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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야기/칼럼

[문화 + 서울] 10월호 칼럼: 1세대 한국 서양음악 작곡가들의 선율


우리나라에 서양음악이 보급된 것은 서양문물이 보급된 개화기 시절 무렵이 그 시작점이다. 그 무렵은 하필면 일제 강점이와 맞물리기도 하고, 그리하여 친일행각을 벌인 것으로 의심되는 음악가들의 영향을 지금까지 받고 있다. 어찌됐건, 그들이 배운 것을 토대로 창작된 음악을 씨앗 삼아 현대 한국의 음악이 꽃 피우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 시절에 작곡된 곡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중학교에 입학하여 첫 음악시간에 배운 노래는 홍난파가 작곡한 “고향생각”이었다.

이은상의 시로 작곡된 “고향생각”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어제온 고깃배가 고향으로 간다하긔

소식을 전차하고 갯가으로 나갔더니

그 배는 멀리 떠나고 물만 출렁거리오


고개를 수그리니 모래씻는 물결이요

배뜬곳 바라보니 구름만 뭉게뭉게

때묻은 소매를 보니 고향 더욱 그립소


당시 예민한 사춘기의 귀로는 이 노래가 그렇게 어색할 수 없었다. 일단 선율 자체가 매우 동요스러운데 그에 상응하는 가사는 늙은이에 가까운 어른의 정서를 담은 것이 부자연스러웠다. 서울의 어느 병원에서 태어나 평생을 아파트에 살았던 대부분의 친구들은 이 가사가 그다지 와닿지도 않았겠지만, 서양음악과 동요에 길들여져서 선율 자체의 느낌은 익숙했을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뜯어보면 선율 자체도 그다지 아름답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특별히 개성있는 멜로디는 아니었는데다가 가사도 어색하게 붙어있고, 4/4박임에도 불구하고 서양음악의 대표적인 2+2 프레이징이 철저하게 지켜지지도 않는다.


특히 이 부분이 그러하다:

물만/ 출렁///(5마디)


결국 물만 출렁거린다는 표현에서 “거”와 “리”가 굉장히 강조가 되는 구조로 멜로디가 만들어졌다. 그나마 2절은 조금 낫다. 같은 불안정한 5마디 선율이긴 하지만 “그”와 “립”이 강조가 되었으니까. 당시 음악교과서에서는 전형적인 4마디 선율에서 마지막 세 음절에 늘임표(페르마타)가 붙은것이나 다름없다는 나름의 설명이 담겨있긴 한데, 그렇다면 그냥 4마디로 두면 나을 것을 왜 저렇게 바꿔놨난 하는 의아함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일단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이번 건은 개인적인 음악적 취향의 차이 때문이라고 해두기로 한다.



사실 2+2 프레이징이 안 지켜지는 대표적인(더 끔찍한) 예는 윤석중 작사, 윤극영 작곡의 어린이날의 노래이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라난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시만 읽었을때는 당연히 우리나라의 시조와 흡사하게 4개의 단어로 각 행이 이루어져 있고 이것이 일정하게 유지 되어있어서 노래도 이에 상응하게 작곡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어린이날 노래는 그렇지 않다.

날아라/ 새들아~/ ~/ ~~/~(5마디)

달려라/ 냇물아~/ ~/ ~~/~(5마디)

오월은/ 푸르~/~ /우리들은 /자란~/~(6마디)

오늘은/ 어린이날/ ~/~~/~(5마디)


이런 박자 시스템은 과장되게 생각하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연상시키는 불안정함을 담고 있다. 어린이날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던 이유가 결국 마음에 드는 선물을 받지 않았거나 놀이공원에 가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나보다. 이 노래가 얼마나 잘못 작곡 되었는지는 대학교때 작곡과 교수님이 열변을 토하며 설명하시곤 했는데 그때마다 속으로 크게 공감을 했었다.


지난해 음악인들 사이에서 어느정도 화제가 되었던 지휘자 구자범의 칼럼에서 언급된 애국가 또한 비판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한다.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되는 가사에 선율은 “해”와 “두”가 강조되게끔 쓰였기 때문이다. 원래 애국가는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멜로디를 사용했었다. 오늘날의 애국가 선율은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연상시키는 안익태의 “한국환상곡”의 마지막 합창부분인데, 이것이 1948이승만의 대통령령에 따라 국가의 멜로디로 정해진 것이었다. 그 사실만 본다면 안익태는 민족을 대변하는 위대한 음악가처럼 보이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에키타이 안”이라는 이름으로 독일 등지에서 활동했던 작곡가였던 안익태는 1942년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경축하는 '만주국 춘전곡'을 의뢰받아 4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큰 관현악과 혼성합창을 위한 교향적 환상곡 '만주'"를 완성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적인 맥락까지 생각을 해보면 차라리 독립투사들이 가사만 바꿔 불렀다는 “올드 랭 사인” 선율이 훨씬 애잔하고 아름답게 들려온다. 최근에는 가수 김장훈, 올드 랭 사인 곡조에 애국가 가사를 붙인 속칭 '독립군 애국가' 2012년 하계 올림픽 응원가로 리메이크하여 발표하기도 하였다.


안익태, 홍난파, 윤석영 등의 개화기 음악가들이 서양음악의 도입과 보급에 지대한 공을 세운것은 사실이지만, 어쩌고 보면 서양음악이 국악보다 우월하다는 위험한 인식도 함께 보급한 셈인데다가, 서양음악에 대한 제대로 기초가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음악적으로 세련되지 않은 노래들을 만들어 이것들이 현재에도 불리우게 되어 지금 우리에게까지 피해 아닌 피해를 끼치고 있다.


사실 이런 현상은 개화기의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던 그 시절에 팽배했던 인식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현재에는 표면적으로는 많이 사라졌고 우리의 것을 소중히 하려는 움직임이 일단은 생겨났다. 하지만, 서양의 어법으로 깊게 물들어버린 한국의 음악적 전통과 음악인들의 귀는 돌이킬수가 없을 것이라는 점이 안타깝다. 많은 젊은 국악인들이 악기는 국악기를 타고 있는데, 서양의 음악적 패러다임으로 그 악기들을 연주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원문 보기(문화+서울 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