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편하게 들리는 소리가 있고 거슬리는 소리가 있다. 편하게 들리는 소리는 그동안 들어왔던 익숙한 소리이고, 거슬리는 소리는 생소하고 의미를 알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편한 소리는 자연의 법칙에 더 충실히 따르는 소리일 것이라는 주장도 많다. 예를 들어, 피아노 건반상의 도-솔 에 해당하는 음의 간격(완전 5)을 많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문화권에서 편한 소리, 즉 협화음으로 간주하고 화음에 이용한다.


그렇다면 협화음이 아닌 음간격, , 불협화음은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는 소리이기 때문에 모든 인류가 거슬려 하는가? 피아노 건반으로 미와 파(2)를 동시에 친다고 상상해보자. 뭔가 부딫히는 소리가 나고, 도와 솔을 동시에 쳤을 때 처럼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피아노를 치다가 음을 틀렸을 때 주로 나는 소리들이 이런 불협화음이고, 많은 사람들이 즉시 알 수 있다. 협화음을 선호하는 인간의 귀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이치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그렇게 느낄 것이라고 여길 수 있고, 실제로 많은 학자들이 그렇게 주장해왔다.


그런데, 아마존의 부족(볼리비아의 오지에 사는 치마네이족)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 본 결과, 그들은 협화음과 불협화음을 구별은 할 줄 알지만, 어느것이 더 듣기에 편하냐는 물음에는 반응이 전혀 없었다. 그들에게는 불협화음도 협화음과 똑같이 편안하게 들린 것이다. 실험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청각실험을 했을 시 모두 정상이었고, 웃는 소리와 놀라서 내는 ‘헉’하는 소리 중 어느 것이 편안하게 들리는지 조사했을 때 실험 대상자들 모두 웃는 소리를 선택하였다.


서양음악에서는 도와 파#의 간격, 즉 증4도 음간격을 “악마의 음정”이라 칭하며 터부시 해왔다. 이 악마의 음정을 피하기 위해 새로운 화음이 생겨나고 스케일이 변할 정도로 음악사에 미친 영향이 컸던 이 불협화음도, 결국 과학적인 근거로 인한 자연적이고 당연한 현상이 아니라, 문화에서 파생된 특정 시대에 국한된 금기였던 것이다.


서양음악사를 더 깊이 들여다보면 또 다른 재미있는 현상이 있다. 지금 우리가 편하게 듣고 있는 화음들에 가장 자주 쓰이는 음정인 3(도와 미, 또는 미와 솔의 간격)가 중세 서양음악에서는 불협화음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만약 중세 시대 음악가가 타임머신을 타고 21세기로 날라와 가요를 들으면 모든 화음에 쓰인 “불협화음”들 때문에 음악이 아닌 엄청난 소음들의 집합체로 들을 것이다.


아마존의 치마네이족은 서양문물을 접할 기회가 전무하다시피 한 몇 안되는 부족 중 하나다. 전기가 통하지 않는 환경이니 티비나 라디오로 대중음악을 들을 기회가 없다. 그들이 사는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강을 따라 카누를 타고 가야한다.


치마네이족은 노래를 혼자 부르는 문화만 있다. 그들의 음악에는 합주가 존재하지 않아서 두개 이상의 음이 동시에 울려퍼질 일이 없고, 화음도 생겨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특정 음간격에 대한 선호도 자체가 아예 생겨나지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화음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음악만을 접한 사람이 이제는 지구상에 많지가 않아서 이 연구는 그만큼 희소가치가 있다.


협화와 불협화에 대한 이런 연구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동안 음악가들이 추구해 왔던 “좋은 소리”가 과연 객관적인 기준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한다. “좋은 소리”라는 말 자체가 미학적으로 논란이 많긴 하지만, 이 글에서는 화음의 성질로만 생각을 해 봤을 때, 좋은 화음, 협화음이 과연 추구해야 할 화음인가, 그리고 불협화음은 뭔가 해결을 해야만 하는 대상인가, 그렇다면 그런 법칙은 누가 만들었는가 하는 좀 더 근본적인 물음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은 자연의 법칙에서 파생된 배음의 원리에 의해 생성되는 음정들(옥타브, 53도 등)을 협화음으로 간주했다. 그러므로 서양음악 작곡의 역사는 이 음정들을 다루는 방법의 변천사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자연에서 파생된 마땅한 원리가 아니라면, 지금 인류가 협화음으로 생각하는 소리들을 선호하는 것은 순전히 역사적인 우연인 것이다. 마치 서양식 옷입기가 전 세계적으로 보급된 것 처럼 서양음악에서 파생된 원리로 쓰인 대중음악이 세계화를 통해 보급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각 나라의 전통음악에도 영향을 미처서, 이제는 피아노 조율법과 다른 방식의 조율로 된 음악을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세계화에 의한 인류의 귀의 획일화인 것이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동년배 작곡가들과 농담으로 주고받은 이야기가 있다. 우리 아이들은 다양한 문화권의 음악을 들려줘서 편견 없는 음악세계를 구축시켜 주고프다는 이야기였다. 당장 15개월 아이가 있는 필자부터 이 연구 결과를 접한 이후로 동요CD를 치우고 판소리와 인도 전통음악 CD를 틀기 시작했다. 이른 나이부터 너무 서양음악에만 국한된 편향된 음악세계만 접하게 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다.  




문화+서울 2017년 2월호에 기재된 칼럼입니다. 직접보기(링크)


자료 출처:

The Atlantic: Musical Preferences of an Amazon Tribe

LA Times: Culture, not biology, may define which musical chords sound sweet



이 칼럼 쓰면서 희원이한테 인도음악만 한동안 틀어줌 ㅋㅋㅋㅋㅋ 

제발 절대음감만은 갖지 말아라 희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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