 걸으면서 항상 양손이 다른 리듬을 치는 연습을 꾸준히 하십시오. 언젠가는 익숙해 질 것입니다”라고 다소 상투적인 대답을 해서 질문자는 요령껏 헤어나올 수 없는 이 어마어마한 과제앞에 더욱 좌절했다고 한다. 이 곡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만 해도 극히 소수의 연주자만이 연주를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피아노 콩쿨에 단골로 연주되며 피아노를 전공하는 학생들도 연주에 도전을 할 정도이니, 인간의 능력은 역시 그 한계를 모르고 발전하는 듯 하다.


사실, 복합리듬을 음악의 한 요소로 구성하는 문화권은 아프리카 외에도 인도, 카리브 등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우리나라의 장단도 다소 그런 요소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월드 뮤직’의 장르하에 소개되는 여러 문화권의 대중음악은 이상하게도 리듬의 복잡성을 완전히 배제한, 서양의 대중음악의 구조를 지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계를 지배하는 듯한 서양 문화권의 영향력으로 인해 이렇게 풍부한 리듬자원(?)을 가진 전세계의 음악들이 주목을 받지 못하고 쇠퇴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대중음악에서 단지 가창력이나 단순한 반복만이 아닌, 복잡한 리듬도 즐길 수 있기 위해 우리도 피아니스트 에마르를 본받아 양손으로 각기 다른 리듬을 연주하는 연습을 생활화 하자고 하면 너무 지나친 요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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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서울] 2월호 보러가기(새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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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는 역설적으로 모든 것을 잠시 멈추고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느리고 여유롭게 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해 질 때가 있다. 음악도 시대를 반영한 예술이다보니 전체적으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빨라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에 반하는 움직임으로 느린 음악을 만드는 사조도 생겨곤 하였다. 특히, 서양예술의 한계를 느낀 전위예술가들이 20세기에 들어와서 동양 철학과 예술을 접하고 돌아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도 하는데, 이 때 시간의 개념이 서양의 그것과 다른 흐름으로 진행되는 음악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느림’에 대한 갈망은 음악에서도 반영될 때가 있는데, 이를 극단적으로 반영한 두개의 20세기 후반 작품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1. Organ2/ASLSP

전위예술하면 둘째가라 서러워할 존 케이지(John Cage)의 음악 중에, "최대한 느리게(as slow as possible) 연주할 것"이라고 지시사항이 적혀있는 작품이 있다. 하지만, 대체 얼마나 느려야 "최대한 느리게"인걸까?

그 의문을 지금 독일에서 풀기 위해 옛 동독지역의 작은 마을 교회에 설치된 파이프오르간에서 지금도 음악이 흐르고 있다. 할버슈타트(Halberstadt)라는 이 곳의 교회에 설치된 오르간에서는 존 케이지가 작곡한 "Organ2/ASLSP" (ASLSPAs SLow aS Possible의 약자)가 현재 13년째 연주되고 있는 것이다.

본래 피아노용으로 1985년에 작곡되고 1987년에 오르간 용으로 편곡이 된 이 곡이 작곡된 지 10년이 지난 1997년에 트로싱겐(Trossingen)에서 열린 오르간 심포지엄에서 이 곡을 대체 어떻게 해석하여 연주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위해 오르가니스트, 엔지니어, 설계사, 음악학자 등이 한데 모였다. 결국 이들이 내린 결론은, 이 곡은 이론적으로는 영원히 연주될 수 있으며, 현실 세계으로는 파이프오르간의 자연수명에 따라 연주시간이 달라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 곡을 연주할 수 있는 현대의 조율법에 따른 옥타브 내 12음이 모두 존재하는 오르간이 최초로 만들어진 곳이 할버슈타트이므로, 이 곡을 연주할 수 있는 오르간 중에 가장 오래된 악기가 이곳에 있다. 이 악기가 만들어진 연도는 1361. 만약 2000이라는 숫자에서 1361을 뺀다면 639라는 숫자가 나옵니다. 그리하여 상징적인 의미로서 할버슈타트에서 639년간 연주를 하기로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6세기에 걸쳐 연주될 존 케이지의 곡은, 한 음이 바뀌는 간격이 대부분 1년이 넘는다(보통 음악에서 아주 긴 음도 몇초가 넘어가지 않는 걸 생각한다면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어마어마한 속도인 셈이다). 그래서 음이 바뀌는 중요한 순간을 사람들이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것을 직접 체험하러 음이 바뀌는 날에는 수많은 관광객과 음악애호가들이 성당 주변으로 몰려온다.

