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ARTICLE 음악 이야기/칼럼 | 22 ARTICLE FOUND

  1. 2017.02.04 아마존에서는 왜 불협화음이 거슬리지 않는걸까?
  2. 2016.12.19 특이한 성적 취향을 실현시킨 현대음악 작곡가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하스(Georg Friedrich Haas)와 그의 부인 몰레나 리 윌리엄스-하스
  3. 2016.12.11 [문화+서울] 예술적 상담소 - 재즈 작곡가의 길
  4. 2016.11.29 [문화+서울] 11월호 칼럼 - 피아노 이전의 악기들
  5. 2016.11.15 [문화+서울] 침묵을 작곡하는 사람들 - 반델바이저(Wandelweiser) 악파
  6. 2015.10.13 [문화 + 서울] 10월호 칼럼: 1세대 한국 서양음악 작곡가들의 선율 (2)
  7. 2015.09.27 [문화+서울] 9월호 칼럼 - 음악 재생 도구의 진화 - 카세트 테이프와 CD의 추억
  8. 2015.09.23 [문화 + 서울] 8월호 - 음악은 일필휘지로 완성되지 않아요! 작곡의 장애요인과 극복방법
  9. 2015.07.21 [문화+서울]채소 오케스트라, 얼음 악기와 3D 프린터 바이올린 (2)
  10. 2015.07.17 [문화+서울]작곡가는 단명한다? - 100세를 넘긴 작곡가들 소개
  11. 2015.05.19 [문화+서울] 동물을 위한 음악 - David Teie와 Snowdon 연구팀의 창작곡
  12. 2015.04.21 [문화 +서울]청각 장애가 있어도 음악을 들을 수 있다?
  13. 2015.04.02 [문화+서울]아프리카의 복합리듬을 활용한 리게티의 연습곡
  14. 2015.03.31 [문화+서울]수세기에 걸친 러닝타임 - 롱플레이어와 Organ2 ASLAP
  15. 2015.03.29 [문화+서울]표절과 인용은 종이 한장 차이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편하게 들리는 소리가 있고 거슬리는 소리가 있다. 편하게 들리는 소리는 그동안 들어왔던 익숙한 소리이고, 거슬리는 소리는 생소하고 의미를 알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편한 소리는 자연의 법칙에 더 충실히 따르는 소리일 것이라는 주장도 많다. 예를 들어, 피아노 건반상의 도-솔 에 해당하는 음의 간격(완전 5)을 많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문화권에서 편한 소리, 즉 협화음으로 간주하고 화음에 이용한다.


그렇다면 협화음이 아닌 음간격, , 불협화음은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는 소리이기 때문에 모든 인류가 거슬려 하는가? 피아노 건반으로 미와 파(2)를 동시에 친다고 상상해보자. 뭔가 부딫히는 소리가 나고, 도와 솔을 동시에 쳤을 때 처럼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피아노를 치다가 음을 틀렸을 때 주로 나는 소리들이 이런 불협화음이고, 많은 사람들이 즉시 알 수 있다. 협화음을 선호하는 인간의 귀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이치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그렇게 느낄 것이라고 여길 수 있고, 실제로 많은 학자들이 그렇게 주장해왔다.


그런데, 아마존의 부족(볼리비아의 오지에 사는 치마네이족)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 본 결과, 그들은 협화음과 불협화음을 구별은 할 줄 알지만, 어느것이 더 듣기에 편하냐는 물음에는 반응이 전혀 없었다. 그들에게는 불협화음도 협화음과 똑같이 편안하게 들린 것이다. 실험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청각실험을 했을 시 모두 정상이었고, 웃는 소리와 놀라서 내는 ‘헉’하는 소리 중 어느 것이 편안하게 들리는지 조사했을 때 실험 대상자들 모두 웃는 소리를 선택하였다.


서양음악에서는 도와 파#의 간격, 즉 증4도 음간격을 “악마의 음정”이라 칭하며 터부시 해왔다. 이 악마의 음정을 피하기 위해 새로운 화음이 생겨나고 스케일이 변할 정도로 음악사에 미친 영향이 컸던 이 불협화음도, 결국 과학적인 근거로 인한 자연적이고 당연한 현상이 아니라, 문화에서 파생된 특정 시대에 국한된 금기였던 것이다.


서양음악사를 더 깊이 들여다보면 또 다른 재미있는 현상이 있다. 지금 우리가 편하게 듣고 있는 화음들에 가장 자주 쓰이는 음정인 3(도와 미, 또는 미와 솔의 간격)가 중세 서양음악에서는 불협화음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만약 중세 시대 음악가가 타임머신을 타고 21세기로 날라와 가요를 들으면 모든 화음에 쓰인 “불협화음”들 때문에 음악이 아닌 엄청난 소음들의 집합체로 들을 것이다.


아마존의 치마네이족은 서양문물을 접할 기회가 전무하다시피 한 몇 안되는 부족 중 하나다. 전기가 통하지 않는 환경이니 티비나 라디오로 대중음악을 들을 기회가 없다. 그들이 사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강을 따라 카누를 타고 가야한다.


치마네이족은 노래를 혼자 부르는 문화만 있다. 그들의 음악에는 합주가 존재하지 않아서 두개 이상의 음이 동시에 울려퍼질 일이 없고, 화음도 생겨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특정 음간격에 대한 선호도 자체가 아예 생겨나지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화음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음악만을 접한 사람이 이제는 지구상에 많지가 않아서 이 연구는 그만큼 희소가치가 있다.


협화와 불협화에 대한 이런 연구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동안 음악가들이 추구해 왔던 “좋은 소리”가 과연 객관적인 기준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한다. “좋은 소리”라는 말 자체가 미학적으로 논란이 많긴 하지만, 이 글에서는 화음의 성질로만 생각을 해 봤을 때, 좋은 화음, 협화음이 과연 추구해야 할 화음인가, 그리고 불협화음은 뭔가 해결을 해야만 하는 대상인가, 그렇다면 그런 법칙은 누가 만들었는가 하는 좀 더 근본적인 물음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은 자연의 법칙에서 파생된 배음의 원리에 의해 생성되는 음정들(옥타브, 53도 등)을 협화음으로 간주했다. 그러므로 서양음악 작곡의 역사는 이 음정들을 다루는 방법의 변천사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자연에서 파생된 마땅한 원리가 아니라면, 지금 인류가 협화음으로 생각하는 소리들을 선호하는 것은 순전히 역사적인 우연인 것이다. 마치 서양식 옷입기가 전 세계적으로 보급된 것 처럼 서양음악에서 파생된 원리로 쓰인 대중음악이 세계화를 통해 보급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각 나라의 전통음악에도 영향을 미처서, 이제는 피아노 조율법과 다른 방식의 조율로 된 음악을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세계화에 의한 인류의 귀의 획일화인 것이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동년배 작곡가들과 농담으로 주고받은 이야기가 있다. 우리 아이들은 다양한 문화권의 음악을 들려줘서 편견 없는 음악세계를 구축시켜 주고프다는 이야기였다. 당장 15개월 아이가 있는 필자부터 이 연구 결과를 접한 이후로 동요CD를 치우고 판소리와 인도 전통음악 CD를 틀기 시작했다. 이른 나이부터 너무 서양음악에만 국한된 편향된 음악세계만 접하게 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다.  




문화+서울 2017년 2월호에 기재된 칼럼입니다. 직접보기(링크)


자료 출처:

The Atlantic: Musical Preferences of an Amazon Tribe

LA Times: Culture, not biology, may define which musical chords sound sweet



이 칼럼 쓰면서 희원이한테 인도음악만 한동안 틀어줌 ㅋㅋㅋㅋㅋ 

제발 절대음감만은 갖지 말아라 희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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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출신으로 현재 뉴욕 컬럼비아 대학 교수로 있는 세계적인 작곡가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하스가 얼마전 결혼과 함께 성적 소수자로서 커밍아웃을 했는데, 그로 인한 창작세계의 변화와 삶의 변화를 다루고자 한다.


억압된 욕망이 분출되지 못하면 예술가는 이를 작품으로 승화시킨다고 한다. 과연 어느정도 사실일까? “승화”라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일부 예술가들은 자신의 고통을 작품을 통해 표현하는 것은 분명하다. 자신의 인생이 어디로 흐를지 몰랐던 반 고흐의 그림에 나오는 구불거리는 오솔길은 지평선 근처에 처참하게 끊겨있고, 판소리에 나오는 절절한 사연은, 그 구절을 읊은 것을 본따서 국악기로 산조의 형태로 가사가 없이 연주했을 때에도 가락에서 맺힌 한이 그대로 스며나온다. 흑인들이 부르던 블루스는 그 우울한 열정 때문에 많은 이의 심금을 올린다. 차이코프스키와 베토벤은 또 어떠한가? 그들이 고통이 없었다면 그들의 음악은 과연 지금과 같을까? 그렇다면,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인생에서 큰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가?




오늘 소개하고픈 오스트리아 태생 작곡가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하스는 평생을 남모를 고통을 지니며 살아온 작곡가이다올해 62세인 그는 세 번의 결혼생활에서 결국 실현시키지 못한 자신의 그릇된(?) 성적 욕망을 억압하고 숨기면서 이를 어느 정도는 자신의 작품에 반영시켰고현실에서는 이를 이루지 못할거라 여기며 세번째 이혼 이후로는 오랜 세월을 독신으로 살아왔다실제 그의 작품은 극한의 미분음(피아노 건반에서 가장 작은 음정인 반음보다도 더 미세한 음정 그는 1/12음까지 사용했다)을 쓰거나듣기에도 고통스러운 음형의 고집스러운 반복이 들어가는가 하면정치적 색체를 진하게 띄는 작품과 어둠속에서 연주해야 하는 작품을 포함해 연주자가 숨막히도록 어려워 하고 그들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등 지극히 가학적이고 고통스러운 작품들이 줄을 이었다.


관련글: 2013/03/26 - 작곡가 하스의 멘붕 조율 곡들


그런데, 작년 가을에 우연히 인터넷 데이트 사이트(OK Cupid)에서 만난 몰레나 리 윌리엄스(Mollena Lee Williams)와 결혼하면서 이 상황이 바뀌었다.[각주:1]

(google image)


작곡가 하스의 성 정체성을 알기 위해서는 배우자인 윌리엄스에 대해 아는 것이 필요한데 이 분의 정체는 더욱 수수께기만 같다. 흑인 여자이면서, 성적 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여러 활동을 하며 인권운동가에 가까운 유명세를 안고 있는 BDSM 활동가이다. BDSMbondage(속박), discipline(훈육), dominance(지배), submission(복종), sadomasochism(가학/피학성) 등의 단어들을 통합한 약자이다. 이 단어들을 전부 포함하는 BDSM의 일반적인 의미는 둘이 합의하에 가학적이고 불평등한 역할놀이를 하는 사람들의 성 정체성이다(이들 커뮤니티는 더 나아가 일반적이지 않은 성적 취향을 지닌 성 소수자를 모두 포괄하려 하기도 하지만, 더 구체적인 언급은 이 글에선 하지 않도록 한다). 작곡가 하스의 배우자인 몰레나 리 윌리엄스-하스(Williams-Haas는 결혼 이후 바꾼 이름)는 복종과 피학성(마조히즘)을 쾌락의 수단으로 삼으며 자신을 흑인 여성 노예로 설정하고 역할놀이를 하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는 전형적인 마조히스트이다. 특이한 점은 자신이 흑인 여성이어서 이 역할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하나의 인간으로서 자신의 (노예이길 바라는)성 정체성을 당당하게 드러냄으로 인해 자신의 인권을 지킨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이 흑인이기 때문에 흑인노예의 역할을 하는 것에 제약을 받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인종차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몰레나 리 윌리엄스가 작곡가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하스를 만난 것은 “노예”인 자신이 마음껏 섬길 수 있는 주인을 만났다는 뜻이고,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하스는 바로 가학적인 역할을 즐기는 사디스트이자 지배자인 것이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비로소 자신에게 맞는 삶의 동반자를 만난 하스는 그 해 부터 창작열이 마구 불타올랐다. 그동안 작곡을 심리적 욕구 해소의 도구로 사용해왔다면, 이제는 영적인 행위(spiritual activity)에 가까우며 이것이 작곡과정에 훨씬 수월하고 고차원적이라고 작곡가 하스는 밝힌다. 연주자가 어려운 곡을 연주하느라 고군분투하는 그 과정에서의 긴장된 에너지와 음악 자체에서 분출되는 순수한 에너지 사이에서 비교를 하자면 과거에는 전자에 해당되는 작품이 많았다면 이제는 후자가 더 작곡가 본인이 추구하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더이상은 정치적인 곡을 쓰지 않기로 결심 하였으며, 후배 작곡가들에게 자신의 욕구와 정체성을 숨기지 말 것을 충고한다.[각주:2]


