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 이야기/칼럼

[문화+서울]대중음악의 세계화와 우리 사회

어김없이 한달이 속절없이 지나가고

이번 달에도 문화+서울에 칼럼을 기고했습니다.

아래는 편집되기 이전 원고입니다.  


---

국위선양 vs 소외계층과의 공감 -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음악가는?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지휘자 정명훈이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던 시기인 1974년에 차이코프스키 국제콩쿨에서 입상을 한 후, 서울에서는 그를 위한 카 퍼레이드가 열린 적이 있었다. 해외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콩쿨에서 피아노를 잘 침으로 인해 한국이라는 나라의 위상을 높인 것이 그때는 마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듯 국가적으로 칭송을 받을 일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많은 훌륭한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그와 같은 길을 걷고 있어서 오히려 너무 흔해진 느낌마저 들 정도이지만, 국위를 선양했다는 측면에서 훌륭한 연주자들은 많은 칭찬과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가 훌륭한 음악가라고 생각하며 연주를 즐겨 듣는 한국의 연주자들은 대부분 해외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여 이름을 떨친 후에 국내 활동을 하는 경우이다. 사라 장(Sarah Chang)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를 비롯, 로스트로포비치의 전격적인 지원을 받은 걸로 유명한 첼리스트 장한나(현재는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오페라 가수로 데뷔하며 모짜르트의 마술피리를 가장 잘 소화하는 소프라노라는 칭송을 받으며 지휘자 카라얀의 극찬을 들은 조수미, 독일 작곡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동양음악의 정서를 현대음악에 접목한 윤이상 등이 있는가 하면, 최근 들어서는 작곡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우는 그라베마이어 상을 탄 작곡가 진은숙 뿐만이 아니라 국제콩쿨 입상으로 인해 대중들에게 알려진 피아니스트 김선욱, 손열음, 안종도, 임동혁, 조성진 등도 음악 애호가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연주를 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 사람도 선진국 사람 못지 않게 훌륭한 연주를 뽐낼 수 있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그 연주자의 수준을 검증하는 척도라도 된 것처럼, 음악 애호가들은 너도나도 국제콩쿨 입상자들을 찾아다니고, 연주자들 또한 나이가 들기 전에 기를 쓰고 해외의 콩쿨에 도전을 한다. 음악의 본고장에서 공부를 하고 인정을 받는 것이 서양음악을 공부하는 연주자에게는 당연한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의 대중이 양질의 음악을 검증하는 능력이 부족한 측면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중음악의 현실은 어떠했는가?


90년대에만 해도 해외의 첨단 대중문화를 국내에 먼저 도입하여 반향을 일으키는 서태지와 같은 뮤지션이 많은 사랑과 동경을 받았다. 그로 인해 댄스그룹이 점차 생겨나게 되고, 미국 흑인의 전유물인 줄 알았던 힙합음악이 성행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서양의 선진(?)문물을 누가 더 빨리, 세련되게 국내에 도입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경쟁구도였고, 대중도 한국인에 입맛에 맞게 개사된 미국의 다양한 음악적 시도들을 소비할 수 있게 된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몇해 전부터 한국음악은 수출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고, 2012년 가을에 싸이가 세계적으로 유명해 지면서 피아니스트로 치면 정명훈같은 음악가가 탄생하는 것과 흡사하게 많은 국민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묘한 승리감에 도취하였고, 이제는 한류로 표현되는 한국 대중문화의 수출이 절정을 치닫고 있다는 사실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며 이전에 일본이 누리던 관심과 사랑을 어느정도 받게 되었다.

우리나라 대중음악과 춤, 그리고 드라마가 아시아권과 그 외 문화권에서 인기를 끌게 되는 이유 중 물론 작품의 질과 품격도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상업적인 성공이 반드시 격이 높은 예술품을 뜻하지 않는 것 처럼, 해외 여러나라로 우리나라 문화사업이 뻗어나가는 것이 반드시 국격을 높이는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마치 수출품 생산을 독려하듯이 한류 문화사업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아이돌 그룹에게 국위선양을 하는 애국자 대접을 하고 있다.

여기서 시선을 돌려서 나는 가수 김장훈의 최근 행보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는 이전부터 “기부천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에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세월호가 침몰하고 희생자들의 유가족들이 거리에 나오고 나서부터 가수, 또는 공인으로서의 모든 영향력을 활용하여 그들을 격려하고자 여러가지 활동을 하였다. 급기야는 유가족의 단식에 동조하면서 자신의 몸까지 담보로 내걸며 진실을 알고자 하는 유가족의 바램에 동참을 함으로서 소극적으로 관망하던 많은 일반인들이 용기를 내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끔 동기를 부여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고 할 수 있다.

가수로서의 김장훈은 사실 뮤지션으로서의 실력으로 봤을 때 의문이 드는 점이 있다. 오히려 코미디언의 입담에 가까운 재치있는 멘트로 콘서트를 진행하는데 일가견이 있고 그로 인해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된 가수이다. 그렇기 때문에 싸이처럼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며 자신의 노래를 세계에 알리는데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수 김장훈, 음악인 김장훈이 우리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싸이의 그것보다 적다고 할 수 있을까? 한 뮤지션의 가치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이다.


두 뮤지션 모두 음악의 품격이나 가창력의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고, 이 둘을 가수로서 단순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을 살펴보면, 음악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 해 보며, 전세계에 k-pop을 널리 알리며 한국의 국가인지도를 높이는 뮤지션과,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약자를 위해 헌신하며 활동하는 가수를 비교해 봤을 때 지금 우리 사회에는 어떤 예술가가 더 필요한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시점에 왔다는 생각이 든다



---







글 직접 보러가기(문화+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