현재까지 열 세번 음이 바뀐 적이 있었는데, 가장 최근에 바뀐 음은 2013105일이었고, 이는 약 7년간 지속될 계획이다. 그러므로 음이 바뀌는 현장에 가보고 싶은 사람은 202095일까지 기다려야 한다. 벌써 곡이 상당히 진행 되어서 626년밖에 연주시간이 남지 않은 존 케이지의 ASLSP를 조금이라도 라이브로 직접 들으실 분들은 늦기 전에 독일행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의 여유가 없으신 분은 너무 낙담하지 않아도 좋다. 왜냐하면 이보다 더 긴 1000년짜리 곡도 존재하기 때문이다.[각주:1]


2. 롱플레이어(Longplayer)

작곡가이자 설치예술가인 젬 파이너(Jem Finer)에 의해 만들어진 “롱플에이어(Longplayer)”1000년의 주기로 반복이 되는 패턴으로 된 음악이다. 이 음악에 재료로 쓰이던 원곡은 2020초 짜리인데, 이를 다양한 길이와 음 높이로 변환하여 6개의 패턴이 1000년간 단 하나도 같은 조합으로 이루어지지 않게끔 작곡된 곡인데, 악기로는 티베트 싱잉 볼(Tibetian singing bowl)을 활용하고 있다. 사실상 1000년 주기로 반복이 되기 때문에 관리만 꾸준히 된가면 영원히 지속되는 음악인 것이다. 작품에서 태양계의 원리도 함께 담고자 하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런던 근교에 설치물이 준공된 후 19991231일 자정부터 연주가 시작되었다.

롱플레이어의 소리를 듣고자 하는 사람은 롱플레이어 홈페이지에서 인터넷 생방송으로 언제든지 현재의 진행되는 음악을 스트리밍 받아서 들을 수 있으며, 직접 듣는 것은 연주가 실제 이루어지고 있는 설치물이 있는 곳( 런던 근교의 Trinity Buoy Wharf 내 등대)으로 방문해야 한다.


도저히 한 사람의 일생에서 다 들을 수 없는 어마어마하게 긴 음악들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도 신기한데, 이것을 실현시키기 위한 수많은 사람들과 단체 및 재단의 노력을 생각해보니, 예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이 작품들의 어느 점, 무엇때문에 이토록 많은 자원과 노력을 쏟아붓는 것일까? 이를 통해서 얻으려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이 작품을 위해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 연주가 끝나는 순간)을 자신의 생애에 절대 목격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존속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것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조차 분명하지 않다. 마치 자식을 낳아 기르고 그들이 자식을 낳는 끝없는 삶의 고리를 자신의 한정된 생애에서 부분적으로만 형상화 하듯이 말이다.

경제 논리로 모든 것이 돌아가는 사회에서는 이루어 질 수 없는 극단적인 예술형태들이 영국과 독일에서 이루어 지고 있는 것은 그들이 선진국이기 때문일까? 롱플레이어를 현실화 시키는데 도움을 준 단체인 아트엔젤 신탁(Artangel Trust)20여년간 이러한 불가능에 가까운 해괴망측한 예술작품을 후원해 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문화에 대한 관심과 후원이 늘어나면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수세기에 걸친 음악이 연주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자료출처:

www.aslsp.org

longplayer.org




2012/10/01 - 세상에서 가장 느린 음악 - 존 케이지의 639년짜리 오르간 곡 Organ2 / ASLSP


  1. 이 내용은 예전 블로그 글에서 발췌하였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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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서울] 1월호 보러가기(새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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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에서는 옛 클래식 음악에서 이전 음악을 인용하거나 재료로 사용한 것과 가요계의 표절논란을 예로 들면서 독창성과 저작권에 대한 음악계 내에서의 담론을 소개한다

