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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야기/음악감상실

아플때 들으면 좋을 것 같은 바르톡의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 2악장


Bartok pf concerto No. 3, 2악장

이 곡을 처음 접했던 것은 2002년 이신우 선생님이 맡으신 작곡법 강의 시간이었다.  

수업 내용은 기술적인 작곡 기법에 관한 것이었지만,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은, 바르톡이 말년에 이 작품을 썼다는 사실이고, 그 때 당시로서는 굉장히 혁신적인 음악어법을 많이 남긴 작곡가 치고는 상당히 듣기 쉬운 음재료와 조성음악으로 이 작품을 작곡하는데 임한 것 같다는 인상이었다.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고 Andras Schiff가 협연하는 바르톡 피아노 협주곡 3번의 2악장.


영상의 1:10부터 시작되는 피아노 파트의 첫 다섯마디의 화성을 분석해보면 아래와 같다:
I - IV(1전위) - I7(2전위) - IV - iii - V7 - vi - IV7 - V
(잘 들리지 않는 음들은 제외하고 분석하였음)

7화음이 다소 남발되긴 하였지만, 전통화성학의 범주에서 봤을때 상당히 정격진행 위주의(크게 모나지 않고 일반적인) 자연스럽다고 느껴지는 편안한 진행을 하고 있다.  바르톡의 당시 작품으로 비추어 봤을 때 상당히 시대를 역행하는 진행인 것이다.  이는 어린 아들을 위해 작곡한 미크로코스모스의 가장 단순한 곡들보다도 더 "듣기 편한", 전통적인 화성이다.

아들 피터 바르톡과 함께 한 벨라 바르톡 (출처: 구글이미지)

사실 많은 작곡가들이 노년에 들어서 아방가르드한 자신의 젊은 시절을 부정하고 완전히 다른 어법을 사용하곤 했다.  리게티, 펜데레츠키 등 많은 20세기 후반의 작곡가들이 무조음악을 넘어선 클러스터(덩어리) 기법을 사용하다가 조성을 다시 활용하기 시작한 것(후에 "신낭만주의"로 분류되는)을 보면 느낄 수 있다.  (반면 스툭하우젠 처럼 겉잡을 수 없는 4차원의 세계로 빠져들어 현실감각을 상실한 경우도 없진 않지만... ㅠ)

사람이 몸이 아프고 쇠약해져서 자신이 갈 때가 된 것을 알게 되면, 어렵고 기술적인, 혁신적인 도전들에서 살짝 거리를 두고, 또는 자신이 추구하던 높은 목표를 내려놓고, 좀 더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것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인가?   실제로 피카소와 같은 화가들도, 자신의 손기술이 드러나지 않는,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러나는 작품들을 말년에 많이 만들기도 하였으니...

바르톡을 그리하여 자신이 쓰고 있는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의 느린 악장에 쉬어가는 페이지로서 자신의 그러한 기분을 표현 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 3악장의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과 같은 음악에서 벗어난, 비오는 창밖을 통유리로 된 집에서 바라보며 따뜻한 차 한잔(또는 소주 한잔?)과 함께 회상에 잠긴 듯한 음악이 내게는 2악장의 느낌이고, 그렇기 때문에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달콤한 멜랑꼴리함에 빠지고 싶어질 때 왠지 이 곡을 찾게 되는 것이다.