작곡가인 필자도 이 점이 매우 흥미롭다. 사실 곡을 쓰는 과정에서는 개인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고통(개인적으로는 고독감)을 극한으로 느꼈을 때 비로소 소통의 욕구와 함께 영감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곡의 과정을 심리치유와 같은 역할로 여기며, (사실은 곡을 써야 하는 현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힘든 것이었으니, 병주고 약주는 것인지도 모를 애매한 상황에서) 눈물젖은 오선지에 콩나물을 그려가며 커피로 밤을 지새우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이 건강에는 매우 좋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일상생활에서 겪기 힘든 차원의 희열과 해방감을 느끼기도 하고, 현실에서 실현시키기 힘든 극단적인 가학성이 곡에 스며들기도 하는데 이 점은 개인적으로 하스의 옛 작곡 경향과 어느정도는 일치하는 듯 하다


그렇다면 나의 억압된 욕구가 무엇인지 찾아서 해소를 한다면 작곡가 하스처럼 창작열이 더욱 불타오를까? 현실이 만족스러우면(고독감을 느끼지 않으면) 오히려 작곡에 어려움이 생길까봐 막연히 두려웠는데, 하스의 경우를 보면 그렇게 걱정할 일은 아닌 듯 하다. 그러고 보니 필자도 작년에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고 키우고 있는 현재, 곡을 쓰는 일은 육아와 일을 병행해야 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아직 가능한 일이긴 하고, 아직도 작곡은 개인적으로 재미있고 신나는 지적 ‘놀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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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원고는 바그네리안 김원철의 음악이야기에서 접한 소식에서 소재로 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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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서울 글 link

  1. http://www.nytimes.com/2016/02/24/arts/music/a-composer-and-his-wife-creativity-through-kink.html?_r=0 [본문으로]
  2. An Interview with Georg Friedrich Haas BY JEFFREY ARLO BROWN · COVER-PHOTOGRAPHY SUBSTANTIA JONES · DATE 02/04/201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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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약 3년정도 보스톤에 있는 버클리 음대에서 jazz composition 이라는 전공을 공부하고 왔습니다. 제가 공부한 내용들은 standard jazz 부터 modern jazz 스타일의 곡을 쓰고 편곡하여 음악을 만드는 것 입니다. 우리나라에는 흔하지 않은 jazz orchestra 음악을 한국 정서에 맞게 re-arranging 을 하여 재즈에 접근하기 쉽게 중간다리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제 지인을 통해 서울문화재단을 알게되었고 소개되어 있는것들을 읽어본 결과 지금 제가 공모할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더라구요. 교육을 통해 또 공연을 통해 함께 문화산업 발전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데 혹시 교육기관이라던지 공모할수 있는 공모전과 제가 지원하고 접근할 수 있는 더 많은 기관과 재단을 소개받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저는 문화+서울에 격월로 칼럼을 올리고 있는 신지수 작곡가입니다. 저는 클래식 현대음악을 전공하고 그 쪽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주변에 알고 있는 재즈 뮤지션들의 조언을 듣고 몇 마디 도움의 말씀을 드리고자 글을 올립니다.


재즈라는 분야는 서양음악의 큰 두개의 축 중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 하나는 클래식 음악이고요, 아니면 대중음악과 클래식을 나눠서 대중음악을 재즈와 팝으로 나눌 수도 있고, 사실 분류하는 방식은 너무나도 다양하니 지극히 일반화된 단순한 개념으로 말씀 드립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분야는 국위를 선양할 수 있는 국악과 관련된 분야이거나 상업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순수음악, 즉 클래식 음악을 일부 지원하고 있고, 재즈는 엄밀히 말하면 상업음악이라고 보고 특별한 지원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재즈가 본래 클럽에서 연주되는 실용성을 갖춘 음악이다 보니 국내에서는 그다지 지원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듯 합니다. 실제 활동하시는 뮤지션들도 대부분 그런 측면이 있고요, 레슨을 하거나 연주를 통해 생계를 꾸려나가지만, 사실상 쉽지 않은 길이것이 현실입니다.


한국 음악계의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마이너리티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재즈 작곡을 공부하신다고 했는데, 재즈는 서양음악처럼 작곡과 연주의 분업이 이루어진 역사가 길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국 연주하시는 분의 궁극적인 목표도 즉흥연주의 경지가 높아지다가 결국 작곡과 다름 없는 길로 가는 것일테고요. 작곡이나 편곡작업에 더 중점을 두는 사람들은 결국 그 뒤에서 연주자들을 보조하는 역할이 될 것입니다. 이점에서는 클래식 작곡가와 그 위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클래식 작곡가의 위상 자체가 애시당초 높지 않습니다. 아직도 연주자의 유명세에 비해선 작곡계에선 그렇다할 스타가 나오기 힘든 환경이고요, 그러하니 재즈 작곡으로 특화된 진로로 뭔가 길을 개척하고자 하신다면 거의 스스로 만드시는 길이 될 것입니다.


한국 정서에 맞는 재즈를 추구하신다고 하셨는데, 한국 정서라는 것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질문하신 분이 한국인이니, 넓게 해석하면 님께서 하시는 모든 작업에 한국 정서가 들어가 있을 것입니다(마치 한국인이 치는 베토벤 소나타에는 웬지 된장찌게 냄새가 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듯이 말입니다). 현실적으로 이를 응용하자면 국악에 재즈의 요소를 접목시키는 방향으로 본인의 음악적인 길을 약간 조정하시면 국악은 지원사업이 많으니 그 부문에서 검토를 해 보시는 것도 좋고, free improvisation의 측면으로 나아가신다면 사운드 분야에 지원도 가능하실 겁니다. 하나의 음악회, 또는 문화행사나 이벤트를 기획할 여력이 되신다면 서울문화재단의 유망예술지원사업중에 다원예술이나 전통음악 쪽으로 퓨전 재즈 팀을 꾸려서 지원 하시는 것도 방법입니다만, 이 분야는 굉장히 실험적인 것을 추구하는 편입니다.


제가 몸담은 분야가 아니다보니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정보를 많이 드리지는 못해서 송구스럽습니다만, 이게 지금 우리나라 음악계의 현실입니다. 우리나라에 재즈 오케스트라가 아직 흔하지 않은 이유는 재즈 뮤지션을이 그렇게 많이 모이는 것 자체가 힘들 정도로 그 분야가 아직은 열악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재즈는 다른 대중음악에 비해서 그 자부심이 강하고 예술성이 남다른 분야이니, 다들 존경받아 마땅한 분들입니다. 일단 열심히 공부를 하셨으니 주변의 재즈 뮤지션들과 열심히 교류하면서 정보를 넓혀나가시길 바랍니다. 제가 유학을 갓 마치고 돌아왔을 때의 막막함과 두려움, 그리고 막연한 답답함을 느꼈던 나날들이 기억이 나서 질문하신 분에게 최대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만, 결국 벼랑끝내 내몰려봐야 날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듯이, 내 손으로 무언가를 이루어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때 오히려 큰 힘이 났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남들이 아무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하고싶다는 욕망이 컸을 때 즐겁게 새로운 도전도 많이 해본 것 같습니다. 당장의 금전적인 안정감은 찾기는 힘드시겠지만, 두려움을 떨치시고, 길은 만들면 얼마든지 있으니 창의적인 방식으로 헤쳐나가며 힘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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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서울 12월호에 실린 [예술적 상담소] 답변 원고입니다.  (링크)

사진 출처: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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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인웨이 피아노의 제작과정



지금은 피아노라는 악기가 엄청 그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하기 힘들 것이다. 바이올린이나 기타 등의 악기가 최소한 300년은 더 된 시절에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사실을 비교해보면 지금으로부터 100여년전인 19세기 후반부에 들어서야 그 형태가 완성되었다는 피아노는 비교적 현대적인 발명품인 것이다. 사실 그럴만도 한 것이, 피아노는 제작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소리를 내는 원리도 복합적인 악기인 만큼, 많은 발달을 거친 역사의 흔적이 있는 악기이며, 다른 악기와 비교할 수 없게 견고하고 일관된 소리를 자랑한다.  그만큼 누구나 어느 정도의 소리를 낼 수 있는 비교적 다루기 쉬운 악기가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대중들에게도 인기가 있어서 적지 않은 금액을 들여서 집에 사 두는 것이다.

피아노를 기능한 건반악기라고 분류를 하는데, 이는 건반으로 이루어진 부분을 손가락으로 눌렀을때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해당되는 음높이의 소리가 나는 모든 악기들을 통칭한다. 다른 건반악기의 흔한 예로는 풍금이라고도 불리우는 하모니움, 그리고 오르간 등이 있다.  이들은 피아노처럼 현(줄)으로 이루어지진 않았다. 건반을 갖추고 있다는 점은 동일하나, 바람소리가 근원인 악기들이다. 

(google image)


사실 피아노처럼 현으로 이루어진 건반악기들의 원리는 간단하다. 각기 다른 음높이로 이루어진 팽팽한 줄들을 나란히 나열해두고 이를 때리거나 튀겨서 소리를 내게끔 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가장 초보적인 형태로는 양금을 상상하면 될 것이다.  피아노 또한 궁극적으로 해머로 줄을 때린다는 점에서 소리가 나는 원리가 양금과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때리는 강도와 시간, 속도 등을 조절함에 따라 소리가 섬세하게 반응한다는 점에서 그 차이가 나는 것이고, 그걸 실현시키기 위하여 각종 장치들이 동원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피아노가 발명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제작되었던 다른 건반악기들은 무엇이 있을까?


하프시코드

독어로는 쳄발로(Cembalo), 프랑스어로는 클라브생(clavecin)이라고 불리는 하프시코드는 현재 연주되는 건반악기 중 피아노를 제외한 것 중에는 가장 클래식 음악에서 많이 알려지 악기일 것이다. 바하가 살아 활동하던 바로크 시대에 즐겨 연주된 악기로, 피아노처럼 건반을 누르는 연주 원리는 동일하지만, 해머로 현을 때리는 것이 아니라 특유의 바늘처럼 생긴 뽀족한 장치로 현을 튀기게끔 되어있다. 그리하여 다소 챙챙거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나게 되고, 건반을 누를때의 느낌도 피아노의 부드러움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기타 줄을 튀길때 느껴지는 순간적인 줄의 저항이 건반에서 은연중에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고, 이러한 터치의 차이 때문에 피아니스트라고 해서 모두 하프시코드를 잘 연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크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즐긴다면, 피아노보다 하프시코드가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 시대의 악보는 음표 외의 기호가 별로 없는 편인데, 이는 애시당초 표현이 어려운 크레센도(점점 크게) 등의 나타냄말이 아예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다.(실제로 크레센도가 처음으로 연주되었던 초기 고전주의 시대의 음악회장에서는 여인네들이 그 자극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기도 했다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하지만, 이런 미세한 나타냄말이 악보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감정을 배제하고 기계적으로 연주하면 절대 금물이다. 그렇게 할 경우 정말로 기계적인 소리가 나게 되므로 오히려 음의 길이 등을 미세하게 조정해서 감정을 풍부하게 싣고 연주를 해야 음악적으로 들리게 된다. 그리고, 이 시대에는 연주자와 작곡가의 구별이 모호해서, 악보로 기록에 남기는 것이 현재의 클래식 음악처럼 철저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해석의 여지가 더욱 다양해 질 수 있는 것이다. 