작곡공부를 갓 시작한 대학생때, 한참 밤 늦도록 술을 마시고 흥에 취해서 집에 오다보면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생각이 안나던, 너무나 기발하고 획기적인 악상들이 떠오르곤 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자마자 오선지에 정신없이 휘갈겨 쓴 후 뿌듯한 마음에 잠이 들고, 다음날 일어나보면 그 악상들은 어이없게도 모두 대가의 곡들을 표절 한 것이었다.  술김에 대가의 곡이라는 사실을 기억 못한 것이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음악이 너무나도 많고그 음악들과 대적할 만한 새로운 음악을 무에서 창작하려면 굉장히 막막할 때가 많다.  그래서 기존의 음악에 경의를 표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재료로 삼기도 하는데, 이 때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훌륭한 창작물이 될 수도 있고, 범죄가 될 수도 있다.  


전통적인 서양음악에서 교회음악의 역할은 매우 컸고, 그 영향으로 단선율로 이루어진 그레고리오 성가를 재료로 삼은 무수히 많은 곡들이 탄생했다.  이 때의 그레고리오 성가 또한 당시 유행하던 노래들을 본따서 만든 성가였다.  하지만, 그 선율을 바탕으로 탄생한 작품들은 본래의 성가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양식이 달랐다


종교개혁 때 라틴어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이를 노래로 표현할 새로운 교회음악이 필요했던 마틴 루터는 자신이 직접 작곡도 했지만, 그레고리오 성가를 많이 가져다가 사용한다.  바하는 수백개에 달하는 이러한 단선율에 화성을 붙이는 작업을 한 후 이를 자신의 칸타타 등에 인용하였다.  교회에서는 본 예배 이전에 오르간 연주로 성가의 선율을 가지고 변주곡을 연주한다.  '바하 코랄'로 불리는 이 코랄집은 그 후로는 작곡 공부에 많은 도움을 주는 "성서"가 되었고, 무수히 많은 작품들의 소재로 쓰인다


이렇게 옛 것에 대한 경의와 변화에 대한 열망이 적절히 배합되어 발전된 형태의 음악이 탄생하는 아름다운 역사도 있지만, 현실은 항상 이상적이지만은 않다.


인터넷이 발달하기 이전인 90년대까지는 외국의 음악을 듣는 것이 쉽지 않던 환경에서 마치 신문물을 수입하듯이 들여오는 색다른 스타일의 음악에 한글 가사를 입힌 가요들이 우리나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시절이 있었다. 밀리 바닐리의 “Girl, you know it’s true”를 응용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Shaggy의 “Oh Carolina”를 거의 바꾸지 않고 쓴 룰라의 “날개잃은 천사” 등의 노래는 90년대 초에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고, 지금처럼 즉각적인 표절시비가 붙지 않았다. 이는 마치 시간에 쫒겨 외국의 디자인을 모방한 모델로 신제품을 내는 한국의 기업들과 비슷했고, 경제적 성과를 위해 그 정도는 눈 감아줄 수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런 것이 용인 되다 보면 여러가지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낳는다. 조금만 인기있는 상품은 모방 제품이 넘쳐나서 경쟁력을 금방 잃게 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보다는 순발력과 잔머리가 더 성공에 유용한 도구가 되어간다.


