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 이야기/칼럼

[문화+서울]표절과 인용은 종이 한장 차이




[문화+서울] 1월호 보러가기(새창)

=====

본 글에서는 옛 클래식 음악에서 이전 음악을 인용하거나 재료로 사용한 것과 가요계의 표절논란을 예로 들면서 독창성과 저작권에 대한 음악계 내에서의 담론을 소개한다

작곡공부를 갓 시작한 대학생때, 한참 밤 늦도록 술을 마시고 흥에 취해서 집에 오다보면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생각이 안나던, 너무나 기발하고 획기적인 악상들이 떠오르곤 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자마자 오선지에 정신없이 휘갈겨 쓴 후 뿌듯한 마음에 잠이 들고, 다음날 일어나보면 그 악상들은 어이없게도 모두 대가의 곡들을 표절 한 것이었다.  술김에 대가의 곡이라는 사실을 기억 못한 것이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음악이 너무나도 많고그 음악들과 대적할 만한 새로운 음악을 무에서 창작하려면 굉장히 막막할 때가 많다.  그래서 기존의 음악에 경의를 표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재료로 삼기도 하는데, 이 때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훌륭한 창작물이 될 수도 있고, 범죄가 될 수도 있다.  


전통적인 서양음악에서 교회음악의 역할은 매우 컸고, 그 영향으로 단선율로 이루어진 그레고리오 성가를 재료로 삼은 무수히 많은 곡들이 탄생했다.  이 때의 그레고리오 성가 또한 당시 유행하던 노래들을 본따서 만든 성가였다.  하지만, 그 선율을 바탕으로 탄생한 작품들은 본래의 성가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양식이 달랐다


종교개혁 때 라틴어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이를 노래로 표현할 새로운 교회음악이 필요했던 마틴 루터는 자신이 직접 작곡도 했지만, 그레고리오 성가를 많이 가져다가 사용한다.  바하는 수백개에 달하는 이러한 단선율에 화성을 붙이는 작업을 한 후 이를 자신의 칸타타 등에 인용하였다.  교회에서는 본 예배 이전에 오르간 연주로 성가의 선율을 가지고 변주곡을 연주한다.  '바하 코랄'로 불리는 이 코랄집은 그 후로는 작곡 공부에 많은 도움을 주는 "성서"가 되었고, 무수히 많은 작품들의 소재로 쓰인다


이렇게 옛 것에 대한 경의와 변화에 대한 열망이 적절히 배합되어 발전된 형태의 음악이 탄생하는 아름다운 역사도 있지만, 현실은 항상 이상적이지만은 않다.


인터넷이 발달하기 이전인 90년대까지는 외국의 음악을 듣는 것이 쉽지 않던 환경에서 마치 신문물을 수입하듯이 들여오는 색다른 스타일의 음악에 한글 가사를 입힌 가요들이 우리나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시절이 있었다. 밀리 바닐리의 “Girl, you know it’s true”를 응용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Shaggy의 “Oh Carolina”를 거의 바꾸지 않고 쓴 룰라의 “날개잃은 천사” 등의 노래는 90년대 초에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고, 지금처럼 즉각적인 표절시비가 붙지 않았다. 이는 마치 시간에 쫒겨 외국의 디자인을 모방한 모델로 신제품을 내는 한국의 기업들과 비슷했고, 경제적 성과를 위해 그 정도는 눈 감아줄 수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런 것이 용인 되다 보면 여러가지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낳는다. 조금만 인기있는 상품은 모방 제품이 넘쳐나서 경쟁력을 금방 잃게 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보다는 순발력과 잔머리가 더 성공에 유용한 도구가 되어간다.


사실, 어디까지가 개인의 고유한 창작의 영역인지에 대한 구분은 모호하고 장르마다 기준이 다르다. 영화음악계에서는 실질적인 작업은 편곡자들이 거의 다 하면서 완성된 음악의 작곡가는 유명 영화음악가의 이름으로 내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렇지 않는다면 실질적으로 그 영화음악가들이 직접 모든 작업을 할 시간조차 없다. 동일한 작곡가가 여러 작품을 만들때도 문제이다. 같은 소재로 조금씩 변화를 줘서 새로 발표할 경우, 이를 온전한 새 곡이라고 말 할 수가 있을지 의문이다. 심한 경우 자가표절 논란이 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의 재료를 본인이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을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비발디에 대해서 20세기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는 “똑같은 곡을 100개 쓴 사람”이라고 비꼬았다. 시대에 따라 “새로운 곡”에 대한 기준이 달라진 것이다. 예전의 서양 클래식 음악이 모두 조성음악의 틀과 법칙에 따랐다면 이제는 작곡가들이 각자 자신만의 틀과 법칙을 개발해야 하고, 이를 비슷한 형태로 너무 많이 사용해도 좋지 않은 시선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극대화된 독창성에 대한 강요가 반대로 잘 알려지지 않은 다른 작품을 베끼는 식으로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하지만, 똑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비슷한 곡을 여러개 작곡했더라도, 그 중 몇 안되는 곡이라도 후세에 남아있다면 그는 위대한 작곡가인 것은 사실이지 않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남의 것을 사용하는 것 보다는 자신의 것을 이리저리 굴려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사실, 바하 코랄처럼 과거의 재료를 새로이 응용하는 것도 아름다운 창작행위이다. 결국, 남의 것이라도 출처를 분명히 밝히고 더 발전된 형태의 작품을 위한 의도로 사용 되었다면 이것도 도둑질이라고 보기 어렵다. 결국 창작자의 마음속을 들여다 보기 전에는 그것이 표절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