클라비코드(clavichord), 버지날(virginal)스피넷(spinet)

클라비코드는 하프시코드보다는 소리 나는 원리가 피아노에 가깝지만 그 형태는 굉장히 단순한 악기이다.  건반을 누르면 반대편 끝에 달린 쇠막대기가 현을 때리는 원리이며, 그로 인해 하프시코드에서 불가능했던 셈여림의 표현이 가능하다.  하지만, 가로로 긴 상자 형태의 아주 작은 악기인데다 울림통이 크지 않아서 대부분 가정용으로만 사용된다.  바흐가 작곡한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이나 인벤션 등이 이 악기를 위해 작곡되었다.  가정용 악기이다보니 오르간 연주자들도 연습용으로 집에 구비하는 경우가 많았었는데, 파이프오르간처럼 페달 건반의 형태로 달린 대형 클라비코드도 간혹 존재해왔으나 현재는 흔하게 찾아볼 수 없는 악기이다.  클라비코드와 함께 버지날(virginal)스피넷(spinet) 등의 악기도 존재하는데, 이들은 하프시코드처럼 현을 뜯는 장치가 내장된 소형 건반악기들이다. 결국 현재의 업라이트 피아노처럼 가정용으로 사용되는 악기들이고, 현재의 그랜드 피아노는 하프시코드가 그 역할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간혹가다 아주 작은 업라이트 피아노를 스피넷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함머클라비어(Hammerklavier)와 포르테피아노(fortepiano)

피아노에 가장 가까운 악기라고 볼수 있는 함머클라비어는 베토벤이 동일한 제목으로 소나타를 작곡한바가 있는데, 단순한 막대기가 아닌 해머를 사용해서 제작된 악기로 당시에는 획기적이 발명품이었다. 포르테피아노 또한 비슷한 원리인데, 큰 소리(포르테)와 작은 소리(피아노)가 명확하게 구별이 간다는 특징을 악기이름에 반영한 것이다. 이 악기가 우리가 알고 있는 모짜르트와 베토벤의 피아노곡들을 당시에 연주했던 악기들이다. 모짜르트 소나타에 표기된 다소 어색한 프레이징들을 당시의 악기인 포르테피아노로 연주할 경우 매우 자연스럽게 들린다.



요즈음에는 디지털 피아노가 더욱 흔해져서 양질의 가정용 업라이트 피아노의 제작이 예전만큼 활성화 되지 않았다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 전후로 제작된 피아노가 그나마 품질과 내구성이 좋으며, 이후에는 많은 공장들이 비용이 저렴한 해외의 나라들로 이전을 하면서 장인들의 손이 덜 가게 되고 자재도 예전만큼 견고한것이 쓰이지 않게 되었다.  더 좋은 악기를 연주하겠다며 20여년 된 피아노를 중고시장에 팔고 새 피아노를 사들일 경우 자칫하면 더 낮은 품질의 악기를 구비하는 실수를 범할 수도 있는 것이다.  피아노가 발전된 역사를 알게 되니 더욱 그 참된 가치를 깨닫게 되는 만큼, 되도록이면 전자음향보다는 실제 악기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조금만 투자해서 1990년경 제작된 국산 중고피아노를 업라이트로 구하는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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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소재로 작곡하는 사람들...
개념미술을 음악에 빗대어 '개념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은 예 일듯...
행위예술과 음악공연의 경계랄까...? 
듣는이 입장에선 좀 지루하기도 하고...;;;
가학적인 음악을 추구하는 내 취향에도 들어맞...^^;;;
쓰고는 싶지만 듣고싶진 않은 음악 ㅋㅋ

http://www.soundexpanse.com/rs27-wandelweiser/ - 친구 제니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이들에 관한 다양한 자료가 있다(영어주의).


(출처: Alex Ross의 블로그 The Rest is Noise)



서울 상수역에 내려서 몇발자국 걸으면 오피스텔이 하나 있다. 평범해 보이는 이 공간에 벨을 누르고 들어가면 등받이도 없는 조그만 의자들이 놓여있고,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어색하게 앉아서 한 방향을 바라보며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 8시가 되자 그들이 바라보던 책상에 키가 190즘 되보이는 중년 백인 남성이 다가가 앉아서 말없이 조용히 종이 한장을 바라보며 뚜껑이 닫혀있는 펜촉을 이따금씩 그 종이에 갖다댔다가 떼었는데 그 소리는 들릴듯 말들 했다. 5분즘 지나니까 나름대로의 일관성이 있다는 사실은 인지가 되었지만, 정확히 어떤 법칙으로 타이밍을 잡아 펜촉을 종이에 대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규칙적인 듯 한데 아니기도 했다. 억겁과 같은 시간이 지난 듯 했지만 단 5분이 지나있을 뿐이었다.

"공연"9시가 넘도록 계속되었고, 연주자(?)의 진지한 태도는 공연이 끝나는 순간까지 지속되었다.

이 날은 스위스의 작곡가 만프레드 베르더가 자신의 작품 stück 1998” 를 ‘닻올림’이라는 즉흥음악 공연장에서 연주 한 날이었다. 그는 침묵과 극도로 미미한 소리들을 소재로 삼아 작곡을 하는 “반델바이저(Wandelweiser)”의 일원이다.


20여명의 작곡가로 이루어진 반델바이저 악파의 작곡가들은 일반인이 잘 모르는 현대음악 작곡, 그 중에서도 비주류에 속하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사조를 이루고 있다. 음악과 행위예술의 세계를 넘나드는 작품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그들은 기존의 음악회장에서의 작품발표(악기, 또는 성악가가 악보를 보며 시작과 끝이 분명한, 하나의 곡을 연주하는 것)에 대한 개념 자체를 도전한다. 그렇다고 파격 자체를 추구하기만을 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소리와 침묵과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수적인 소리들을 탐구하고자 한다.


피아니스트가 무대로 나와 피아노 뚜껑을 연 후 433초만에 다시 피아노 뚜껑을 닫고 나왔던 존 케이지(John Cage)의 ‘433초’가 초연되었을 당시, 이 공연이 이루어진 현장에서 관객들이 냈던 소리가 유일한 “음악”이었다. 이 곡에서는 연주자가 완전한 침묵으로 일관된 작품을 연주(?)했지만, 만약에 엄청나게 작은 소리들을 오랫동안 연주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 또한 연주자의 연주와 객석에서 나는 소리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바로 이 현상을 탐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파격적인 현대음악을 만드는 이들이지만, 반드시 그 소리가 소음이거나 불협화음은 아니다. 일반인의 귀에 익숙한 조성음악의 소리들을 마음껏 차용하기도 한다. 다만, 그 화음들이 기능적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버려야 한다. 일단, 하나의 음이 너무나도 작고, 그 다음 음이 어마어마하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울려퍼지는 경우가 다반수이기 때문이다. 진공상태에 있는 듯한 엄청나게 지루할 수도 있는 시간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청각을 총동원하여 ‘음악’을 찾아들으려 하게 되고, 문득, 그 어느 때보다도 ‘음악’과 가까이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이순간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자각이 극대화 되는 것이다.


소리와 침묵과의 관계연주자와 객석의 관계를 파헤지는 것에서 더 나아가일상생활과 연주의 경계 또한 허물 수 있는 방법이 있다위에 언급한 만프레드 베르더의 작품의 경우각 페이지를 공연을 하면 다시는 다른곳에서 다시는 재연이 되지 않아야 하며공연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아직 공연되지 않은 새로운 페이지를 작곡가에게 직접 건네받아 그걸 연주해야 한다악기편성은 자유이지만 연주자 인원수에 따라 각기 다른 곡이 작곡(?)되어 있기 때문에 사전에 통보하여 올바른 악보를 건네받아야 한다관객은 없어도 되고단지 지구상 어디에선가 이 공연이 행해지기만 하면 된다이 악보는 A4 용지에 숫자만 적혀있고 음표는 단 하나도 적혀있지 않다현재까지 만들어진 악보(?)들을 전부 이어서 연주한다면 아마 500시간이 넘을 것이다뉴욕 출신 작곡가 Craig Shepard(크레그 셰퍼드)의 경우 31일간 스위스를 도보로 횡단하며 매일 하나의 트럼펫 곡을 작곡하고 이를 그날 저녁에 연주하였다이 경우도작곡과 연주작품의 개념이 하나의 예술행위로 귀결되면서 그 경계가 허물어지고현장에서 그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는다이 점에서는 행위예술의 특성과도 교집합을 강하게 이룬다.



'아이디어가 곧 예술'이라는 개념미술의 모토를 음악에 대입한다면, ‘개념음악’이라는 단어로 반델바이저를 분류할 수 있을까? 반델바이저라는 단어 자체도 다다이즘의 ‘다다’못지 않게 모호한 뜻으로 이루어져있다. 억지로 번역하자면 '변화의 지표' 또는 '변화를 현명하게 하는 사람' 등으로 해석이 가능하지만, 사실상 표준 독일어에도 없는 단어이고, 결합되기 이전의 두 단어, wandelweiser가 암시하는 의미들만이 Wandelweiser에 대한 뜻을 추측하는 근거로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단어 뜻에서부터 악보, 음 재료, 소리, 연주형태 등 모든 것이 애매모호한 반델바이저 악파는 결국 그 존재 자체로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의 삶은 어디부터가 연극이고 어디까지가 리허설인가, 우리가 추구하는“진짜”는 무엇이고, 우리는 무엇을 보고 듣기 위해 모두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하나의 멋진 작품을 완성하야 발표하겠다고 고군분투 하지만 결국 그들은 삶과 예술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듯이, 반드시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인생은 하루하루 자체가 작품이고, 모든 사람이 창작자이며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 않은가? 그 어떤 드라마틱한 선율도 이루어낼 수 없는 가치를 단 하나의 음만으로도 제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접하며 잔잔하지만 강렬한 감동을 받게 되었다.



자료출처:
http://surround.noquam.com/listening-at-the-limits/
http://www.newyorker.com/magazine/2016/09/05/silence-overtakes-sound-for-the-wandelweiser-collective
http://www.soundexpanse.com/rs27-wandelweiser/
http://www.dotolim.com/?tag=만프레드-베르더 (원고에 적힌 이 분의 공연 묘사는 2013년 공연으로.. 본 웹사이트에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글은 문화 + 서울 2016년 10월호에 기고된 칼럼입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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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서양음악이 보급된 것은 서양문물이 보급된 개화기 시절 무렵이 그 시작점이다. 그 무렵은 하필면 일제 강점이와 맞물리기도 하고, 그리하여 친일행각을 벌인 것으로 의심되는 음악가들의 영향을 지금까지 받고 있다. 어찌됐건, 그들이 배운 것을 토대로 창작된 음악을 씨앗 삼아 현대 한국의 음악이 꽃 피우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 시절에 작곡된 곡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중학교에 입학하여 첫 음악시간에 배운 노래는 홍난파가 작곡한 “고향생각”이었다.

이은상의 시로 작곡된 “고향생각”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어제온 고깃배가 고향으로 간다하긔

소식을 전차하고 갯가으로 나갔더니

그 배는 멀리 떠나고 물만 출렁거리오


고개를 수그리니 모래씻는 물결이요

배뜬곳 바라보니 구름만 뭉게뭉게

때묻은 소매를 보니 고향 더욱 그립소


당시 예민한 사춘기의 귀로는 이 노래가 그렇게 어색할 수 없었다. 일단 선율 자체가 매우 동요스러운데 그에 상응하는 가사는 늙은이에 가까운 어른의 정서를 담은 것이 부자연스러웠다. 서울의 어느 병원에서 태어나 평생을 아파트에 살았던 대부분의 친구들은 이 가사가 그다지 와닿지도 않았겠지만, 서양음악과 동요에 길들여져서 선율 자체의 느낌은 익숙했을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뜯어보면 선율 자체도 그다지 아름답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특별히 개성있는 멜로디는 아니었는데다가 가사도 어색하게 붙어있고, 4/4박임에도 불구하고 서양음악의 대표적인 2+2 프레이징이 철저하게 지켜지지도 않는다.


특히 이 부분이 그러하다:

물만/ 출렁///(5마디)


결국 물만 출렁거린다는 표현에서 “거”와 “리”가 굉장히 강조가 되는 구조로 멜로디가 만들어졌다. 그나마 2절은 조금 낫다. 같은 불안정한 5마디 선율이긴 하지만 “그”와 “립”이 강조가 되었으니까. 당시 음악교과서에서는 전형적인 4마디 선율에서 마지막 세 음절에 늘임표(페르마타)가 붙은것이나 다름없다는 나름의 설명이 담겨있긴 한데, 그렇다면 그냥 4마디로 두면 나을 것을 왜 저렇게 바꿔놨난 하는 의아함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일단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이번 건은 개인적인 음악적 취향의 차이 때문이라고 해두기로 한다.