사실, 어디까지가 개인의 고유한 창작의 영역인지에 대한 구분은 모호하고 장르마다 기준이 다르다. 영화음악계에서는 실질적인 작업은 편곡자들이 거의 다 하면서 완성된 음악의 작곡가는 유명 영화음악가의 이름으로 내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렇지 않는다면 실질적으로 그 영화음악가들이 직접 모든 작업을 할 시간조차 없다. 동일한 작곡가가 여러 작품을 만들때도 문제이다. 같은 소재로 조금씩 변화를 줘서 새로 발표할 경우, 이를 온전한 새 곡이라고 말 할 수가 있을지 의문이다. 심한 경우 자가표절 논란이 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의 재료를 본인이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을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비발디에 대해서 20세기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는 “똑같은 곡을 100개 쓴 사람”이라고 비꼬았다. 시대에 따라 “새로운 곡”에 대한 기준이 달라진 것이다. 예전의 서양 클래식 음악이 모두 조성음악의 틀과 법칙에 따랐다면 이제는 작곡가들이 각자 자신만의 틀과 법칙을 개발해야 하고, 이를 비슷한 형태로 너무 많이 사용해도 좋지 않은 시선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극대화된 독창성에 대한 강요가 반대로 잘 알려지지 않은 다른 작품을 베끼는 식으로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하지만, 똑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비슷한 곡을 여러개 작곡했더라도, 그 중 몇 안되는 곡이라도 후세에 남아있다면 그는 위대한 작곡가인 것은 사실이지 않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남의 것을 사용하는 것 보다는 자신의 것을 이리저리 굴려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사실, 바하 코랄처럼 과거의 재료를 새로이 응용하는 것도 아름다운 창작행위이다. 결국, 남의 것이라도 출처를 분명히 밝히고 더 발전된 형태의 작품을 위한 의도로 사용 되었다면 이것도 도둑질이라고 보기 어렵다. 결국 창작자의 마음속을 들여다 보기 전에는 그것이 표절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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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기의 발전은 어디까지 가능한 것인가

- 개량악기의 특징과 장단점(서양 원전악기와 비교)


오늘날 어린이가 음악을 배울 때 피아노를 빼놓을 수가 없다. 동네마다 피아노 학원이 주변에 있고, 어느정도 칠 수 있는 사람도 주변에 흔하고, 피아노를 전공해서 레슨을 할 수 있는 전문가도 부족하지 않게 공급되고 있다. 요즘에는 전자키보드에 밀려 그 위력이 약간 적어진 감이 있긴 하지만, 수많은 음악 애호가들이 피아노를 독학을 하거나 교습을 받아가며 연주를 하려고 한다. 가히 “국민악기”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러한 피아노는 왜 이렇게 여러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것일까?


피아노라는 건반악기는 역사가 매우 깊다. 피아노의 전신으로는 쳄발로, 또는 하프시코드라(cembalo, harpsichord)라고 불리우는 악기가 있는데, 이는 현재의 피아노와 음색이 매우 다르다. 건반을 누르면 그와 연결된 조그만 바늘과 비슷한 부품이 몸체 안의 현을 뜯는 걸로 인해 쳄발로는 소리가 나는데, 이런 방식의 구조로는 사실 소리의 크기를 조절할 수는 없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현을 때리는 해머(hammer)로 소리를 내는 방식이 개발이 되었는데, 이 해머의 재질이 오랜 세월에 걸쳐 개발되고 보완되면서 오늘날의 부드러운 피아노 음색이 생기게 된 것이다.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부드러우면서도 심지가 굳은 피아노 음색은 이렇게 수 세기에 걸친 개량과 발전을 통해 오늘날의 형태를 띄게 된 것이다. 서양악기 중에 최고의 진화를 이룬 피아노에 필적할 만한 악기가 다른 나라에도 과연 있을까?


국악기들과 그와 비슷한 기능과 연주 형태를 가진 서양악기들을 비교해 보면 서양의 악기들은 대체로 기능이 더 추가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금이나 단소, 피리와 같이 나무에 구멍이 뚫려 있던 옛 관악기들(플룻, 클라리넷)에 구멍을 덮는 장치를 만들어 더욱 정확하고 깔끔한 음의 변화가 가능하게 되었고, 본래 목관악기였던 플룻은 금속의 더 견고하면서 섬세한 재질로 바뀌어 나가는 등, 새로운 소재의 개발도 지속되는 경향이 있었다. 결국 시대가 변하면서 악기 자체도 변하게 되는데, 이전 시대의 음악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다소 발달이 덜 되어 있는 불편한 악기더라도 해당 시기의 악기를 사용해서 연주해야만 그 음색이 온전히 재현될 수 있다는 주장 하에 ‘원전악기 연주’, ‘원전 연주’가 자체적으로 영역을 형성하고 있다.


