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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야기/칼럼

[문화+서울]작곡가는 단명한다? - 100세를 넘긴 작곡가들 소개


천재는 오래 살지 못한다고 하였는가? 최소한 음악에서는 슈베르트, 모짜르트, 베토벤 등 단명했던 천재 작곡가들이 존재하고 이들이 짧은 생애에 남긴 주옥같은 작품들을 보면, 너무나 열렬히 창작욕을 불태우는 바람에 그 불씨가 오래 가지 못하였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젊은 나이인 30대에 운명을 달리 하였다.


운동선수나 모델 등, 젊은 신체가 중요한 특정 직업을 제외하면 이제 갓 자신의 분야에 본격적으로 몸을 담그고 활동하기 시작할 나이인 30대에 이미 요절했던 이들 작곡가들과 달리 대기만성하며 오래 살았던 작곡가들 또한 역사에 걸쳐 여럿 존재한다.


일단, 하이든(J. Haydn)은 당시로서는 매우 많은 나이인 77세까지 살면서 고전주의 시대의 주요 형식들(현악 사중주, 피아노 트리오, 관현악, 소나타 등)을 완성시키는가 하면, 후배 작곡가들인 모짜르트가 사망한 이후에도 활동을 하였다. 또한 20세기 프랑스 음악에 한 획을 그었던 작곡가 겸 오르가니스트 올리비에 메시앙(O. Messiaen)84세까지 살며 까마득한 후배 음악인인 정명훈 지휘자가 자신이 작곡한 투랑갈릴라 심포니를 해석한 것을 마음에 들어하기도 하였다. 출세에 관심을 두지 않고 평생의 절반을 넘게 멕시코에 은둔하며 작업을 하던 콘론 낸캐러우(C. Nancarrow)도 환갑을 넘긴 후부터 유명해 지기 시작하여 85년의 생애의 말년을 화려하게 보냈다.


이렇듯, 많은 작곡가들이 장수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이상하리만치 그들에 대해 무지하며 작곡가는 수명이 짧은 직업이라고 오해를 하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이번 기회에 100세를 넘긴 최장수 작곡가들 중 최근까지 살아있던 대표적인 분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엘리엇 카터(Eliot Carter, 1908-2012)

클래식계에서 명망이 높던 현대음악 작곡가인 엘리엇 카터는 하버드 대학에서 당시 미국의 대표 작곡가 찰스 아이브스(C. Ives)에게 지도를 받으며 음악을 전공한 후, 1930년대에 파리에서 공부한 후 귀국하여 자신의 나라 미국에서 활동하며 유럽 풍의 음악을 작곡하며 100세가 넘도록 활발히 작품활동을 하였다. 그가 100세가 되던 해인 2008년에는 뉴욕 카네기 홀에서 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축하공연이 열렸고, 이때 바렌보임의 피아노 연주로 그 해에 작곡된 곡을 초연하기도 하였다. 90세에서 100세 사이에 무려 40개가 넘는 곡을 작곡하였고, 100세를 넘긴 이후에도 약 20개의 곡을 더 썼다고 한다. 작곡가 자신이 100세 기념 음악회에서 인터뷰를 할때, 자신이 쓰는 현재의 음악을 음악사학자들이 어느 시대로 분류를 해야 할지 애먹는다고 밝혔다. 이미 “후기 카터 음악”으로 분류되었던 작품들을 발표한지도 수 세기가 지나버렸는데도 새로이 곡을 발표하였기 때문이다. 미국 현대음악사에 이토록 지대한 영향을 끼친 카터는 늘 밝고 긍정적인 표정으로 대중을 마주하였고, 그의 건강한 삶의 태도와 늘 쉬지 않고 작곡을 하는 꾸준함이 장수에도 보탬이 되었다고 생각이 든다.



2. 로이 더글라스(Richard Roy Douglas, 1907-2015)

영국의 작곡가이자 편곡자였던 로이 더글라스는 여러 영화음악과 현대음악 작품들을 편곡하였다. 특히, 김연아가 스케이팅 음악으로 사용하여 유명하게 된 ‘종달새의 비상’을 작곡한 랄프 본 윌리엄스(Ralph V. Williams)의 어시스트로 젊은 시절의 일부를 보냈는데, 윌리엄스의 말년에는 더글라스의 작품 기여도가 단순한 편곡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아서 어떤 곡은 윌리엄스의 뜻에 따라 더글라스의 이름으로 출판되기도 하였다. 실내악이나 현악 오케스트라 등 순수음악을 작곡하는가 하면, 라디오 프로그램 등 실용음악에도 기여를 한 더글라스는 평생 독신으로 살며 여동생과 말년까지 함께 살았다고 한다.



3. 버나드 비어만(1908-2012)

엘리엇 카터와 동시대를 살며 100세를 넘게 장수한 작곡가 비어만은 주로 대중음악을 작곡하였다. 본래 법학을 공부하여 법조계에 종사하다가 2차대전에 3년간 참전한 이후부터 작곡을 하기 시작하여 영화음악에 쓰인 노래들로 유명해졌다. 음악이 처음부터 본업은 아니었으나, 일과를 마치고 남는 시간에 오페라를 작곡하기도 하는 등 취미 이상으로 음악에 몰두한 결과 2차대전 참전하고 제대하기 직전에 오페라를 완성할 수 있었으며 이는 음반으로 출시되기도 하며 그가 활발하게 활동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사라 본, 프랑크 시나트라 등의 가수들이 그의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으나 1952년경 작곡가로서의 커리어에 종지부를 찍고 사업가로 변신하였고, 이후 수십년간 뚜렷한 작곡활동을 하지 않다가 1980년대에 아내의 설득에 힘입어 다시 작곡활동을 시작하여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노래 “Club Mambo”로 재기하였다. 6개의 음반을 출시하였으며,“We Have Something To Say”60세 노인들의 애환을 살짝 담기도 하는 등, 연로한 작곡가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담기도 하였다.



마치 10대때 공부 성적에 따라 평생이 좌지우지 될 것 같은 조급한 마음으로 인생을 시작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는 이렇게 100년에 걸쳐 인생의 여러 다양한 시기를 거친 작곡가들의 삶이 조금은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대게는 천부적으로 가진 재능을 최대한 갈고 닦아 젊은 시절에 빛을 발하고 그 성과를 말년에 누리는 삶의 형태를 대한민국의 표준으로 삼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삶이라면 그것이 언제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모르기 때문에 너무 이른(?) 중년의 나이에 자신의 인생을 결론짓지 말고, 70세가 되어 다시 작곡을 시작한 비어만이나, 100세가 넘도록 작품활동을 한 엘리엇 카터처럼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꾸준히, 느긋하게 보내는 삶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맥락에서 아직 이룬것이 없는 30대의 필자도 위에 언급된 최장수 작곡가들의 삶을 보고 용기를 얻는다. 인생은 60부터라고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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