사실 2+2 프레이징이 안 지켜지는 대표적인(더 끔찍한) 예는 윤석중 작사, 윤극영 작곡의 어린이날의 노래이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라난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시만 읽었을때는 당연히 우리나라의 시조와 흡사하게 4개의 단어로 각 행이 이루어져 있고 이것이 일정하게 유지 되어있어서 노래도 이에 상응하게 작곡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어린이날 노래는 그렇지 않다.

날아라/ 새들아~/ ~/ ~~/~(5마디)

달려라/ 냇물아~/ ~/ ~~/~(5마디)

오월은/ 푸르~/~ /우리들은 /자란~/~(6마디)

오늘은/ 어린이날/ ~/~~/~(5마디)


이런 박자 시스템은 과장되게 생각하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연상시키는 불안정함을 담고 있다. 어린이날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던 이유가 결국 마음에 드는 선물을 받지 않았거나 놀이공원에 가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나보다. 이 노래가 얼마나 잘못 작곡 되었는지는 대학교때 작곡과 교수님이 열변을 토하며 설명하시곤 했는데 그때마다 속으로 크게 공감을 했었다.


지난해 음악인들 사이에서 어느정도 화제가 되었던 지휘자 구자범의 칼럼에서 언급된 애국가 또한 비판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한다.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되는 가사에 선율은 “해”와 “두”가 강조되게끔 쓰였기 때문이다. 원래 애국가는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멜로디를 사용했었다. 오늘날의 애국가 선율은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연상시키는 안익태의 “한국환상곡”의 마지막 합창부분인데, 이것이 1948이승만의 대통령령에 따라 국가의 멜로디로 정해진 것이었다. 그 사실만 본다면 안익태는 민족을 대변하는 위대한 음악가처럼 보이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에키타이 안”이라는 이름으로 독일 등지에서 활동했던 작곡가였던 안익태는 1942년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경축하는 '만주국 춘전곡'을 의뢰받아 4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큰 관현악과 혼성합창을 위한 교향적 환상곡 '만주'"를 완성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적인 맥락까지 생각을 해보면 차라리 독립투사들이 가사만 바꿔 불렀다는 “올드 랭 사인” 선율이 훨씬 애잔하고 아름답게 들려온다. 최근에는 가수 김장훈, 올드 랭 사인 곡조에 애국가 가사를 붙인 속칭 '독립군 애국가' 2012년 하계 올림픽 응원가로 리메이크하여 발표하기도 하였다.


안익태, 홍난파, 윤석영 등의 개화기 음악가들이 서양음악의 도입과 보급에 지대한 공을 세운것은 사실이지만, 어쩌고 보면 서양음악이 국악보다 우월하다는 위험한 인식도 함께 보급한 셈인데다가, 서양음악에 대한 제대로 기초가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음악적으로 세련되지 않은 노래들을 만들어 이것들이 현재에도 불리우게 되어 지금 우리에게까지 피해 아닌 피해를 끼치고 있다.


사실 이런 현상은 개화기의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던 그 시절에 팽배했던 인식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현재에는 표면적으로는 많이 사라졌고 우리의 것을 소중히 하려는 움직임이 일단은 생겨났다. 하지만, 서양의 어법으로 깊게 물들어버린 한국의 음악적 전통과 음악인들의 귀는 돌이킬수가 없을 것이라는 점이 안타깝다. 많은 젊은 국악인들이 악기는 국악기를 타고 있는데, 서양의 음악적 패러다임으로 그 악기들을 연주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원문 보기(문화+서울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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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2.12 1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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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도구의 진화 - 카세트 테이프와 CD의 추억


요즈음에는 가장 값싸게 구매되는 문화상품이 음악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음악을 듣는 것이 너무나 쉽고 간편하고 저렴한 행위가 되었다. 불과 100여년 전, 축음기가 발명되기 이전까지는 직접 악기나 목소리로 소리내어 연주하는 것을 듣지 않으면 음악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시절과 비교해 보면 실로 엄청난 변화이다. 컴퓨터를 통해 파일로 유통되고 소비되는 21세기의 음악 재생 방식이 없던 시절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지만, 사실 현재와 같은 음악감상 형태는 몇년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어떤 방식으로 음악을 틀고 감상했을까?필자가 경험한 어린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추억을 떠올리며 되짚어 보고자 한다.


몇살인지 기억도 안나는 까마득히 어린 시절, 음악을 들을 때 사용했던 것은 카세트 테이프였다. 당시 납작하고 큰 기계에 테이프를 넣고, 옆의 빨간 버튼을 누르지 않도록 조심하며 삼각형 버튼을 세게 꾹 누르면 테이프 속의 작은 바퀴들이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미세한 기계소리가 시작되고 잠시 후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들으면서 졸다 보면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음악이 끝났음을 알려온다.


당시 즐겨 듣던 테이프는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이었다. 피아노 학원에서 선물로 받은 모음곡집을 연습하면서 알게 된 세계 여러 나라의 춤들을 들으면서 바비인형을 모형삼아 춤으로 만들며 놀았었다.당시에 유명했던 피겨 스케이트 선수인 이토 미도리를 따라하며 안무를 짰던 기억이 난다. 이후에는 음악을 전공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동네 음반가게에 가서 피아노 음악과 클래식 음반을 사서 듣곤 했다. 당시에는 CD도 나와 있었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더 많은 음악을 듣기 위해 카세트를 사모았다.


음악감상을 몹시 좋아하던 부모님은 카세트와 함께 레코드 판(LP)도 즐겨 들으셨다. 레코드 판 같은 경우는 짦은 바늘과 같은 것을 턴테이블 위 레코드판에 살포시 올려 놓아야 하는데, 이때 레코드 판에 흠집이나 먼지가 있으면 바늘촉이 걸려서 음악이 진행되지 않는다. CD를 듣다가 가끔 튀기곤 하는 그 현상과 비슷한데, 가족들이 즐겨 듣던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에 그런 흠집이 나있었다. 공교롭게도 2악장 막바지 바이올린 솔로의 트릴 부분에서 바늘이 늘 걸려서, 마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트릴이 계속되었는데, 나중에는 그 때가 다가오면 자동으로 바늘을 들어 약간 비껴가게끔 손을 보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나이가 30대 이상인 사람들은 카세트와 레코드판을 기억 할 것이다. 굉장히 오래 전 일인 듯 느껴지지만, 불과 20여년전의 추억들이다. 이후에 CD가 보급되어 대세를 이루던 시절이 불과 10여년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시대변화가 얼마나 빠른 것인지 갑자기 실감이 난다.


CD를 처음 접했을 때는 그 편리함과 깔끔한 음색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테이프처럼 어림짐작으로 찾지 않아도 트랙을 검색하여 음악이 시작되는 부분으로 자동으로 옮겨지는 것과, 음악이 다 끝나도 툭 하는 소리가 나지 않고 조용히 있다는 점 이 두가지가 몹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트랙을 검색하는 기능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일부러 한 음반의 트랙들을 순서를 바꾸고 건너뛰어가며 듣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기본적인 기능인데도, 마치 신세계를 체험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때 당시 갖고 있던 워크맨으로 테이프를 들으면 음이 전체적으로 높게 들리곤 했는데, 어렵게 장만한 휴대용 CD 플레이어에서는 그런 현상이 전혀 없어서 어찌나 든든한지 몰랐다. 그때 당시 휴대용 CD 플레이어는 학생들에게 초 럭셔리 아이템이었고, 자율학습 시간에 CD를 듣고 있자면 괜시리 어깨에 힘이 들어가곤 했다. 그때 가장 갖고 싶었던 건 SONY에서 나온 초소형 플레이어였다. CD 크기와 같고 두께가 1cm도 안됐던 걸로 기억하는데, 당시 형편이 여의치 않아(?) 좀 더 두꺼운 Panasonic을 소장하였다.


이 시절 잠시 미니디스크(MD)가 유행하기도 했는데, 주로 얼리 어답터 친구들이나 외국에 살다 온 친구들이 가지고 있었다. 손바닥 보다도 작은 네모난 디스크를 넣어서 재생하는 기계가 너무나 작고 귀여우면서도 훌륭한 음색을 자랑해서 굉장히 탐나긴 했으나, 기계는 어찌어찌 구한다 해도 이미 CD로 지출이 심한 상태에서 도저히 그만큼의 음반을 모을 수가 없었다는 어려움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꼈는지, MD시장은 의외로 금방 식어버렸고, 지금은 자취를 찾을 수가 없다.


몇년 지나지 않아 손가락만한 작은 기계에 500개가 넘는 노래를 저장할 수 있다는 mp3 플레이어가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디지털 음반 시장이 활성화 되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한번에 휴대할 수 있는 음악의 양이 늘 한계가 있었으므로, 이는 획기적인 기능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한 음악보급이 이루어 지면서 음반시장은 빠른 속도로 쇠퇴되었다.


몇년 전에는 작곡과 지도교수님의 유품을 동료 제자들과 함께 정리하다가 릴투릴(reel-to-reel) 테이프를 발견하기도 했다. 이는 카세트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음반 형태인데, 복잡한 고가의 재생도구가 필요한 관계로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었다고 한다. 난생 처음 보는 릴투릴을 보고 차마 전부 버릴 수가 없어서 일부를 간직하고 있다.

이제는 음악을 듣는 것은 마음 먹기에 따라 단 한푼도 들지 않는 일이다. 필자의 경우도 원하는 음악이 있으면 일단 인터넷으로 검색을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제는 그렇게 쉽게 찾은 음악들은 잘 기억에 남지도 않는다. 기다림의 세월을 거쳐 어렵게 용돈을 모아 듣게 되는 테이프나 CD의 음반들이 강렬히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얼마전, 중학생 때 이후로 듣지 않았던 마이클 잭슨의 초기 음반을 카세트 플레이어가 내장된 소형 오디오를 사서 테이프로 틀어봤다. 당시에는 가사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주의깊게 들었는데, 이제는 흔한 사랑노래들이 덜 와닿는 것 처럼 이 노래들도 더 짧게 느껴지고 감흥이 덜 한 것 같다. 내가 어릴 적에는 고작 이런 것에 감동을 받았었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때는 차라리 영원히 다시 듣지 말걸 그랬나 하는 회의감도 들지만, 이를 계기로 추억을 더듬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이제는 이세상에 없는 마이클 잭슨의 풋풋한 목소리를 들으니, 가는 세월은 잡을 수 없구나 하는 늙은이같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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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는 영감이 떠오르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미친듯이 오선지에 잉크를 처바르고, 단 한번의 수정도 없이 걸작이 탄생하는 줄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런 환상은 심지어 작곡가 자신들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이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과 열등감에 알게 모르게 시달리게 된다.

이러한 창작자에 대한 현실은 여러 영화나 대중매체에서 보여주는 작가, 작곡가, 심지어 논문을 쓰는 과학자 등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에서 비롯된 것이다. 얼마전에 작고한 천재 수학자 존 내쉬의 삶을 줄거리로 한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 주인공인 청년 내쉬가 기숙사 방에 틀어박혀 계절이 변하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생각해낸 새로운 수학이론을 방대한 양의 논문으로 집필하는 장면이 있다. 천재의 창작물,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대한 일반인(?)의 환상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모차르트의 삶을 다룬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도 그를 흠모하는 동시에 질투하는 작곡가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악보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하는 장면이 있다. 펜으로 작곡한 악보에 작곡과정에서 곡을 고친 흔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천재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널리 보급된 것 자체를 원망할 수는 없지만, 현실은 이런 것과 매우 다르기도 하다는 것을 천재는 아니지만 약간의 재능을 가져서 우여곡절 끝에 창작을 업으로 삼고 있는 많은 예술가들은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 작곡가가 영화에 나오는 천재처럼 곡을 술술 써내려가지 못하는 순간들에는 어떤 장애가 도사리고 있는가? 작곡가로 활동중인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일부 언급해 보도록 한다.


