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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야기/칼럼

[문화+서울]국악기의 개량은 어디까지? 그리고 서양악기는?


국악기의 발전은 어디까지 가능한 것인가

- 개량악기의 특징과 장단점(서양 원전악기와 비교)


오늘날 어린이가 음악을 배울 때 피아노를 빼놓을 수가 없다. 동네마다 피아노 학원이 주변에 있고, 어느정도 칠 수 있는 사람도 주변에 흔하고, 피아노를 전공해서 레슨을 할 수 있는 전문가도 부족하지 않게 공급되고 있다. 요즘에는 전자키보드에 밀려 그 위력이 약간 적어진 감이 있긴 하지만, 수많은 음악 애호가들이 피아노를 독학을 하거나 교습을 받아가며 연주를 하려고 한다. 가히 “국민악기”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러한 피아노는 왜 이렇게 여러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것일까?


피아노라는 건반악기는 역사가 매우 깊다. 피아노의 전신으로는 쳄발로, 또는 하프시코드라(cembalo, harpsichord)라고 불리우는 악기가 있는데, 이는 현재의 피아노와 음색이 매우 다르다. 건반을 누르면 그와 연결된 조그만 바늘과 비슷한 부품이 몸체 안의 현을 뜯는 걸로 인해 쳄발로는 소리가 나는데, 이런 방식의 구조로는 사실 소리의 크기를 조절할 수는 없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현을 때리는 해머(hammer)로 소리를 내는 방식이 개발이 되었는데, 이 해머의 재질이 오랜 세월에 걸쳐 개발되고 보완되면서 오늘날의 부드러운 피아노 음색이 생기게 된 것이다.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부드러우면서도 심지가 굳은 피아노 음색은 이렇게 수 세기에 걸친 개량과 발전을 통해 오늘날의 형태를 띄게 된 것이다. 서양악기 중에 최고의 진화를 이룬 피아노에 필적할 만한 악기가 다른 나라에도 과연 있을까?


국악기들과 그와 비슷한 기능과 연주 형태를 가진 서양악기들을 비교해 보면 서양의 악기들은 대체로 기능이 더 추가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금이나 단소, 피리와 같이 나무에 구멍이 뚫려 있던 옛 관악기들(플룻, 클라리넷)에 구멍을 덮는 장치를 만들어 더욱 정확하고 깔끔한 음의 변화가 가능하게 되었고, 본래 목관악기였던 플룻은 금속의 더 견고하면서 섬세한 재질로 바뀌어 나가는 등, 새로운 소재의 개발도 지속되는 경향이 있었다. 결국 시대가 변하면서 악기 자체도 변하게 되는데, 이전 시대의 음악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다소 발달이 덜 되어 있는 불편한 악기더라도 해당 시기의 악기를 사용해서 연주해야만 그 음색이 온전히 재현될 수 있다는 주장 하에 ‘원전악기 연주’, ‘원전 연주’가 자체적으로 영역을 형성하고 있다.


문명의 이기와 테크놀로지가 발전하듯이 모든 악기들 또한 발전을 하게 마련이고, 갈 수록 현란해지는 연주자의 테크닉과 그와 맞물려 갈수록 화려해지는 음악의 구조로 인해 이를 더욱 효과적으로 연주하기 위해 악기의 성능은 나날이 좋아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국악기의 경우는 어떠한가?


본래 12개의 줄로 만들어졌던 가야금은 현재 25개 까지 늘어나 있어서 가야금 주자는 다양한 가야금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안다. 거문고는 본래 6개의 줄로 이루어져 있지만, 10개의 줄로 이루어진 거문고도 존재한다. 이는 이전의 한국 음악에 비해 화성이나 선율적 구조가 서양음악의 영향으로 더욱 현란해져서, 제한된 음에 혼을 담아 연주하던 전통국악에 비해 현재의 창작국악은 더 빠르게 여러개의 음을 연주해야 하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일 것이다. 실제 25현 가야금이 조율되어 있는 형태를 보면, 하프의 중저 음역대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소리가 난다.


정작 서양의 현악기들은 시대가 바뀌면서 오히려 줄이 줄어드는 추세였다. 기타의 옛 형태인 류트나 테오르베는 20개에 가까운 줄들이 있었고, 바이올린의 전신인 비올은 줄이 6개였다. 줄의 개수가 시대에 따라 줄어든 원인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각 음의 음색을 더 중요시 하며 정확하게 연주를 하기 위한 수요가, 동시에 여러 음을 연주하고자 하는 열망보다 더 컸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다.


북한의 악기들도 개량이 많이 되어 있다고 한다. 남한에서는 두개의 현으로 이루어진 해금은 북한에서는 바이올린과 같이 4개의 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금과 피리와 같은 관악기에 서양의 플룻과 같은 관악기처럼 덮개가 장착된 경우도 있다. 그리하여 북한의 국악기 음악은 더욱 현란하고 서양음악의 색체가 짙으며, 실제로 서양 오케스트라와 빈번히 섞어서 연주가 된다. 이렇게 되면 조선시대의 국악기에서 많이 멀어지게 된 결과를 낳는데, 이럴 경우 서양의 바이올린과 비올이 다른 악기처럼 취급되어 연주가 따로 되듯이 국악기도 더욱 다양한 악기들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일까?


이와 같은 의문을 현재 음악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에게 물어보았더니 많은 학생들이 거부감을 나타냈다. 국악기를 지나치게 개량 할 경우 국악기 특유의 음색이 사라지기 때문에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피력하는가 하면, 21세기인 지금 사용되는 악기라면, 이미 발전할 만큼 했고, 어지간한 실험은 다 이루어졌을 테니 악기를 이용한 더이상의 무리한 실험은 부작용을 낳는다는 견해를 밝힌 학생도 있었다. 이 즘에서 서양악기의 역사와 관련한 의문이 들었다. 만약에 쳄발로의 음색을 아름답다고 생각한 당대의 음악가들이 악기 개량을 포기했다면 오늘날 피아노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까? 비올의 음색이 완벽하다고 느끼고 개량을 소홀히 했다면 현재 바이올린의 줄은 6개였을까?


전통의 유지와 시대적 흐름과의 사이에 갈등하는 것은 일개 악기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의식주, 문화, 예술, 건축, 기술 등 우리의 삶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변화와 전통의 충돌은 피할 수가 없다. 우리가 연주하는 이 악기들이 더욱 연주가 편했으면 하는 열망과, 이제까지 아름답게 들었던 이 음색들을 유지하고픈 마음 사이에서 악기 제조가들은 늘 선택의 기로에 서 있으며 이들의 선택을 돕는 것은 악기를 연주하고 그 음악을 듣는 우리 모두의 몫일 것이다. 여러분은 전통의 유지와 시대적 진보 중 어느 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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