문명의 이기와 테크놀로지가 발전하듯이 모든 악기들 또한 발전을 하게 마련이고, 갈 수록 현란해지는 연주자의 테크닉과 그와 맞물려 갈수록 화려해지는 음악의 구조로 인해 이를 더욱 효과적으로 연주하기 위해 악기의 성능은 나날이 좋아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국악기의 경우는 어떠한가?


본래 12개의 줄로 만들어졌던 가야금은 현재 25개 까지 늘어나 있어서 가야금 주자는 다양한 가야금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안다. 거문고는 본래 6개의 줄로 이루어져 있지만, 10개의 줄로 이루어진 거문고도 존재한다. 이는 이전의 한국 음악에 비해 화성이나 선율적 구조가 서양음악의 영향으로 더욱 현란해져서, 제한된 음에 혼을 담아 연주하던 전통국악에 비해 현재의 창작국악은 더 빠르게 여러개의 음을 연주해야 하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일 것이다. 실제 25현 가야금이 조율되어 있는 형태를 보면, 하프의 중저 음역대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소리가 난다.


정작 서양의 현악기들은 시대가 바뀌면서 오히려 줄이 줄어드는 추세였다. 기타의 옛 형태인 류트나 테오르베는 20개에 가까운 줄들이 있었고, 바이올린의 전신인 비올은 줄이 6개였다. 줄의 개수가 시대에 따라 줄어든 원인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각 음의 음색을 더 중요시 하며 정확하게 연주를 하기 위한 수요가, 동시에 여러 음을 연주하고자 하는 열망보다 더 컸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다.


북한의 악기들도 개량이 많이 되어 있다고 한다. 남한에서는 두개의 현으로 이루어진 해금은 북한에서는 바이올린과 같이 4개의 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금과 피리와 같은 관악기에 서양의 플룻과 같은 관악기처럼 덮개가 장착된 경우도 있다. 그리하여 북한의 국악기 음악은 더욱 현란하고 서양음악의 색체가 짙으며, 실제로 서양 오케스트라와 빈번히 섞어서 연주가 된다. 이렇게 되면 조선시대의 국악기에서 많이 멀어지게 된 결과를 낳는데, 이럴 경우 서양의 바이올린과 비올이 다른 악기처럼 취급되어 연주가 따로 되듯이 국악기도 더욱 다양한 악기들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일까?


이와 같은 의문을 현재 음악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에게 물어보았더니 많은 학생들이 거부감을 나타냈다. 국악기를 지나치게 개량 할 경우 국악기 특유의 음색이 사라지기 때문에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피력하는가 하면, 21세기인 지금 사용되는 악기라면, 이미 발전할 만큼 했고, 어지간한 실험은 다 이루어졌을 테니 악기를 이용한 더이상의 무리한 실험은 부작용을 낳는다는 견해를 밝힌 학생도 있었다. 이 즘에서 서양악기의 역사와 관련한 의문이 들었다. 만약에 쳄발로의 음색을 아름답다고 생각한 당대의 음악가들이 악기 개량을 포기했다면 오늘날 피아노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까? 비올의 음색이 완벽하다고 느끼고 개량을 소홀히 했다면 현재 바이올린의 줄은 6개였을까?


전통의 유지와 시대적 흐름과의 사이에 갈등하는 것은 일개 악기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의식주, 문화, 예술, 건축, 기술 등 우리의 삶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변화와 전통의 충돌은 피할 수가 없다. 우리가 연주하는 이 악기들이 더욱 연주가 편했으면 하는 열망과, 이제까지 아름답게 들었던 이 음색들을 유지하고픈 마음 사이에서 악기 제조가들은 늘 선택의 기로에 서 있으며 이들의 선택을 돕는 것은 악기를 연주하고 그 음악을 듣는 우리 모두의 몫일 것이다. 여러분은 전통의 유지와 시대적 진보 중 어느 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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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국악원해체 2015.04.13 0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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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국립국악원 해체 2016.04.09 2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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