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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야기/칼럼

[문화+서울] 9월호 칼럼 - 음악 재생 도구의 진화 - 카세트 테이프와 CD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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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도구의 진화 - 카세트 테이프와 CD의 추억


요즈음에는 가장 값싸게 구매되는 문화상품이 음악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음악을 듣는 것이 너무나 쉽고 간편하고 저렴한 행위가 되었다. 불과 100여년 전, 축음기가 발명되기 이전까지는 직접 악기나 목소리로 소리내어 연주하는 것을 듣지 않으면 음악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시절과 비교해 보면 실로 엄청난 변화이다. 컴퓨터를 통해 파일로 유통되고 소비되는 21세기의 음악 재생 방식이 없던 시절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지만, 사실 현재와 같은 음악감상 형태는 몇년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어떤 방식으로 음악을 틀고 감상했을까?필자가 경험한 어린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추억을 떠올리며 되짚어 보고자 한다.


몇살인지 기억도 안나는 까마득히 어린 시절, 음악을 들을 때 사용했던 것은 카세트 테이프였다. 당시 납작하고 큰 기계에 테이프를 넣고, 옆의 빨간 버튼을 누르지 않도록 조심하며 삼각형 버튼을 세게 꾹 누르면 테이프 속의 작은 바퀴들이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미세한 기계소리가 시작되고 잠시 후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들으면서 졸다 보면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음악이 끝났음을 알려온다.


당시 즐겨 듣던 테이프는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이었다. 피아노 학원에서 선물로 받은 모음곡집을 연습하면서 알게 된 세계 여러 나라의 춤들을 들으면서 바비인형을 모형삼아 춤으로 만들며 놀았었다.당시에 유명했던 피겨 스케이트 선수인 이토 미도리를 따라하며 안무를 짰던 기억이 난다. 이후에는 음악을 전공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동네 음반가게에 가서 피아노 음악과 클래식 음반을 사서 듣곤 했다. 당시에는 CD도 나와 있었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더 많은 음악을 듣기 위해 카세트를 사모았다.


음악감상을 몹시 좋아하던 부모님은 카세트와 함께 레코드 판(LP)도 즐겨 들으셨다. 레코드 판 같은 경우는 짦은 바늘과 같은 것을 턴테이블 위 레코드판에 살포시 올려 놓아야 하는데, 이때 레코드 판에 흠집이나 먼지가 있으면 바늘촉이 걸려서 음악이 진행되지 않는다. CD를 듣다가 가끔 튀기곤 하는 그 현상과 비슷한데, 가족들이 즐겨 듣던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그런 흠집이 나있었다. 공교롭게도 2악장 막바지 바이올린 솔로의 트릴 부분에서 바늘이 늘 걸려서, 마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트릴이 계속되었는데, 나중에는 그 때가 다가오면 자동으로 바늘을 들어 약간 비껴가게끔 손을 보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나이가 30대 이상인 사람들은 카세트와 레코드판을 기억 할 것이다. 굉장히 오래 전 일인 듯 느껴지지만, 불과 20여년전의 추억들이다. 이후에 CD가 보급되어 대세를 이루던 시절이 불과 10여년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시대변화가 얼마나 빠른 것인지 갑자기 실감이 난다.


CD를 처음 접했을 때는 그 편리함과 깔끔한 음색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테이프처럼 어림짐작으로 찾지 않아도 트랙을 검색하여 음악이 시작되는 부분으로 자동으로 옮겨지는 것과, 음악이 다 끝나도 툭 하는 소리가 나지 않고 조용히 있다는 점 이 두가지가 몹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트랙을 검색하는 기능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일부러 한 음반의 트랙들을 순서를 바꾸고 건너뛰어가며 듣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기본적인 기능인데도, 마치 신세계를 체험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때 당시 갖고 있던 워크맨으로 테이프를 들으면 음이 전체적으로 높게 들리곤 했는데, 어렵게 장만한 휴대용 CD 플레이어에서는 그런 현상이 전혀 없어서 어찌나 든든한지 몰랐다. 그때 당시 휴대용 CD 플레이어는 학생들에게 초 럭셔리 아이템이었고, 자율학습 시간에 CD를 듣고 있자면 괜시리 어깨에 힘이 들어가곤 했다. 그때 가장 갖고 싶었던 건 SONY에서 나온 초소형 플레이어였다. CD 크기와 같고 두께가 1cm도 안됐던 걸로 기억하는데, 당시 형편이 여의치 않아(?) 좀 더 두꺼운 Panasonic을 소장하였다.


이 시절 잠시 미니디스크(MD)가 유행하기도 했는데, 주로 얼리 어답터 친구들이나 외국에 살다 온 친구들이 가지고 있었다. 손바닥 보다도 작은 네모난 디스크를 넣어서 재생하는 기계가 너무나 작고 귀여우면서도 훌륭한 음색을 자랑해서 굉장히 탐나긴 했으나, 기계는 어찌어찌 구한다 해도 이미 CD로 지출이 심한 상태에서 도저히 그만큼의 음반을 모을 수가 없었다는 어려움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꼈는지, MD시장은 의외로 금방 식어버렸고, 지금은 자취를 찾을 수가 없다.


몇년 지나지 않아 손가락만한 작은 기계에 500개가 넘는 노래를 저장할 수 있다는 mp3 플레이어가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디지털 음반 시장이 활성화 되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한번에 휴대할 수 있는 음악의 양이 늘 한계가 있었으므로, 이는 획기적인 기능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한 음악보급이 이루어 지면서 음반시장은 빠른 속도로 쇠퇴되었다.


몇년 전에는 작곡과 지도교수님의 유품을 동료 제자들과 함께 정리하다가 릴투릴(reel-to-reel) 테이프를 발견하기도 했다. 이는 카세트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음반 형태인데, 복잡한 고가의 재생도구가 필요한 관계로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었다고 한다. 난생 처음 보는 릴투릴을 보고 차마 전부 버릴 수가 없어서 일부를 간직하고 있다.

이제는 음악을 듣는 것은 마음 먹기에 따라 단 한푼도 들지 않는 일이다. 필자의 경우도 원하는 음악이 있으면 일단 인터넷으로 검색을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제는 그렇게 쉽게 찾은 음악들은 잘 기억에 남지도 않는다. 기다림의 세월을 거쳐 어렵게 용돈을 모아 듣게 되는 테이프나 CD의 음반들이 강렬히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얼마전, 중학생 때 이후로 듣지 않았던 마이클 잭슨의 초기 음반을 카세트 플레이어가 내장된 소형 오디오를 사서 테이프로 틀어봤다. 당시에는 가사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주의깊게 들었는데, 이제는 흔한 사랑노래들이 덜 와닿는 것 처럼 이 노래들도 더 짧게 느껴지고 감흥이 덜 한 것 같다. 내가 어릴 적에는 고작 이런 것에 감동을 받았었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때는 차라리 영원히 다시 듣지 말걸 그랬나 하는 회의감도 들지만, 이를 계기로 추억을 더듬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이제는 이세상에 없는 마이클 잭슨의 풋풋한 목소리를 들으니, 가는 세월은 잡을 수 없구나 하는 늙은이같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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