1. 집중력

하나의 아이디어를 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많은 끈기가 필요하다. 이 때 다른 생각은 안하고 오롯이 음악 그 자체에만 집중을 해야 하는데, 음악이 워낙 추상적인 예술이다 보니 이것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에 피아노로 먼저 처보고 기보를 하는 스타일이라면, 치고 들은 것을 악보고 옮겨적을 때 까지 오롯이 기억을 하고 기보를 해야 하는데, 그 짧은 순간에도 많은 정보들이 새어나갈 수 있다. 사실, 악보에 적는 것들은 매우 한정적이고, 그 음악의 분위기나 그밖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한 요소들은 기록이 불가능 할 수도 있다. 그런것들을 놓치지 않고 작곡의 동력을 유지하는 것은 실로 많은 에너지와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곡을 한창 신나게 쓰다가 잠깐 다른 일이 생겨서 자리를 뜨고, 몇시간 후, 또는 며칠 후에 다시 그 악보를 펴보면 예전의 그 타오르던 영감은 사라져서 온데간데 없고 웬 생뚱맞은 음표들이 날 바라보고 있던 경험이 있다. 이는 음악의 수많은 요소들 중 음 높이나 리듬 등 극히 일부만을 기보하고 기록이 불가능했던 더 중요한 요소들이 누락되어서 일 수도 있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려면 크게 두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곡을 다 쓸 때까지 몇날 며칠을 밤을 새더라도 자리를 절대로 뜨지 않는 것과, 최대한 많은 정보와 계획들을 바로바로 악보에 기록하고 기보해서 다음에 그 페이지를 볼 때 예전의 느낌을 그대로 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자리를 떴을 때에도 최대한 곡에대한 생각을 마음 한켠에서 끊이지 않게 하면서 그 영감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2. 멀티태스킹 능력

연필을 들고 오선지를, 또는 마우스를 들고 컴퓨터 화면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행위는 단순해 보이지만, 동시에 생각해야할 음악의 요소들은 실로 너무 여러가지여서, 이는 마치 정교하고 까다로운 게임을 하는 것과 같을 수 있다. 대중적인 음악을 예로 든다면, 아름다운 선율(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음의 높이가 변한다)을 생각하는 동시에 그 선율 안의 각각의 음이 울려퍼지는 순간 다른 악기들의 울림(수직적인 울림이라고도 한다)을 신경써야 하는 것이다. 이 두가지는 사실상 동시에 할 수 없는 동시에 동시에 해야만 하는 것들이라, 작곡가에겐 정신분열의 체험이 될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음색, 셈여림, 가사(노래일 경우) 등의 여러가지 다른 요소들도 동시에 고려해야 하므로, 어지간한 온라인 게임보다 더 현란한 마우스 움직임을 요할 수도 있다고 주장해도 어느정도 일리가 있다.


3. 심리적인 문제 - 자아에 대한 인식

작곡가들 사이에서 “생긴대로 곡 쓴다”는 말이 있다. 진심이 담긴 음악은 자신의 삶과 인간성을 담고 있다는 의미이다. 심지어, 진심이 담기지 않은 음악조차 작곡가의 진실되지 못한 삶의 태도를 닮아있다. 그러므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밖에 없는 창작과정이 어떤 순간에는 마치 옷을 벗는 듯한 부끄러움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런 식의 노출들을 즐기지(?) 못한다면 아무리 음악적인 재능이 있어도 작곡과정은 느리고 힘겨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음감이나 기타 작곡능력에 관계없이 창작이라는 행위가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만성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큰 질병이 생기기 전에 서둘러 다른 직업을 구하는 것이 개인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 이득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고통을 감수해낼 정도로 성취감과 희열이 크다면 당연히 계속 작곡을 하는 것이 좋다.


4. 시간개념

곡을 쓰는 시간과 결과물이 연주 되었을 때 소요되는 시간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간극이 있다. 예를 들어, 약 두어시간동안 정성껏 집중하여 작곡하여 대여섯 마디의 소절을 정교하게 만들어 냈다고 가정하면, 이는 대략 10초 안팎의 시간동안 울려퍼질 것이다. 이러한 시간인식의 차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곡의 진행이 어마어마하게 빨라지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으니 이제 넘어갈 때가 되었다고 작곡가는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음악적으로 아직 좀 더 움츠러들어 있어야 할 타이밍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절정에 다다른 지점에서 너무 금방 식어버려서 곡이 허무하게 끝나도록 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조금 힘들더라도 그 클라이맥스 섹션을 좀 더 붙들고 있어서 더 길게 만들어야 한다. 이런 것들은 듣는 사람의 입장을 늘 생각하면서 곡을 쓰는 ‘역지사지’의 능력이 있어야만 효과적으로 할 수 있으며, 어느정도의 재능과 훈련이 두루 필요한 부분이다. 이는 많은 음악을 듣고, 악보를 보거나 제작과정을 관찰하는 등의 다양한 창작과정에 대한 경험을 통해 어느정도 훈련될 수 있다.


작곡가도 다양한 성격과 성향들이 있어서 본인의 단점이 각기 다르다.

어떤 작곡가는 재료는 잘 정리하고 나열하는데, 그를 활용하는 능력이 부족하기도 하다. 어떤 작곡가는 시작할 때의 순간적인 아이디어는 번뜩이는데 이를 긴 작품으로 끌고 나가는 동력과 끈기가 부족하고, 어떤 이는 반대로 꾸준히 곡을 대단한 분량으로 써내려가는데, 결정적으로 창의력이 부족하여 특별한 아이디어가 없는 밋밋한 작품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듯 같은 직업군 안에서도 천차만별의 사람들이 존재하니, 인간은 공통점이 많으면서도 참으로 다양하고 개별적인 존재인 듯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중매체에서 본 것만을 가지고 특정 직업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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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널리 보급되고 연주되는 악기들의 재료는 어느정도 공통점이 있다.  공명이 잘 되면서 내구성이 좋고, 음이 일정하게 유지가 되는 재료들로서 역사적으로 검증을 거친 것들이다.  대표적으로 수많은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쓰이는 재료는 아마 나무일 것이다.  그 외에도 (동물보호법이 발효되기 이전에는) 동물의 신체부위(가죽, 뼈 및 털), 극히 드문 경우(주술적인 이유 등으로 인간의 뼈, 그 외에 산업혁명을 거친 이후에는 플라스틱과 철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소리를 내는 재료로서 반드시 이런 것들만 사용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소 여러 단점들과 제약이 있다고 하더라도 특색이 있는 색다른 재료로 악기를 제작하기도 한다.


1. 채소로 만든 오케스트라[각주:1]

비엔나 베지터블 오케스트라(Vienna Vegetable Orchestra)라는 이 단체는 채소로 만든 악기들에 마이크를 달아서 공연에 사용하면서 살아있는 악기의 소리를 표현하고자 하는 단체이다.  이들은 그날 쓰일 악기를 그날 만들면서 순회공연을 여는 비엔나 베지터블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의 하루는 공연 당일 아침에 장을 보러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곳에서 보이는 채소들을 보면서 저녁때 공연에 쓰일 악기를 구상하고, 이것들을 사들인 후 반나절에 걸쳐서 악기제작에 들어간다.  

아무래도, 정확한 악기의 모양새와 연주법을 미리 알기가 힘들기 때문에, 사전에 작곡된 곡이라고 해도 약간의 즉흥적인 요소가 들어가는 유동적인 음악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들이 연주하는 스타일은 프리재즈, 노이즈 뮤직 전자음악 등으로 분류될 수 있다.

기아에 허덕이는 가난한 나라도 많은 상황에서 채소를 그렇게 낭비(?)해가며 공연을 여는것이 과연 온당한가 의문을 품는 (안티)팬들도 없잖아 있지만, 이들이 소비하는 자원과 에너지는 오히려 기존의 정형화된 악기 제작에 사용되는 자원보다 규모가 적으며 이들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도 극히 미미하다고 한다.  게다가, 공연이 끝나면 악기를 국으로 끓여서 관객들에게 수프를 나눠준다고 하니, 음악회도 여는 비용으로 뒷풀이 음식까지 해결이 되는 셈이다.

공연이 진행되면 될 수록 악기가 조금씩 부러지거나 닳아 없어지기도 하고, 식재료의 파편들이 무대위로 흩날리다보니 일반적인 음악공연에 비해서는 다소 지저분해진다는 애로사항이 있기도 하지만, 악기의 재료가 주는 신선한 생동감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서는 기꺼이 감수하고자 하는 부분이다.  열명의 단원들로 구성된 이 단체는 칼과 드릴 및 부엌도구를 가지고 다니면서 평균 한달에 두어번 정도 공연을 열며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닌다. 




2. 얼음으로 만든 악기들[각주:2]

스웨덴 북부에서는 기타리스트 찰리 섹스턴(Charlie Sexton)과 린 베릴(Lindsey Verill) 등으로 구성된 뮤지션들이 아이스 뮤직(Ice Music)이라는 공연을 이글루 안에서 열었는데, 이때 사용된 모든 악기들은 얼음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기타와 베이스, 타악기 등으로 이루어진 이 밴드의 음악을 듣기 위해서 모든 관객들은 두꺼운 자켓으로 중무장을 하고 눈을 뚫고 이글루 안으로 들어와서 객석에 자리를 잡아야 했다.  덴마크와 스웨덴의 가수들과 협업하여 블루스와 앰비언트 뮤직과 함께 즉흥연주가 뒤섞인 열린 장르의 음악을 선보였다.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최대한 조심스럽게 악기를 제작하고는 있지만 워가 내구성이 약하기 때문에 리허설을 하다가 손상이 가기도 한다.  실제로 바이올린같은 경우는 공연이 시작도 되기 전에 금이 갔었고, 기타의 경우는 한번은 공연 전에 완전히 박살이 나서 대신 밴조를 들고 연주했다고 한다. 하지만, 경미한 손상일 경우는 입김만 조금 불어넣어도 복구가 가능하기도 하며, 온도는 영하 5도 정도로 유지하면 연주에는 큰 지장이 없다.  물론, 체온으로 악기가 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연주자도 두꺼운 옷으로 무장해야 하며, 연주 중간중간에 드라이아이스를 동원해서 최대한 악기 주변 공기의 온도라도 낮게 유지하려고 한다.  하지만, 조명과 연주 자체의 충격과 마찰 등으로 인해 악기를 영하5도로 온도를 유지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관계로, 대부분의 경우 공연 도중에 악기가 녹는것이 확연히 드러난다(실제로 악기에서 고드름이 생기기도 하고 음색의 변화가 들리기도 한다).    



3. 3D 프린터로 제작한 "바이올린"


3D 프린터가 개발되면서 얼마나 정교한 물건을 복제 가능할지에 대한 궁금증과 실험이 끊이지 않았다. 레코드판(LP)을 복제하여 재생해 보기도 했지만, 악기를 복제해서 연주해 보기도 하였다.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복제하여 연주 시범을 보인 바이올리니스트 사이먼 휴윗 존스(Simon Hewitt Jones)의 시도에서 그러한 예를 볼 수 있다.  한편, 이름은 3D 바이올린이지만 기존의 바이올린과 전혀 다른 구조와 형태를 지닌 새로운 프린터용 바이올린이 개발된 경우도 있다.  이는 2015년 4월 뉴욕 Javits Center에서 열린 3D 프린터 쇼에서 선보였던 것으로, 2개의 줄로 연주되고 활로 연주된다는 점은 기존의 바이올린과 동일하다.[각주:3]  

(Credit: MONAD Studio / Eric Goldemberg / Veronica Zalcberg) 출처: BBC



새로운 재료와 현대의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악기들에 대한 시도는 음악계에 신선한 바람을 넣어주면서 우리의 고정관념을 버리게 해주는 좋은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시금 전통적으로 이어져 내려온 견고하고 아름다운 악기들의 가치를 새삼 더 감사히 느끼게 해주는 부작용(?) 또한 낳는 듯 하다.  결국, 새로운 악기가 발명되는 것에 맞춰서 그것을 연주할 인간의 능력도 개발되어야 하는데, 그 변화의 속도에 과연 인간이 따라잡을 수 있을지가 어쩌면 변화 가능성 자체보다도 더 큰 변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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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ttp://www.vegetableorchestra.org [본문으로]
  2. 출처: wsj http://www.wsj.com/articles/in-sweden-musicians-play-hot-licks-on-ice-instruments-1426023783 [본문으로]
  3. http://www.bbc.com/culture/story/20150330-the-weirdest-musical-instruments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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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민 2015.08.17 11: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는 포스팅이네요!ㅎㅎ 오늘 처음 방문했는데 자주 들리겠습니다




천재는 오래 살지 못한다고 하였는가? 최소한 음악에서는 슈베르트, 모짜르트, 베토벤 등 단명했던 천재 작곡가들이 존재하고 이들이 짧은 생애에 남긴 주옥같은 작품들을 보면, 너무나 열렬히 창작욕을 불태우는 바람에 그 불씨가 오래 가지 못하였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젊은 나이인 30대에 운명을 달리 하였다.


