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 이야기/칼럼

[문화 + 서울]타이타닉 침몰을 주제로한 게빈 브라이어스의 앰비언트 뮤직




이번 달 문화+서울 칼럼에는 작곡가 게빈 브라이어스(Gavin Bryars, 1943~)에 대해 썼습니다.


Jesus Never Failed Me Yet(주의 피는 나를 아직 저버리지 않았네), Sinking of the Titanic(타이타닉의 침몰) 등 퍼포먼스적인 아이디어로 실험적이면서도 대중에게 친숙하게 느껴지는 음악을 쓰는 작곡가.  노숙자의 목소리를 인용하거나 수영장에서 음악회를 개최 하는 등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들 실현하며 '앰비언트' 음악과 미니멀 음악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클래식 음악은 음악회장에 가서 가만히 앉아서 연주를 보면서 집중해서 듣는 음악이다.  연주되는 곡들은 시작과 끝이 분명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듯이 소리를 통해 일정한 형식을 띄고 시간에 따라 다양한 사건들이 벌어지는 음악이다.  이렇게 내용이 풍부하기 때문에 온전히 들으려면 굉장한 집중력이 필요하고, 그래서 가만히 의자에 앉아서 연주를 들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평소에 듣는 음악은 과연 이런 수준의 집중력으로 주의 깊게 듣고 있는가?

어디에서나 들려오는 음악소리는 모두 나름대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트렌디한 가게에선 빠른 비트의 최신 가요를 틀어서 힙스터들의 과소비를 조장하고, 편하게 쉬는 공간에서는 명상적이고 조용한 음악을 들려준다.  기존의 클래식 음악 또한 고품격임을 과시하는 고급 레스토랑이나 호텔 로비같은데서 기능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각주:1].  이렇게 모든 음악은 그 자체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도구로 쓰여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시절, 대놓고 주변환경을 위한 음악을 쓰는 몇몇 무리들이 있었는데, 1960년대에 전자음악이 급속도로 발달하기 시작한 시절, 일정한 선율이나 화성을 무한반복 시키는 룹(loop) 기능을 사용하여 극도로 단순하여 귀기울여 듣지 않아도 되는(?) 음악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였다.  현재 거의 모든 대중음악에서 사용되는 기능이라 설명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지지만, 당시로서는 진행감을 중요시하던 이제까지의 클래식 음악에서 흔치 않은 새로운 파라다임이었다.  

20세기에 태어난 많은 작곡가들이 이런 변화들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예전에 소개한 콘론 낸캐러우(Conlon Nancarrow)처럼 한가지 분야에만 집착하며 파고드는 우물형 작곡가가 있는가 하면,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곡과 연주를 병행하는 팔방미인형도 있었다.  

2014/04/09 - [문화 + 서울]은둔형 자동피아노 작곡가 – 콘론 낸캐러우(Conlon Nancarrow)


'환경 음악'으로 번역할 수 있는 앰비언트 뮤직은 미니멀 음악과도 연관성이 짙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비트가 강하게 느껴지는지 여부, 그리고 기억에 남는 멜로디가 있는지 등의 차이를 통해 구분을 할 수 있다.  '환경 음악'은 말 그대로 주변 환경에 녹아들을 수 있는 음악이므로 비트가 없고 긴 음 위주로 되어있으며 기억에 남는 뚜렷한 멜로디가 없다.  

'현대음악의 미니멀리스트'[각주:2]로 불리우는 영국 작곡가 개빈 브라이어스(Richard Gavin Bryars, 1943~)는 이 두 장르의 경계를 교묘하게 허물면서 폭 넓은 팬층을 확보하게 된 클래식 작곡가이다.  그의 대표작 "타이타닉의 침몰(The Sinking of the Titanic)"은 타이타닉호의 악사들이배가 침몰하기 직전까지 쉬지 않고 연주 한 것에 영감을 얻어 처음에는 6개의 현악기로 녹음된 것이 나중에는 타악기도 포함하는 등 다양한 편성으로 다양한 환경에서 연주되었다. 2012년에 캐나다 벤쿠버의 수영장에서 연주 될 당시에는 일부 관객들이 수영을 하면서 감상을 하기도 했다(가라앉는 배에 대한 곡을 물 속에서 듣는다는 것이 아이러니 하긴 하지만, 특이한 체험이 되었을 것은 분명하다).  더블베이스 연주자였다가 작곡가가 된 게빈 브라이어스 답게베이스의 낮게 깔아주는 긴 음들이 이 곡의 분위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절망적인듯 하면서도 희망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 게빈 브라이어스의 음악의 특징인데, 1972년에 초연되어 이 곡은 아직도 새로운 레코딩이 진행 될 정도로 많은 이들 끄는 매력이 있다.

뚜렷한 멜로디가 없고 비트도 없지만 듣는 이에 따라서 상당히 격렬한 감정적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앰비언트 뮤직, 즉 '환경 음악'의 역사는 길게 봐서는 작곡가 에릭 사티(Erik Satie)의 벡사시옹(Vexations)에서 유래된다고도 하는데, 이 음악은 피아노로 짧은 소절을 840회 반복하는 곡인데, 이 곡을 루프(loop)의 기원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사티의 벡사시옹과 비슷한 구조의 음악으로는 게빈 브라이어스의 또 다른 대표작 Jesus Blood Never Failed Me Yet(주의 피는 나를 저버리지 않았네)을 꼽을 수 있는데, 작곡가가 밝힌 이 곡은 탄생 배경이 매우 독특한 편이다.  

(요약)"친구가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는 것을 돕다가 우연히 노숙자가 부르는 찬송가를 녹음하게 되었는데 집에 와서 피아노로 쳐보니 간단한 반주를 덧붙인 13마디 짜리 멜로디로 만들 수 있었다.  이 녹음본을 루프 시킨 것을 배경으로 하여 당시 일하던 미술대학 사무실에 실수로 틀어놓고 나갔다가 커피 한잔을 마시고 돌아왔는데, 옆 교실의 미대 회화과 학생들이 평소와는 달리 매우 조용하고 일부 학생들은 조용히 울고 있었다.  이 노래 소리가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고무되어 오케스트라 반주를 덧입힌 버전으로 당시 레코드판이 담을 수 있는 최대 길이인 25분짜리의 곡을 만들게 되었다."(이후 CD녹음을 위해 74분짜리 버젼으로 만들어 지기도 하였다)



한편, 앰비언트 뮤직은 테크노풍의 비트를 넣어서 '앰비언트 하우스'라는 장르로 진화하였고, 대중들에게 폭넓게 향유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항상 심장 박동을 의식하면서 살 필요가 없듯이, 가끔씩은 비트가 없는 음악이 주는 평안함도 누려보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을까?




자료출처:












  1. 사실, 역사적으로도 클래식 음악은 그런 기능을 수행하긴 하였다. 공연장에서 가만히 듣는 음악의 역사는 의외로 별로 길지 않다. [본문으로]
  2. 현대음악의 미니멀리스트 - 한상철 칼럼 (퍼블릭아트)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