운동선수나 모델 등, 젊은 신체가 중요한 특정 직업을 제외하면 이제 갓 자신의 분야에 본격적으로 몸을 담그고 활동하기 시작할 나이인 30대에 이미 요절했던 이들 작곡가들과 달리 대기만성하며 오래 살았던 작곡가들 또한 역사에 걸쳐 여럿 존재한다.


일단, 하이든(J. Haydn)은 당시로서는 매우 많은 나이인 77세까지 살면서 고전주의 시대의 주요 형식들(현악 사중주, 피아노 트리오, 관현악, 소나타 등)을 완성시키는가 하면, 후배 작곡가들인 모짜르트가 사망한 이후에도 활동을 하였다. 또한 20세기 프랑스 음악에 한 획을 그었던 작곡가 겸 오르가니스트 올리비에 메시앙(O. Messiaen)84세까지 살며 까마득한 후배 음악인인 정명훈 지휘자가 자신이 작곡한 투랑갈릴라 심포니를 해석한 것을 마음에 들어하기도 하였다. 출세에 관심을 두지 않고 평생의 절반을 넘게 멕시코에 은둔하며 작업을 하던 콘론 낸캐러우(C. Nancarrow)도 환갑을 넘긴 후부터 유명해 지기 시작하여 85년의 생애의 말년을 화려하게 보냈다.


이렇듯, 많은 작곡가들이 장수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이상하리만치 그들에 대해 무지하며 작곡가는 수명이 짧은 직업이라고 오해를 하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이번 기회에 100세를 넘긴 최장수 작곡가들 중 최근까지 살아있던 대표적인 분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엘리엇 카터(Eliot Carter, 1908-2012)

클래식계에서 명망이 높던 현대음악 작곡가인 엘리엇 카터는 하버드 대학에서 당시 미국의 대표 작곡가 찰스 아이브스(C. Ives)에게 지도를 받으며 음악을 전공한 후, 1930년대에 파리에서 공부한 후 귀국하여 자신의 나라 미국에서 활동하며 유럽 풍의 음악을 작곡하며 100세가 넘도록 활발히 작품활동을 하였다. 그가 100세가 되던 해인 2008년에는 뉴욕 카네기 홀에서 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축하공연이 열렸고, 이때 바렌보임의 피아노 연주로 그 해에 작곡된 곡을 초연하기도 하였다. 90세에서 100세 사이에 무려 40개가 넘는 곡을 작곡하였고, 100세를 넘긴 이후에도 약 20개의 곡을 더 썼다고 한다. 작곡가 자신이 100세 기념 음악회에서 인터뷰를 할때, 자신이 쓰는 현재의 음악을 음악사학자들이 어느 시대로 분류를 해야 할지 애먹는다고 밝혔다. 이미 “후기 카터 음악”으로 분류되었던 작품들을 발표한지도 수 세기가 지나버렸는데도 새로이 곡을 발표하였기 때문이다. 미국 현대음악사에 이토록 지대한 영향을 끼친 카터는 늘 밝고 긍정적인 표정으로 대중을 마주하였고, 그의 건강한 삶의 태도와 늘 쉬지 않고 작곡을 하는 꾸준함이 장수에도 보탬이 되었다고 생각이 든다.



2. 로이 더글라스(Richard Roy Douglas, 1907-2015)

영국의 작곡가이자 편곡자였던 로이 더글라스는 여러 영화음악과 현대음악 작품들을 편곡하였다. 특히, 김연아가 스케이팅 음악으로 사용하여 유명하게 된 ‘종달새의 비상’을 작곡한 랄프 본 윌리엄스(Ralph V. Williams)의 어시스트로 젊은 시절의 일부를 보냈는데, 윌리엄스의 말년에는 더글라스의 작품 기여도가 단순한 편곡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아서 어떤 곡은 윌리엄스의 뜻에 따라 더글라스의 이름으로 출판되기도 하였다. 실내악이나 현악 오케스트라 등 순수음악을 작곡하는가 하면, 라디오 프로그램 등 실용음악에도 기여를 한 더글라스는 평생 독신으로 살며 여동생과 말년까지 함께 살았다고 한다.



3. 버나드 비어만(1908-2012)

엘리엇 카터와 동시대를 살며 100세를 넘게 장수한 작곡가 비어만은 주로 대중음악을 작곡하였다. 본래 법학을 공부하여 법조계에 종사하다가 2차대전에 3년간 참전한 이후부터 작곡을 하기 시작하여 영화음악에 쓰인 노래들로 유명해졌다. 음악이 처음부터 본업은 아니었으나, 일과를 마치고 남는 시간에 오페라를 작곡하기도 하는 등 취미 이상으로 음악에 몰두한 결과 2차대전 참전하고 제대하기 직전에 오페라를 완성할 수 있었으며 이는 음반으로 출시되기도 하며 그가 활발하게 활동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사라 본, 프랑크 시나트라 등의 가수들이 그의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으나 1952년경 작곡가로서의 커리어에 종지부를 찍고 사업가로 변신하였고, 이후 수십년간 뚜렷한 작곡활동을 하지 않다가 1980년대에 아내의 설득에 힘입어 다시 작곡활동을 시작하여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노래 “Club Mambo”로 재기하였다. 6개의 음반을 출시하였으며,“We Have Something To Say”60세 노인들의 애환을 살짝 담기도 하는 등, 연로한 작곡가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담기도 하였다.



마치 10대때 공부 성적에 따라 평생이 좌지우지 될 것 같은 조급한 마음으로 인생을 시작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는 이렇게 100년에 걸쳐 인생의 여러 다양한 시기를 거친 작곡가들의 삶이 조금은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대게는 천부적으로 가진 재능을 최대한 갈고 닦아 젊은 시절에 빛을 발하고 그 성과를 말년에 누리는 삶의 형태를 대한민국의 표준으로 삼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삶이라면 그것이 언제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모르기 때문에 너무 이른(?) 중년의 나이에 자신의 인생을 결론짓지 말고, 70세가 되어 다시 작곡을 시작한 비어만이나, 100세가 넘도록 작품활동을 한 엘리엇 카터처럼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꾸준히, 느긋하게 보내는 삶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맥락에서 아직 이룬것이 없는 30대의 필자도 위에 언급된 최장수 작곡가들의 삶을 보고 용기를 얻는다. 인생은 60부터라고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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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위한 음악 - 인간과 다른 청각구조를 지닌 고양이를 위한 음악을 쓰는 David Te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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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어로 “보통의 빠르기”라는 뜻을 지닌 모데라토(moderato)라는 음악용어는 대략 1분당 80회 정도의 박자 속도를 뜻하며, 이것은 인간의 심장 박동수와 흡사한 빠르기이다. 우리가 편하게 듣는 음악의 기준이 되는 표준 속도는 이렇듯 인간의 신체반응에서 자연스럽게 유추된 것이다. 이는 “빠르게”라는 뜻을 지닌 알레그로(allegro)보다는 다소 느리고, 소나타나 교향곡의 느린 악장 기준으로는 다소 가벼운듯 빠르게 진행되는 정도의 템포(tempo, 빠르기)이다.


우리가 편하다고 생각하는 음악을 곁에 있는 강아지에게 들려주고서는 별 반응이 없다며 동물은 음악을 들을 줄 모른다고 간단하게 결론 내리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몸에 최적화된 음악을 동물이 들었다고 해서 반드시 그들도 이를 음악으로 인식하길 바라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인간은 갓난아기때 가장 넒은 범위의 주파수를 듣다가 점점 나이가 들 수록 청각기관의 노화가 진행되면서 그 범위가 좁아진다. 어릴때 듣던 아주 높은 음이 더이상 안들릴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듣지 못하는 아주 높거나 낮은 소리를 들려주고서 반응이 없다고 음악도 들을 줄 모른다고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면 아마 어처구니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동물에게도 그들의 청각기관에 따른 고유의 주파수가 있다.


위스콘신-매디슨(Wisconsin-Madison) 대학의 찰스 스노든(Charles Snowdon) 심리학 교수는 작곡가 데이비드 타이(David Teie)와 함께 고양이의 청각세계를 연구하였고, 그들이 대체로 인간보다 한 옥타브 높은 음역대의 목소리를 지녔다는 것과 미끄러지는 음을 많이 낸다는 것 등의 다양한 특징들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고양이의 소리들을 그대로 재생하기 보다는 이것을 재료로 삼아 새로운 곡을 쓰는 것을 연구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만들어 냈다. 세계 최초로 고양이만을 위한 음악을 작곡하여 발표한 것이다.


2015215, 스노든의 연구팀은 총 세 곡을 공개한 후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공개투표를 요청하였다[각주:1]. 이중 한 곡은 고양이가 가르랑 거리는 소리를 표본으로 삼아 1분당 1380개의 박자로 이루어진 음악이고, 대부분 곡들의 멜로디는 인간의 기준으로는 아주 높은 음역대에서 짧고 조용히 연주된다[각주:2].


유투브에도 공개된 이 음악을 들은 네티즌들은 자신의 고양이가 평소에는 음악에 전혀 반응을 안했는데, 이 음악을 트는 순간 스피커를 뚫어지게 쳐다보는가 하면 옆에서 아주 편하게 그르렁 거리며 눕기도 했다며 놀라워했다. 인간이 듣기에는 장난처럼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들에 고양이들은 강렬하게 반응을 한 것이다.


이 즈음에서 많은 사람들이 강아지를 위한 음악에 대해 궁금해 할 것이다. 고양이를 위한 음악을 작곡하는데 성공한 스노든 연구팀이 혹시 강아지를 위한 음악을 작곡할 생각은 없는지?


강아지는 종에 따라 체구도 다양하고 목소리도 다양하기 때문에 종 별로 각각 고유의 음악을 만들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므로 향후 강아지를 위한 음악은 각 종마다 따로 발표를 할 것이라고 스노든 연구팀은 홈페이지(musicforcats.com)에서 향후 계획을 밝혔다[각주:3].


고양이를 위한 음악을 연구하기 이전에 스노든 연구팀이 최초로 만든 ‘동물음악’은 사실은 원숭이를 위한 음악이었다. 원숭이들이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할 때 내는 소리는 인간이 듣기에는 날카롭고 거북한 소리이고, 심장박동 또한 매우 빠른 편이어서, 이런 특징들을 담은 음악을 제작하여 실험실 원숭이들에게 들려줬을때, 인간의 음악소리와는 달리 뚜렷한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각주:4] 원숭이들이 실험실에서 유일하게 반응을 보인 ‘인간음악’은 헤비메탈 밴드 메탈리카의 음악이었고, 이를 들으며 인간과는 달리 몹시 차분해지는 효과를 받았다고 한다[각주:5]


말을 위한 음악의 경우는 아직 개발단계에 있는데, 규칙적인 박자(?)로 오랫동안 뛰는 말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말은 리듬이 고르고 규칙적인 음악을 선호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말이 뱃속에서 듣는 어미의 심장소리를 뇌에 각인시킨 후 태어난 후에 이를 적용시킨다는 이론을 전제로, 말의 태아시기 자궁속의 소리를 최대한 파악하려고 작업중이라고 한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니까 남들도 좋아할 것이라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인해 우리가 사랑하는 애완동물들에게 본의아니게 고통을 주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불현듯 들기 시작한다. 우리가 원숭이가 좋아하는 메탈리카의 음악을 듣고 그들처럼 차분하고 이완되지 않듯이 그들도 인간의 음악을 듣고 각성상태가 된다거나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아무렇지도 않다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인간의 잣대로 음악을 작곡했다고 하면 아무리 동물의 소리를 소재로 삼았다고 한들 우리가 음악을 듣고 느끼는 감동과 같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알 길이 없다. 어쩌면 그저 자신과 비슷한 소리를 내는 스피커가 신기한 것일 뿐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스노든 팀의 언급은 없었지만, 고래의 울음소리(혹은 노래 소리)를 즐겨 듣는 필자는 고래를 위한 음악에도 관심이 간다. 엄청나게 큰 체구와 느릿한 움직임으로 말이암아 추측컨데, 고래는 엄청나게 느린 박자의 낮고 깊은 소리를 선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느린 음악에 관심이 많은 필자로서는 ‘고래음악’을 한번 작곡해볼까 하는 생각을 언뜻 해보게 된다. 물론 물속에서 고래에게 들려주는 일이 만만치 않겠지만 말이다.



참고자료: Applied Animal Behaviour Science - “Cats prefer species-appropriate music” (Charles T. Snowdon, David Teie, Megan Savage)





  1. The Independant - “Music for cats: These songs are scientifically proven to be your cat’s jam” (C. Hooton) [본문으로]
  2. Daily Mail - “Listen to the meow-sic!” (R. Gray) [본문으로]
  3. http://musicforcats.com/64-future.htm [본문으로]
  4. NPR - “Music Written For Monkeys Strikes A Chord” (R. Harris) [본문으로]
  5. The Guardian - “Scientists create music that helps monkeys chill out” (Ian Sample)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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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유학했던 영국 사우스햄턴에서 달팽이관 이식술을 받은 청각 장애인이 감상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연구가 진행중이었는데, 그로 인해 청각장애인 또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게 5년 전 일이었는데, 무의식에 자리잡았던 지적 호기심을 이번 기회에 (과다)충족 시키게 되었습니다.  인터넷 바다에서 헤멘게 다이지만, 나름 공부가 많이 되었네요 ㅎㅎ








문화+서울 4월호 보러가기



아래는 잡지에 실린 글의 원고입니다:


"청각장애인이 듣는 베토벤" - 청각 장애가 있어도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들그리고 베토벤의 후기 음악


보통 사람들은 음악은 소리에 의한 예술이라고 당연스럽게 생각하고듣는 것에 문제가 있으면 음악을 들을 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렇기 때문에 귀머거리가 된 작곡가 베토벤을 매우 불쌍한 존재로 보거나반대로 역경을 극복한 인간승리의 존재로 여기게 된다하지만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전혀 음악을 할 수 없는 것일까?

온전한 청각을 지닌 사람이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소리는 그 근원지로부터 진동의 형태로 공기를 타고 귀까지 전달되어 온 것이다.이 진동이 귀의 청각 신경을 자극하여 경우에 따라 음악을 구성하는 하나의 음으로 인지되는 것이다이러한 복잡한 단계들 중 어느 것이라도 방해를 받으면 음악 감상에 저해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이 모든 과정 자체가 전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예를 들어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은 그 장애의 종류에 따라 공기의 진동이 귀에 전달이 되지 않을 수도 있고청각 신경에 손상이 가서 전달 된 공기의 진동을 처리하지 못하는 수도 있다1.

중요한 것은 소리의 근원은 진동이라는 사실이다그렇다면 진동을 귀로는 느끼지 못하더라도 신체의 다른 기관으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우리가 클럽이나 행사장 같은 곳에서 아주 큰 스피커로 낮은 음을 들을 때에는 온몸으로 진동이 느껴지는 듯한 체험을 할 수 있다이것은 귀로 전달되는 자극과 더불어 다른 감각기관에서도 느껴지는 것이므로 청각에 문제가 있는 사람도 느낄 수 있는 자극이다또한소리를 내는 근원지에서 생성되는 최초의 진동을 직접 피부로 느낀다면공기라는 매개체를 거쳐 귀로 듣는 과정 자체가 필요없게 된다.

베토벤이 작곡을 할 때 즐겨 사용한 피아노는 어떻게 해서 소리를 내는 악기인가건반을 누르면 레버들이 작동하여 해머가 피아노 본체 안에 설치된 줄을 때리고그 줄에서 나는 진동이 공기를 거쳐 소리가 되는 것이다청각을 상실한 베토벤은 이 피아노 줄에 막대기를 대고 이것을 얼굴에 대면서 소리를 느꼈다고 한다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청각장애인이 음악수업을 원활히 참가하게 돕는 장치가 영국에서 개발되기도 하였는데이는 손가락을 통해 진동을 직접 느끼게 해 주는 장치이다2.

한국에서도 비슷한 장치가 개발되었는데손가락이 아닌온 몸으로 진동을 느낄 수 있는 의자 형태의 “뮤직 시트”이다이는 음악에서 나오는 여러 음들의 높낮이를 다양한 주파수로 변환하여 의자의 다양한 부분에 설치된 스피커에 전달하는 도구이며 이는 서강대 예술공학 박사 송은성씨와 현대차 기업 브랜드 마케팅 팀의 합작품이다3.

그렇다면청각 장애인이 듣고 연주하기 좋은 음악이나 악기가 따로 있을까?

청각장애인이자 세계적인 타악기 연주자인 에블린 글레니(Evelyn Glennie)는 타악기 소리를 진동으로 느끼며 연주를 하고이를 더 수월하게 하기 위해 맨 발로 무대위에 선다청각장애가 있으면서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상상하기가 어렵지만의외로 여러 교육기관에서 오히려 악기연주를 적극 권장하는 추세이다4대체로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이 악기를 연주하고자 한다면음 높이를 미세하게 조정해야 하는 바이올린과 같은 악기보다는 타악기나 음의 진동을 직접 느낄 수 있는 하프기타등의 악기를 선호하고호흡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관악기의 경우 정해진 위치에 음높이가 고정되어 있는 목관악기가 연주에 용이하다5청각장애인을 위한 달팽이관 이식술(cochlear implant)이 발달한 영국 연구팀의 자료를 보면 환자들이 음악을 인지하는 과정에 주기적인 강한 비트가 들어간 드럼을 활용한 음악이 감상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6.

베토벤이 말년에 작곡한 많은 곡들특히 피아노 소나타의 특징을 보면 빠른 반복과 엄청나게 긴 트릴을 자주 사용하였고피아노의 양쪽 끝 극단적인 음역대의 소리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페달을 남발하기도 했다7베토벤 후기 소나타의 악보를 보면 어떤 경우는 몇장에 걸쳐서 시커먼 음표들이 수많은 덧줄에 걸쳐져 반복적으로 작곡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이는 실제로 연주하면 감상자에 따라 매우 지저분한 소리로 인식되기도 한다이렇게 음악의 진행감은 더디면서 소리의 진동만 증폭되는 소리들은 약간의 광기와 음향적인 탐색의 열망이 더해지지 않으면 당시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음악 구조이다이런 특징들로 인해 말년으로 갈 수록 괴짜로 악평이 나버린 작곡가이지만그러한 평가는 어쩌면 귀가 온전한 사람들의 편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이 음악은 어쩌면 청각장애가 있는 감상자들에게는 더욱 즐거운 음악일 수도 있겠다천재 작곡가가 귀가 온전하지 못하여 소리를 진동으로 느껴가며 작곡한 음악이라면 멀찌감치 앉아서 팔짱을 끼고 듣는 것 보다는 피아노에 온 몸을 기대고 진동으로 느끼며 감상했을때 가장 감동적으로 들려오는 음악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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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음악치료학의 이해와 적용 (2005 정현주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p.70

2ablenews “청각장애인도 음악을 즐길 수 있다” 9/08/2006 기사박화중http://www.imdusa.org/imd/ablenews/090806ablenews.html

3청각장애인用 카시트 개발 김은정 기자 -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5/26/2013052602416.html?Dep0=twitter

4http://www.mtabc.com/page.php?61

5http://www.stthomas.edu/rimeonline/vol1/hash.htm

6http://www.sciencedaily.com/releases/2015/01/150126112432.htm

7http://www.theguardian.com/music/2012/nov/19/feel-music-deaf-children-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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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음악의 특징을 자신의 작품에 활용한 현대음악 작곡가 리게티, 그의 피아노 연습곡 1권의 1번.


우리가 평소에 듣는 대중음악이나 가요, 동요 등은 비교적 단순한 리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다들 하나의 리듬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음악들이다. 음악이 하나의 리듬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할 만큼 우리는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리듬이 진행되고 있는 음악을 상상하기 힘들어 한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리듬을 가진 음악이 일상적으로 들리는 곳이 이 세상에는 여러 군데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이다.


리듬”은 커녕 “음악”이라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는 언어를 구사하는 사하라 이남의 부족들은 리듬 자체를 인간의 삶의 일부로 봐 왔다. 엇갈려 부딫히는 서로 다른 리듬은 도전, 또는 정신적 갈등을 상징하고, 일정한 비트로 평화롭게 반복되는 리듬은 말 그대로 평화와 번영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리듬으로 인간사를 표현하는 만큼 그 다양성도 말할 수가 없는데, 우리 귀로는 이해하기 힘들정도로 복잡다단하게 리듬들이 얽혀가며 진행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일정한 박자, 또는 “비트”라는 개념이 모호해 지면서 기준을 삼을 박자를 찾지 못하고 영원히 흘러가는 듯한 음악으로 인지되는 것이다.


하나의 일정한 박자를 유지하는 단순한 음악은 사실 서양음악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리듬이 아무리 복잡해도 그들은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단위 박이 존재하게끔 음악이 설계되었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복합적인 리듬보다는 동시다발적으로 울리는 음 높이들의 구조, 즉 ‘화성’을 중시하는 것이 서양음악의 가장 큰 특징이다. 결과적으로 서양음악의 전통에서 파생된 대중음악도 일정한 패턴을 계속 반복하면서 멜로디와 화성을 강조하는 음악이 대세를 이루게 된 것이다. 한편, 서양음악의 전통을 이어오면서도 새로운 영감의 원천을 찾아 헤메던 현대음악 작곡가들은 다른 문화권에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는데, 헝가리 출신 작곡가 죄르지 리케티(György Ligeti)는 앞서 언급한 사하라 이남 지역의 리듬을 자신의 피아노 연습곡에 응용하기 시작하였다.


피아노를 위한 음악이면 극소수의 곡을 제외하고 대부분 두 손을 위해 작곡되며 악보도 오른손과 왼손을 위한 오선보가 따로 존재하고 둘이 나란히 놓여있다(주변의 피아노 악보를 참고하시라). 그렇다면 당연히 오른손과 왼손이 같은 박자표(2/4, 4/4, 3/4 )을 보며 동시에 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리게티가 작곡한 피아노 연습곡 1번은 이러한 기본적인 법칙조차 무시가 된다. 첫 세마디는 그렇게 되는 듯 하더니 한 음 간격으로 두 손이 엇갈리면서 악보를 가로짓는 마디줄이 중간에 끊기고 마치 바코드가 찢어진 것 처럼 엇갈리기 시작하더니 곡의 마지막까지 거의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가 박자를 셀 때 기본적으로 외치는 “강, 약”이 각 손마다 다른 것이다. 당연히 피아니스트들의 원성이 자자했을 것이고, 리게티가 이미 유명한 작곡가가 아니었다면 이 곡은 영영 무시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몇몇 용기있는 피아니스트들이 도전을 하였고 그들의 눈물겨운 노력 끝에 이 곡은 비교적 스탠더드한 레퍼토리가 되어있다.


아프리카에서는 각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맡은 리듬을 하나씩 연주함으로 인해서 엇갈리게 되는 박자를 한명의 인간이 피아노로 서로 다른 박자표를 보면서 연주하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전해 들은 이야기로, 이 곡을 연주해야 하는 누군가가 현대음악 피아니스트로 유명하며 리게티의 연습곡으로 음반을 낸 피에르 로랑 에마르(Pierre Laurent Aimard)에게 도대체 어떻게 이 곡을 연습하는지, 요령을 좀 알려달라고 했다 한다. 그의 대답은, “결국 연습밖에 답이 없습니다. 피아노 앞에서는 물론이고, 버스에서, 길을 걸으면서 항상 양손이 다른 리듬을 치는 연습을 꾸준히 하십시오. 언젠가는 익숙해 질 것입니다”라고 다소 상투적인 대답을 해서 질문자는 요령껏 헤어나올 수 없는 이 어마어마한 과제앞에 더욱 좌절했다고 한다. 이 곡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만 해도 극히 소수의 연주자만이 연주를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피아노 콩쿨에 단골로 연주되며 피아노를 전공하는 학생들도 연주에 도전을 할 정도이니, 인간의 능력은 역시 그 한계를 모르고 발전하는 듯 하다.


사실, 복합리듬을 음악의 한 요소로 구성하는 문화권은 아프리카 외에도 인도, 카리브 등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우리나라의 장단도 다소 그런 요소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월드 뮤직’의 장르하에 소개되는 여러 문화권의 대중음악은 이상하게도 리듬의 복잡성을 완전히 배제한, 서양의 대중음악의 구조를 지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계를 지배하는 듯한 서양 문화권의 영향력으로 인해 이렇게 풍부한 리듬자원(?)을 가진 전세계의 음악들이 주목을 받지 못하고 쇠퇴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대중음악에서 단지 가창력이나 단순한 반복만이 아닌, 복잡한 리듬도 즐길 수 있기 위해 우리도 피아니스트 에마르를 본받아 양손으로 각기 다른 리듬을 연주하는 연습을 생활화 하자고 하면 너무 지나친 요구일까?


[문화+서울] 3월호 직접 보기(새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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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서울] 2월호 보러가기(새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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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는 역설적으로 모든 것을 잠시 멈추고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느리고 여유롭게 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해 질 때가 있다. 음악도 시대를 반영한 예술이다보니 전체적으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빨라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에 반하는 움직임으로 느린 음악을 만드는 사조도 생겨곤 하였다. 특히, 서양예술의 한계를 느낀 전위예술가들이 20세기에 들어와서 동양 철학과 예술을 접하고 돌아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도 하는데, 이 때 시간의 개념이 서양의 그것과 다른 흐름으로 진행되는 음악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느림’에 대한 갈망은 음악에서도 반영될 때가 있는데, 이를 극단적으로 반영한 두개의 20세기 후반 작품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1. Organ2/ASLSP

전위예술하면 둘째가라 서러워할 존 케이지(John Cage)의 음악 중에, "최대한 느리게(as slow as possible) 연주할 것"이라고 지시사항이 적혀있는 작품이 있다. 하지만, 대체 얼마나 느려야 "최대한 느리게"인걸까?

그 의문을 지금 독일에서 풀기 위해 옛 동독지역의 작은 마을 교회에 설치된 파이프오르간에서 지금도 음악이 흐르고 있다. 할버슈타트(Halberstadt)라는 이 곳의 교회에 설치된 오르간에서는 존 케이지가 작곡한 "Organ2/ASLSP" (ASLSPAs SLow aS Possible의 약자)가 현재 13년째 연주되고 있는 것이다.

본래 피아노용으로 1985년에 작곡되고 1987년에 오르간 용으로 편곡이 된 이 곡이 작곡된 지 10년이 지난 1997년에 트로싱겐(Trossingen)에서 열린 오르간 심포지엄에서 이 곡을 대체 어떻게 해석하여 연주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위해 오르가니스트, 엔지니어, 설계사, 음악학자 등이 한데 모였다. 결국 이들이 내린 결론은, 이 곡은 이론적으로는 영원히 연주될 수 있으며, 현실 세계으로는 파이프오르간의 자연수명에 따라 연주시간이 달라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 곡을 연주할 수 있는 현대의 조율법에 따른 옥타브 내 12음이 모두 존재하는 오르간이 최초로 만들어진 곳이 할버슈타트이므로, 이 곡을 연주할 수 있는 오르간 중에 가장 오래된 악기가 이곳에 있다. 이 악기가 만들어진 연도는 1361. 만약 2000이라는 숫자에서 1361을 뺀다면 639라는 숫자가 나옵니다. 그리하여 상징적인 의미로서 할버슈타트에서 639년간 연주를 하기로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6세기에 걸쳐 연주될 존 케이지의 곡은, 한 음이 바뀌는 간격이 대부분 1년이 넘는다(보통 음악에서 아주 긴 음도 몇초가 넘어가지 않는 걸 생각한다면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어마어마한 속도인 셈이다). 그래서 음이 바뀌는 중요한 순간을 사람들이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것을 직접 체험하러 음이 바뀌는 날에는 수많은 관광객과 음악애호가들이 성당 주변으로 몰려온다.

현재까지 열 세번 음이 바뀐 적이 있었는데, 가장 최근에 바뀐 음은 2013105일이었고, 이는 약 7년간 지속될 계획이다. 그러므로 음이 바뀌는 현장에 가보고 싶은 사람은 202095일까지 기다려야 한다. 벌써 곡이 상당히 진행 되어서 626년밖에 연주시간이 남지 않은 존 케이지의 ASLSP를 조금이라도 라이브로 직접 들으실 분들은 늦기 전에 독일행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의 여유가 없으신 분은 너무 낙담하지 않아도 좋다. 왜냐하면 이보다 더 긴 1000년짜리 곡도 존재하기 때문이다.[각주:1]


2. 롱플레이어(Longplayer)

작곡가이자 설치예술가인 젬 파이너(Jem Finer)에 의해 만들어진 “롱플에이어(Longplayer)”1000년의 주기로 반복이 되는 패턴으로 된 음악이다. 이 음악에 재료로 쓰이던 원곡은 2020초 짜리인데, 이를 다양한 길이와 음 높이로 변환하여 6개의 패턴이 1000년간 단 하나도 같은 조합으로 이루어지지 않게끔 작곡된 곡인데, 악기로는 티베트 싱잉 볼(Tibetian singing bowl)을 활용하고 있다. 사실상 1000년 주기로 반복이 되기 때문에 관리만 꾸준히 된가면 영원히 지속되는 음악인 것이다. 작품에서 태양계의 원리도 함께 담고자 하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런던 근교에 설치물이 준공된 후 19991231일 자정부터 연주가 시작되었다.

롱플레이어의 소리를 듣고자 하는 사람은 롱플레이어 홈페이지에서 인터넷 생방송으로 언제든지 현재의 진행되는 음악을 스트리밍 받아서 들을 수 있으며, 직접 듣는 것은 연주가 실제 이루어지고 있는 설치물이 있는 곳( 런던 근교의 Trinity Buoy Wharf 내 등대)으로 방문해야 한다.


도저히 한 사람의 일생에서 다 들을 수 없는 어마어마하게 긴 음악들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도 신기한데, 이것을 실현시키기 위한 수많은 사람들과 단체 및 재단의 노력을 생각해보니, 예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이 작품들의 어느 점, 무엇때문에 이토록 많은 자원과 노력을 쏟아붓는 것일까? 이를 통해서 얻으려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이 작품을 위해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 연주가 끝나는 순간)을 자신의 생애에 절대 목격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존속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것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조차 분명하지 않다. 마치 자식을 낳아 기르고 그들이 자식을 낳는 끝없는 삶의 고리를 자신의 한정된 생애에서 부분적으로만 형상화 하듯이 말이다.

경제 논리로 모든 것이 돌아가는 사회에서는 이루어 질 수 없는 극단적인 예술형태들이 영국과 독일에서 이루어 지고 있는 것은 그들이 선진국이기 때문일까? 롱플레이어를 현실화 시키는데 도움을 준 단체인 아트엔젤 신탁(Artangel Trust)20여년간 이러한 불가능에 가까운 해괴망측한 예술작품을 후원해 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문화에 대한 관심과 후원이 늘어나면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수세기에 걸친 음악이 연주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자료출처:

www.aslsp.org

longplayer.org




2012/10/01 - 세상에서 가장 느린 음악 - 존 케이지의 639년짜리 오르간 곡 Organ2 / ASLSP


  1. 이 내용은 예전 블로그 글에서 발췌하였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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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서울] 1월호 보러가기(새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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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에서는 옛 클래식 음악에서 이전 음악을 인용하거나 재료로 사용한 것과 가요계의 표절논란을 예로 들면서 독창성과 저작권에 대한 음악계 내에서의 담론을 소개한다

작곡공부를 갓 시작한 대학생때, 한참 밤 늦도록 술을 마시고 흥에 취해서 집에 오다보면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생각이 안나던, 너무나 기발하고 획기적인 악상들이 떠오르곤 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자마자 오선지에 정신없이 휘갈겨 쓴 후 뿌듯한 마음에 잠이 들고, 다음날 일어나보면 그 악상들은 어이없게도 모두 대가의 곡들을 표절 한 것이었다.  술김에 대가의 곡이라는 사실을 기억 못한 것이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음악이 너무나도 많고그 음악들과 대적할 만한 새로운 음악을 무에서 창작하려면 굉장히 막막할 때가 많다.  그래서 기존의 음악에 경의를 표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재료로 삼기도 하는데, 이 때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훌륭한 창작물이 될 수도 있고, 범죄가 될 수도 있다.  


전통적인 서양음악에서 교회음악의 역할은 매우 컸고, 그 영향으로 단선율로 이루어진 그레고리오 성가를 재료로 삼은 무수히 많은 곡들이 탄생했다.  이 때의 그레고리오 성가 또한 당시 유행하던 노래들을 본따서 만든 성가였다.  하지만, 그 선율을 바탕으로 탄생한 작품들은 본래의 성가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양식이 달랐다


종교개혁 때 라틴어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이를 노래로 표현할 새로운 교회음악이 필요했던 마틴 루터는 자신이 직접 작곡도 했지만, 그레고리오 성가를 많이 가져다가 사용한다.  바하는 수백개에 달하는 이러한 단선율에 화성을 붙이는 작업을 한 후 이를 자신의 칸타타 등에 인용하였다.  교회에서는 본 예배 이전에 오르간 연주로 성가의 선율을 가지고 변주곡을 연주한다.  '바하 코랄'로 불리는 이 코랄집은 그 후로는 작곡 공부에 많은 도움을 주는 "성서"가 되었고, 무수히 많은 작품들의 소재로 쓰인다


이렇게 옛 것에 대한 경의와 변화에 대한 열망이 적절히 배합되어 발전된 형태의 음악이 탄생하는 아름다운 역사도 있지만, 현실은 항상 이상적이지만은 않다.


인터넷이 발달하기 이전인 90년대까지는 외국의 음악을 듣는 것이 쉽지 않던 환경에서 마치 신문물을 수입하듯이 들여오는 색다른 스타일의 음악에 한글 가사를 입힌 가요들이 우리나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시절이 있었다. 밀리 바닐리의 “Girl, you know it’s true”를 응용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Shaggy의 “Oh Carolina”를 거의 바꾸지 않고 쓴 룰라의 “날개잃은 천사” 등의 노래는 90년대 초에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고, 지금처럼 즉각적인 표절시비가 붙지 않았다. 이는 마치 시간에 쫒겨 외국의 디자인을 모방한 모델로 신제품을 내는 한국의 기업들과 비슷했고, 경제적 성과를 위해 그 정도는 눈 감아줄 수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런 것이 용인 되다 보면 여러가지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낳는다. 조금만 인기있는 상품은 모방 제품이 넘쳐나서 경쟁력을 금방 잃게 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보다는 순발력과 잔머리가 더 성공에 유용한 도구가 되어간다.


사실, 어디까지가 개인의 고유한 창작의 영역인지에 대한 구분은 모호하고 장르마다 기준이 다르다. 영화음악계에서는 실질적인 작업은 편곡자들이 거의 다 하면서 완성된 음악의 작곡가는 유명 영화음악가의 이름으로 내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렇지 않는다면 실질적으로 그 영화음악가들이 직접 모든 작업을 할 시간조차 없다. 동일한 작곡가가 여러 작품을 만들때도 문제이다. 같은 소재로 조금씩 변화를 줘서 새로 발표할 경우, 이를 온전한 새 곡이라고 말 할 수가 있을지 의문이다. 심한 경우 자가표절 논란이 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의 재료를 본인이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을 뭐라고 할 수 있을까?


비발디에 대해서 20세기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는 “똑같은 곡을 100개 쓴 사람”이라고 비꼬았다. 시대에 따라 “새로운 곡”에 대한 기준이 달라진 것이다. 예전의 서양 클래식 음악이 모두 조성음악의 틀과 법칙에 따랐다면 이제는 작곡가들이 각자 자신만의 틀과 법칙을 개발해야 하고, 이를 비슷한 형태로 너무 많이 사용해도 좋지 않은 시선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극대화된 독창성에 대한 강요가 반대로 잘 알려지지 않은 다른 작품을 베끼는 식으로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하지만, 똑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비슷한 곡을 여러개 작곡했더라도, 그 중 몇 안되는 곡이라도 후세에 남아있다면 그는 위대한 작곡가인 것은 사실이지 않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남의 것을 사용하는 것 보다는 자신의 것을 이리저리 굴려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사실, 바하 코랄처럼 과거의 재료를 새로이 응용하는 것도 아름다운 창작행위이다. 결국, 남의 것이라도 출처를 분명히 밝히고 더 발전된 형태의 작품을 위한 의도로 사용 되었다면 이것도 도둑질이라고 보기 어렵다. 결국 창작자의 마음속을 들여다 보기 전에는 그것이 표절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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